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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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사례상변통고』, 『심동정도』, 『이기휘편』 등을 저술하였으며, 이황의 사상을 계승하고 정의한 영남학파의 중추적 학자.
이상정 (李象靖)
조선 후기에, 『사례상변통고』, 『심동정도』, 『이기휘편』 등을 저술하였으며, 이황의 사상을 계승하고 정의한 영남학파의 중추적 학자.
『사례편람(四禮便覽)』은 조선 후기 낙론(洛論) 학자인 이재(李縡)가 관혼상제의 실천에 활용하기 위해 『가례(家禮)』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편찬한 행례서(行禮書)이다. 체계적인 구성과 지침화된 예설을 통해 실용성을 강조했고, 저자의 안설(按說)을 통해 명확한 행례의 기준을 제시했다. 1844년(헌종 10) 간행된 이후 여러 판본으로 재간행되었고 20세기 초반 방각본 『증보사례편람』이 유통되면서, 『사례편람』은 조선의 대표적인 예서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례편람 (四禮便覽)
『사례편람(四禮便覽)』은 조선 후기 낙론(洛論) 학자인 이재(李縡)가 관혼상제의 실천에 활용하기 위해 『가례(家禮)』를 수정하고 보완하여 편찬한 행례서(行禮書)이다. 체계적인 구성과 지침화된 예설을 통해 실용성을 강조했고, 저자의 안설(按說)을 통해 명확한 행례의 기준을 제시했다. 1844년(헌종 10) 간행된 이후 여러 판본으로 재간행되었고 20세기 초반 방각본 『증보사례편람』이 유통되면서, 『사례편람』은 조선의 대표적인 예서로 인정받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 세자익위사세마, 시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임성주 (任聖周)
조선 후기에, 세자익위사세마, 시직 등을 역임하였으며, 『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자의, 종부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간 (李柬)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자의, 종부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채(李采)는 조선 후기에 상주목사, 황주목사, 경주부윤, 승지 등을 지낸 문신이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亮), 호는 화천(華泉)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손자이다. 이재는 여흥민씨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의 조카로서, 노론의 핵심 집안으로 분류된다. 이채는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1780년까지 호조정랑, 돈녕부 주부, 음죽현감으로 활동하였으나, 1780년 이후로는 주로 향리에 머물며 학문 연구에 주력하면서 조부 이재의 문집인 『도암집(陶菴集)』을 편찬하고 간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채 (李采)
이채(李采)는 조선 후기에 상주목사, 황주목사, 경주부윤, 승지 등을 지낸 문신이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계량(季亮), 호는 화천(華泉)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손자이다. 이재는 여흥민씨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의 조카로서, 노론의 핵심 집안으로 분류된다. 이채는 진사시에 합격한 이후 1780년까지 호조정랑, 돈녕부 주부, 음죽현감으로 활동하였으나, 1780년 이후로는 주로 향리에 머물며 학문 연구에 주력하면서 조부 이재의 문집인 『도암집(陶菴集)』을 편찬하고 간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조선 후기에, 함경도경성판관, 경성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우인 (曺友仁)
조선 후기에, 함경도경성판관, 경성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종부시주부, 공조참의, 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원행 (金元行)
조선후기 종부시주부, 공조참의, 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후기 지평, 세손강서원유선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박성원 (朴聖源)
조선후기 지평, 세손강서원유선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 인조 때 조우인(曺友仁)이 지은 가사.
매호별곡 (梅湖別曲)
조선 인조 때 조우인(曺友仁)이 지은 가사.
조선후기 참의, 부호군, 찬선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송명흠 (宋明欽)
조선후기 참의, 부호군, 찬선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채 초상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채(1745-1820)를 그린 초상화이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심의를 입고 동파관을 쓴 뒤 두 손을 모으고 정면을 바라보는 반신상이다. 이 초상은 수려한 용모를 뛰어난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대 명필들의 미려한 글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왼쪽에 유한준의 찬문(서화를 기리는 글)이 있다. 조선 후기 초상화는 정조대 중엽 전후에 가장 정교한 기법을 구사하였다. 이 초상화는 1802년에 그려진 것으로 조선 후기 초상화 중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다.
이채 초상 (李采 肖像)
이채 초상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채(1745-1820)를 그린 초상화이다. 2006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심의를 입고 동파관을 쓴 뒤 두 손을 모으고 정면을 바라보는 반신상이다. 이 초상은 수려한 용모를 뛰어난 화법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대 명필들의 미려한 글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왼쪽에 유한준의 찬문(서화를 기리는 글)이 있다. 조선 후기 초상화는 정조대 중엽 전후에 가장 정교한 기법을 구사하였다. 이 초상화는 1802년에 그려진 것으로 조선 후기 초상화 중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다.
조선 중기에 조우인(曺友仁)이 지은 가사.
자도사 (自悼詞)
조선 중기에 조우인(曺友仁)이 지은 가사.
조선 후기에, 대사간, 예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유수 (李惟秀)
조선 후기에, 대사간, 예조참판,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인존은 고려 전기에, 비서감, 병부, 예부, 호부상서, 익성동덕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신라 상대등 김주원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해 선종·헌종·숙종 3대에 걸쳐 내시직에 종사하였다. 요나라 사신의 접대를 맡을 만큼 시를 잘 지었고 임금의 조서와 유시문을 많이 작성하였다. 『해동비록』과 『시정책요』 저술에 참여하였으며 『정관정요』에 주석을 붙였다. 예종 때에 추진된 여진 정벌을 극력 반대하였고 여진에게 동북 9성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자겸의 난이 평정된 후 정지상·김안 등이 송나라와 협력해 금나라를 치자고 주장했으나 반대하였다.
김인존 (金仁存)
김인존은 고려 전기에, 비서감, 병부, 예부, 호부상서, 익성동덕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신라 상대등 김주원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해 선종·헌종·숙종 3대에 걸쳐 내시직에 종사하였다. 요나라 사신의 접대를 맡을 만큼 시를 잘 지었고 임금의 조서와 유시문을 많이 작성하였다. 『해동비록』과 『시정책요』 저술에 참여하였으며 『정관정요』에 주석을 붙였다. 예종 때에 추진된 여진 정벌을 극력 반대하였고 여진에게 동북 9성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자겸의 난이 평정된 후 정지상·김안 등이 송나라와 협력해 금나라를 치자고 주장했으나 반대하였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명승.
대관령 옛길 (大關嶺 옛길)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에 있는 명승.
남북국시대 통일신라학자 최치원이 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에 썼다고 전하는 문서. 기문.
신라 수창군 호국성 팔각 등루기 (新羅 壽昌郡 護國城 八角 燈樓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학자 최치원이 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에 썼다고 전하는 문서. 기문.
조선 후기에,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정존겸 (鄭存謙)
조선 후기에, 좌의정, 우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작자·연대 미상의 동학가사.
궁을전전가 (弓乙田田歌)
작자·연대 미상의 동학가사.
조선 후기에, 『기법질의』, 『강록간보고의』, 『구사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김낙행 (金樂行)
조선 후기에, 『기법질의』, 『강록간보고의』, 『구사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지경연사, 평안도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정실 (鄭宲)
조선 후기에, 지경연사, 평안도관찰사,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