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학생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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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혁명행동 부주필, 북경시위원회 조직부장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김산 (金山)
일제강점기 혁명행동 부주필, 북경시위원회 조직부장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무림사건은 1980년 서울대학교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구속하거나 강제 입대시킨 시국 사건이다. 1980년 12월 11일 서울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으로 몰아 고문 조사를 진행하여 9명을 구속하고 90여 명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이다. 신군부 출범 이후 침체된 학생운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사건이며, 이후 학림사건, 부림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무림사건 (霧林事件)
무림사건은 1980년 서울대학교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 구속하거나 강제 입대시킨 시국 사건이다. 1980년 12월 11일 서울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반파쇼 학우투쟁 선언문」을 발표한 학생들을 북한의 사주를 받은 간첩으로 몰아 고문 조사를 진행하여 9명을 구속하고 90여 명을 강제 입대시킨 사건이다. 신군부 출범 이후 침체된 학생운동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사건이며, 이후 학림사건, 부림사건 등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학림사건은 1981년, 신군부가 반독재 민주화를 주장하던 학생운동, 사회운동 관련자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처벌한 사건이다. 1981년 전국민주화학생연맹, 전국민주노동자연맹 등 학생운동, 사회운동 단체가 반독재 민주화를 주장하며 신군부에 저항하자 관련자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처벌한 사건이다. 신군부 정권의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학원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학림사건 (學林事件)
학림사건은 1981년, 신군부가 반독재 민주화를 주장하던 학생운동, 사회운동 관련자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처벌한 사건이다. 1981년 전국민주화학생연맹, 전국민주노동자연맹 등 학생운동, 사회운동 단체가 반독재 민주화를 주장하며 신군부에 저항하자 관련자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처벌한 사건이다. 신군부 정권의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학원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가 본격화되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1993년 결성된 각 대학 총학생 회장뿐만 아니라 단대 학생 회장까지 포괄하는 연합 조직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학생 운동 단체이다. 초기 한총련은 대학 내 문제와 더불어 민중 운동과 연대해 가면서 대중의 호응을 얻었으나, 1995년을 기점으로 강경 민족 해방(NL)파가 한총련의 중앙 조직을 장악하면서 통일 운동 중심으로 편재되었고 이후 1996년 ‘연세대 사건’, 1997년 ‘이석 치사 사건’ 등을 계기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조직적 탈퇴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韓國大學總學生會聯合)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은 1993년 결성된 각 대학 총학생 회장뿐만 아니라 단대 학생 회장까지 포괄하는 연합 조직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학생 운동 단체이다. 초기 한총련은 대학 내 문제와 더불어 민중 운동과 연대해 가면서 대중의 호응을 얻었으나, 1995년을 기점으로 강경 민족 해방(NL)파가 한총련의 중앙 조직을 장악하면서 통일 운동 중심으로 편재되었고 이후 1996년 ‘연세대 사건’, 1997년 ‘이석 치사 사건’ 등을 계기로 세력이 약화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조직적 탈퇴가 이어지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었다.
4·19 직후 전개된 학생운동의 흐름.
학원민주화운동 (學園民主化運動)
4·19 직후 전개된 학생운동의 흐름.
대학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문화예술의 거리이다.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건립되면서 조성되었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중심 캠퍼스이자 대학생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에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 및 공연장이 밀집해 있다. 실내외 공연시설에서 연극·영화·음악·뮤지컬 등의 다양한 공연 활동이 이루어지는 종합적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1995년 이후 ‘리틀 마닐라’라고 불리는 필리핀인들의 시장이 열리는 등 초국가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대학로 (大學路)
대학로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문화예술의 거리이다.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의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건립되면서 조성되었다.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로 개편되면서 중심 캠퍼스이자 대학생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이후에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단체 및 공연장이 밀집해 있다. 실내외 공연시설에서 연극·영화·음악·뮤지컬 등의 다양한 공연 활동이 이루어지는 종합적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었다. 1995년 이후 ‘리틀 마닐라’라고 불리는 필리핀인들의 시장이 열리는 등 초국가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강제징집은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 가운데 특수 학적 변동자를 대상으로 「병역법」이 정한 소정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제로 입대시킨 행위이다. 1980년 9월 4일부터 시작된 강제징집의 대상자는 1984년 11월 강제징집 폐지 때까지 총 1,152명이었다. 강제징집 관련 의문사 사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으며, 학생운동 및 재야 민주단체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1984년 11월 강제징집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강제징집 (强制徵集)
강제징집은 학생운동에 참여한 대학생 가운데 특수 학적 변동자를 대상으로 「병역법」이 정한 소정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강제로 입대시킨 행위이다. 1980년 9월 4일부터 시작된 강제징집의 대상자는 1984년 11월 강제징집 폐지 때까지 총 1,152명이었다. 강제징집 관련 의문사 사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였으며, 학생운동 및 재야 민주단체의 항의가 이어지면서 1984년 11월 강제징집 제도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녹화사업은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학생운동 전력자 등을 대상으로 ‘순화(純化)’ 업무를 강압적으로 실시하고 학원 동향 파악을 목적으로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행위이다. 녹화사업은 강제징집된 학생운동 관련자뿐만 아니라 정상 입대자나 관련 민간인들까지도 조사 대상이 되었으며, 강제징집자 921명을 포함하여 총 1,192명에 대해 녹화사업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녹화사업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하였다.
녹화사업 (綠化事業)
녹화사업은 1982년 9월부터 1984년 12월까지 학생운동 전력자 등을 대상으로 ‘순화(純化)’ 업무를 강압적으로 실시하고 학원 동향 파악을 목적으로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 행위이다. 녹화사업은 강제징집된 학생운동 관련자뿐만 아니라 정상 입대자나 관련 민간인들까지도 조사 대상이 되었으며, 강제징집자 921명을 포함하여 총 1,192명에 대해 녹화사업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녹화사업 과정에서 6명이 사망하였다.
김상진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로, 1975년 4월 11일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할복 자살하였다. 1968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한 후 ‘한얼'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후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인정되었다.
김상진 (金相眞)
김상진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로, 1975년 4월 11일 유신체제에 항거하여 할복 자살하였다. 1968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한 후 ‘한얼'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후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운동이 인정되었다.
김세진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반미운동가·반전운동가로, 1980년대 반미자주화운동을 선도한 학생운동가이다. 1986년 4월 28일 이재호와 함께 대학생들의 전방 입소 훈련에 반대하고, 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시위를 주도하던 중 경찰의 폭력 진압에 저항하며 분신하였다.
김세진 (金世鎭)
김세진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반미운동가·반전운동가로, 1980년대 반미자주화운동을 선도한 학생운동가이다. 1986년 4월 28일 이재호와 함께 대학생들의 전방 입소 훈련에 반대하고, 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시위를 주도하던 중 경찰의 폭력 진압에 저항하며 분신하였다.
박종철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로서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인물이다. 대학 생활 동안 동아리 활동과 농촌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박종철 (朴鍾哲)
박종철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로서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인물이다. 대학 생활 동안 동아리 활동과 농촌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학생운동에 투신하였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하였다.
이재호는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로, 1980년대 반미자주화운동을 선도한 인물이다. 1986년 4월 28일 김세진과 함께 대학생들의 전방 입소 훈련에 반대하고 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시위를 주도하던 중 경찰의 폭력 진압에 저항하며 분신하였다.
이재호 (李載虎)
이재호는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로, 1980년대 반미자주화운동을 선도한 인물이다. 1986년 4월 28일 김세진과 함께 대학생들의 전방 입소 훈련에 반대하고 미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시위를 주도하던 중 경찰의 폭력 진압에 저항하며 분신하였다.
이한열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로, 1987년 경찰의 최루탄에 피격되어 사망한 인물이다. 1966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출생하여 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동아리 '만화사랑'을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집회에 참가해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아 7월 5일 사망하였다.
이한열 (李韓烈)
이한열은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로, 1987년 경찰의 최루탄에 피격되어 사망한 인물이다. 1966년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출생하여 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 후 동아리 '만화사랑'을 만들어 활동하였으며, 1987년 6월 9일 '6·10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집회에 참가해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아 7월 5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