"키워드 : 왕실"
검색결과 총 50건
조선후기 제27대 왕 순종의 탄생부터 즉위까지의 모든 사안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왕실기록물.
동궁일록 (東宮日錄)
조선후기 제27대 왕 순종의 탄생부터 즉위까지의 모든 사안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왕실기록물.
미상의 저자가 조선 태조부터 순조까지, 각 왕대의 기본사항과 중요사실을 서술한 역사서.
국조휘감 (國朝彙鑑)
미상의 저자가 조선 태조부터 순조까지, 각 왕대의 기본사항과 중요사실을 서술한 역사서.
조선시대 궁중에서 필요한 물자를 전담하여 공급하던 6개 왕실재정관서.
공상육사 (供上六司)
조선시대 궁중에서 필요한 물자를 전담하여 공급하던 6개 왕실재정관서.
궁사전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왕실 재정을 위해 지급된 토지이다. 고려 초기에는 왕실 재정을 담당한 내장택(內莊宅)과 내고(內庫) 중에서 내장택에 지급되었으며, 고려 중기 이후 내장택이 소멸되자, 고려 말에는 내고가 발달해 설치된, 이른바 창고궁사(倉庫宮司) 에도 지급되었다. 창고궁사전이 지급된 곳을 이른바 오고칠궁(五庫七宮)이라고 하였다. 창고궁사전은 사전이었으므로 전주가 직접 답험(踏驗)과 수조(收租)를 하였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면세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내수사전으로 흡수되면서 명칭이 소멸되었다.
궁사전 (宮司田)
궁사전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왕실 재정을 위해 지급된 토지이다. 고려 초기에는 왕실 재정을 담당한 내장택(內莊宅)과 내고(內庫) 중에서 내장택에 지급되었으며, 고려 중기 이후 내장택이 소멸되자, 고려 말에는 내고가 발달해 설치된, 이른바 창고궁사(倉庫宮司) 에도 지급되었다. 창고궁사전이 지급된 곳을 이른바 오고칠궁(五庫七宮)이라고 하였다. 창고궁사전은 사전이었으므로 전주가 직접 답험(踏驗)과 수조(收租)를 하였다. 이는 고려시대부터 면세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내수사전으로 흡수되면서 명칭이 소멸되었다.
궁중유물전시관은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조선 왕실의 궁중 유물을 전시·관리·홍보, 학술 도서와 자료의 수집, 출판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황실박물관으로 발족되어 1969년 국립박물관으로 통합되었다.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이 신설·개관되었는데 2005년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영조어진」(보물), 「왕세자탄강진하도」(보물) 등을 포함한 약 2만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65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매년 주제를 갖고 정기적으로 개관 기념전과 특별전을 열고 있다.
궁중유물전시관 (宮中遺物展示館)
궁중유물전시관은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조선 왕실의 궁중 유물을 전시·관리·홍보, 학술 도서와 자료의 수집, 출판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황실박물관으로 발족되어 1969년 국립박물관으로 통합되었다.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이 신설·개관되었는데 2005년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영조어진」(보물), 「왕세자탄강진하도」(보물) 등을 포함한 약 2만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65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매년 주제를 갖고 정기적으로 개관 기념전과 특별전을 열고 있다.
고려·조선 초기 왕이 쓰는 기물과 장식품의 제조를 감시하고 수지(收支)를 관장하였던 관서.
공조서 (供造署)
고려·조선 초기 왕이 쓰는 기물과 장식품의 제조를 감시하고 수지(收支)를 관장하였던 관서.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5왕비.
대명궁부인 (大明宮夫人)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5왕비.
건봉사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금강산(金剛山)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염불만일회로 유명한 사찰이다. 사명대사가 봉안했다고 알려진 부처님 치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19세기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왕실에서 시주하여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가 근래에 재건하였다.
건봉사 (乾鳳寺)
건봉사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금강산(金剛山)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염불만일회로 유명한 사찰이다. 사명대사가 봉안했다고 알려진 부처님 치아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다. 19세기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왕실에서 시주하여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가 근래에 재건하였다.
내고는 고려시대 왕궁에 직속되어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북방의 양계를 제외한 6도에서 수납한 금·은 등의 보물과 포백·종이·숯·소금 등의 공물을 보관하였다. 인종대를 전후하여 대영창·대영고라고도 불렸다. 종6품과 정8품의 정식 문관이 임명되었으나 점차 환관 등 왕의 측근 인물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충렬왕 때에는 내고에 내방고를 별도로 설치하면서 왕실 소유 토지와 재정을 확대하였다. 이후 각종 궁사와 창고가 설치되어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공민왕 때에 내장고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내수사로 개칭되었다.
내고 (內庫)
내고는 고려시대 왕궁에 직속되어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북방의 양계를 제외한 6도에서 수납한 금·은 등의 보물과 포백·종이·숯·소금 등의 공물을 보관하였다. 인종대를 전후하여 대영창·대영고라고도 불렸다. 종6품과 정8품의 정식 문관이 임명되었으나 점차 환관 등 왕의 측근 인물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충렬왕 때에는 내고에 내방고를 별도로 설치하면서 왕실 소유 토지와 재정을 확대하였다. 이후 각종 궁사와 창고가 설치되어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공민왕 때에 내장고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내수사로 개칭되었다.
내성(內省)은 신라 · 통일신라 시대, 왕실과 궁궐 관련 사무를 총괄하던 신라의 관청이다. 진평왕 44년(622) 2월에 내성의 장관 사신(私臣)을 두면서 시작되었고, 경덕왕 대에 크게 정비되면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때 태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동궁아가 설치되어 내성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어룡성이 내성과 대등한 관청이 되면서, 내성과 동궁아, 어룡성이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되었다.
내성 (內省)
내성(內省)은 신라 · 통일신라 시대, 왕실과 궁궐 관련 사무를 총괄하던 신라의 관청이다. 진평왕 44년(622) 2월에 내성의 장관 사신(私臣)을 두면서 시작되었고, 경덕왕 대에 크게 정비되면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때 태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동궁아가 설치되어 내성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어룡성이 내성과 대등한 관청이 되면서, 내성과 동궁아, 어룡성이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되었다.
신라시대의 관직.
경 (卿)
신라시대의 관직.
내원암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수락산에 있는 조선 후기 왕실의 기도처였다.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창건자나 그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조선 숙종(肅宗) 대 이후 왕실의 불교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암자로 확인된다.
내원암 (內院庵)
내원암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수락산에 있는 조선 후기 왕실의 기도처였다. 삼국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창건자나 그 시기는 알 수 없으며, 조선 숙종(肅宗) 대 이후 왕실의 불교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암자로 확인된다.
무토궁방전은 조선 후기, 궁방에 속한 면세결 가운데 소유권 없이 수조권만 가진 전답이다. 18세기 말~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있는 면세결 규모는 대략 3~4만여 결 수준이었으며, 그 가운데 무토궁방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70% 내외였다.
무토궁방전 (無土宮房田)
무토궁방전은 조선 후기, 궁방에 속한 면세결 가운데 소유권 없이 수조권만 가진 전답이다. 18세기 말~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있는 면세결 규모는 대략 3~4만여 결 수준이었으며, 그 가운데 무토궁방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70% 내외였다.
대차지는 조선후기에 왕실의 조달이나 제사를 담당한 각궁(各宮)에서 직제상 최상위에 있었던 직책이다. 대차지의 직책에는 내시, 즉 환관이 임명되었다. 대차지는 각궁 내부에 직제상 존재한 당상관이 아니었으며, 당상인 환관에 의해 각궁이 관할되고 있었을 뿐이다.
대차지 (大次知)
대차지는 조선후기에 왕실의 조달이나 제사를 담당한 각궁(各宮)에서 직제상 최상위에 있었던 직책이다. 대차지의 직책에는 내시, 즉 환관이 임명되었다. 대차지는 각궁 내부에 직제상 존재한 당상관이 아니었으며, 당상인 환관에 의해 각궁이 관할되고 있었을 뿐이다.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왕비.
문공왕후 (文恭王后)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왕비.
고려전기 제6대 성종의 왕비.
문덕왕후 (文德王后)
고려전기 제6대 성종의 왕비.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제2왕비.
문성왕후 (文成王后)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제2왕비.
조선시대 왕실계보·왕실척족·공신 등 벌열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역사서.
벌열고 (閥閱考)
조선시대 왕실계보·왕실척족·공신 등 벌열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역사서.
덕천고는 고려 후기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기관이다. 충렬왕대에 제국대장공주의 식읍에서 납부하는 곡식과 옷감을 관리한 것과 같은, 왕실의 사적인 재정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충선왕이 이를 물려받아 덕천창(德泉倉)이라고 부르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덕천고로 다시 고쳤다. 의성창(義成倉)과 함께 왕실의 사적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였으므로 사장(私藏)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덕천고 (德泉庫)
덕천고는 고려 후기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기관이다. 충렬왕대에 제국대장공주의 식읍에서 납부하는 곡식과 옷감을 관리한 것과 같은, 왕실의 사적인 재정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충선왕이 이를 물려받아 덕천창(德泉倉)이라고 부르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덕천고로 다시 고쳤다. 의성창(義成倉)과 함께 왕실의 사적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였으므로 사장(私藏)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조선시대 제1대 왕 태조부터 제23대 왕 순조때까지 443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한 역사서.
기년찬요 (紀年纂要)
조선시대 제1대 왕 태조부터 제23대 왕 순조때까지 443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한 역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