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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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에 홍사로 상·하단을 두른 초롱.
청사초롱 (靑紗燭籠)
청사에 홍사로 상·하단을 두른 초롱.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음식 위에 뿌리거나 얹는 식품.
고명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음식 위에 뿌리거나 얹는 식품.
조선전기 유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논술한 종교서.
유석질의론 (儒釋質疑論)
조선전기 유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논술한 종교서.
우주의 모양을 국자 또는 숟가락에 비유한 조선시대의 우주론.
사도설 (柶圖設)
우주의 모양을 국자 또는 숟가락에 비유한 조선시대의 우주론.
강보는 고려 후기에 판서운관사를 역임한 과학기술자로 천문과 역법에 능통하였다. 최성지로부터 수시력법을 전수받아 서운관에 근무하면서 서운사력, 서운정을 거쳐 벼슬이 판서운관사에 이르렀다. 『수시력첩법입성』을 저술하였다.
강보 (姜保)
강보는 고려 후기에 판서운관사를 역임한 과학기술자로 천문과 역법에 능통하였다. 최성지로부터 수시력법을 전수받아 서운관에 근무하면서 서운사력, 서운정을 거쳐 벼슬이 판서운관사에 이르렀다. 『수시력첩법입성』을 저술하였다.
상지관은 조선시대 관상감(觀象監)에 소속된 풍수지리 전문 관원이다. 음양과의 지리학 시험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풍수의 능력을 갖추어서 시험을 거치지 않고 특별하게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상지관은 각 능을 봉심할 때 범철(泛鐵) 등의 일을 담당하였으며, 궁궐터, 능 자리, 태실(胎室), 입비(立碑), 축성(築城) 등의 지상(地相)을 살폈다.
상지관 (相地官)
상지관은 조선시대 관상감(觀象監)에 소속된 풍수지리 전문 관원이다. 음양과의 지리학 시험을 거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풍수의 능력을 갖추어서 시험을 거치지 않고 특별하게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상지관은 각 능을 봉심할 때 범철(泛鐵) 등의 일을 담당하였으며, 궁궐터, 능 자리, 태실(胎室), 입비(立碑), 축성(築城) 등의 지상(地相)을 살폈다.
삼국시대 때, 백제의 멸망 후 일본으로 망명한 귀족.
각복모 (角福牟)
삼국시대 때, 백제의 멸망 후 일본으로 망명한 귀족.
집을 짓기 위하여 집터를 닦는 건축의식. 건축공정.
지경다지기 (地硬다지기)
집을 짓기 위하여 집터를 닦는 건축의식. 건축공정.
신라시대의 관직.
공봉복사 (供奉卜師)
신라시대의 관직.
우주론은 시공을 포괄하는 우주의 기원, 세계의 형성과 변화 과정, 구조를 탐구하는 유교 이론이다. 유학의 우주론은 자연 세계와 인문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문적 가치와 목적을 함께 담아 내는 이론 체계로 전개되었다. 이는 서양 우주론이 주로 이론적·자연과학적 탐구에 집중하였던 것과 구별된다. 즉 중국 고대의 천문 관찰이 정치적·인문적 이상 실현을 위한 목적과 결부되었던 것과 달리, 서양 천문학은 자연과학적 탐구의 자율성을 지향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우주론 (宇宙論)
우주론은 시공을 포괄하는 우주의 기원, 세계의 형성과 변화 과정, 구조를 탐구하는 유교 이론이다. 유학의 우주론은 자연 세계와 인문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문적 가치와 목적을 함께 담아 내는 이론 체계로 전개되었다. 이는 서양 우주론이 주로 이론적·자연과학적 탐구에 집중하였던 것과 구별된다. 즉 중국 고대의 천문 관찰이 정치적·인문적 이상 실현을 위한 목적과 결부되었던 것과 달리, 서양 천문학은 자연과학적 탐구의 자율성을 지향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지리전서동림조담은 조선시대 관상감 관원을 선발하는 음양과의 시험 과목으로 이용된 풍수지리서이다. 상권과 하권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으며, 풍수지리와 관련한 여러 내용을 24개로 구분하여 기술해 놓았다.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되었고, 전해지는 간행본이 거의 없는 희귀본이며,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풍수지리서로 간주되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 학술적 의의가 크다.
지리전서동림조담 (地理全書洞林照膽)
지리전서동림조담은 조선시대 관상감 관원을 선발하는 음양과의 시험 과목으로 이용된 풍수지리서이다. 상권과 하권이 하나의 책으로 묶여 있으며, 풍수지리와 관련한 여러 내용을 24개로 구분하여 기술해 놓았다. 조선 초기의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되었고, 전해지는 간행본이 거의 없는 희귀본이며,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풍수지리서로 간주되었다는 점 등에서 역사적 ‧ 학술적 의의가 크다.
구식례(구일식의)는 일식이나 월식이 있을 때, 잠식된 해와 달을 구하기 위해 대궐과 중앙 및 지방 관청에서 실행한 재난 의례이다. 근대 이전에 천문학적 변고인 일식과 월식은 하늘이 왕에게 내리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경고로 여겨졌다. 따라서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는 일식과 월식을 해소하기 위해 왕이 직접 주술적인 구식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천문학의 발달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일월식은 천변재이에서 자연적인 사건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고, 구식례도 왕이 더 이상 직접 거행하지 않는, 형식적인 의례로 전락하였다.
구식례(구일식의) (救食禮(求日食儀))
구식례(구일식의)는 일식이나 월식이 있을 때, 잠식된 해와 달을 구하기 위해 대궐과 중앙 및 지방 관청에서 실행한 재난 의례이다. 근대 이전에 천문학적 변고인 일식과 월식은 하늘이 왕에게 내리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경고로 여겨졌다. 따라서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는 일식과 월식을 해소하기 위해 왕이 직접 주술적인 구식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천문학의 발달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일월식은 천변재이에서 자연적인 사건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고, 구식례도 왕이 더 이상 직접 거행하지 않는, 형식적인 의례로 전락하였다.
시용통서는 1744년(영조 20) 이후 조선의 관상감에서 음양과(陰陽科) 과거로 명과학(命課學) 관원을 뽑을 때 시강서(試講書)의 하나로 사용한 책이다. 본래 이 책은 1607년(선조 40) 명(明)나라 학자 유조관(劉朝琯)이 만력제(萬曆帝)의 명으로 편찬한 택일서(擇日書)였다. 1797년(정조 21) 이후 음양과 시험에서 이 책은 1795년(정조 19) 조선에서 편찬된 『협길통의(協吉通義)』로 대체되었다.
시용통서 (時用通書)
시용통서는 1744년(영조 20) 이후 조선의 관상감에서 음양과(陰陽科) 과거로 명과학(命課學) 관원을 뽑을 때 시강서(試講書)의 하나로 사용한 책이다. 본래 이 책은 1607년(선조 40) 명(明)나라 학자 유조관(劉朝琯)이 만력제(萬曆帝)의 명으로 편찬한 택일서(擇日書)였다. 1797년(정조 21) 이후 음양과 시험에서 이 책은 1795년(정조 19) 조선에서 편찬된 『협길통의(協吉通義)』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