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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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승훈, 정약용 등과 함께 천주교리를 강습한 일에 대하여 유생들이 상소를 올려 천주교 탄압의 계기가 된 정미반회사건 때, 강습에 참여했던 유생.
강이원 (姜履元)
조선 후기, 이승훈, 정약용 등과 함께 천주교리를 강습한 일에 대하여 유생들이 상소를 올려 천주교 탄압의 계기가 된 정미반회사건 때, 강습에 참여했던 유생.
조선 후기에, 『송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김용언 (金龍彦)
조선 후기에, 『송계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정조 때 이가환(李家煥)·김원성(金源星)이 함께 지은 가사.
경세가 (警世歌)
조선 정조 때 이가환(李家煥)·김원성(金源星)이 함께 지은 가사.
1787년(정조 11) 반촌(泮村:지금의 서울 명륜동·혜화동)에서 이승훈(李承薰)이 정약용(丁若鏞) 등과 함께 천주교 교리에 대하여 연구, 토론한 일을 유생들이 성토한 사건.
반회사건 (泮會事件)
1787년(정조 11) 반촌(泮村:지금의 서울 명륜동·혜화동)에서 이승훈(李承薰)이 정약용(丁若鏞) 등과 함께 천주교 교리에 대하여 연구, 토론한 일을 유생들이 성토한 사건.
천주교는 조선에 교회가 세워진 1784년 이후 1백여 년 동안의 박해를 거쳐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현재 한국의 3대 종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종교단체이다. 조선의 천주교는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 서학서에 대한 자발적 학습을 통해 성립되었다. 그러나 천주교는 전파된 직후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지만, 19세기 말엽 종교의 자유를 얻고 꾸준히 발전해 왔다. 천주교는 1950년대 이후 현대사회에서 크게 성장하여 2022년 기준 신자수가 595만 명에 이르렀고, 불교, 개신교와 함께 한국의 3대 종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천주교 (天主敎)
천주교는 조선에 교회가 세워진 1784년 이후 1백여 년 동안의 박해를 거쳐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현재 한국의 3대 종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은 종교단체이다. 조선의 천주교는 중국에서 간행된 한문 서학서에 대한 자발적 학습을 통해 성립되었다. 그러나 천주교는 전파된 직후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지만, 19세기 말엽 종교의 자유를 얻고 꾸준히 발전해 왔다. 천주교는 1950년대 이후 현대사회에서 크게 성장하여 2022년 기준 신자수가 595만 명에 이르렀고, 불교, 개신교와 함께 한국의 3대 종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연정회는 1923년 말부터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세력들이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자치운동단체이다. 민족주의 계열에서 추진했던 실력양성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세력들이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자치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1923년 12월에 연정회를 조직하고자 하였으나, 절대 독립에 대한 부정은 사회주의 계열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켜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1925년 이후 국내외 정세의 변화 속에서 부활 계획이 다시 시도되었으나, 1927년 신간회의 결성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연정회 (硏政會)
연정회는 1923년 말부터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세력들이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자치운동단체이다. 민족주의 계열에서 추진했던 실력양성운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민족주의 계열의 일부 세력들이 정치운동의 일환으로 ‘자치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1923년 12월에 연정회를 조직하고자 하였으나, 절대 독립에 대한 부정은 사회주의 계열과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켜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1925년 이후 국내외 정세의 변화 속에서 부활 계획이 다시 시도되었으나, 1927년 신간회의 결성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1799년(정조 23)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권상학(權相學)·이총억(李寵億) 등 3인이 합작한 천주가사(天主歌辭).
십계명가 (十誡命歌)
1799년(정조 23)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권상학(權相學)·이총억(李寵億) 등 3인이 합작한 천주가사(天主歌辭).
1927년 김교신 등 무교회주의자들이 창간한 잡지. 개신교동인지.
성서조선 (聖書朝鮮)
1927년 김교신 등 무교회주의자들이 창간한 잡지. 개신교동인지.
일제강점기 때, 공립협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출옥 후 평안도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임치정 (林蚩正)
일제강점기 때, 공립협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05인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출옥 후 평안도 일대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조선후기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 학자.
정약종 (丁若鍾)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조선후기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 학자.
조만식은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회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83년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23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8년 일본 동경 유학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심취한 후 일제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귀국 후 오산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으며, 1932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었다.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과 오두산통일전만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조만식 (曺晩植)
조만식은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회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83년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23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8년 일본 동경 유학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심취한 후 일제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귀국 후 오산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으며, 1932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었다.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과 오두산통일전만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조선후기 외국인주교를 국내로 인도해왔다는 죄목으로 처형된 천주교인.
이재의 (李在誼)
조선후기 외국인주교를 국내로 인도해왔다는 죄목으로 처형된 천주교인.
일제강점기 때, 서울에서 3·1운동을 준비하고 참여했으며, 신간회의 발기인 겸 간사로 활동한 천도교인·정치인·독립운동가.
이병헌 (李炳憲)
일제강점기 때, 서울에서 3·1운동을 준비하고 참여했으며, 신간회의 발기인 겸 간사로 활동한 천도교인·정치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105인 사건과 관련된 목사.
조덕찬 (趙德燦)
일제강점기 105인 사건과 관련된 목사.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는 1908년 평양에 설립되었던 자기(磁器) 회사이다. 1908년 50원의 주식 200주를 자산으로 평양 마산동에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1908~1910)에는 평양의 유지 자본가들을 최고경영진으로 두면서 사무직원과 기술인력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여 선발하고, 사무직은 조선인만을 고용하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일제식민지 시기(1910~1919)에 들어서면서 임원이 모두 교체되는 등의 위기를 겪지만, 이후 다양한 건의와 요구가 반영되어 1913년부터 연간 1,200원가량의 정부 지원금이 보조되었다.
평양 자기 제조 주식회사 (平壤 磁器 製造 株式會社)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는 1908년 평양에 설립되었던 자기(磁器) 회사이다. 1908년 50원의 주식 200주를 자산으로 평양 마산동에 설립되었다. 대한제국기(1908~1910)에는 평양의 유지 자본가들을 최고경영진으로 두면서 사무직원과 기술인력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여 선발하고, 사무직은 조선인만을 고용하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일제식민지 시기(1910~1919)에 들어서면서 임원이 모두 교체되는 등의 위기를 겪지만, 이후 다양한 건의와 요구가 반영되어 1913년부터 연간 1,200원가량의 정부 지원금이 보조되었다.
조선후기 정언,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천주교도.
홍낙민 (洪樂敏)
조선후기 정언,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천주교도.
조선후기 권일신, 이벽, 정약종 등과 교회창립에 주동적으로 활동한 천주교인.
최창현 (崔昌顯)
조선후기 권일신, 이벽, 정약종 등과 교회창립에 주동적으로 활동한 천주교인.
조선후기 신해박해, 신유박해 와 관련된 천주교인.
최필공 (崔必恭)
조선후기 신해박해, 신유박해 와 관련된 천주교인.
1785년(정조 9) 봄에 형조(刑曹, 秋曹)에서 천주교도들의 비밀 신앙집회를 적발하여 낸 사건.
추조적발사건 (秋曹摘發事件)
1785년(정조 9) 봄에 형조(刑曹, 秋曹)에서 천주교도들의 비밀 신앙집회를 적발하여 낸 사건.
가성직제도란 1786년 가을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집행하기 위해 구성했던 제도이다. 신자 교계제도, 모방 성직제도, 평신도 성직제도라고도 한다. 1786년 일반 신자임에도 이승훈은 스스로 성직자단을 구성하여 신부를 임명하고 미사와 성사를 거행했다. 그러나 평신도가 신부를 임명하고, 또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은 독성죄(瀆聖罪)에 해당된다. 1789년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湯士選) 주교는 신자들의 무지(無知)로 돌리고 책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1794년 말에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가성직제도 (假聖職制度)
가성직제도란 1786년 가을 조선의 천주교 신자들이 미사와 성사를 집행하기 위해 구성했던 제도이다. 신자 교계제도, 모방 성직제도, 평신도 성직제도라고도 한다. 1786년 일반 신자임에도 이승훈은 스스로 성직자단을 구성하여 신부를 임명하고 미사와 성사를 거행했다. 그러나 평신도가 신부를 임명하고, 또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은 독성죄(瀆聖罪)에 해당된다. 1789년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湯士選) 주교는 신자들의 무지(無知)로 돌리고 책망하지 않았다. 그리고 1794년 말에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조선에 파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