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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창의 난은 822년(헌덕왕 14) 3월에 신라 웅천주의 도독 김헌창이 일으킨 반란이다. 김헌창은 신라 조정에 항거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했다. 충청·전라·경상도 일부 지역이 반란 세력에게 장악된 전국 규모의 내란이었으나, 중앙에서 파견한 토벌군에게 웅진성이 함락되고 김헌창이 자결함으로써 오래지 않아 진압되었다. 배경에는 아버지 김주원이 무열왕계의 가장 유력한 왕족으로 선덕왕 사후 왕위에 추대되었지만 김경신의 정변으로 즉위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이후 무열왕계 귀족들은 왕위계승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김헌창의 난 (金憲昌의 亂)
김헌창의 난은 822년(헌덕왕 14) 3월에 신라 웅천주의 도독 김헌창이 일으킨 반란이다. 김헌창은 신라 조정에 항거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했다. 충청·전라·경상도 일부 지역이 반란 세력에게 장악된 전국 규모의 내란이었으나, 중앙에서 파견한 토벌군에게 웅진성이 함락되고 김헌창이 자결함으로써 오래지 않아 진압되었다. 배경에는 아버지 김주원이 무열왕계의 가장 유력한 왕족으로 선덕왕 사후 왕위에 추대되었지만 김경신의 정변으로 즉위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이후 무열왕계 귀족들은 왕위계승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공동체의 집단적인 농경의례의 하나로서 풍성한 수확제·추수감사제 성격을 지니는 부여시대의 제천의식.
영고 (迎鼓)
공동체의 집단적인 농경의례의 하나로서 풍성한 수확제·추수감사제 성격을 지니는 부여시대의 제천의식.
해방 이후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승자로 지정된 기능보유자. 음식연구가.
황혜성 (黃慧性)
해방 이후 「조선왕조 궁중음식」 전승자로 지정된 기능보유자. 음식연구가.
신돈은 고려 후기 공민왕 대 개혁정치를 추진한 승려이다. 신돈에 대해서는 『고려사』 등에서 요승(妖僧), 사승(邪僧), 용승(庸僧), 미승(微僧), 노호(老狐) 등으로 지칭하는 부정적 평가도 있으나, 개혁가로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전민변정 사업을 추진하여 토지와 예속민 문제를 해결하고 국학 중흥책을 실시한 점, 산관의 통제와 순자격제의 시행으로 관리 기강을 확립한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신돈 (辛旽)
신돈은 고려 후기 공민왕 대 개혁정치를 추진한 승려이다. 신돈에 대해서는 『고려사』 등에서 요승(妖僧), 사승(邪僧), 용승(庸僧), 미승(微僧), 노호(老狐) 등으로 지칭하는 부정적 평가도 있으나, 개혁가로서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전민변정 사업을 추진하여 토지와 예속민 문제를 해결하고 국학 중흥책을 실시한 점, 산관의 통제와 순자격제의 시행으로 관리 기강을 확립한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봉창은 일제강점기 일왕투탄의거와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901년 8월 10일에 태어나 1932년 10월 10일에 사망했다. 조선인 차별에 항일의식을 갖고 1924년 자택에서 항일단체인 금정청년회를 조직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하며 전전하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고 1930년 상해로 갔다. 김구가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킨 뒤 그의 소신을 수용하여 일본천황폭살계획을 추진했다. 1932년 동경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던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비공개재판에서 전격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했다.
이봉창 (李奉昌)
이봉창은 일제강점기 일왕투탄의거와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901년 8월 10일에 태어나 1932년 10월 10일에 사망했다. 조선인 차별에 항일의식을 갖고 1924년 자택에서 항일단체인 금정청년회를 조직했다. 일본으로 건너가 막노동을 하며 전전하다가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맹세하고 1930년 상해로 갔다. 김구가 한인애국단에 가입시킨 뒤 그의 소신을 수용하여 일본천황폭살계획을 추진했다. 1932년 동경에서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던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체포되었다. 비공개재판에서 전격적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했다.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 한 쪽이 사망하거나 법률상의 원인이 발생하였을 때 재산적 또는 친족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계승하는 제도.
상속 (相續)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 한 쪽이 사망하거나 법률상의 원인이 발생하였을 때 재산적 또는 친족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계승하는 제도.
제1공화국 붕괴 이후 1960년 4월 27일 구성되어 1960년 6월 15일까지 제2공화국이 등장하기 이전 과도정부.
허정 과도정부 (許政 過渡政府)
제1공화국 붕괴 이후 1960년 4월 27일 구성되어 1960년 6월 15일까지 제2공화국이 등장하기 이전 과도정부.
설악산 울산바위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과 고성군 토성면 사이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병풍처럼 우뚝 솟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서 동양에서 가장 큰 돌산으로 알려져 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는 수직에 가까운 기암절벽의 형태로 정상까지 높이만 약 200m에 달한다.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부에 항아리 모양의 구멍 5개가 있다. 명칭에 대해서는 울타리와 같은 모습이어서 울산(鬱山)이라고 하였다는 설과 본래 울산(蔚山)에 있던 바위였다는 설, 바위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가 마치 우는 소리처럼 들리는 데서 왔다는 설이 있다.
설악산 울산바위 (雪嶽山 蔚山바위)
설악산 울산바위는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과 고성군 토성면 사이에 위치한 바위산이다. 병풍처럼 우뚝 솟은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서 동양에서 가장 큰 돌산으로 알려져 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는 수직에 가까운 기암절벽의 형태로 정상까지 높이만 약 200m에 달한다.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상부에 항아리 모양의 구멍 5개가 있다. 명칭에 대해서는 울타리와 같은 모습이어서 울산(鬱山)이라고 하였다는 설과 본래 울산(蔚山)에 있던 바위였다는 설, 바위를 통과하는 바람 소리가 마치 우는 소리처럼 들리는 데서 왔다는 설이 있다.
1945년 7월 26일,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독일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서 열린 연합국 정상회담 중 발표한 연합국의 대일(對日) 공동선언.
포츠담 선언 (Potsdam 宣言)
1945년 7월 26일,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독일 베를린 교외 포츠담에서 열린 연합국 정상회담 중 발표한 연합국의 대일(對日) 공동선언.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 제11사단 소속 군인들이 마을 주민을 집단학살한 사건.
거창사건 (居昌事件)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서 국군 제11사단 소속 군인들이 마을 주민을 집단학살한 사건.
의천은 고려전기 국사, 승통, 국청사 제1대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055년(문종 9)에 태어나 1101년(숙종 6)에 사망했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자원하여 11세에 출가했다. 송나라에 유학해 수도 변경의 여러 절에 머물면서 화엄과 천태 등의 교학에 대해 토론하며 견문을 넓혔다. 1086년(선종 3) 불교 전적 3000여 권을 가지고 귀국한 뒤, 흥왕사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불교전적 정비·편찬에 힘썼다. 1097년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개립하여 교단의 통일과 국가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의천 (義天)
의천은 고려전기 국사, 승통, 국청사 제1대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055년(문종 9)에 태어나 1101년(숙종 6)에 사망했다. 문종의 넷째 아들로, 자원하여 11세에 출가했다. 송나라에 유학해 수도 변경의 여러 절에 머물면서 화엄과 천태 등의 교학에 대해 토론하며 견문을 넓혔다. 1086년(선종 3) 불교 전적 3000여 권을 가지고 귀국한 뒤, 흥왕사의 주지가 되어 천태교학을 정리하고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불교전적 정비·편찬에 힘썼다. 1097년 국청사에서 천태종을 개립하여 교단의 통일과 국가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
1·4후퇴 시기 국민방위군의 간부들이 방위군 예산을 부정 착복한 결과 철수 도중에 많은 병력들을 병사시킨 사건.
국민방위군 사건 (國民防衛軍 事件)
1·4후퇴 시기 국민방위군의 간부들이 방위군 예산을 부정 착복한 결과 철수 도중에 많은 병력들을 병사시킨 사건.
조선 말기 국가 재무를 총괄하였던 중앙행정관청.
탁지아문 (度支衙門)
조선 말기 국가 재무를 총괄하였던 중앙행정관청.
포츠머스 조약은 1905년 9월에 러일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포츠머스에서 일본과 러시아 간에 체결된 강화조약이다. 러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된 일본과 계속 패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중재로 15차례 회담 끝에 체결하였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자유처분권을 확보하고, 사할린의 남쪽 부분을 할양받는 등 일본의 승리를 확인하는 5개 사항에 합의하였다. 미국과 가쓰라-테프트 비밀협정을 체결한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는 등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안정적으로 확약받게 되었다.
포츠머스 조약 (Portsmouth 條約)
포츠머스 조약은 1905년 9월에 러일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미국 포츠머스에서 일본과 러시아 간에 체결된 강화조약이다. 러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된 일본과 계속 패전하고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중재로 15차례 회담 끝에 체결하였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자유처분권을 확보하고, 사할린의 남쪽 부분을 할양받는 등 일본의 승리를 확인하는 5개 사항에 합의하였다. 미국과 가쓰라-테프트 비밀협정을 체결한 일본은 영국과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하는 등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안정적으로 확약받게 되었다.
고려시대 속장경(續藏經)의 판각사무를 관장하던 관서.
교장도감 (敎藏都監)
고려시대 속장경(續藏經)의 판각사무를 관장하던 관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9년간의 국민 기초교육을 바탕으로 실시되는 후기 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기관.
고등학교 (高等學校)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의 9년간의 국민 기초교육을 바탕으로 실시되는 후기 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기관.
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점자 (點字)
점자는 손가락으로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이다. 점자는 6점으로 구성되고, 왼쪽 위에서 아래로 1, 2, 3점,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4, 5, 6점의 고유 번호를 붙여 사용한다. 1824년에 파리맹학교의 루이 브라유가 6점 점자를 이용하여 알파벳, 숫자, 간단한 문장부호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898년에 감리교 선교사 홀 여사가 뉴욕점자를 기초로 한글점자를 만들어 맹여학생들에게 처음 가르쳤다.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 박두성과 제자들이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을 창안하여 발표하였다.
부병제는 고려시대에 시행된 병농일치(兵農一致)의 병제이다. 농민 의무병으로 운영되는 상비군제이며, 농민은 국가로부터 균전을 지급받았다. 평상시에는 농경에 종사하고 농한기에는 절충부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성종 때 6위를 설치하면서 지방 호족 휘하의 사병을 중앙 통제하에 두기 위해 부병제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2군 6위는 지방 주현에서 교대로 서울로 와 근무하는 병농일치의 농민병이었다. 지방의 군부인 절충부가 병력의 간점과 동원을 맡았는데, 고려의 경우 지방 행정 구역과 궤를 같이하는 군사도를 단위로 지방 농민을 동원하였다.
부병제 (府兵制)
부병제는 고려시대에 시행된 병농일치(兵農一致)의 병제이다. 농민 의무병으로 운영되는 상비군제이며, 농민은 국가로부터 균전을 지급받았다. 평상시에는 농경에 종사하고 농한기에는 절충부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성종 때 6위를 설치하면서 지방 호족 휘하의 사병을 중앙 통제하에 두기 위해 부병제의 도입을 시도하였다. 2군 6위는 지방 주현에서 교대로 서울로 와 근무하는 병농일치의 농민병이었다. 지방의 군부인 절충부가 병력의 간점과 동원을 맡았는데, 고려의 경우 지방 행정 구역과 궤를 같이하는 군사도를 단위로 지방 농민을 동원하였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법정동의 명칭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공예품,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인사동 및 그 인근지역을 지칭함.
인사동 (仁寺洞)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법정동의 명칭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골동품, 화랑, 표구, 필방, 전통공예품, 전통찻집, 전통음식점 등이 집중되어 있는 인사동 및 그 인근지역을 지칭함.
김창숙은 조선 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청참오적소」를 올려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광복 이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써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
김창숙 (金昌淑)
김창숙은 조선 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청참오적소」를 올려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광복 이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써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