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례"
검색결과 총 92건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이다. 농경사회에서 시계성·주기성·순환성을 가지고 진행된 농경 과정에서 탄생한 풍속이다. 세시·세사·월령·시령·세시의례라고도 한다. 세시풍속은 음력을 중심에 두고 양력을 가미한 태양태음력을 기준으로 했다. 고대의 제천의례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에 세시풍속의 골격이 형성되었고,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이, 조선시대에는 설날·한식·단오·추석 등 4대 명절이 있었다. 명절 외에 다양한 계절별·지역별 세시풍속이 존재했다. 오늘날은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퇴색했지만 설날과 추석의 차례와 성묘는 전승되고 있다.
세시풍속 (歲時風俗)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이다. 농경사회에서 시계성·주기성·순환성을 가지고 진행된 농경 과정에서 탄생한 풍속이다. 세시·세사·월령·시령·세시의례라고도 한다. 세시풍속은 음력을 중심에 두고 양력을 가미한 태양태음력을 기준으로 했다. 고대의 제천의례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에 세시풍속의 골격이 형성되었고,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이, 조선시대에는 설날·한식·단오·추석 등 4대 명절이 있었다. 명절 외에 다양한 계절별·지역별 세시풍속이 존재했다. 오늘날은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퇴색했지만 설날과 추석의 차례와 성묘는 전승되고 있다.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 다음 시대로 농경과 정주, 토기, 마제석기, 궁시 등을 주요 문화적 지표로 하는 시대이다. 최종 빙하기가 끝나가는 무렵, 환경 변화에 적응한 신석기인은 기술혁신을 통해 생업 형태의 다변화와 더불어 생계 방식, 생업 도구, 의식주, 분묘, 신앙 의례, 장거리 교역 등과 같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였다. 신석기 문화는 자체적인 변화·발전 과정을 거쳐 도작농경과 무문토기를 주체로 하는 청동기문화가 유입됨에 따라 종말을 맞이한다.
신석기시대 (新石器時代)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 다음 시대로 농경과 정주, 토기, 마제석기, 궁시 등을 주요 문화적 지표로 하는 시대이다. 최종 빙하기가 끝나가는 무렵, 환경 변화에 적응한 신석기인은 기술혁신을 통해 생업 형태의 다변화와 더불어 생계 방식, 생업 도구, 의식주, 분묘, 신앙 의례, 장거리 교역 등과 같은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였다. 신석기 문화는 자체적인 변화·발전 과정을 거쳐 도작농경과 무문토기를 주체로 하는 청동기문화가 유입됨에 따라 종말을 맞이한다.
장례는 상례의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인 장사를 예를 갖추어 표현한 말로 현대 사회에서 상례를 대신하는 용어이다. 장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분 등은 장례의 증거물이다. 장례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였지만, 상례를 대체하는 용어로 장례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현대의 일이다. 장례 전문가에게 위임된 현대의 장례는 고인의 시신 처리, 조상신 승화, 상주의 일상 복귀 과정이 품고 있는 상례의 의미와 상징, 한국인의 생사관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장례 (葬禮)
장례는 상례의 시신을 처리하는 절차인 장사를 예를 갖추어 표현한 말로 현대 사회에서 상례를 대신하는 용어이다. 장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분 등은 장례의 증거물이다. 장례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고려시대부터였지만, 상례를 대체하는 용어로 장례라는 용어가 일반화된 것은 현대의 일이다. 장례 전문가에게 위임된 현대의 장례는 고인의 시신 처리, 조상신 승화, 상주의 일상 복귀 과정이 품고 있는 상례의 의미와 상징, 한국인의 생사관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이라는 말과 같은 우리나라의 명절이다. 원일·원단·정조 등 여러 명칭이 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보이며, 의례, 민간신앙, 복식과 음식, 놀이 등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 또한 풍성했다.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만 남았고, 세시풍속 또한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설
설은 한 해의 시작인 음력 1월 1일을 일컫는 말로 설날이라는 말과 같은 우리나라의 명절이다. 원일·원단·정조 등 여러 명칭이 있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새 달의 첫 날인데, 한 해의 최초 명절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민족 최대의 명절이었다. 삼국시대 문헌에서부터 설 명절에 대한 기록이 보이며, 의례, 민간신앙, 복식과 음식, 놀이 등 설 명절 관련 세시풍속 또한 풍성했다.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 의미가 컸지만 오늘날은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것만 남았고, 세시풍속 또한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상례는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여 조상신으로 승화시키고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일생 의례로 통과 의례, 죽음 의례이다. 유적으로 보듯 상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화되었지만, 고려 말부터 유교식 상례가 문화적 전통으로 정립되었다. 유교식 상례는 중국의 문화였지만 우리에게 맞게 변형하여 고유문화로 전승되었다. 상례는 고인, 영혼, 조상신, 상주라는 네 주체의 의례가 상호작용하면서 3년간 진행된다. 여운으로 가장의 죽음이 가져오는 충격을 극복하고 가족의 상실에 따른 아쉬움과 슬픔을 완화했다.
상례 (喪禮)
상례는 인간의 죽음을 처리하여 조상신으로 승화시키고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일생 의례로 통과 의례, 죽음 의례이다. 유적으로 보듯 상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가 융화되었지만, 고려 말부터 유교식 상례가 문화적 전통으로 정립되었다. 유교식 상례는 중국의 문화였지만 우리에게 맞게 변형하여 고유문화로 전승되었다. 상례는 고인, 영혼, 조상신, 상주라는 네 주체의 의례가 상호작용하면서 3년간 진행된다. 여운으로 가장의 죽음이 가져오는 충격을 극복하고 가족의 상실에 따른 아쉬움과 슬픔을 완화했다.
화장(火葬)은 시신이나 유골을 불로 태워 장사를 지내는 방법이다. 힌두교의 장례 방법에서 유래하였으나, 한반도에는 불교와 함께 전파되었다.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일부 왕이나 승려를 화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와 조상 숭배 사상 때문에 국가가 화장을 엄하게 금지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내에 들어온 일본인을 위해 화장이 다시 합법화되었고, 조선인들에게도 화장을 권장했으나 보편적 의례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해방 후에도 화장률은 낮았으나 2000년대 들어 급증하였고, 2021년 현재 화장률은 90%를 넘어섰다.
화장 (火葬)
화장(火葬)은 시신이나 유골을 불로 태워 장사를 지내는 방법이다. 힌두교의 장례 방법에서 유래하였으나, 한반도에는 불교와 함께 전파되었다.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일부 왕이나 승려를 화장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와 조상 숭배 사상 때문에 국가가 화장을 엄하게 금지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내에 들어온 일본인을 위해 화장이 다시 합법화되었고, 조선인들에게도 화장을 권장했으나 보편적 의례로 자리 잡지 못했다. 해방 후에도 화장률은 낮았으나 2000년대 들어 급증하였고, 2021년 현재 화장률은 90%를 넘어섰다.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윤증 (尹拯)
윤증은 조선후기 『명재유고』, 『명재의례문답』, 『명재유서』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9년(인조 7)에 태어나 1714년(숙종 40)에 사망했다. 김집의 문하에서 주자에 관해 배웠고, 송시열에게서 『주자대전』을 배웠다. 효종 말년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인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관직이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아버지 윤선거의 묘지명을 계기로 송시열과 사제간의 의리가 끊어졌다. 이후 윤증이 송시열을 배반하고 헐뜯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치열한 당쟁에서 소론의 영수로서 송시열과 대립했다.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 성분의 붉은색 안료를 바르고 마연한 토기이다. 청동기시대의 거의 전 시기에 걸쳐 확인되는 붉은간토기는 생활 유적에서도 출토되지만 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서 장송의례와 관련이 깊다. 남한 전역에 분포하지만 서부 경남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에는 플라스크모양붉은간토기를 비롯하여 지역적 특색을 보이는 것이 다수 등장하며, 일본 열도의 야요이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붉은 간토기 (붉은 간土器)
붉은간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의 표면에 산화철 성분의 붉은색 안료를 바르고 마연한 토기이다. 청동기시대의 거의 전 시기에 걸쳐 확인되는 붉은간토기는 생활 유적에서도 출토되지만 주로 무덤의 부장품으로서 장송의례와 관련이 깊다. 남한 전역에 분포하지만 서부 경남 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 청동기시대 늦은 시기에는 플라스크모양붉은간토기를 비롯하여 지역적 특색을 보이는 것이 다수 등장하며, 일본 열도의 야요이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선시대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집 (金集)
조선시대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 후기에, 『의례경전기의』, 『계몽기의』, 『삼산재집』 등을 저술한 문신.
김이안 (金履安)
조선 후기에, 『의례경전기의』, 『계몽기의』, 『삼산재집』 등을 저술한 문신.
조선 후기에, 『남당집』, 『주자언론동이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 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
한원진 (韓元震)
조선 후기에, 『남당집』, 『주자언론동이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호락논쟁에서 호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
영혼천도의식 시 더럽혀진 몸을 씻는다는 의미로 행하는 불교의식. 목욕의례.
관욕 (灌浴)
영혼천도의식 시 더럽혀진 몸을 씻는다는 의미로 행하는 불교의식. 목욕의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노래이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임을 위한 行進曲)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추모하는 노래이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고구려와 부여의 제천행사인 영고와 동맹을 지칭하는 용어. 의례·제천행사.
국중대회 (國中大會)
고구려와 부여의 제천행사인 영고와 동맹을 지칭하는 용어. 의례·제천행사.
서낭제는 매년 정월, 삼월~오월, 구월 중 택일하여, 마을 서낭당에서 주민들이 서낭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이다. 동제, 서낭굿, 서낭거리라고도 한다. 산천, 수목, 암석 등의 자연숭배가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 신앙과 융합하여 서낭 신앙이 되었다고 여긴다. 서낭제의 제관은 부부가 생존하여 화목하게 지내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다. 제관으로 뽑히면 수일 전부터 금기하면서 제물을 준비한다. 택일날 신목이나 돌무더기 앞에 제물을 차리고 서낭제를 치른다.
서낭제 (서낭祭)
서낭제는 매년 정월, 삼월~오월, 구월 중 택일하여, 마을 서낭당에서 주민들이 서낭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이다. 동제, 서낭굿, 서낭거리라고도 한다. 산천, 수목, 암석 등의 자연숭배가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 신앙과 융합하여 서낭 신앙이 되었다고 여긴다. 서낭제의 제관은 부부가 생존하여 화목하게 지내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이다. 제관으로 뽑히면 수일 전부터 금기하면서 제물을 준비한다. 택일날 신목이나 돌무더기 앞에 제물을 차리고 서낭제를 치른다.
신궁은 신라시대에 시조(始祖)를 제사하던 성소(聖所)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을 근거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설과 김씨왕조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김알지 등 김씨 왕에게 제사지냈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 초월적 신화적 존재로서 곡령(穀靈) 또는 태양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왕이 즉위한 다음 해 또는 후년 봄에 신궁에서 즉위의례를 거행하였다. 6세기 후반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성립과 야와타신[八幡神]신앙의 토대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신궁 (神宮)
신궁은 신라시대에 시조(始祖)를 제사하던 성소(聖所)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을 근거로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혁거세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설과 김씨왕조에 의해 설립되었으므로 김알지 등 김씨 왕에게 제사지냈다는 설이 있다. 이외에 초월적 신화적 존재로서 곡령(穀靈) 또는 태양신이라는 주장도 있다. 왕이 즉위한 다음 해 또는 후년 봄에 신궁에서 즉위의례를 거행하였다. 6세기 후반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의 성립과 야와타신[八幡神]신앙의 토대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사례(四禮)는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 가례(家禮)의 핵심을 이루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네 가지 의례이다. 천하나 국가 단위의 공적 의례인 왕조례(王朝禮)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의 오례(五禮)로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사례는 사대부가에서 소년기 관례, 청년기 혼례, 중장년기의 상례와 사후의 제례로 일생의 시간 순서에 따라 반드시 치르게 되는 가례의 핵심적인 통과의례 혹은 일생 의례들로 구분된다.
사례 (四禮)
사례(四禮)는 유교적 이념을 실현하는 가례(家禮)의 핵심을 이루는 관례(冠禮),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의 네 가지 의례이다. 천하나 국가 단위의 공적 의례인 왕조례(王朝禮)가 길례(吉禮), 흉례(凶禮), 군례(軍禮), 빈례(賓禮), 가례(嘉禮)의 오례(五禮)로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사례는 사대부가에서 소년기 관례, 청년기 혼례, 중장년기의 상례와 사후의 제례로 일생의 시간 순서에 따라 반드시 치르게 되는 가례의 핵심적인 통과의례 혹은 일생 의례들로 구분된다.
1895년(고종 32) 관제개혁 때 종래의 통례원(通禮院)이 담당하던 궁중의식·조회의례(朝會儀禮)뿐만 아니라 예조에서 장악하고 있던 제사와 모든 능·종실·귀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
장례원 (掌禮院)
1895년(고종 32) 관제개혁 때 종래의 통례원(通禮院)이 담당하던 궁중의식·조회의례(朝會儀禮)뿐만 아니라 예조에서 장악하고 있던 제사와 모든 능·종실·귀족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
면신례는 조선시대 관청에 배속된 신임 관원이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선배 관원을 접대하거나 선배 관원이 내리는 벌칙을 행하는 통과의례였다. 성종대부터 면신례의 폐해가 지적되어 중종대에는 면신례에 대해 강도 높은 금령이 내려졌으나, 면신례는 조선 후기까지 각 관청에서 관행으로 지속되었다.
면신례 (免新禮)
면신례는 조선시대 관청에 배속된 신임 관원이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선배 관원을 접대하거나 선배 관원이 내리는 벌칙을 행하는 통과의례였다. 성종대부터 면신례의 폐해가 지적되어 중종대에는 면신례에 대해 강도 높은 금령이 내려졌으나, 면신례는 조선 후기까지 각 관청에서 관행으로 지속되었다.
향토문화제는 각 지역 고유의 민속 문화와 전통 문화를 계승하여 새로운 지역 문화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지역민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행하고 있는 지역 축제이다. 향토 축제, 지역 예술제, 지역 문화제, 민속 문화제라고도 한다. 향토문화제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많이 사용되다가 1990년대 이후부터는 지역 축제가 향토 문화제 대신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행해지는 축제의 명칭에 문화제라는 이름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향토문화제 (鄕土文化祭)
향토문화제는 각 지역 고유의 민속 문화와 전통 문화를 계승하여 새로운 지역 문화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지역민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행하고 있는 지역 축제이다. 향토 축제, 지역 예술제, 지역 문화제, 민속 문화제라고도 한다. 향토문화제라는 용어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많이 사용되다가 1990년대 이후부터는 지역 축제가 향토 문화제 대신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행해지는 축제의 명칭에 문화제라는 이름이 여전히 포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