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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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은 고려후기 정당문학, 판삼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문인이다.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1367년(공민왕 16)에 사망했다. 1314년(충숙왕 1) 상왕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연경의 만권당에 머물면서 원의 유명한 학자·문인들과 교유하고 중국 내륙 여행을 하며 학문과 식견을 넓혔다. 관료로서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모순의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 성리학 도입에 공이 컸고, 『익재집』을 남겼으며 시·사에 뛰어나 고려 한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현 (李齊賢)
이제현은 고려후기 정당문학, 판삼사사, 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문인이다. 1287년(충렬왕 13)에 태어나 1367년(공민왕 16)에 사망했다. 1314년(충숙왕 1) 상왕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연경의 만권당에 머물면서 원의 유명한 학자·문인들과 교유하고 중국 내륙 여행을 하며 학문과 식견을 넓혔다. 관료로서 고려가 원의 부마국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국가의 존립과 사회모순의 시정을 위해 노력했다. 성리학 도입에 공이 컸고, 『익재집』을 남겼으며 시·사에 뛰어나 고려 한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탑은 점토를 장방형으로 빚어 말린 뒤 가마에서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탑이다. 전탑(磚塔), 전탑(甎塔), 벽탑(甓塔) 등으로도 표기한다. 전탑 건립 시점은 분황사 모전석탑을 근거로 선덕여왕 때로 추정하고 있다. 모전석탑(模塼石塔)과 전탑은 축조 방식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으나 돌과 벽돌이라는 재료 차이가 분명하다. 전탑은 경주 석장사지 전탑 유적을 시작으로 울산 농소읍 중산리 사지 전탑, 청도 불영사 전탑, 대구 송림사 전탑, 청도 운문사 작압전, 창녕 전탑, 여주 신륵사 전탑 등을 제외하면 안동 지역에 밀집해 있다.
전탑 (塼塔)
전탑은 점토를 장방형으로 빚어 말린 뒤 가마에서 구워 만든 벽돌로 쌓은 탑이다. 전탑(磚塔), 전탑(甎塔), 벽탑(甓塔) 등으로도 표기한다. 전탑 건립 시점은 분황사 모전석탑을 근거로 선덕여왕 때로 추정하고 있다. 모전석탑(模塼石塔)과 전탑은 축조 방식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으나 돌과 벽돌이라는 재료 차이가 분명하다. 전탑은 경주 석장사지 전탑 유적을 시작으로 울산 농소읍 중산리 사지 전탑, 청도 불영사 전탑, 대구 송림사 전탑, 청도 운문사 작압전, 창녕 전탑, 여주 신륵사 전탑 등을 제외하면 안동 지역에 밀집해 있다.
고려의 제25대 충렬왕의 손자로, 연안군에 봉해졌으며, 충선왕에게 심왕위를 이어받아 고려왕위를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한 종실.
왕고 (王暠)
고려의 제25대 충렬왕의 손자로, 연안군에 봉해졌으며, 충선왕에게 심왕위를 이어받아 고려왕위를 빼앗으려 했지만 실패한 종실.
고려 후기에, 찬성사, 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황석기 (黃石奇)
고려 후기에, 찬성사, 문하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적의 난은 고려 후기 충혜왕 때 조적 등이 심왕 왕고를 옹립하고자 일으킨 반란이다. 1339년(충숙왕 복위 8) 충숙왕 사후 고려 왕위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심왕 왕고를 지지하던 조적 등의 세력과 전왕인 충혜왕 측의 세력이 대립하였다. 그러던 중 충혜왕이 충숙왕의 계비(繼妃)인 경화공주(慶華公主)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조적은 군사를 규합하여 충혜왕을 공격하였다. 충혜왕이 직접 나서 반란을 진압하였으나, 반란 세력은 물론 충혜왕 역시 원 조정에 압송되어 투옥되었다.
조적의 난 (曹頔의 亂)
조적의 난은 고려 후기 충혜왕 때 조적 등이 심왕 왕고를 옹립하고자 일으킨 반란이다. 1339년(충숙왕 복위 8) 충숙왕 사후 고려 왕위가 비어있는 상황에서, 심왕 왕고를 지지하던 조적 등의 세력과 전왕인 충혜왕 측의 세력이 대립하였다. 그러던 중 충혜왕이 충숙왕의 계비(繼妃)인 경화공주(慶華公主)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조적은 군사를 규합하여 충혜왕을 공격하였다. 충혜왕이 직접 나서 반란을 진압하였으나, 반란 세력은 물론 충혜왕 역시 원 조정에 압송되어 투옥되었다.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권준 (權準)
고려 후기에,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첨의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삼사사, 중찬, 우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한악 (韓渥)
고려 후기에, 삼사사, 중찬, 우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강윤충 (康允忠)
고려 후기에, 찬성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고려 후기에, 강릉부녹사, 지공거, 정치도감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돈 (金永旽)
고려 후기에, 강릉부녹사, 지공거, 정치도감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사관수찬, 찬성사, 좌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한종유 (韓宗愈)
고려 후기에, 사관수찬, 찬성사, 좌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동지밀직사사, 첨의평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임자송 (任子松)
고려 후기에, 동지밀직사사, 첨의평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호군, 군부판서, 행성이문 등을 역임한 문신.
배전 (裵佺)
고려 후기에, 호군, 군부판서, 행성이문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좌정승, 우정승, 상락후 등을 역임한 문신.
김영후 (金永煦)
고려 후기에, 좌정승, 우정승, 상락후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서연관, 찬성사, 중서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승택 (金承澤)
고려 후기에, 서연관, 찬성사, 중서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후기 조적의 난과 관련된 관리.
채하중 (蔡河中)
고려후기 조적의 난과 관련된 관리.
고려 후기에, 대호군, 첨의평리, 제조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자 (金資)
고려 후기에, 대호군, 첨의평리, 제조도첨의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지밀직사사, 첨의평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련 (趙璉)
고려 후기에, 지밀직사사, 첨의평리, 찬성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봉천우 (奉天祐)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밀직부사, 지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승문원저작, 평양서윤,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문익성 (文益成)
조선 전기에, 승문원저작, 평양서윤,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행성낭중, 우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
홍빈 (洪彬)
고려 후기에, 행성낭중, 우정승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