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목대비"
검색결과 총 29건
김몽호는 조선 후기 사헌부장령, 공조참의, 어천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09년(광해군 1)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오고 지방 수령도 지내며 문한직을 역임하는 등 순조로운 승진하였지만, 인목대비 폐비와 관련된 소문으로 정경세와 함께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이후 은퇴하였고 인조반정 후에도 관직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김몽호 (金夢虎)
김몽호는 조선 후기 사헌부장령, 공조참의, 어천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609년(광해군 1)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오고 지방 수령도 지내며 문한직을 역임하는 등 순조로운 승진하였지만, 인목대비 폐비와 관련된 소문으로 정경세와 함께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이후 은퇴하였고 인조반정 후에도 관직에 다시 나가지 않았다.
조선 후기에, 서궁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민호 (閔頀)
조선 후기에, 서궁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뿌옇게 걸러낸 탁주.
모주 (毋酒)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뿌옇게 걸러낸 탁주.
조선시대 모친이 상을 당하자 4일간 금식하고 2년동안 곡을 한 효자.
목낙선 (睦樂善)
조선시대 모친이 상을 당하자 4일간 금식하고 2년동안 곡을 한 효자.
조선 후기에, 형조정랑, 예조정랑, 통례원상례 등을 역임한 문신.
박대하 (朴大夏)
조선 후기에, 형조정랑, 예조정랑, 통례원상례 등을 역임한 문신.
박동열은 조선 후기 이조정랑, 황주목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정치적으로 서인 측이었다. 이조정랑 등 중앙의 요직을 역임하였지만, 황주목사로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1613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다 동생 박동량, 상촌 신흠과 함께 옥에 갇히는 등 고초를 겪었다.
박동열 (朴東說)
박동열은 조선 후기 이조정랑, 황주목사,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정치적으로 서인 측이었다. 이조정랑 등 중앙의 요직을 역임하였지만, 황주목사로서 탁월한 성과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1613년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다 동생 박동량, 상촌 신흠과 함께 옥에 갇히는 등 고초를 겪었다.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박자응 (朴自凝)
조선 후기에, 홍문관수찬, 사간원헌납,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이조정랑, 동부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자흥 (朴自興)
조선 후기에, 이조정랑, 동부승지,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선공감직장, 제용감직장, 장례원사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강선 (姜璿)
조선 중기에, 선공감직장, 제용감직장, 장례원사평 등을 역임한 문신.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광해군 (光海君)
광해군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으로 15년간(1608~1623) 재위하였으나, 정변을 맞아 폐위당한 인물이다. 부왕 선조의 핍박과 명나라의 세자 책봉 거부 등 숱한 난관을 뚫고 즉위하였다. 하지만 정적을 제거하는 데 집착하면서 주로 대북 계열을 중용하였으며,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마침 명과 후금이 전쟁을 벌이자, 명과는 사대관계를 유지하되 후금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였다. 하지만 숭명배금 노선을 절대시한 신료들의 거센 반대가 장기화하면서 국가 행정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했다.
덕수궁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이다. 원래 월산대군의 사가였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세워졌다. 건물은 정전과 침전이 있는 부분, 선원전이 있는 부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있는 부분으로 나뉜다. 고종의 재위 말년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된 장소였고,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하고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덕수궁 (德壽宮)
덕수궁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조선시대 고종의 거처로 이용된 궁궐이다. 원래 월산대군의 사가였는데 임진왜란 후 선조가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다가 광해군 때에 경운궁으로 개칭되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부터 중화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세워졌다. 건물은 정전과 침전이 있는 부분, 선원전이 있는 부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있는 부분으로 나뉜다. 고종의 재위 말년 약 10년간 정치적 혼란의 주무대가 된 장소였고, 1907년 순종에게 양위하고 이곳에 머무르게 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사서, 이조좌랑, 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민심 (閔𦸂)
조선 후기에 세자시강원사서, 이조좌랑, 홍문관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계축일기(癸丑日記)」는 조선 중기 작자 미상의 궁중 일기이다. 1책의 한글 필사본으로 원제목은 ‘계튝일긔’이다.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 사건이 시작되었던 1613년(계축년, 광해군 5)을 기점으로 하여 일어난 궁중의 비사(秘事)를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인목대비의 측근 나인 또는 그 밖의 사람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이다. 「한중록(恨中錄)」·「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궁중 문학의 하나이다.
계축일기 (癸丑日記)
「계축일기(癸丑日記)」는 조선 중기 작자 미상의 궁중 일기이다. 1책의 한글 필사본으로 원제목은 ‘계튝일긔’이다.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비 사건이 시작되었던 1613년(계축년, 광해군 5)을 기점으로 하여 일어난 궁중의 비사(秘事)를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인목대비의 측근 나인 또는 그 밖의 사람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이다. 「한중록(恨中錄)」·「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궁중 문학의 하나이다.
조선시대 문신 정충신이 북청으로 귀양가는 이항복을 수행하며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백사북천일록 (白沙北遷日錄)
조선시대 문신 정충신이 북청으로 귀양가는 이항복을 수행하며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조선후기 병자호란 당시의 무신.
손종로 (孫宗老)
조선후기 병자호란 당시의 무신.
조선후기 제15대 왕 광해군 때의 인목대비폐출에 관하여 올린 소 등을 모아 엮은 역사서. 일록.
서궁일록 (西宮逸錄)
조선후기 제15대 왕 광해군 때의 인목대비폐출에 관하여 올린 소 등을 모아 엮은 역사서. 일록.
조선 후기에,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소 (李소)
조선 후기에,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숙 (李俶)
조선 후기에, 회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예조정랑, 옥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순암 (李純馣)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예조정랑, 옥천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승정원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성진선 (成晉善)
조선 후기에, 대사간, 홍문관부제학, 승정원우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