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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仁顯王后)는 조선 후기,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성부부인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1년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689년 폐서인이 되었다가 1694년 복위되었고, 1701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다.
인현왕후 (仁顯王后)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조선 후기,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성부부인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1년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689년 폐서인이 되었다가 1694년 복위되었고, 1701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다.
경종은 조선 제20대 임금이다. 재위 기간은 1720~1724년이다. 숙종과 희빈장씨 사이에서 태어나서 곧 원자로 정해졌고, 3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왕비는 심호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이고, 계비는 어유구의 딸 선의왕후(宣懿王后)이다. 30년 동안 왕세자로 국왕 수업을 받았고, 무리 없이 대리청정을 수행하였다. 왕위에 올라서 4년의 재위 기간 동안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세제의 대리청정 문제 등으로 소론과 노론 사이에 격심한 정쟁이 있었지만, 부왕인 숙종의 뜻을 지키고 백성을 위한 정사를 펼치려 애쎴다.
경종 (景宗)
경종은 조선 제20대 임금이다. 재위 기간은 1720~1724년이다. 숙종과 희빈장씨 사이에서 태어나서 곧 원자로 정해졌고, 3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왕비는 심호의 딸 단의왕후(端懿王后)이고, 계비는 어유구의 딸 선의왕후(宣懿王后)이다. 30년 동안 왕세자로 국왕 수업을 받았고, 무리 없이 대리청정을 수행하였다. 왕위에 올라서 4년의 재위 기간 동안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세제의 대리청정 문제 등으로 소론과 노론 사이에 격심한 정쟁이 있었지만, 부왕인 숙종의 뜻을 지키고 백성을 위한 정사를 펼치려 애쎴다.
부곡은 고려 및 조선 초기에 있었던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방 행정 단위이다. 읍사(邑司)와 장리(長吏)가 있었으나 일반 군현(郡縣)과 구분되어 운영되었다. 주민의 신분에 대해서는 양인설(良人說)과 천인설(賤人說)이 있으며, 고려후기부터 폐지되거나 군현으로 승격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한편 정치적 징계의 의미로 군현을 일시적으로 부곡으로 강등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부곡 (部曲)
부곡은 고려 및 조선 초기에 있었던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방 행정 단위이다. 읍사(邑司)와 장리(長吏)가 있었으나 일반 군현(郡縣)과 구분되어 운영되었다. 주민의 신분에 대해서는 양인설(良人說)과 천인설(賤人說)이 있으며, 고려후기부터 폐지되거나 군현으로 승격하면서 점차 소멸하였다. 한편 정치적 징계의 의미로 군현을 일시적으로 부곡으로 강등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의 손자로, 혜민서제조, 동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희빈 장씨와 가까워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누리다 갑술환국으로 유배된 종실.
이항 (李杭)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의 손자로, 혜민서제조, 동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희빈 장씨와 가까워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누리다 갑술환국으로 유배된 종실.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
흑치상지 (黑齒常之)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
죄질에 따라 죄인에게 가하는 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 등 다섯 가지 형벌.
오형 (五刑)
죄질에 따라 죄인에게 가하는 태(笞)·장(杖)·도(徒)·유(流)·사(死) 등 다섯 가지 형벌.
여름철에 먹는 장.
집장 (집醬)
여름철에 먹는 장.
1906년 일제 통감부가 우리나라에서의 농업기술의 시험·조사 및 지도를 위해 설치한 기관.
권업모범장 (勸業模範場)
1906년 일제 통감부가 우리나라에서의 농업기술의 시험·조사 및 지도를 위해 설치한 기관.
장문(場門)은 조선시대에 지방 군현에서 열렸던 정기 시장이다. 초기에는 한 달에 2번 열리다가, 17세기 이후 전국적으로 장시가 발달하면서 주로 5일마다 개설되었다. 15세기 말 전라도에 극심한 흉년으로 기민이 늘자 이를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장시를 처음 허가하여 주었는데, 이를 계기로 장시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 들어 대동법의 시행과 화폐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조선 말기까지 대략 1,000여 개의 장시가 형성되었다. 이에 장시는 향촌의 정보 전달 기능과 놀이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장문 (場門)
장문(場門)은 조선시대에 지방 군현에서 열렸던 정기 시장이다. 초기에는 한 달에 2번 열리다가, 17세기 이후 전국적으로 장시가 발달하면서 주로 5일마다 개설되었다. 15세기 말 전라도에 극심한 흉년으로 기민이 늘자 이를 구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장시를 처음 허가하여 주었는데, 이를 계기로 장시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조선 후기 들어 대동법의 시행과 화폐 유통이 활발해지면서 조선 말기까지 대략 1,000여 개의 장시가 형성되었다. 이에 장시는 향촌의 정보 전달 기능과 놀이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지윤은 고려 후기 우왕 대 문하찬성사를 지낸 권신(權臣)이자 무신이다. 그는 군졸에서 시작하여 공을 세운 무신으로서는 최고위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우왕 즉위 이후 이인임과 함께 북원(北元)과의 외교관계 재개에 반대하는 문신 세력을 제거하고 독자 세력화를 도모하였으나, 이인임과 사이가 벌어져 이인임, 최영 등에 의해 처형되었다.
지윤 (池奫)
지윤은 고려 후기 우왕 대 문하찬성사를 지낸 권신(權臣)이자 무신이다. 그는 군졸에서 시작하여 공을 세운 무신으로서는 최고위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우왕 즉위 이후 이인임과 함께 북원(北元)과의 외교관계 재개에 반대하는 문신 세력을 제거하고 독자 세력화를 도모하였으나, 이인임과 사이가 벌어져 이인임, 최영 등에 의해 처형되었다.
1689년(숙종 15) 1월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호칭을 정하자, 송시열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비판한 사건.
원자정호 (元子定號)
1689년(숙종 15) 1월 숙종이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를 원자로 호칭을 정하자, 송시열이 이를 부당한 것으로 비판한 사건.
조선 후기의 여류 문인, 정부인 안동장씨의 시·서·행실기 등을 수록하여 1844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부인안동장씨실기 (貞夫人安東張氏實紀)
조선 후기의 여류 문인, 정부인 안동장씨의 시·서·행실기 등을 수록하여 1844년에 간행한 시문집.
조선 후기에,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봉징 (李鳳徵)
조선 후기에,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주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의 한문 문체이다. 의라는 문체와 함께 한문 문체 중에 주의류에 속한다. 정사 진술, 법이나 제도의 건의, 돌발적인 사태의 보고, 잘못이나 허물에 대한 탄핵 등에 이 문체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시대부터 이 문체가 작성되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주의로 쓰여진 글들만 한데 모아 편찬하는 경우가 잦았다.
주 (奏)
주는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의 한문 문체이다. 의라는 문체와 함께 한문 문체 중에 주의류에 속한다. 정사 진술, 법이나 제도의 건의, 돌발적인 사태의 보고, 잘못이나 허물에 대한 탄핵 등에 이 문체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시대부터 이 문체가 작성되었다. 한편, 조선시대에는 주의로 쓰여진 글들만 한데 모아 편찬하는 경우가 잦았다.
조선시대 함경도에서 많이 생산되었으며 볏짚·보릿짚·귀리짚 등 벼과의 식물을 주원료로 하여 만든 종이.
고정지 (藁精紙)
조선시대 함경도에서 많이 생산되었으며 볏짚·보릿짚·귀리짚 등 벼과의 식물을 주원료로 하여 만든 종이.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이성구 (李性求)
해방 이후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한 체육인.
집주는 고려시대에 승선(承宣) 외에 왕명을 출납하는 업무를 맡은 관원이다. 국왕에게 명을 받아 승선 또는 명을 받은 관료에게 전달하고, 재가를 받기 위해 승선을 거쳐 올라오는 백관의 장주(章奏)를 왕에게 상달하였다. 고려 전기에 내시가 집주로 임명되고, 무신집권기에는 집정이 집주가 되다가 충렬왕 때 사(辭)로 변모하였다.
집주 (執奏)
집주는 고려시대에 승선(承宣) 외에 왕명을 출납하는 업무를 맡은 관원이다. 국왕에게 명을 받아 승선 또는 명을 받은 관료에게 전달하고, 재가를 받기 위해 승선을 거쳐 올라오는 백관의 장주(章奏)를 왕에게 상달하였다. 고려 전기에 내시가 집주로 임명되고, 무신집권기에는 집정이 집주가 되다가 충렬왕 때 사(辭)로 변모하였다.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花岐里 仁同長氏 宗宅)은 16세기 중반 장언상이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지은 인동장씨 가문의 종택이다. 보물로 지정된 선조 장말손의 영정과 인동장씨 가문 관련 각종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사랑채와 정침은 외관상 하나의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개의 목 구조인 점이 특이하다.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 (花岐里 仁同長氏 宗宅)
화기리 인동장씨 종택(花岐里 仁同長氏 宗宅)은 16세기 중반 장언상이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지은 인동장씨 가문의 종택이다. 보물로 지정된 선조 장말손의 영정과 인동장씨 가문 관련 각종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사랑채와 정침은 외관상 하나의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별개의 목 구조인 점이 특이하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한 회양목.
여주 효종대왕릉 회양목 (驪州 孝宗大王陵 淮陽木)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왕대리에 소재한 회양목.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시만 (李蓍晩)
조선 후기에, 대사간, 도승지,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