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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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 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567년에 조성된 백제의 왕실사찰이 있던 터이다. 이 사찰은 능산리 고분군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창왕(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하였다. 이후 백제 사비기 국왕들의 명복을 기원하였으며, 백제 멸망과 함께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목탑, 중문, 금당, 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된 1탑1금당식이다. 출토 유물로는 국보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 석조사리감이 있다. 이 유적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명확한 축조연대를 확인할 수 있어 삼국시대 건축은 물론 동북아시아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부여 능산리 사지 (扶餘 陵山里 寺址)
부여 능산리 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567년에 조성된 백제의 왕실사찰이 있던 터이다. 이 사찰은 능산리 고분군 인근에 위치해 있으며, 창왕(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하였다. 이후 백제 사비기 국왕들의 명복을 기원하였으며, 백제 멸망과 함께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목탑, 중문, 금당, 강당이 남북 일직선상에 배치된 1탑1금당식이다. 출토 유물로는 국보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 석조사리감이 있다. 이 유적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명확한 축조연대를 확인할 수 있어 삼국시대 건축은 물론 동북아시아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서울교동초등학교 (서울校洞初等學校)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태봉(胎峰) 정상부에 있는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왕자들의 태를 봉안한 태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태봉(胎峰) 정상부에 있는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왕자들의 태를 봉안한 태실.
내탕고(內帑庫)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던 창고이다.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창고이다. 17세기부터 각종 궁방(宮房)이 창설되면서 내탕을 관리하는 기구가 다양해졌다. 내수사와 궁방은 토지와 노비의 신공을 주요 재원으로 하여 운영되었다.
내탕고 (內帑庫)
내탕고(內帑庫)는 조선시대에 왕실의 재물을 보관하던 창고이다. 왕실 사유재산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창고이다. 17세기부터 각종 궁방(宮房)이 창설되면서 내탕을 관리하는 기구가 다양해졌다. 내수사와 궁방은 토지와 노비의 신공을 주요 재원으로 하여 운영되었다.
소군(小君)은 고려시대에 왕의 서자에게 붙여준 칭호를 가리키는 왕실용어이다. 고려 왕실에서는 왕비의 소생을 적자라고 하였고, 궁인·폐첩의 소생을 서자라고 하였다. 서자는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천인(賤人)이었기 때문에 출가시켜 중이 되게 하였는데 이를 소군이라고 하였다. 정치 참여를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출가시켰지만 왕의 서자이었기에 직간접적으로 불법적인 정치 관여와 비행 등 폐단을 일으켰다. 한편 태조의 손녀이자 경종의 비인 헌정왕후의 아들로 출가한 대량원군[현종]은 소군이었지만 왕위에 즉위하였다.
소군 (小君)
소군(小君)은 고려시대에 왕의 서자에게 붙여준 칭호를 가리키는 왕실용어이다. 고려 왕실에서는 왕비의 소생을 적자라고 하였고, 궁인·폐첩의 소생을 서자라고 하였다. 서자는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천인(賤人)이었기 때문에 출가시켜 중이 되게 하였는데 이를 소군이라고 하였다. 정치 참여를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출가시켰지만 왕의 서자이었기에 직간접적으로 불법적인 정치 관여와 비행 등 폐단을 일으켰다. 한편 태조의 손녀이자 경종의 비인 헌정왕후의 아들로 출가한 대량원군[현종]은 소군이었지만 왕위에 즉위하였다.
『선원속보』는 대한제국기 종정원에서 간행한 조선 왕실의 종합 족보이다. 조선 왕실의 족보는 특정 왕의 남계 후손과 여계 후손의 계보를 따로 작성했는데 숙종조에 『선원계보기략』으로 통합되었다. 그런데 『선원계보기략』도 내외 후손 6대까지만 수록되었기 때문에 전주 이씨의 대동보를 제작하자는 취지에서 『선원속보』를 간행하였다. 『선원속보』는 전주 이씨 전체를 수록하였고, 여기에 수록되면 잡역이 면제되고 양반으로 인정되는 등 혜택이 있었다. 1860년에 작성되기 시작하여 1867년에 102파의 파보를 종합하여 완성되었다. 1900년에 간행되었다.
선원속보 (璿源續譜)
『선원속보』는 대한제국기 종정원에서 간행한 조선 왕실의 종합 족보이다. 조선 왕실의 족보는 특정 왕의 남계 후손과 여계 후손의 계보를 따로 작성했는데 숙종조에 『선원계보기략』으로 통합되었다. 그런데 『선원계보기략』도 내외 후손 6대까지만 수록되었기 때문에 전주 이씨의 대동보를 제작하자는 취지에서 『선원속보』를 간행하였다. 『선원속보』는 전주 이씨 전체를 수록하였고, 여기에 수록되면 잡역이 면제되고 양반으로 인정되는 등 혜택이 있었다. 1860년에 작성되기 시작하여 1867년에 102파의 파보를 종합하여 완성되었다. 1900년에 간행되었다.
내고는 고려시대 왕궁에 직속되어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북방의 양계를 제외한 6도에서 수납한 금·은 등의 보물과 포백·종이·숯·소금 등의 공물을 보관하였다. 인종대를 전후하여 대영창·대영고라고도 불렸다. 종6품과 정8품의 정식 문관이 임명되었으나 점차 환관 등 왕의 측근 인물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충렬왕 때에는 내고에 내방고를 별도로 설치하면서 왕실 소유 토지와 재정을 확대하였다. 이후 각종 궁사와 창고가 설치되어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공민왕 때에 내장고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내수사로 개칭되었다.
내고 (內庫)
내고는 고려시대 왕궁에 직속되어 왕실 재정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북방의 양계를 제외한 6도에서 수납한 금·은 등의 보물과 포백·종이·숯·소금 등의 공물을 보관하였다. 인종대를 전후하여 대영창·대영고라고도 불렸다. 종6품과 정8품의 정식 문관이 임명되었으나 점차 환관 등 왕의 측근 인물이 실권을 장악하였다. 충렬왕 때에는 내고에 내방고를 별도로 설치하면서 왕실 소유 토지와 재정을 확대하였다. 이후 각종 궁사와 창고가 설치되어 그 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 공민왕 때에 내장고로 개칭되었다가 조선시대에는 내수사로 개칭되었다.
조선 말기 고종의 아들들 및 고종의 형제를 친왕(親王)으로 책봉하고 그 친왕에게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관부.
친왕부 (親王府)
조선 말기 고종의 아들들 및 고종의 형제를 친왕(親王)으로 책봉하고 그 친왕에게 관련된 사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관부.
궁중유물전시관은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조선 왕실의 궁중 유물을 전시·관리·홍보, 학술 도서와 자료의 수집, 출판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황실박물관으로 발족되어 1969년 국립박물관으로 통합되었다.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이 신설·개관되었는데 2005년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영조어진」(보물), 「왕세자탄강진하도」(보물) 등을 포함한 약 2만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65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매년 주제를 갖고 정기적으로 개관 기념전과 특별전을 열고 있다.
궁중유물전시관 (宮中遺物展示館)
궁중유물전시관은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박물관이다. 조선 왕실의 궁중 유물을 전시·관리·홍보, 학술 도서와 자료의 수집, 출판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08년 황실박물관으로 발족되어 1969년 국립박물관으로 통합되었다. 1992년 궁중유물전시관이 신설·개관되었는데 2005년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영조어진」(보물), 「왕세자탄강진하도」(보물) 등을 포함한 약 2만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이 중 65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매년 주제를 갖고 정기적으로 개관 기념전과 특별전을 열고 있다.
『탁지정례(度支定例)』는 1749년(영조 25)부터 정조 연간까지 왕실의 각 전(殿)과 궁(宮), 궐내외 각 사(司), 국혼(國婚), 상방(尙方) 등에 소요되는 물품을 시기별, 품목별로 정리한 규정집이다. 이 책은 영조 즉위 뒤 국가의 재정 운영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지출하는 모든 경비를 규범화하려는 목적에서 간행되었다.
탁지정례 (度支定例)
『탁지정례(度支定例)』는 1749년(영조 25)부터 정조 연간까지 왕실의 각 전(殿)과 궁(宮), 궐내외 각 사(司), 국혼(國婚), 상방(尙方) 등에 소요되는 물품을 시기별, 품목별로 정리한 규정집이다. 이 책은 영조 즉위 뒤 국가의 재정 운영을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지출하는 모든 경비를 규범화하려는 목적에서 간행되었다.
고려전기 제6대 성종의 왕비.
문덕왕후 (文德王后)
고려전기 제6대 성종의 왕비.
『탁지준절』은 조선 후기 왕실과 각 아문에서 소요되는 물자를 항목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관찬서이다. 1749년 각 관아의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국가경비 지출에 관한 일종의 예규를 만든 「탁지정례」와 같은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필단릉초견·주저목포면 등 60항목으로 분류한 각종 물품의 규격·용량·절가(折價) 등이 기재되어 있다. 특히 잡록은 큰 항목에서 제외된 사항을 80여 개 항목으로 세분하였는데 난파된 조운선에 대한 규정 등이 있다. 양전규식, 전삼세출부, 토전 등의 항목을 통해 조선 말기 국가 재정의 실태와 운용 및 부세 체제의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탁지준절 (度支準折)
『탁지준절』은 조선 후기 왕실과 각 아문에서 소요되는 물자를 항목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관찬서이다. 1749년 각 관아의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국가경비 지출에 관한 일종의 예규를 만든 「탁지정례」와 같은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필단릉초견·주저목포면 등 60항목으로 분류한 각종 물품의 규격·용량·절가(折價) 등이 기재되어 있다. 특히 잡록은 큰 항목에서 제외된 사항을 80여 개 항목으로 세분하였는데 난파된 조운선에 대한 규정 등이 있다. 양전규식, 전삼세출부, 토전 등의 항목을 통해 조선 말기 국가 재정의 실태와 운용 및 부세 체제의 구조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처(處)는 고려시대 왕실 재정의 수입원과 관련된 군현제의 하부 행정 단위로서 향(鄕)·소(所)·부곡(部曲)·진(津)·역(驛)·장(莊)과 함께 군현에 예속되어 있던 왕실 소속의 촌락이다. 처는 장처전(莊處田)의 처전(處田)이 있었던 촌락으로 왕실에 예속되어 왕실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였다.
처 (處)
처(處)는 고려시대 왕실 재정의 수입원과 관련된 군현제의 하부 행정 단위로서 향(鄕)·소(所)·부곡(部曲)·진(津)·역(驛)·장(莊)과 함께 군현에 예속되어 있던 왕실 소속의 촌락이다. 처는 장처전(莊處田)의 처전(處田)이 있었던 촌락으로 왕실에 예속되어 왕실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였다.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5왕비.
대명궁부인 (大明宮夫人)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5왕비.
국립고궁박물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 내에 위치한 국립 박물관이다. 1992년 덕수궁에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하여 본격적으로 왕실 유물을 관리·전시·연구·보존하다가 2005년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 국립고궁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상설전시실은 총 3개층 12개실로 2층에는 제왕기록실, 국가의례실, 궁궐건축실, 과학문화실, 왕실생활실, 1층에는 탄생교육실, 왕실문예실, 대한제국실, 지하층에는 궁중회화실, 궁중음악실, 어가의장실, 자격루실 등이 있다. 왕실 유물의 체계적, 종합적 연구와 수집, 보존으로 왕실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역사관 정립에 기여하고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國立古宮博物館)
국립고궁박물관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 내에 위치한 국립 박물관이다. 1992년 덕수궁에 궁중유물전시관을 개관하여 본격적으로 왕실 유물을 관리·전시·연구·보존하다가 2005년 옛 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 국립고궁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상설전시실은 총 3개층 12개실로 2층에는 제왕기록실, 국가의례실, 궁궐건축실, 과학문화실, 왕실생활실, 1층에는 탄생교육실, 왕실문예실, 대한제국실, 지하층에는 궁중회화실, 궁중음악실, 어가의장실, 자격루실 등이 있다. 왕실 유물의 체계적, 종합적 연구와 수집, 보존으로 왕실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역사관 정립에 기여하고 있다.
내성(內省)은 신라 · 통일신라 시대, 왕실과 궁궐 관련 사무를 총괄하던 신라의 관청이다. 진평왕 44년(622) 2월에 내성의 장관 사신(私臣)을 두면서 시작되었고, 경덕왕 대에 크게 정비되면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때 태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동궁아가 설치되어 내성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어룡성이 내성과 대등한 관청이 되면서, 내성과 동궁아, 어룡성이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되었다.
내성 (內省)
내성(內省)은 신라 · 통일신라 시대, 왕실과 궁궐 관련 사무를 총괄하던 신라의 관청이다. 진평왕 44년(622) 2월에 내성의 장관 사신(私臣)을 두면서 시작되었고, 경덕왕 대에 크게 정비되면서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때 태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동궁아가 설치되어 내성의 역할을 분담하였다. 또 시간이 지나면서 어룡성이 내성과 대등한 관청이 되면서, 내성과 동궁아, 어룡성이 역할을 나누어 맡게 되었다.
고려 후기의, 무신집권자 최충헌의 셋째 아들로, 고려의 제21대 왕인 희종의 사위가 되어 권세를 누렸던 왕족.
최성 (崔珹)
고려 후기의, 무신집권자 최충헌의 셋째 아들로, 고려의 제21대 왕인 희종의 사위가 되어 권세를 누렸던 왕족.
유토궁방전은 조선 후기에 면세결 가운데 소유권과 수조권을 모두 궁방이 가진 전답이다. 일반적으로 유토궁방전이라고 할 때에는 좁은 의미로 한정하여 유토면세만을 지칭하며, 출세결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궁방에서 유토궁방전을 보유하였던 것은 아니다.
유토궁방전 (有土宮房田)
유토궁방전은 조선 후기에 면세결 가운데 소유권과 수조권을 모두 궁방이 가진 전답이다. 일반적으로 유토궁방전이라고 할 때에는 좁은 의미로 한정하여 유토면세만을 지칭하며, 출세결은 고려하지 않는다. 모든 궁방에서 유토궁방전을 보유하였던 것은 아니다.
덕천고는 고려 후기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기관이다. 충렬왕대에 제국대장공주의 식읍에서 납부하는 곡식과 옷감을 관리한 것과 같은, 왕실의 사적인 재정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충선왕이 이를 물려받아 덕천창(德泉倉)이라고 부르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덕천고로 다시 고쳤다. 의성창(義成倉)과 함께 왕실의 사적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였으므로 사장(私藏)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덕천고 (德泉庫)
덕천고는 고려 후기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던 기관이다. 충렬왕대에 제국대장공주의 식읍에서 납부하는 곡식과 옷감을 관리한 것과 같은, 왕실의 사적인 재정을 담당했던 기관이다. 충선왕이 이를 물려받아 덕천창(德泉倉)이라고 부르다가 1325년(충숙왕 12)에 덕천고로 다시 고쳤다. 의성창(義成倉)과 함께 왕실의 사적 재정을 관리하는 기능을 하였으므로 사장(私藏)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왕비.
문공왕후 (文恭王后)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