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존혁은 1258년(고종 45)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록된 무신이다. 무오정변은 김준(金俊)과 유경(柳璥) 등을 중심으로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정자인 최의(崔竩)를 제거하여 왕정복고를 이룬 정변을 가리킨다. 유존혁은 낭장(郎將)으로 정변에 참여하였고, 이후 대장군(大將軍)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1270년(원종 11) 삼별초항쟁이 일어났을 때 항쟁군에 가담하여 좌승선(左承宣)에 임명되었고, 경상도 남해현(南海縣)에서 활약하였다.
유존혁(劉存奕)의 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유존혁은 낭장(郎將)으로서 1258년(고종 45) 3월에 최씨 무신정권을 붕괴시킨 무오정변(戊午政變)에 참여하였다. 무오정변은 최의정권(崔竩政權)의 정치 · 경제적 실정에 불만을 품은 여러 정치 세력이 결집하여 4대 집정자인 최의(崔竩)를 죽이고 왕정복고를 이룩했던 사건을 말한다. 이때 세운 공로로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 同力輔佐功臣]에 책록(策錄)되었고, 대장군(大將軍)으로 승진한 것으로 보인다.
1270년(원종 11) 6월 장군 배중손(裴仲孫)을 비롯한 장수들이 강도(江都) 정부의 개경 환도(開京還都) 및 원종(元宗)의 삼별초(三別抄) 해산령에 불복하며 삼별초를 이끌고 대몽 항전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왕족 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을 삼별초 정부의 황제로 추대하고 관부(官府)를 세워 원나라와 고려 정부에 저항하였다. 이때 유존혁은 대장군으로서 좌승선(左承宣)에 임명되었다. 유존혁의 계급이 대장군으로서 삼별초항쟁을 이끈 무신들 가운데 최고위였다는 점이나 삼별초 정부의 좌승선에 임명되었다는 점에서 문무를 겸비한 명망 있는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배중손이 진도(珍島)로 남천(南遷)하였을 때, 유존혁은 삼별초 병력의 일부를 나누어 남해현(南海縣)을 거점으로 삼아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그가 있었던 남해현은 삼별초 세력의 3대 거점 중의 하나로서 낙동강 수계와 남해안 해로 장악에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1271년(원종 12) 5월 고려군 원수 김방경(金方慶)과 몽골 원수 힌두[忻都] 등에 의해 진도의 용장산성(龍藏山城)이 함락되자, 김통정(金通精)이 삼별초의 잔여 세력을 이끌고 제주도로 입거(入居)하였다. 이때 유존혁은 고립되지 않기 위하여 남해현에서 80여 척의 배를 이끌고 제주도에 합류하였다.
이후 유존혁의 활동은 기록에서 찾을 수 없다. 그는 제주도 삼별초의 합포(合浦) 공격을 진두지휘했던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으며, 1273년(원종 14) 4월 여몽연합군의 항파두성[缸坡頭城, 缸坡頭里土城] 공격 때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