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정"
검색결과 총 36건
신라시대의 최고 행정관서.
집사부 (執事部)
신라시대의 최고 행정관서.
원종은 고려 후기 제24대(1259~1274) 왕이다. 친몽 정책(親蒙政策)을 추진하여 김준, 임연 등 무신 집정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임연을 사주해 김준을 제거하였지만 임연과의 갈등으로 폐위되었다가 몽골의 개입으로 복위되기도 하였다. 몽골에서 귀국하면서 1270년(원종 11) 전격적으로 개경 환도(開京還都)와 삼별초 해산을 명하였고, 이로 인하여 삼별초의 난이 촉발되었다. 몽골에 대한 복속과 타협으로 원 간섭기(元干涉期)의 출발을 가져왔지만, 오랜 전란을 종식시키고 고려 국체의 유지, 보존이라는 현실적 선택을 했던 왕이다.
원종 (元宗)
원종은 고려 후기 제24대(1259~1274) 왕이다. 친몽 정책(親蒙政策)을 추진하여 김준, 임연 등 무신 집정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임연을 사주해 김준을 제거하였지만 임연과의 갈등으로 폐위되었다가 몽골의 개입으로 복위되기도 하였다. 몽골에서 귀국하면서 1270년(원종 11) 전격적으로 개경 환도(開京還都)와 삼별초 해산을 명하였고, 이로 인하여 삼별초의 난이 촉발되었다. 몽골에 대한 복속과 타협으로 원 간섭기(元干涉期)의 출발을 가져왔지만, 오랜 전란을 종식시키고 고려 국체의 유지, 보존이라는 현실적 선택을 했던 왕이다.
김준은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을 주동하여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이어 시중(侍中)까지 오른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이 유경·박송비 등과 함께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이후 김준은 자기 휘하의 위사공신들과 연대하여 유경 등을 실각시키면서 ‘김준 정권’을 탄생시키고, 1265년(원종 3) 시중에 오르면서 해양후(海陽侯)에도 책봉되었다. 그는 정권을 독차지하면서 국왕 원종 및 몽골과 갈등하다가 1268년(원종 9) 임연에게 참살되었다.
김준 (金俊)
김준은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을 주동하여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이어 시중(侍中)까지 오른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이 유경·박송비 등과 함께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이후 김준은 자기 휘하의 위사공신들과 연대하여 유경 등을 실각시키면서 ‘김준 정권’을 탄생시키고, 1265년(원종 3) 시중에 오르면서 해양후(海陽侯)에도 책봉되었다. 그는 정권을 독차지하면서 국왕 원종 및 몽골과 갈등하다가 1268년(원종 9) 임연에게 참살되었다.
충혜왕은 고려 제28대(재위: 1330~1332, 1339~1344) 왕이다. 1315년(충숙왕 2) 출생으로, 1330년(충숙왕 17) 충숙왕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으나 몽골의 정국 변동 속에서 1332년(충숙왕 복위1) 폐위되고, 충숙왕 사후 1339년(충숙왕 복위8) 다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측근을 양성하고 무역에 힘쓰기도 하였으나, 그 탐음부도(貪淫不道)함으로 인해 제기된 입성론(立省論)을 계기로 유배길에 올랐다가 이듬해 사망하였다.
충혜왕 (忠惠王)
충혜왕은 고려 제28대(재위: 1330~1332, 1339~1344) 왕이다. 1315년(충숙왕 2) 출생으로, 1330년(충숙왕 17) 충숙왕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으나 몽골의 정국 변동 속에서 1332년(충숙왕 복위1) 폐위되고, 충숙왕 사후 1339년(충숙왕 복위8) 다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측근을 양성하고 무역에 힘쓰기도 하였으나, 그 탐음부도(貪淫不道)함으로 인해 제기된 입성론(立省論)을 계기로 유배길에 올랐다가 이듬해 사망하였다.
고려후기 지이부사 상장군, 추밀원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주숙 (周肅)
고려후기 지이부사 상장군, 추밀원부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후기 참지정사, 첨의찬성사, 상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최영 (崔瑛)
고려후기 참지정사, 첨의찬성사, 상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아들로 동양군에 봉해진 왕자.
효은태자 (孝隱太子)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아들로 동양군에 봉해진 왕자.
무진정변은 1268년(원종 9) 12월 강도(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도)에서 임연·강윤소 등이 김준 정권을 무너뜨린 사건이다. 최씨정권의 집안노비 출신인 김준은 왕정복고를 기치로 1258년(고종 45) 3월에 무오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고 몽고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원종은 원나라와 관계를 원만하게 하고자 강윤소와 임연을 모아, 무진년(1268) 12월에 김준을 제거하였다. 원 세조의 후원을 받던 원종과 국왕을 견제하던 임연이 항몽·친몽의 노선 차이를 두고 대립하며 원종폐위, 원종복위 사건을 겪음으로써 향후 무신정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무진정변 (戊辰政變)
무진정변은 1268년(원종 9) 12월 강도(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도)에서 임연·강윤소 등이 김준 정권을 무너뜨린 사건이다. 최씨정권의 집안노비 출신인 김준은 왕정복고를 기치로 1258년(고종 45) 3월에 무오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고 몽고에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원종은 원나라와 관계를 원만하게 하고자 강윤소와 임연을 모아, 무진년(1268) 12월에 김준을 제거하였다. 원 세조의 후원을 받던 원종과 국왕을 견제하던 임연이 항몽·친몽의 노선 차이를 두고 대립하며 원종폐위, 원종복위 사건을 겪음으로써 향후 무신정권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유존혁은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록된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金俊)과 유경(柳璥) 등을 중심으로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정자인 최의(崔竩)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유존혁은 낭장(郎將)으로 정변에 참여하였고, 이후 대장군(大將軍)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270년(원종 11) 삼별초항쟁이 일어났을 때 항쟁군에 가담하여 좌승선(左承宣)에 임명되었고, 경상도 남해현(南海縣)에서 활약하였다.
유존혁 (劉存奕)
유존혁은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록된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金俊)과 유경(柳璥) 등을 중심으로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정자인 최의(崔竩)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유존혁은 낭장(郎將)으로 정변에 참여하였고, 이후 대장군(大將軍)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270년(원종 11) 삼별초항쟁이 일어났을 때 항쟁군에 가담하여 좌승선(左承宣)에 임명되었고, 경상도 남해현(南海縣)에서 활약하였다.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2 왕비.
헌의왕후 (獻懿王后)
고려전기 제5대 경종의 제2 왕비.
고려후기 임유무 제거, 삼별초의 난 등과 관련된 무신.
김지저 (金之氐)
고려후기 임유무 제거, 삼별초의 난 등과 관련된 무신.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중낭장, 대장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최씨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한 무신·공신.
오수산 (吳壽山)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중낭장, 대장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최씨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한 무신·공신.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의 불상 내부에서 복장유물로 발견된 조선시대 간행본 불교경전이다. 대부분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전으로, 2005년 5월 23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6종이다. 여기서 특히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은 1488년(성종 19) 전라도 완주의 화암사(花岩寺) 간본이다. 대방광도각수다라료의경(大方廣圖覺修多羅了義經) 권하(卷下) 5∼6은 1588년(선조 21) 경상도 청도의 운문사(雲門寺) 간본이다.
송림사 복장전적 (松林寺 腹藏典籍)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의 불상 내부에서 복장유물로 발견된 조선시대 간행본 불교경전이다. 대부분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전으로, 2005년 5월 23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6종이다. 여기서 특히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은 1488년(성종 19) 전라도 완주의 화암사(花岩寺) 간본이다. 대방광도각수다라료의경(大方廣圖覺修多羅了義經) 권하(卷下) 5∼6은 1588년(선조 21) 경상도 청도의 운문사(雲門寺) 간본이다.
고려 후기에, 신의군 지유낭장·섭낭장, 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이연소 (李延紹)
고려 후기에, 신의군 지유낭장·섭낭장, 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박성대는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산원동정(散員同正)으로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록된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金俊)과 유경(柳璥) 등을 중심으로 최씨 무신 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崔竩)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박성대는 1268년(원종 9) 임연(林衍) 등에 의한 무진정변(戊辰政變) 때 김준의 아들 김주(金柱)를 체포하는 공로를 세우고 대장군(大將軍)과 상장군(上將軍)으로 진급하였다.
박성대 (朴成大)
박성대는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산원동정(散員同正)으로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록된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金俊)과 유경(柳璥) 등을 중심으로 최씨 무신 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崔竩)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박성대는 1268년(원종 9) 임연(林衍) 등에 의한 무진정변(戊辰政變) 때 김준의 아들 김주(金柱)를 체포하는 공로를 세우고 대장군(大將軍)과 상장군(上將軍)으로 진급하였다.
고려후기 무오정변 당시의 관리. 무신.
한종궤 (韓宗軌)
고려후기 무오정변 당시의 관리. 무신.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별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최씨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한 무신·공신.
백영정 (白永貞)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별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최씨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한 무신·공신.
김용재는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을 거처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된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인준(金仁俊)과 유경(柳璥) 등을 중심으로 최씨 무신 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崔竩)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김용재는 김준의 아들이며, 전전승지동정(殿前承旨同正)으로 정변에 참여였다. 이후 김주(金柱)로 개명하고서 김준 집권기에 권력을 남용하다가 임연(林衍) 등의 무진정변 때 제거되었다.
김용재 (金用材)
김용재는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을 거처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록된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인준(金仁俊)과 유경(柳璥) 등을 중심으로 최씨 무신 정권의 4대 집정자 최의(崔竩)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김용재는 김준의 아들이며, 전전승지동정(殿前承旨同正)으로 정변에 참여였다. 이후 김주(金柱)로 개명하고서 김준 집권기에 권력을 남용하다가 임연(林衍) 등의 무진정변 때 제거되었다.
고려 후기에 중낭장 · 차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최씨무인정권의 가노 출신으로서 군인으로 입신(立身)하여 1258년(고종 45) 3월 26일(丙子) 최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였다. 최의를 제거하고 국왕 고종에게 권력을 돌려준 공을 인정받아 중낭장(中郎將)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4월 1일(庚辰) 유경·김인준·박희실(朴希實) 등과 함께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봉되었다. 1268년(원종 9) 12월 21일(丁酉) 김준이 피살된 후 벽상공신(壁上功臣) 호칭이 삭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승준 (金承俊)
고려 후기에 중낭장 · 차장군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최씨무인정권의 가노 출신으로서 군인으로 입신(立身)하여 1258년(고종 45) 3월 26일(丙子) 최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였다. 최의를 제거하고 국왕 고종에게 권력을 돌려준 공을 인정받아 중낭장(中郎將)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4월 1일(庚辰) 유경·김인준·박희실(朴希實) 등과 함께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봉되었다. 1268년(원종 9) 12월 21일(丁酉) 김준이 피살된 후 벽상공신(壁上功臣) 호칭이 삭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견룡행수, 상장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최씨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한 무신·공신.
서균한 (徐均漢)
고려 후기에, 야별초지유, 견룡행수, 상장군 등을 역임하였으며, 최씨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에 참여한 무신·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