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훈련도감"
검색결과 총 22건
조선 후기 훈련도감의 하급장교.
국출신 (局出身)
조선 후기 훈련도감의 하급장교.
조선 후기 훈련도감에 설치되었던 특수기병부대.
난후별대 (欄後別隊)
조선 후기 훈련도감에 설치되었던 특수기병부대.
조선 말기 훈련도감의 본영(本營).
동별영 (東別營)
조선 말기 훈련도감의 본영(本營).
조선 후기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3군영에 두었던 관직.
권무군관 (勸武軍官)
조선 후기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3군영에 두었던 관직.
무반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계층인 양반 가운데 무관 반열이다. 전문 군사직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지만, 관직제도상 문무반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 무반제도는 관료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초에 도입돼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조선의 관료체계는 문반 중심으로 운영되어 무반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고려 때는 노골적인 천대가 무신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려 때는 무예가 출중하거나 공로를 세운 군인·향리·일품군의 장교 등에서 선발하거나 문·무 양반의 자제가 문음으로 출사했고, 조선 때는 무과를 설치해 무과급제자로 충당했다.
무반 (武班)
무반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지배계층인 양반 가운데 무관 반열이다. 전문 군사직은 삼국시대에도 있었지만, 관직제도상 문무반 중 하나라는 의미를 갖는 무반제도는 관료제가 정착되기 시작한 고려초에 도입돼 조선말까지 이어졌다. 고려와 조선의 관료체계는 문반 중심으로 운영되어 무반은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았다. 고려 때는 노골적인 천대가 무신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고려 때는 무예가 출중하거나 공로를 세운 군인·향리·일품군의 장교 등에서 선발하거나 문·무 양반의 자제가 문음으로 출사했고, 조선 때는 무과를 설치해 무과급제자로 충당했다.
조선 말기의 군영(軍營).
무위영 (武衛營)
조선 말기의 군영(軍營).
조선 후기 훈련도감에 소속된 마병(馬兵).
별기대 (別騎隊)
조선 후기 훈련도감에 소속된 마병(馬兵).
조선 후기의 병종인 삼수군(三手軍) 가운데 칼·창 등 단병기(短兵器)를 들고 싸우는 군대조직.
살수 (殺手)
조선 후기의 병종인 삼수군(三手軍) 가운데 칼·창 등 단병기(短兵器)를 들고 싸우는 군대조직.
조선시대 서울 북부 광화방에 있던 훈련도감의 본영.
북영 (北營)
조선시대 서울 북부 광화방에 있던 훈련도감의 본영.
조선시대 훈련도감 소속 궁궐의 호위부대.
북일영 (北一營)
조선시대 훈련도감 소속 궁궐의 호위부대.
조선시대 훈련도감(訓鍊都監) 소속의 삼수병(三手兵)을 양성할 목적으로 징수하던 세미(稅米).
삼수미 (三手米)
조선시대 훈련도감(訓鍊都監) 소속의 삼수병(三手兵)을 양성할 목적으로 징수하던 세미(稅米).
조선후기 어영대장, 한성부윤, 독판내무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신정희 (申正熙)
조선후기 어영대장, 한성부윤, 독판내무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승호군은 조선 후기에 지역 할당 방식으로 충정된 훈련도감 등의 군사 및 그 선발 제도이다. 처음에는 군직과 녹봉을 지급하여 유능한 자들을 모집하려 하였다. 하지만 방침을 바꿔 각 도에 배정하여 지방관이 책임지고 능력있는 자들을 택하여 올려 보내 충정되도록 하였다.
승호군 (陞戶軍)
승호군은 조선 후기에 지역 할당 방식으로 충정된 훈련도감 등의 군사 및 그 선발 제도이다. 처음에는 군직과 녹봉을 지급하여 유능한 자들을 모집하려 하였다. 하지만 방침을 바꿔 각 도에 배정하여 지방관이 책임지고 능력있는 자들을 택하여 올려 보내 충정되도록 하였다.
양역은 조선시대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역역(力役) 및 재정 확보를 위해 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인(良人) 남자인 양정(良丁)에게 부과하던 각종 신역(身役)의 통칭으로, 조선 후기에는 주로 군역을 뜻했다. 15세기 조선은 양천제 사회였고 군역은 양인만 부담했다. 그래서 ‘양역’은 ‘군역’ 및 ‘국역’과 동일시되었다. 16세기에 양반의 군역 회피로 군역 부담자가 양민으로 좁혀졌고, 입역은 점차 물납(物納)으로 전환되었다. 임진왜란을 치르며 훈련도감과 속오군이 등장했고, 양역은 급속히 부세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양역 (良役)
양역은 조선시대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역역(力役) 및 재정 확보를 위해 16세부터 60세까지의 양인(良人) 남자인 양정(良丁)에게 부과하던 각종 신역(身役)의 통칭으로, 조선 후기에는 주로 군역을 뜻했다. 15세기 조선은 양천제 사회였고 군역은 양인만 부담했다. 그래서 ‘양역’은 ‘군역’ 및 ‘국역’과 동일시되었다. 16세기에 양반의 군역 회피로 군역 부담자가 양민으로 좁혀졌고, 입역은 점차 물납(物納)으로 전환되었다. 임진왜란을 치르며 훈련도감과 속오군이 등장했고, 양역은 급속히 부세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조선 후기 훈련도감 소속의 재정 관서.
양향청 (糧餉廳)
조선 후기 훈련도감 소속의 재정 관서.
조선시대 종2품 무관직으로 각 군영(軍營)의 대장 또는 사(使)에 버금가는 장관(將官).
중군 (中軍)
조선시대 종2품 무관직으로 각 군영(軍營)의 대장 또는 사(使)에 버금가는 장관(將官).
조선 후기의 훈련도감 등에 소속된 군관직.
지구관 (知彀官)
조선 후기의 훈련도감 등에 소속된 군관직.
조선 후기 훈련도감(訓鍊都監)의 운영을 위해 설정한 군보(軍保).
포보 (砲保)
조선 후기 훈련도감(訓鍊都監)의 운영을 위해 설정한 군보(軍保).
파총은 조선 후기, 대부분 군영에 있었던 중간 지휘관으로, 종4품 무관직이다. 편제된 사라는 단위부대의 지휘관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속오법에 의거하여 군사 조직을 개편하면서 설치되었다. 사는 최상인 영 바로 아래에 위치하였다. 실제로는 변용되기도 하면서 일부 군영에서는 소속 고을의 수령이 겸직하였다.
파총 (把摠)
파총은 조선 후기, 대부분 군영에 있었던 중간 지휘관으로, 종4품 무관직이다. 편제된 사라는 단위부대의 지휘관으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속오법에 의거하여 군사 조직을 개편하면서 설치되었다. 사는 최상인 영 바로 아래에 위치하였다. 실제로는 변용되기도 하면서 일부 군영에서는 소속 고을의 수령이 겸직하였다.
조선 후기 훈련도감에 소속된 군사.
협련군 (挾輦軍)
조선 후기 훈련도감에 소속된 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