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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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은 고려전기 직한림,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075년(문종 29)에 태어나 1151년(의종 5)에 사망했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송의 서긍조차도 박학다식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평할 정도였다. 묘청의 난 때 원수로 임명되어 직접 중군을 거느리고 삼군을 지휘 통솔하여 난을 진압했다. 본인이 주도한 윤언이·한유충 등의 지방좌천 인사가 번복되자 정치보복을 염려하여 세 번 사직상소를 올리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인종의 명에 따라 50권의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바쳤다.
김부식 (金富軾)
김부식은 고려전기 직한림, 추밀원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075년(문종 29)에 태어나 1151년(의종 5)에 사망했다. 신라 무열왕의 후손으로, 송의 서긍조차도 박학다식하여 글을 잘 짓고 고금을 잘 알아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고 평할 정도였다. 묘청의 난 때 원수로 임명되어 직접 중군을 거느리고 삼군을 지휘 통솔하여 난을 진압했다. 본인이 주도한 윤언이·한유충 등의 지방좌천 인사가 번복되자 정치보복을 염려하여 세 번 사직상소를 올리고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인종의 명에 따라 50권의 『삼국사기』를 편찬하여 바쳤다.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유리왕 (琉璃王)
유리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19~기원후18년이다. 아버지 고주몽을 찾아 기원전 19년(동명왕 19) 4월에 동부여에서 고구려로 와서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그 해 9월 동명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9년 선비를 쳐서 항복을 받았고 13년 부여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14년에는 양맥을 쳐서 멸망시키고 한나라의 고구려현을 빼앗는 등 재위 기간에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혔다. 3년에는 도읍을 홀본에서 국내 지역으로 옮기고 위나암성을 쌓았다. 계비인 치희를 그리는 「황조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단군조선에 이어 서기전 1100년경에 건국한 초기국가.
기자조선 (箕子朝鮮)
단군조선에 이어 서기전 1100년경에 건국한 초기국가.
경순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27년~935년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궁예와 견훤이 세력을 다투던 경명왕 때부터 경애왕 대에 이르러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강화하자 견훤이 이를 견제하고자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경순왕은 난폭한 견훤의 보호국보다는 왕건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978년에 승하했다.
경순왕 (敬順王)
경순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5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927년~935년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나라를 고려 태조에게 바쳤다. 궁예와 견훤이 세력을 다투던 경명왕 때부터 경애왕 대에 이르러 고려와의 우호관계를 강화하자 견훤이 이를 견제하고자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살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했다. 경순왕은 난폭한 견훤의 보호국보다는 왕건에게 투항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935년 국가를 고려에 넘길 것을 결의하고 국서를 보냈다. 왕건은 신라를 경주로 고쳐 그의 식읍으로 주고 경주의 사심관으로 삼았다. 978년에 승하했다.
최충헌은 고려 후기 무신 집정 이의민을 제거하고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교정별감(敎定別監)을 역임한 무신이다. 1149년(의종 3)에 태어나 1219년(고종 6)에 사망했다. 그는 피의 숙청을 통해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는 한편, ‘봉사십조(封事十條)’의 개혁책을 올리기도 하였다. 반대 세력의 저항을 평정하기 위해 도방(都房)·교정도감(敎定都監) 등 사적 권력 기구를 강화하였다. 이후 그의 권력은 4명의 국왕을 교체할 정도로 막강하였고, 4대 60여 년간 최 씨 무신 정권을 유지할 권력 기반을 닦았다.
최충헌 (崔忠獻)
최충헌은 고려 후기 무신 집정 이의민을 제거하고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되어 교정별감(敎定別監)을 역임한 무신이다. 1149년(의종 3)에 태어나 1219년(고종 6)에 사망했다. 그는 피의 숙청을 통해 자신의 정권을 안정시키는 한편, ‘봉사십조(封事十條)’의 개혁책을 올리기도 하였다. 반대 세력의 저항을 평정하기 위해 도방(都房)·교정도감(敎定都監) 등 사적 권력 기구를 강화하였다. 이후 그의 권력은 4명의 국왕을 교체할 정도로 막강하였고, 4대 60여 년간 최 씨 무신 정권을 유지할 권력 기반을 닦았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내린 공신호.
삼한공신 (三韓功臣)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 내린 공신호.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경덕왕 (景德王)
경덕왕은 742~765년에 재위한 신라의 제35대 왕으로서, 이름은 김헌영이다. 재위 기간에 여러 관부와 관직을 신설했고, 패강(浿江)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다스렸다. 관료 급여제도로서 월봉을 폐지하고 녹읍을 부활했고, 관호와 지명을 중국식으로 바꾸는 개혁을 실시했다.
성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02~737년이며,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형 효소왕이 후사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즉위 후 축성과 민생안정 사업에 주력했다. 잦은 수해와 전염병 만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정전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꾀했다. 발해와 당의 대립을 기회로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패강 이남 지역에 대한 영유권도 인정받았다. 유교적 예제를 정비하고 국가불교도 고취하여 신라 천년의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덕왕 (聖德王)
성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02~737년이며,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형 효소왕이 후사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즉위 후 축성과 민생안정 사업에 주력했다. 잦은 수해와 전염병 만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정전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꾀했다. 발해와 당의 대립을 기회로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패강 이남 지역에 대한 영유권도 인정받았다. 유교적 예제를 정비하고 국가불교도 고취하여 신라 천년의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군이 개국한 우리 나라 최초의 국가.
단군조선 (檀君朝鮮)
단군이 개국한 우리 나라 최초의 국가.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최승로 (崔承老)
최승로는 고려전기 문하시랑평장사, 문하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927년(태조 10)에 태어나 989년(성종 8)에 사망했다.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할 때 아버지와 함께 송도로 왔다. 유학파는 아니지만 유학에 뛰어나 문장과 학문 관련 관직생활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광종·경종 재위기에는 큰 활약상이 보이지 않으나 성종 때 중요 관직을 맡았다. 성종이 경관 5품 이상에게 봉사를 올리게 하자 28조의 시무책을 올려 성종의 공감을 샀다. 유교적 정치이념에 입각한 치세 방향을 제시하여 새로운 국가체제 정비에 기여한 인물이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1938년 6월에 총독부가 종용하여 민간 사회교화단체 대표자들이 자발적인 총후봉사활동을 내세우며 조직한 친일단체이다. 중일전쟁 이후 애국운동으로 인한 무질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59개 단체 및 개인 56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발회식에는 조선총독과 군사령관 등 유력자들과 700여 단체가 참여하였고 3만여 명이 동원되었다. 실천강령으로 황국정신 현양, 내선일체 완성 등을 제시하였다. 지역에 도(道), 부, 군, 도(島)연맹을 결성하여 총독부의 정책에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은 1938년 6월에 총독부가 종용하여 민간 사회교화단체 대표자들이 자발적인 총후봉사활동을 내세우며 조직한 친일단체이다. 중일전쟁 이후 애국운동으로 인한 무질서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하였다. 59개 단체 및 개인 56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하였다. 발회식에는 조선총독과 군사령관 등 유력자들과 700여 단체가 참여하였고 3만여 명이 동원되었다. 실천강령으로 황국정신 현양, 내선일체 완성 등을 제시하였다. 지역에 도(道), 부, 군, 도(島)연맹을 결성하여 총독부의 정책에 주동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선군정치는 북한에서 군을 우선하는 통치방식이다. 1995년 처음 논의되어 1998년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함께 북한의 핵심적 통치방식으로 정착하였다. 선군정치는 군사 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2004년 1월부터 선군정치를 김정일 사상의 핵심 사상으로 키우기 위해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했다. 선군사상 일색화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 회생의 추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선군정치 (先軍政治)
선군정치는 북한에서 군을 우선하는 통치방식이다. 1995년 처음 논의되어 1998년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함께 북한의 핵심적 통치방식으로 정착하였다. 선군정치는 군사 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며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2004년 1월부터 선군정치를 김정일 사상의 핵심 사상으로 키우기 위해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했다. 선군사상 일색화는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 회생의 추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1664년(현종 5)이휘일(李徽逸)이 지은 시조.
전가팔곡 (田家八曲)
1664년(현종 5)이휘일(李徽逸)이 지은 시조.
1919년과 1942년 미국에서 개최되었던 독립운동후원대회.
대한인자유대회 (大韓人自由大會)
1919년과 1942년 미국에서 개최되었던 독립운동후원대회.
주빙하기후 지역에서 주빙하작용에 의해 발달하는 지형.
주빙하 지형 (周氷河 地形)
주빙하기후 지역에서 주빙하작용에 의해 발달하는 지형.
조선 초기 작자미상의 산수화.
적벽도 (赤壁圖)
조선 초기 작자미상의 산수화.
조선 전기에, 안처겸 등이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조작하여 신사무옥을 일으키고 30년간 권세를 누린 문신.
송사련 (宋祀連)
조선 전기에, 안처겸 등이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조작하여 신사무옥을 일으키고 30년간 권세를 누린 문신.
성주이씨 영정은 나라에 공을 세운 성주 이씨 집안의 인물 10명을 그린 영정이다. 198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이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려부터 조선 초기까지 나라에 공이 있는 10명의 초상화 13점이다. 원래 22점이 있었는데 일부를 임진왜란 때 도난당하여 13점이 남게 되었다. 이 영정들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중모·개모를 거친 것이다. 영정들은 대부분 공신도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장경, 이조년, 이숭인 등의 영정은 고흥 성산사의 것과 같은 상용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성주이씨 영정 (星州李氏 影幀)
성주이씨 영정은 나라에 공을 세운 성주 이씨 집안의 인물 10명을 그린 영정이다. 1989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이씨 대종회에서 소장하고 있다. 고려부터 조선 초기까지 나라에 공이 있는 10명의 초상화 13점이다. 원래 22점이 있었는데 일부를 임진왜란 때 도난당하여 13점이 남게 되었다. 이 영정들은 조선 후기에 여러 차례 중모·개모를 거친 것이다. 영정들은 대부분 공신도상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장경, 이조년, 이숭인 등의 영정은 고흥 성산사의 것과 같은 상용 형식을 취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 동지중추부사, 형조참판,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우 (李堣)
조선 전기에, 동지중추부사, 형조참판,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상남도 김해시 불모산(佛母山)에 있는 삼국시대 승려 장유가 창건한 사찰.
불모산 장유사 (佛母山 長遊寺)
경상남도 김해시 불모산(佛母山)에 있는 삼국시대 승려 장유가 창건한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