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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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가리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개의 촌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은 경주 시가지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을 가리키는데, 이를 감안하면 가리촌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금산가리촌은 신라 초기에 경주 지역에 자리 잡았던 6개의 촌 가운데 하나이다. 금산은 경주 시가지 북쪽에 있는 소금강산을 가리키는데, 이를 감안하면 가리촌의 위치는 대체로 지금의 경주 북천 이북의 황성동, 용강동, 동천동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급량부는 신라시대에 6부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체이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문헌 사료 가운데 『삼국사기』에는 단지 두 글자로만 된 '양부(梁部)'로 나오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앞에 '급(及)' 자를 붙여 '급량부(及梁部)'라고 소개하였다. 신라 당대에 작성된 금석문 자료에서는 '喙部'라는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었으며, 그 발음을 둘러싸고 '탁부', '닭부', '훼부'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
급량부 (及梁部)
급량부는 신라시대에 6부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정치체이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문헌 사료 가운데 『삼국사기』에는 단지 두 글자로만 된 '양부(梁部)'로 나오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앞에 '급(及)' 자를 붙여 '급량부(及梁部)'라고 소개하였다. 신라 당대에 작성된 금석문 자료에서는 '喙部'라는 다른 이름으로 표기되었으며, 그 발음을 둘러싸고 '탁부', '닭부', '훼부'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있다.
발해시대의 관직.
경 (卿)
발해시대의 관직.
사로육촌은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6개의 촌락이다.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6개 촌이 있었다. 씨족적 취락으로서 6촌장이라는 족장 밑에 혈연과 지연으로 결합된 사회였다. 6촌이 변천하여 6부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촌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주와 경주평야 일대로 한정하는 견해와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으로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사로육촌 (斯盧六村)
사로육촌은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6개의 촌락이다.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6개 촌이 있었다. 씨족적 취락으로서 6촌장이라는 족장 밑에 혈연과 지연으로 결합된 사회였다. 6촌이 변천하여 6부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촌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주와 경주평야 일대로 한정하는 견해와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으로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낭중은 고려시대에 광평성 · 병부 · 서경 낭관(廊官) · 6부 · 고공사 등에 설치된 정5품 관직이다. 고려 초에 태봉을 계승한 관제로서 중앙과 서경의 여러 관서에 설치되었다. 성종 대 이후 당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관제를 운용하기 시작하였는데, 6부와 고공사 · 도관 등은 관서명뿐만 아니라 소속 관직명도 거의 그대로 사용하였다. 다만, 낭중이 문반 관인 음서의 최하 기준이 되었던 것은 고려의 독자적인 운영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낭중 (郎中)
낭중은 고려시대에 광평성 · 병부 · 서경 낭관(廊官) · 6부 · 고공사 등에 설치된 정5품 관직이다. 고려 초에 태봉을 계승한 관제로서 중앙과 서경의 여러 관서에 설치되었다. 성종 대 이후 당나라의 제도를 참고하여 관제를 운용하기 시작하였는데, 6부와 고공사 · 도관 등은 관서명뿐만 아니라 소속 관직명도 거의 그대로 사용하였다. 다만, 낭중이 문반 관인 음서의 최하 기준이 되었던 것은 고려의 독자적인 운영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교(受敎)는 조선시대, 국왕이 특정사안에 내린 법적인 성격을 지닌 명령이다. 곧 관리들과 백성이 시행하고 준수해야 하는 법적인 성격을 지닌 국왕의 명령이다. 수교는 중앙관서 및 감영에 반포되었으며, 각종 수교를 연대별로 종합적으로 수집 · 정리하여 책자 형태로 만든 것이 수교집이다.
수교 (受敎)
수교(受敎)는 조선시대, 국왕이 특정사안에 내린 법적인 성격을 지닌 명령이다. 곧 관리들과 백성이 시행하고 준수해야 하는 법적인 성격을 지닌 국왕의 명령이다. 수교는 중앙관서 및 감영에 반포되었으며, 각종 수교를 연대별로 종합적으로 수집 · 정리하여 책자 형태로 만든 것이 수교집이다.
발해시대의 관직.
원외랑 (員外郎)
발해시대의 관직.
고려시대 정6품 중앙 행정관직.
원외랑 (員外郎)
고려시대 정6품 중앙 행정관직.
발해시대의 관서.
우육사 (右六司)
발해시대의 관서.
고려시대 상서6부의 정4품 관직.
시랑 (侍郎)
고려시대 상서6부의 정4품 관직.
오소경은 신라시대에 지방에 설치한 작은 서울을 이르는 5개의 특수 행정 구역이다. 오소경은 국원소경 · 금관소경 · 서원소경 · 남원소경 · 북원소경을 말한다. 757년(경덕왕 16)에 중원경 · 김해경 · 서원경 · 남원경 · 북원경으로 고쳤다. 신라는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고,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지방과 수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소경을 설치하였다.
오소경 (五小京)
오소경은 신라시대에 지방에 설치한 작은 서울을 이르는 5개의 특수 행정 구역이다. 오소경은 국원소경 · 금관소경 · 서원소경 · 남원소경 · 북원소경을 말한다. 757년(경덕왕 16)에 중원경 · 김해경 · 서원경 · 남원경 · 북원경으로 고쳤다. 신라는 한반도 동남쪽에 위치한 수도의 편재성을 보완하고,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지방과 수도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소경을 설치하였다.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 (新羅)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삼국시대 신라 왕경(王京)의 행정구역.
탁평 (啄評)
삼국시대 신라 왕경(王京)의 행정구역.
고려 후기 문관의 선임(選任)·공훈(功勳)·예의(禮儀)·제향(祭享)·조회(朝會)·교빙(交聘)·학교(學校)·과거(科擧)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전리사 (典理司)
고려 후기 문관의 선임(選任)·공훈(功勳)·예의(禮儀)·제향(祭享)·조회(朝會)·교빙(交聘)·학교(學校)·과거(科擧)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자비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58~479년이며, 눌지마립간 재위시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했다. 왕경인 경주의 행정체계를 개편해 지배체제를 강화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백제와의 공수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474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자 원병을 파견했으나 군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의 한산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했다. 이후 고구려가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북변을 공략하자 서북변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여 대비했고, 수차례에 걸친 왜의 침략도 모두 격퇴했다.
자비마립간 (慈悲麻立干)
자비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58~479년이며, 눌지마립간 재위시 마련된 왕위의 부자상속제에 따라 즉위했다. 왕경인 경주의 행정체계를 개편해 지배체제를 강화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백제와의 공수동맹을 더욱 강화했다. 474년에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하자 원병을 파견했으나 군사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백제의 한산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했다. 이후 고구려가 말갈과 연합하여 신라의 북변을 공략하자 서북변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여 대비했고, 수차례에 걸친 왜의 침략도 모두 격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