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소앙"
검색결과 총 16건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大韓民國 臨時政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부터 1945년까지 27년간 중국에서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던 임시정부이다.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이후 1945년 11월 김구 등이 환국할 때까지 민주공화제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주권 자치를 실현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기념일 제정 시에는 4월 13일이라고 여겨 왔으나 근거 자료의 확대와 이에 대한 역사학적 분석에 따라 2019년부터 4월 11일로 바로잡게 되었다.
한중항일대동맹은 1932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중국의 실지 회복과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구(金九)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특무활동을 비밀리에 후원하고, 의거 후 사후대책 마련 과정에도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한중항일대동맹 (韓中抗日大同盟)
한중항일대동맹은 1932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중국의 실지 회복과 한국의 독립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이다. 김구(金九)가 주도하는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특무활동을 비밀리에 후원하고, 의거 후 사후대책 마련 과정에도 자금을 지원해 주었다.
1913년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 안에 설립되었던 교육기관.
박달학원 (博達學院)
1913년 중국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 안에 설립되었던 교육기관.
한중문화협회는 1942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중 양민족의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한국과 중국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한국 독립운동 지원, 기관지 발행, 인재 양성, 도서 출판, 연극 공연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한중문화협회 (韓中文化協會)
한중문화협회는 1942년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중 양민족의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한국과 중국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한국 독립운동 지원, 기관지 발행, 인재 양성, 도서 출판, 연극 공연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4년 10월 26일, 민주국민당의선전부장 함상훈(咸尙勳)이 신익희(申翼熙)가 1953년 7월 26일 인도 뉴델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납북당한 조소앙(趙素昻)을 비밀리에 만났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후 이어진 일련의 사건.
뉴델리 밀회사건 (New Delhi 密會事件)
1954년 10월 26일, 민주국민당의선전부장 함상훈(咸尙勳)이 신익희(申翼熙)가 1953년 7월 26일 인도 뉴델리에서 한국전쟁 당시 납북당한 조소앙(趙素昻)을 비밀리에 만났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후 이어진 일련의 사건.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상해(上海)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도 부른다. 해외 독립운동 전선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봉창 · 윤봉길의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당 본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기기도 하였다. 1935년 7월 5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결성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한국독립당 (韓國獨立黨)
한국독립당은 1930년 1월 25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상해(上海)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으로도 부른다. 해외 독립운동 전선 통일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며, 이봉창 · 윤봉길의 의거 이후 상하이를 떠나 당 본부를 항저우[杭州]로 옮기기도 하였다. 1935년 7월 5일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결성으로 자진 해산하였다.
1948년 조소앙의 삼균주의청년동맹을 중심으로 창당된 정당.
사회당 (社會黨)
1948년 조소앙의 삼균주의청년동맹을 중심으로 창당된 정당.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민충식 (閔忠植)
일제강점기 때, 임시의정원 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1930년대 중국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의생단 (義生團)
1930년대 중국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화랑사(花郎社)는 1929년 중국 상하이에서 국권회복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조직된 항일소년단체이다. 1929년 2월 28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조소앙(趙素昻)의 지도 아래 김덕근(金德根) 등 상하이의 한인 소년 23명이 국권회복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화랑보(花郞報)』라는 기관지를 발간하였으며,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전령(傳令)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8월 소년척후대(少年斥候隊)와 통합하여 상해한인소년동맹(上海韓人少年同盟)을 조직하였다.
화랑사 (花郎社)
화랑사(花郎社)는 1929년 중국 상하이에서 국권회복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조직된 항일소년단체이다. 1929년 2월 28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무위원 조소앙(趙素昻)의 지도 아래 김덕근(金德根) 등 상하이의 한인 소년 23명이 국권회복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화랑보(花郞報)』라는 기관지를 발간하였으며,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 전령(傳令)으로 활동하였다. 1930년 8월 소년척후대(少年斥候隊)와 통합하여 상해한인소년동맹(上海韓人少年同盟)을 조직하였다.
1920년 9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상해한인노동회 (上海韓人勞動會)
1920년 9월 중국 상해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오영선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남편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 충칭에서 성립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3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을 충칭에서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고,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영선 (吳英善)
오영선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남편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 충칭에서 성립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3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을 충칭에서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고,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계림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의 딸로서, 아버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에는 임시정부 외무부원으로서 안두생, 두군혜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3년 6월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전면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계림 (趙桂林)
조계림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의 딸로서, 아버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의 대원으로 활동하였고, 1943년에는 임시정부 외무부원으로서 안두생, 두군혜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43년 6월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의 전면에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용제는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여동생으로, 1929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한국독립당 재건 때 조소앙을 지원하였으며, 충칭 강북구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였고, 1943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위원으로 선임되어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용제 (趙鏞濟)
조용제는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여동생으로, 1929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한국독립당 재건 때 조소앙을 지원하였으며, 충칭 강북구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였고, 1943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위원으로 선임되어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형록 (崔亨祿)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강병학은 일제강점기 한국독립당 특무대 소속으로 상하이사변 일본군초혼제 투탄 의거를 실행한 독립운동가이다. 1933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국독립당 특무대에 가입하였다. 1934년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이 전몰 일본군 초혼제를 지내자, 식장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켰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등에서 활동한 후, 1945년 북한으로 입경하였다. 1950년대 후반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다.
강병학 (康秉學)
강병학은 일제강점기 한국독립당 특무대 소속으로 상하이사변 일본군초혼제 투탄 의거를 실행한 독립운동가이다. 1933년 상하이로 건너가 한국독립당 특무대에 가입하였다. 1934년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이 전몰 일본군 초혼제를 지내자, 식장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켰다. 이후 조선민족혁명당, 조선의용대 등에서 활동한 후, 1945년 북한으로 입경하였다. 1950년대 후반 숙청된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