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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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영국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승려 원각국사의 탑비.
영동 영국사 원각국사비 (永同 寧國寺 圓覺國師)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영국사에 있는 고려후기 에 건립된 승려 원각국사의 탑비.
고구려시대 평양 일원에 성벽을 쌓을 때 각자(刻字)한 성석의 파편.
고구려 평양성 석편 (高句麗 平壤城 石片)
고구려시대 평양 일원에 성벽을 쌓을 때 각자(刻字)한 성석의 파편.
박만정은 조선 후기 삼사(三司)의 주요 직책과 회양부사, 황해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윤휴의 문인이며, 생원시와 문과에 입격하였다. 관직으로는 성균관 및 삼사인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요직을 거쳐 시강원보덕, 회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세자 보호 차원에서 장희빈에게 궁호를 별도로 세우자고 주장하였고, 황해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해서암행일기』를 저술하였다.
박만정 (朴萬鼎)
박만정은 조선 후기 삼사(三司)의 주요 직책과 회양부사, 황해도암행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윤휴의 문인이며, 생원시와 문과에 입격하였다. 관직으로는 성균관 및 삼사인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의 요직을 거쳐 시강원보덕, 회양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왕세자 보호 차원에서 장희빈에게 궁호를 별도로 세우자고 주장하였고, 황해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해서암행일기』를 저술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항아리.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 (傳 山淸 石南巖寺址 蠟石舍利壺)
통일신라시대의 항아리.
조선후기 문신이자 서화가인 윤순(尹淳)이 비단 바탕에 고시(古詩) 여러 수를 다양한 크기의 해서·행서·초서로 쓴 서축(書軸).
윤순 필적 고시서축 (尹淳 筆蹟 古詩書軸)
조선후기 문신이자 서화가인 윤순(尹淳)이 비단 바탕에 고시(古詩) 여러 수를 다양한 크기의 해서·행서·초서로 쓴 서축(書軸).
1903년 사핵사(查覈使) 이응익이 천주교인과 주민, 교회와 관청 사이에 일어난 충돌사건의 진상 조사 후 작성한 보고서. 천주교보고서.
해서사핵사보 (海西査覈使報)
1903년 사핵사(查覈使) 이응익이 천주교인과 주민, 교회와 관청 사이에 일어난 충돌사건의 진상 조사 후 작성한 보고서. 천주교보고서.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민족교육 진흥에 힘썼고, 임시정부 연통제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김용제 (金庸濟)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민족교육 진흥에 힘썼고, 임시정부 연통제에 가담한 독립운동가.
봉산탈춤은 1915년경부터 황해도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전승되던 것이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된 대표적인 해서탈춤이다. 1915년 무렵 군청 등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이전하자, 가면극도 함께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되었다. 6·25 때 월남해 온 김진옥, 민천식 등의 고증에 의해 봉산탈춤이 복원되어 전승되다가,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봉산탈춤 (鳳山탈춤)
봉산탈춤은 1915년경부터 황해도 봉산군 동선면 길양리에서 전승되던 것이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된 대표적인 해서탈춤이다. 1915년 무렵 군청 등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이전하자, 가면극도 함께 사리원으로 옮겨가 전승되었다. 6·25 때 월남해 온 김진옥, 민천식 등의 고증에 의해 봉산탈춤이 복원되어 전승되다가, 1967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은율군지』는 1899년 은율군수 민재덕의 주관하에 황해도 은율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실었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산천 항목에서 구월산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고, 조적과 전세, 균세 항목에서는 재정 상태를 상세히 기재하였다. 특기할 사항은 은율군 및 은율군수 민재덕의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의 제도 변화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읍지이다.
은율군지 (殷栗郡誌)
『은율군지』는 1899년 은율군수 민재덕의 주관하에 황해도 은율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읍지상송령에 따라 편찬하였다. 책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실었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산천 항목에서 구월산에 대한 기록이 자세하고, 조적과 전세, 균세 항목에서는 재정 상태를 상세히 기재하였다. 특기할 사항은 은율군 및 은율군수 민재덕의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의 제도 변화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읍지이다.
『재령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재령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강계 내용을 건치연혁 항목에 포함하고 있는 점이나, 기우제소와 서원 관련 항목을 별도로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19세기 말 재령군의 행정·경제·군사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재령군읍지 (載寧郡邑誌)
『재령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재령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강계 내용을 건치연혁 항목에 포함하고 있는 점이나, 기우제소와 서원 관련 항목을 별도로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19세기 말 재령군의 행정·경제·군사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장규섭은 일제강점기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였으며, 의병 활동과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대한적십자사 장연지회, 해서국민회, 의용단 등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장규섭 (張奎燮)
장규섭은 일제강점기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등에 참여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였으며, 의병 활동과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대한적십자사 장연지회, 해서국민회, 의용단 등을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해서지방은 황해도 일대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 지역을 가리키는 전통적 명칭으로, 인천과 강화도 앞 경기해 서쪽에 있어 해서라고 불렀다. 북쪽은 대동강과 언진산맥이 평안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동남쪽은 예성강과 마식령산맥이 경기도·강원특별자치도와 경계를 이룬다. 서쪽은 장산곶을 정점으로 황해와 접하며, 옹진반도를 비롯한 남쪽 또한 황해와 접한다, 해안선이 매우 복잡해 리아스식해안의 특징이 나타나며 130여 개 섬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풍해도로 불렸고, 조선시대에 황해도로 개칭되었다. 광량만 일대는 일조량이 많아 천일 제염업이 발달하였다.
해서지방 (海西地方)
해서지방은 황해도 일대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 지역을 가리키는 전통적 명칭으로, 인천과 강화도 앞 경기해 서쪽에 있어 해서라고 불렀다. 북쪽은 대동강과 언진산맥이 평안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동남쪽은 예성강과 마식령산맥이 경기도·강원특별자치도와 경계를 이룬다. 서쪽은 장산곶을 정점으로 황해와 접하며, 옹진반도를 비롯한 남쪽 또한 황해와 접한다, 해안선이 매우 복잡해 리아스식해안의 특징이 나타나며 130여 개 섬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풍해도로 불렸고, 조선시대에 황해도로 개칭되었다. 광량만 일대는 일조량이 많아 천일 제염업이 발달하였다.
『해주지』는 1899년 황해도 해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2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2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실었다. 읍치와 판적, 전결, 공부, 토산 항목을 통해 당시 해주가 행정 중심지로서 물자가 풍부하고 사람이 많은 곳임을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의 제도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어, 당시 해주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해주지 (海州志)
『해주지』는 1899년 황해도 해주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2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2책의 첫머리에 채색 지도를 실었다. 읍치와 판적, 전결, 공부, 토산 항목을 통해 당시 해주가 행정 중심지로서 물자가 풍부하고 사람이 많은 곳임을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의 제도 변화를 잘 반영하고 있어, 당시 해주군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기초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