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군(松禾郡)
1413년 규례에 따라 ‘주’자를 ‘천’자로 고쳐 풍천이 되었고, 1423년(세종 5) 병마도절제사가 첨절제사로 대체되었으며, 『경국대전』에도 항상 상비군이 배치되어 있는 요충지로 규정되어 있다. 풍천은 안순왕후(安順王后)의 외향인 연유로 1469년(예종 1) 도호부로 승격되어 계속 황해도 서북 지역의 정치적 중심지 기능을 하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15세기 중엽의 인구는 총 1,024호, 2,937명이었고 풍천보다 송화의 인구가 월등히 많았으나, 1759년(영조 35)에는 모두 16방 39리로 편성되어 6,910호, 3만 1644명으로 증가된 가운데 풍천의 인구가 약 56%를 차지하게 되었다. [근 대] 1895년송화군과 풍천군으로 개편된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풍천군이 송화군에 편입되는 한편, 동부 지역 일부가 장연군과 신천군에 이속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