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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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삼은 조선 전기 흑선 두른 단령형 옥색 유생복, 또는 조선 후기 생원·진사의 방방복으로 입던 흑선 두른 단령형의 녹색 예복이다. 태종 11년(1411)부터 유생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이는 유생의 청금(靑衿)이 난삼이며 이후 청금은 유생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유생복으로 홍단령을 입게 됨에 따라 18세기 영조 대에 난삼에 대한 논의를 통해 생원과 진사의 방방복으로 입게 되었다. 난삼에 복두라고도 한 연건(軟巾)을 쓰고 목화를 신었으며 허리띠의 일종인 영대(鈴帶)를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난삼 (襴衫|幱衫)
난삼은 조선 전기 흑선 두른 단령형 옥색 유생복, 또는 조선 후기 생원·진사의 방방복으로 입던 흑선 두른 단령형의 녹색 예복이다. 태종 11년(1411)부터 유생 복식으로 착용하였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보이는 유생의 청금(靑衿)이 난삼이며 이후 청금은 유생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유생복으로 홍단령을 입게 됨에 따라 18세기 영조 대에 난삼에 대한 논의를 통해 생원과 진사의 방방복으로 입게 되었다. 난삼에 복두라고도 한 연건(軟巾)을 쓰고 목화를 신었으며 허리띠의 일종인 영대(鈴帶)를 어깨에 걸치는 방식으로 착용하였다.
도기과는 조선시대에 성균관에 거재(居齋) 중인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이다. 왕명으로 출석부인 도기를 점검하고 그날의 도기에 이름을 올린 유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였다. 왕명에 따라 수시로 시행하였지만 정조 대부터는 봄 · 가을에 정례화된 춘추도기도 별도로 시행하였다.
도기과 (到記科)
도기과는 조선시대에 성균관에 거재(居齋) 중인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시험이다. 왕명으로 출석부인 도기를 점검하고 그날의 도기에 이름을 올린 유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였다. 왕명에 따라 수시로 시행하였지만 정조 대부터는 봄 · 가을에 정례화된 춘추도기도 별도로 시행하였다.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임해 동양철학학풍을 이끈 중국철학 분야의 개척자로, 『유교철학사상개요』, 『중국철학개론』 등을 저술한 철학자.
김경탁 (金敬琢)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임해 동양철학학풍을 이끈 중국철학 분야의 개척자로, 『유교철학사상개요』, 『중국철학개론』 등을 저술한 철학자.
사림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선비들의 집단’이라는 뜻으로 유교적 지식을 갖춘 지배층을 이르던 말이다. 문무 관원, 특히 삼사(三司) 등의 청요직(淸要職)에 재직한 문반과 유생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사림파'라는 개념으로 발전해 조선 전기 지배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사림 (士林)
사림은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선비들의 집단’이라는 뜻으로 유교적 지식을 갖춘 지배층을 이르던 말이다. 문무 관원, 특히 삼사(三司) 등의 청요직(淸要職)에 재직한 문반과 유생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970년대부터는 '사림파'라는 개념으로 발전해 조선 전기 지배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
조선후기 공조와 그 속아문이 담당하는 각종 업무에 관한 사항을 일지식으로 기록한 역사서.
수부등록 (水部謄錄)
조선후기 공조와 그 속아문이 담당하는 각종 업무에 관한 사항을 일지식으로 기록한 역사서.
유복(儒服)은 조선시대 때 유생이나 유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입었던 의복의 총칭이다. 유학자들이 입는 복장 역시 유복이라고 칭하였는데 대표적인 복장이 심의(深衣)이다. 따라서 유생들이 입던 치포건과 청금, 홍단령과 흑단령, 연건과 난삼을 비롯하여 유학자들이 착용하던 심의 외에 조선 후기 사대부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도포(道袍), 학창의(鶴氅衣), 야복(野服) 등도 유복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유복 (儒服)
유복(儒服)은 조선시대 때 유생이나 유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입었던 의복의 총칭이다. 유학자들이 입는 복장 역시 유복이라고 칭하였는데 대표적인 복장이 심의(深衣)이다. 따라서 유생들이 입던 치포건과 청금, 홍단령과 흑단령, 연건과 난삼을 비롯하여 유학자들이 착용하던 심의 외에 조선 후기 사대부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도포(道袍), 학창의(鶴氅衣), 야복(野服) 등도 유복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관직에 아직 오르지 않았거나 과거를 준비하며 학교에 재학 중인 유생(儒生).
유학 (幼學)
관직에 아직 오르지 않았거나 과거를 준비하며 학교에 재학 중인 유생(儒生).
조선시대 소과의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고려 때에는 과거에 합격한 이를 '진사'라 칭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과를 별도로 두고,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이를 '생원', '진사'라 하고 이들에게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더욱이 조선 전기에는 신유학의 학풍을 따라 경학을 중시하여 진사시가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하였다. 진사는 문과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음관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이었다. 또한 지방의 엘리트 사족으로서 지방민 교화, 여론 형성 등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진사 (進士)
조선시대 소과의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이다. 고려 때에는 과거에 합격한 이를 '진사'라 칭하였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과를 별도로 두고,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이를 '생원', '진사'라 하고 이들에게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더욱이 조선 전기에는 신유학의 학풍을 따라 경학을 중시하여 진사시가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하였다. 진사는 문과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음관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이었다. 또한 지방의 엘리트 사족으로서 지방민 교화, 여론 형성 등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 소재 관곡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과 고문서이다. 2003년 5월 16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분량은 12권 10매로,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전적 중 『삼선생행장(三先生行狀)』은 관곡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최윤덕 · 이적 · 이형남의 행장을 기록한 것이다. 고문서에는 서원 유생을 수령이 차정(差定)하고 그 차첩(差帖)도 수령이 발행한다는 사실 등 새로운 내용을 알려주는 문서가 많다.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일괄 문서가 두루 갖추어져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 (館谷書院 所藏 典籍 및 古文書)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 소재 관곡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전적과 고문서이다. 2003년 5월 16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체 분량은 12권 10매로,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전적 중 『삼선생행장(三先生行狀)』은 관곡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최윤덕 · 이적 · 이형남의 행장을 기록한 것이다. 고문서에는 서원 유생을 수령이 차정(差定)하고 그 차첩(差帖)도 수령이 발행한다는 사실 등 새로운 내용을 알려주는 문서가 많다. 관곡서원에 관계되는 일괄 문서가 두루 갖추어져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 향교에서 유생들이 선비들의 명단을 기록한 유적에서 범죄자나 비위자의 이름을 삭제하는 일.
유적 삭제 (儒籍 削除)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 향교에서 유생들이 선비들의 명단을 기록한 유적에서 범죄자나 비위자의 이름을 삭제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