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유학"
검색결과 총 23건
고려시대 문신들에게 매월 시부(詩賦)를 지어 바치게 한 제도.
문신월과법 (文臣月課法)
고려시대 문신들에게 매월 시부(詩賦)를 지어 바치게 한 제도.
고려 후기 유학의 진흥업무를 관장하던 임시관서.
경사교수도감 (經史敎授都監)
고려 후기 유학의 진흥업무를 관장하던 임시관서.
자녀 교육을 위하여 배우자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 기러기가족·국제적 비동거 가장·신글로벌 별거 가족.
기러기아빠
자녀 교육을 위하여 배우자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 기러기가족·국제적 비동거 가장·신글로벌 별거 가족.
집회·제례 등 의식에서 그 진행 순서를 적어 낭독하게 하는 의례문서.
홀기 (笏記)
집회·제례 등 의식에서 그 진행 순서를 적어 낭독하게 하는 의례문서.
해방 이후 『다산학의 이해』, 『다산학입문』, 『다산의 역학』 등을 저술한 철학자.
이을호 (李乙浩)
해방 이후 『다산학의 이해』, 『다산학입문』, 『다산의 역학』 등을 저술한 철학자.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대사성 (大司成)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의학자 이제마가 유학의 철학적 주제에 대해 연구하여 논술한 유학서.
격치고 (格致藁)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의학자 이제마가 유학의 철학적 주제에 대해 연구하여 논술한 유학서.
조선유도연합회는 1939년 조선총독부가 지원하여 조직한 전국 규모의 유림단체이다. 1932년 조선총독부의 대폭적인 지원으로 결성된 조선유교회가 유명무실해지자 전시체제에 유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관변 유림단체이다.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교를 진흥시키고 황국신민으로서 굳게 단결시키며,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여 일본·만주·중국을 연결하는 영구 평화의 정신적 연계를 만들기 위해 설립하였다. 1942년에는 기관지인 『유도』를 창간하여 1944년까지 제7호를 간행하여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였다.
조선유도연합회 (朝鮮儒道聯合會)
조선유도연합회는 1939년 조선총독부가 지원하여 조직한 전국 규모의 유림단체이다. 1932년 조선총독부의 대폭적인 지원으로 결성된 조선유교회가 유명무실해지자 전시체제에 유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관변 유림단체이다. 황도정신에 입각한 유교를 진흥시키고 황국신민으로서 굳게 단결시키며,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여 일본·만주·중국을 연결하는 영구 평화의 정신적 연계를 만들기 위해 설립하였다. 1942년에는 기관지인 『유도』를 창간하여 1944년까지 제7호를 간행하여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였다.
조상이나 훌륭한 신인들의 신주·위판·영정·소상 등을 모신 사당. 묘당·사우·가묘.
묘 (廟)
조상이나 훌륭한 신인들의 신주·위판·영정·소상 등을 모신 사당. 묘당·사우·가묘.
고려 후기의 학자 가정 이곡(李穀)과 그의 아들 목은 이색(李穡)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
가정 · 목은선생 문집판 (稼亭·牧隱先生 文集板)
고려 후기의 학자 가정 이곡(李穀)과 그의 아들 목은 이색(李穡)의 시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
사성(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종3품 관직이다. 성균관의 녹관(祿官)으로 대사성 다음의 고위직이었다. 임무는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종학에서의 교육까지도 담당하였다. 또한 정례적이지는 않지만 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는 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경연이나 서연에서 진강을 하기도 하였다.
사성 (司成)
사성(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종3품 관직이다. 성균관의 녹관(祿官)으로 대사성 다음의 고위직이었다. 임무는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종학에서의 교육까지도 담당하였다. 또한 정례적이지는 않지만 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는 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경연이나 서연에서 진강을 하기도 하였다.
택성은 해방 이후 월정사 조실, 강원도 종무원장, 초대 중앙역경연수원 원장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3년 전라북도 김제 출생으로, 1934년 출가하였다. 월정사 조실, 강원도 종무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55년 월정사에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초대 중앙역경연수원 원장(1967년), 화엄학연구소 소장(1972년)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화엄경』 번역에 착수하여 『신화엄경합론』 47권을 비롯해 수많은 불교 서적을 역해·간행하였다. 1983년 월정사에서 입적하였다. 1975년 인촌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83년 국민훈장이 추서되었다.
택성 (宅成)
택성은 해방 이후 월정사 조실, 강원도 종무원장, 초대 중앙역경연수원 원장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3년 전라북도 김제 출생으로, 1934년 출가하였다. 월정사 조실, 강원도 종무원장을 역임하였으며, 1955년 월정사에 수도원을 창설하였다. 초대 중앙역경연수원 원장(1967년), 화엄학연구소 소장(1972년) 등을 역임하였다. 1961년 『화엄경』 번역에 착수하여 『신화엄경합론』 47권을 비롯해 수많은 불교 서적을 역해·간행하였다. 1983년 월정사에서 입적하였다. 1975년 인촌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1983년 국민훈장이 추서되었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 한국철학회 중국철학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퇴계의 생애와 사상』, 『퇴계의 철학사상연구』 등을 저술한 철학자.
유정동 (柳正東)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교수, 한국철학회 중국철학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퇴계의 생애와 사상』, 『퇴계의 철학사상연구』 등을 저술한 철학자.
해방 이후 『달』·『귀향』·『환한 세상』 등을 저술한 시인.
이영걸 (李永傑)
해방 이후 『달』·『귀향』·『환한 세상』 등을 저술한 시인.
1928년 정성묵이 공자의 탄생부터 사후 배향까지의 행적을 엮은 도설서. 유학서.
속수오륜행실서 (續修五倫行實序)
1928년 정성묵이 공자의 탄생부터 사후 배향까지의 행적을 엮은 도설서. 유학서.
유교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한국유교학회 (韓國儒敎學會)
유교 연구를 위해 설립된 학술단체.
고려 말기 원나라 세조(世祖)가 고려의 유학연구를 위하여 고려에 설치한 관서.
고려국유학제거사 (高麗國儒學提擧司)
고려 말기 원나라 세조(世祖)가 고려의 유학연구를 위하여 고려에 설치한 관서.
한말에 유호근(柳浩根)이 지은 가사.
석음가 (惜陰歌)
한말에 유호근(柳浩根)이 지은 가사.
고려 말에 전래된 성리학을 교육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교육기관.
이학도감 (理學都監)
고려 말에 전래된 성리학을 교육하기 위해 설치한 임시 교육기관.
『선천군읍지』는 1854년 평안도 선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사찬 읍지이다. 3권 1책 106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당시 선천 지역 양반들이 지역정체성을 강화하고, 충효와 절의를 강조하는 등 유학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읍지 형식을 빌어 편찬하였다. 관찬 읍지에서 비교적 소략하게 다루어지는 향촌 사회와 관련한 내용들을 충실히 수록하는 등 사찬 읍지의 특징이 잘 담겨 있다.
선천군읍지 (宣川郡邑誌)
『선천군읍지』는 1854년 평안도 선천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간행한 사찬 읍지이다. 3권 1책 106장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당시 선천 지역 양반들이 지역정체성을 강화하고, 충효와 절의를 강조하는 등 유학 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읍지 형식을 빌어 편찬하였다. 관찬 읍지에서 비교적 소략하게 다루어지는 향촌 사회와 관련한 내용들을 충실히 수록하는 등 사찬 읍지의 특징이 잘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