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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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적의 난은 1219년(고종 6) 10월 의주(義州) 별장 한순(韓恂)과 낭장 다지(多智)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저항이다. 이 저항은 일차적으로 지방관들의 가혹한 수탈에서 기인하였다. 또한 의주 지역은 1216년(고종 3)부터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따른 전쟁터였고, 이로 인한 극심한 역(役)의 착취가 이루어졌으며, 주민들이 계속해서 전투에 동원됨으로써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다. 이에 집권자 최우(崔瑀)는 지방관들을 귀양 보냄으로써 저항 세력을 무마하려 하였지만, 의주의 저항은 계속 이어졌다.
의주적의 난 (義州賊의 亂)
의주적의 난은 1219년(고종 6) 10월 의주(義州) 별장 한순(韓恂)과 낭장 다지(多智)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저항이다. 이 저항은 일차적으로 지방관들의 가혹한 수탈에서 기인하였다. 또한 의주 지역은 1216년(고종 3)부터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따른 전쟁터였고, 이로 인한 극심한 역(役)의 착취가 이루어졌으며, 주민들이 계속해서 전투에 동원됨으로써 불만이 누적되고 있었다. 이에 집권자 최우(崔瑀)는 지방관들을 귀양 보냄으로써 저항 세력을 무마하려 하였지만, 의주의 저항은 계속 이어졌다.
고려 후기에, 사문박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양영 (金良瑩)
고려 후기에, 사문박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의주교회 창설에 공헌한 개신교인.
김이련 (金利鍊)
개항기 의주교회 창설에 공헌한 개신교인.
만상은 조선 후기 의주(義州)에서 중국을 상대로 무역 활동을 하던 상인이다. 17세기 대청 무역이 활기를 띠면서 그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만상은 연경으로 가는 조선 사행단 또는 역관들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합법적인 개시(開市) 무역뿐만 아니라 제도의 빈틈에 편승한 방법으로 후시(後市) 무역을 주도하여 이익을 얻었다.
만상 (灣商)
만상은 조선 후기 의주(義州)에서 중국을 상대로 무역 활동을 하던 상인이다. 17세기 대청 무역이 활기를 띠면서 그 주축으로 활동하였다. 만상은 연경으로 가는 조선 사행단 또는 역관들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무역 활동을 전개하였다. 합법적인 개시(開市) 무역뿐만 아니라 제도의 빈틈에 편승한 방법으로 후시(後市) 무역을 주도하여 이익을 얻었다.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문주 (文州)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문천시는 북한 강원도 북부 동해안에 있는 시이다. 1413년 함경도 문주를 군으로 개편하면서 문천군이라고 명명하였다. ‘문주’는 예로부터 ‘물골’이라고 부르던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음이 비슷한 ‘문(文)’ 자에 ‘주(州)’ 자를 붙인 것이다. 1991년 시로 승격되었다. 2003년 기준으로 행정구역은 16개 동과 14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남천강이 중심부를 흐르고 있으며, 기름진 문평·석전평야를 끼고 공업지대에 인접한 교외농업과 수산업이 발전하였다.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북한 지역 굴지의 비철금속 생산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문천시 (文川市)
문천시는 북한 강원도 북부 동해안에 있는 시이다. 1413년 함경도 문주를 군으로 개편하면서 문천군이라고 명명하였다. ‘문주’는 예로부터 ‘물골’이라고 부르던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음이 비슷한 ‘문(文)’ 자에 ‘주(州)’ 자를 붙인 것이다. 1991년 시로 승격되었다. 2003년 기준으로 행정구역은 16개 동과 14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남천강이 중심부를 흐르고 있으며, 기름진 문평·석전평야를 끼고 공업지대에 인접한 교외농업과 수산업이 발전하였다.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북한 지역 굴지의 비철금속 생산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백홍준은 개항기 개신교 초기 세례인이자 최초의 전도인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중국 선교사 로스(John Ross)를 통해 개신교 복음을 받아들인 후 개신교 두 번째 세례인이 되었다. 평안도 의주에 파송된 최초의 전도인으로 언더우드, 마펫 등 선교사들을 돕고 의주읍교회 등을 설립하여 서북지역 전도에 매진하였다.
백홍준 (白鴻俊)
백홍준은 개항기 개신교 초기 세례인이자 최초의 전도인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중국 선교사 로스(John Ross)를 통해 개신교 복음을 받아들인 후 개신교 두 번째 세례인이 되었다. 평안도 의주에 파송된 최초의 전도인으로 언더우드, 마펫 등 선교사들을 돕고 의주읍교회 등을 설립하여 서북지역 전도에 매진하였다.
고려후기 후군지병마사, 대장군, 추밀원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김지성 (金之成)
고려후기 후군지병마사, 대장군, 추밀원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평안도 의주부(현 의주군)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768년에 편찬한 읍지.
용만지 (龍灣誌)
평안도 의주부(현 의주군)의 연혁·인문지리·행정 등을 수록하여 1768년에 편찬한 읍지.
고려 후기 몽고가 고려의 화주(和州 : 지금의 함경남도 영흥)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부.
쌍성총관부 (雙城摠管府)
고려 후기 몽고가 고려의 화주(和州 : 지금의 함경남도 영흥)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부.
고려후기 급사중, 직문하, 수사공 좌복야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관리.
사정유 (史正儒)
고려후기 급사중, 직문하, 수사공 좌복야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관리.
유여대는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나,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지 않고 평안북도 의주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준비한 후 직접 이끌었다.
유여대 (劉如大)
유여대는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로서 「3 · 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에서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나, 3월 1일 태화관 독립선언식에 참석하지 않고 평안북도 의주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준비한 후 직접 이끌었다.
평안북도 의주 지역의 옛 지명.
인주 (麟州)
평안북도 의주 지역의 옛 지명.
조선시대 평안도 의주목에 설치된 서반(西班) 토관직(土官職) 군관(軍官)의 둔소(屯所).
진강위 (鎭江衛)
조선시대 평안도 의주목에 설치된 서반(西班) 토관직(土官職) 군관(軍官)의 둔소(屯所).
1920년평안북도 의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천마대 (天摩隊)
1920년평안북도 의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발해시대의 지방행정구역.
철리부 (鐵利府)
발해시대의 지방행정구역.
홍삼무역은 18세기 말부터 수삼을 가공하여 생산한 홍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해온 경제활동이다. 18세기 전반까지의 인삼은 자연산으로 지금의 산삼이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산삼이 거의 사라지자 인삼 재배가 성행하였다. 19세기 들어 개성상인들이 인삼 재배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홍삼무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홍삼 원료인 6년근 인삼은 1810년대부터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개성인이 재배하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홍삼무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백년 넘게 성행하고 있다.
홍삼무역 (紅蔘貿易)
홍삼무역은 18세기 말부터 수삼을 가공하여 생산한 홍삼을 해외 시장에 수출해온 경제활동이다. 18세기 전반까지의 인삼은 자연산으로 지금의 산삼이었다. 18세기 중후반부터 산삼이 거의 사라지자 인삼 재배가 성행하였다. 19세기 들어 개성상인들이 인삼 재배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면서 홍삼무역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홍삼 원료인 6년근 인삼은 1810년대부터 6·25전쟁 발발 이전까지 개성인이 재배하였다. 18세기 말에 시작된 홍삼무역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의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2백년 넘게 성행하고 있다.
의주부(義州府)에서 포삼세를 비롯한 무역세를 거두고, 필요 재원을 분급(分給)하던 기관.
관세청 (管稅廳)
의주부(義州府)에서 포삼세를 비롯한 무역세를 거두고, 필요 재원을 분급(分給)하던 기관.
1754년(영조 30) 의주 상인의 책문무역을 공인하면서 반포된 무역규정.
비포절목 (比包節目)
1754년(영조 30) 의주 상인의 책문무역을 공인하면서 반포된 무역규정.
김석운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0일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 약 3,000~4,0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군중들은 맞서 싸워 헌병주재소 건물과 헌병 숙소 등을 파괴하였다. 일본 헌병의 사격으로 김석운은 현장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김석운 (金碩運)
김석운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의주군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0일 고령삭면 영산시장에서 천도교인과 기독교인 약 3,000~4,00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군중들은 맞서 싸워 헌병주재소 건물과 헌병 숙소 등을 파괴하였다. 일본 헌병의 사격으로 김석운은 현장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