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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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퇴변척은 1611년(광해군 3) 정인홍이 문묘종사에서 빠진 스승 조식을 변호하기 위해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의 행적을 거론하며 비판한 일이다. 이황과 조식은 교유하지는 않았으나 서로 비판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정인홍은 1610년 이황이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과 함께 문묘에 종사되었을 때 조식이 빠진 것이 이황 때문이라고 여겼다. 성균관 유생들은 이언적과 이황을 옹호하며 상소를 올리고 정인홍의 이름을 청금록에서 삭제하였다. 관료들과 지방 유생들까지 양측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는 등 한동안 혼돈에 빠졌고, 대북파에 큰 타격을 입혔다.
회퇴변척 (晦退辨斥)
회퇴변척은 1611년(광해군 3) 정인홍이 문묘종사에서 빠진 스승 조식을 변호하기 위해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의 행적을 거론하며 비판한 일이다. 이황과 조식은 교유하지는 않았으나 서로 비판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정인홍은 1610년 이황이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과 함께 문묘에 종사되었을 때 조식이 빠진 것이 이황 때문이라고 여겼다. 성균관 유생들은 이언적과 이황을 옹호하며 상소를 올리고 정인홍의 이름을 청금록에서 삭제하였다. 관료들과 지방 유생들까지 양측으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는 등 한동안 혼돈에 빠졌고, 대북파에 큰 타격을 입혔다.
김우옹은 조선 시대 병조참판,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숙부, 호는 동강, 직봉포의이다. 1540년(중종 35)에 출생하여 1603년(선조 36년)에 사망했다. 정치적으로 유성룡, 김성일 등과 가까워 동인에 속하였다. 김우옹은 학문적 문제와 정치에 시무책을 진언하여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573년 「성학육잠」, 1594년 6월 「시무칠조」, 7월에 「시무사조」, 9월에 「시무팔조」, 이듬해 「시무십육조」 등을 올렸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동강집(東岡集)』이 있다.
김우옹 (金宇顒)
김우옹은 조선 시대 병조참판,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숙부, 호는 동강, 직봉포의이다. 1540년(중종 35)에 출생하여 1603년(선조 36년)에 사망했다. 정치적으로 유성룡, 김성일 등과 가까워 동인에 속하였다. 김우옹은 학문적 문제와 정치에 시무책을 진언하여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573년 「성학육잠」, 1594년 6월 「시무칠조」, 7월에 「시무사조」, 9월에 「시무팔조」, 이듬해 「시무십육조」 등을 올렸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동강집(東岡集)』이 있다.
조선 중기에, 이조좌랑, 삼척부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원 (趙瑗)
조선 중기에, 이조좌랑, 삼척부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성균관전적, 형조정랑, 공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제신 (李濟臣)
조선 전기에, 성균관전적, 형조정랑, 공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1590년 기축옥사 때 정여립과 함께 역모를 꾸민 주동자로 무고되어 옥사한 학자.
최영경 (崔永慶)
1590년 기축옥사 때 정여립과 함께 역모를 꾸민 주동자로 무고되어 옥사한 학자.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공으로 합천군수, 첨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학자·의병장.
김면 (金沔)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공으로 합천군수, 첨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학자·의병장.
성여신은 조선 후기 16세기 중반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생애 대부분을 진주를 근거로 하여 활동한 문인이다. 남명 조식의 문인이면서 한강 정구는 물론 경상도 전역의 학자들로부터 다양하게 학문을 배웠다. 과거를 통해 중앙 조정에 관료로 진출하지 않은 채 일생을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성여신 (成汝信)
성여신은 조선 후기 16세기 중반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생애 대부분을 진주를 근거로 하여 활동한 문인이다. 남명 조식의 문인이면서 한강 정구는 물론 경상도 전역의 학자들로부터 다양하게 학문을 배웠다. 과거를 통해 중앙 조정에 관료로 진출하지 않은 채 일생을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학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조선 전기에, 집의, 종부시정,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조언형 (曺彦亨)
조선 전기에, 집의, 종부시정,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경기관찰사, 공조참판,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준민 (李俊民)
조선 전기에, 경기관찰사, 공조참판,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남계서원을 건립하여 정여창을 제향하였으며, 『개암집』을 저술한 학자.
강익 (姜翼)
조선 전기에, 남계서원을 건립하여 정여창을 제향하였으며, 『개암집』을 저술한 학자.
조선 중기에, 의령현감, 상주목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정 (李瀞)
조선 중기에, 의령현감, 상주목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조식(曺植)이 민심의 향배에 나라의 안위가 달려있다는 주제로 지은 부(賦).
민암부 (民巖賦)
조선 중기에 조식(曺植)이 민심의 향배에 나라의 안위가 달려있다는 주제로 지은 부(賦).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조선전기 성리학자 조식의 생가터.
남명 조식 선생 생가지 (南溟 曺植 先生 生家址)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조선전기 성리학자 조식의 생가터.
조선중기에 형조참의, 승문원제조,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이순인 (李純仁)
조선중기에 형조참의, 승문원제조,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조선 전기에, 조식, 이황 등과 교유하며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고, 『청향당실기』 등을 저술한 학자.
이원 (李源)
조선 전기에, 조식, 이황 등과 교유하며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고, 『청향당실기』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병조정랑,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강수남 (姜壽男)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병조정랑,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이조정랑, 홍문관부응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이장 (朴而章)
조선 중기에, 이조정랑, 홍문관부응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선공감주부, 사헌부감찰, 고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문위 (文緯)
조선 중기에, 선공감주부, 사헌부감찰, 고령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흘은 조선 후기, 조식 학문인 남명학의 중심지인 삼가(三嘉)〔지금의 경남 합천〕에서 활동하던 문인 학자이다. 죽정(竹亭)과 비암서당(鼻巖書堂) 등을 세워 제자 교육에 힘썼다. 조식의 위패를 봉안한 용암서원(龍巖書院) 원장을 지냈다. 정인홍과 입재(立齋) 노흠(盧欽, 1527~1601)의 다음 세대에서 남명학파를 이끌면서 임곡(林谷) 임진부(林眞怤, 1586-1657)와 창주(滄洲) 허돈(許燉, 1586-1632) 등 다음 세대로 남명학을 계승하게 하였다.
이흘 (李屹)
이흘은 조선 후기, 조식 학문인 남명학의 중심지인 삼가(三嘉)〔지금의 경남 합천〕에서 활동하던 문인 학자이다. 죽정(竹亭)과 비암서당(鼻巖書堂) 등을 세워 제자 교육에 힘썼다. 조식의 위패를 봉안한 용암서원(龍巖書院) 원장을 지냈다. 정인홍과 입재(立齋) 노흠(盧欽, 1527~1601)의 다음 세대에서 남명학파를 이끌면서 임곡(林谷) 임진부(林眞怤, 1586-1657)와 창주(滄洲) 허돈(許燉, 1586-1632) 등 다음 세대로 남명학을 계승하게 하였다.
조선 중기에, 예천군수, 예빈시부정, 초계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곽율 (郭𧺝)
조선 중기에, 예천군수, 예빈시부정, 초계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