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산군(楚山郡)
관원은 군수(종4품)·훈도(訓導, 종9품) 각 1원이 있었고, 이산진에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 종3품) 1원이 두어졌다. 1432년(세종 14) 호수는 577호, 인구는 1,686명이고, 군정(軍丁)은 익군(翼軍) 492명, 수성군 28명이었다. 야인방어의 최전선에 위치한 요지로, 1439년 7월 10일 수 미상의 야인이 산양회구자(山羊會口子)에 내습하여 군인 5명에게 화살 상처를 입히고 도망한 적이 있었는데, 이 같은 사건은 건주여진(建州女眞)에 의한 초산변경의 침범이 빈번하였음을 말해주는 하나의 사례가 된다. 임진왜란 때 초산 사람 김진(金珍)은 군관으로 출전하여 적의 부장을 사살하는 등 공을 세워 선천 선사포첨사(宣沙浦僉使)로 임명되었고, 그의 손자인 김국관(金國寬)은 1616년(광해군 8) 3월 조선과 명의 연합군이 심하(深河)에서 후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