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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 주요한이 안창호의 흥사단을 배경으로 창간한 잡지. # 개설 B5판. 편집 겸 발행인은 주요한(朱耀翰)이다.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하였던 잡지들에 맞서 안창호(安昌浩)의 흥사단(興士團)을 배경으로 창간되었고, 흥사단과 같은 계열의 단체로 1926년 1월에 조직된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의 기관지 성격을 띠고 발행되었다. # 발간 경위 및 변천 1926년 5월에 창간되어 1927년 8월 제16호를 내고 휴간하였다가, 이광수(李光洙)의 주선으로 1931년 1월 제17호를 속간하였다. 1933년 1월 통권 40호로 종간되었는데, 원고 압수로 제3호를 발행하지 못했기에 실제의 통권은 39호가 된다. 제16호까지는 안창호(필명 山翁)의 글이 빠지지 않았으며, 수양동우회 회원의 글이 많았다. 속간 이후로는 정치시사도 싣게 되었고 민족주의적...
동광 (東光)
1926년에, 주요한이 안창호의 흥사단을 배경으로 창간한 잡지. # 개설 B5판. 편집 겸 발행인은 주요한(朱耀翰)이다. 사회주의 운동을 표방하였던 잡지들에 맞서 안창호(安昌浩)의 흥사단(興士團)을 배경으로 창간되었고, 흥사단과 같은 계열의 단체로 1926년 1월에 조직된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의 기관지 성격을 띠고 발행되었다. # 발간 경위 및 변천 1926년 5월에 창간되어 1927년 8월 제16호를 내고 휴간하였다가, 이광수(李光洙)의 주선으로 1931년 1월 제17호를 속간하였다. 1933년 1월 통권 40호로 종간되었는데, 원고 압수로 제3호를 발행하지 못했기에 실제의 통권은 39호가 된다. 제16호까지는 안창호(필명 山翁)의 글이 빠지지 않았으며, 수양동우회 회원의 글이 많았다. 속간 이후로는 정치시사도 싣게 되었고 민족주의적...
1945년에, 광주에서 『광주민보』로 창간한 일간 신문. 풀려난 뒤 선미봉은 제호를 ‘동광신문’으로 바꾸고 속간하였으나, 같은해 8월 18일에 기관지화하려는 한민당의 작용에 의하여 좌익지라는 이유로 미군정에 의하여 정간당하였다. 그뒤 이 신문의 발행권은 22만원에 한민당으로 넘어가 기관지가 되었으며, 발행인 겸 편집인에 고광표(高光表)가 취임하였다. 이 신문은 당시 시설의 미비로 컷 없이 활자만으로 편집, 제작되었다. 한편, 테러단으로부터 습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반공 보수지로 일관한 이 신문은 1950년 6·25사변 때 광주에 진입한 공산군에 의하여 강제로 휴간된 채 소생하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0)
동광신문 (東光新聞)
1945년에, 광주에서 『광주민보』로 창간한 일간 신문. 풀려난 뒤 선미봉은 제호를 ‘동광신문’으로 바꾸고 속간하였으나, 같은해 8월 18일에 기관지화하려는 한민당의 작용에 의하여 좌익지라는 이유로 미군정에 의하여 정간당하였다. 그뒤 이 신문의 발행권은 22만원에 한민당으로 넘어가 기관지가 되었으며, 발행인 겸 편집인에 고광표(高光表)가 취임하였다. 이 신문은 당시 시설의 미비로 컷 없이 활자만으로 편집, 제작되었다. 한편, 테러단으로부터 습격을 받은 적도 있었다. 반공 보수지로 일관한 이 신문은 1950년 6·25사변 때 광주에 진입한 공산군에 의하여 강제로 휴간된 채 소생하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0)
1926년에, 만주 정의부에서 교민과 군인의 사상과 문화 계몽을 위하여 창간한 신문. # 내용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였던 정의부(正義府)에서 발행하였다. 현재 신문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일본측의 보고문이 있어 어느 정도의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정의부는 교육과 산업의 향상을 중시하여 도처에 학교를 설립하고 농민조합이나 농업공사(農業公司)를 설치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민과 군인의 사상과 문화계몽에 진력하여 1926년 9월 대동민보사를 설치하고 『대동민보』를 발행하였다. 일제의 조사에 의하면 『대동민보』의 창간호는 1926년 9월 15일자로 발행되었으나, 실제로는 10월 1일에 간행되었다고 한다. 4절 크기의 8면으로 발행되어, 신문이라기보다는 팸플릿에 가까웠던 것 같다. 발행소는 남경...
대동민보 (大東民報)
1926년에, 만주 정의부에서 교민과 군인의 사상과 문화 계몽을 위하여 창간한 신문. # 내용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였던 정의부(正義府)에서 발행하였다. 현재 신문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일본측의 보고문이 있어 어느 정도의 내용을 살필 수 있다. 정의부는 교육과 산업의 향상을 중시하여 도처에 학교를 설립하고 농민조합이나 농업공사(農業公司)를 설치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민과 군인의 사상과 문화계몽에 진력하여 1926년 9월 대동민보사를 설치하고 『대동민보』를 발행하였다. 일제의 조사에 의하면 『대동민보』의 창간호는 1926년 9월 15일자로 발행되었으나, 실제로는 10월 1일에 간행되었다고 한다. 4절 크기의 8면으로 발행되어, 신문이라기보다는 팸플릿에 가까웠던 것 같다. 발행소는 남경...
1946년 장후영이 법조인들과 고등고시 지망생들을 위하여 창간한 잡지. 법률연구지. # 내용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린동에 있던 법정사(法政社)에서 장후영(張厚永)에 의하여 창간되었다. 판형은 B5판 크기로 70면 내외였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9월호로 처음 선을 보인 이 잡지는 주로 법조인들이나 고등고시지망생들을 위한 교육·연구지의 기능을 하고자 발간되었다. 이러한 창간의 뜻은 창간 9주년을 맞은 1955년 9월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민법특집」을 비롯하여 「법정시평」과 「법정수상」 그리고 연구자료로서 「모의헌법」이 게재되어 있다. 또한, 「신법령소개」와 「고시수험정보」 등 고시수험생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담아 편집되었다. 또, 이영섭(李英燮)·장경학(張庚鶴) 등 사법부와 법률학계의 권위...
법정 (法政)
1946년 장후영이 법조인들과 고등고시 지망생들을 위하여 창간한 잡지. 법률연구지. # 내용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린동에 있던 법정사(法政社)에서 장후영(張厚永)에 의하여 창간되었다. 판형은 B5판 크기로 70면 내외였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9월호로 처음 선을 보인 이 잡지는 주로 법조인들이나 고등고시지망생들을 위한 교육·연구지의 기능을 하고자 발간되었다. 이러한 창간의 뜻은 창간 9주년을 맞은 1955년 9월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민법특집」을 비롯하여 「법정시평」과 「법정수상」 그리고 연구자료로서 「모의헌법」이 게재되어 있다. 또한, 「신법령소개」와 「고시수험정보」 등 고시수험생들이 필요로 하는 내용을 담아 편집되었다. 또, 이영섭(李英燮)·장경학(張庚鶴) 등 사법부와 법률학계의 권위...
1908년에, 남궁억이 한글 교육과 독서를 통한 국가 발전 위하여 창간한 월간 잡지. # 내용 대한제국 말기에 서울에서 A5판, 매호 60여면 내외로 발간되었다. 이 잡지는 한글 교육과 독서를 통한 국가발전과 일제로부터의 주권회복을 발행취지로 하였으며, 편집 겸 발행인은 남궁 억(南宮檍)이었다. 특징으로는, 첫째 순한글이었고, 둘째 띄어쓰기를 철저히 지켰으며, 셋째 필자의 성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넷째 내용이 교과서적이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1908년 6월 25일에 창간된 이래 10월 25일 통권 5호로 종간되었다. - 『한국잡지사』(김근수, 청록출판사, 1980)
교육월보 (敎育月報)
1908년에, 남궁억이 한글 교육과 독서를 통한 국가 발전 위하여 창간한 월간 잡지. # 내용 대한제국 말기에 서울에서 A5판, 매호 60여면 내외로 발간되었다. 이 잡지는 한글 교육과 독서를 통한 국가발전과 일제로부터의 주권회복을 발행취지로 하였으며, 편집 겸 발행인은 남궁 억(南宮檍)이었다. 특징으로는, 첫째 순한글이었고, 둘째 띄어쓰기를 철저히 지켰으며, 셋째 필자의 성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고, 넷째 내용이 교과서적이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1908년 6월 25일에 창간된 이래 10월 25일 통권 5호로 종간되었다. - 『한국잡지사』(김근수, 청록출판사, 1980)
1945년에, 서울 북창동에서 이종형이 창간한 극우 성격의 일간 신문. 1946년 9월 25일 서울시내 신문사 종업원들의 파업으로 인하여 임시휴간하였다가 10월 2일부터 다시 속간하였다. 이 신문은 극우지로서 사주 개인의 감정발산이 두드러졌고, 선전전단 같은 인상을 주는 등 언론계의 이단자적인 존재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1947년 제호를 『대동신문(大同新聞)』으로 바꾸었으며, 1954년 12월 12일 공보부로부터 계속발행불능처분을 받았으나 소송으로 승소하였다. 그러나 오래 계속되지 못하고 1957년 4월 15일 지령 제2131호로 『한국경제신문(韓國經濟新聞)』으로 개제, 발간하였다.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5)
대동신문 (大東新聞)
1945년에, 서울 북창동에서 이종형이 창간한 극우 성격의 일간 신문. 1946년 9월 25일 서울시내 신문사 종업원들의 파업으로 인하여 임시휴간하였다가 10월 2일부터 다시 속간하였다. 이 신문은 극우지로서 사주 개인의 감정발산이 두드러졌고, 선전전단 같은 인상을 주는 등 언론계의 이단자적인 존재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1947년 제호를 『대동신문(大同新聞)』으로 바꾸었으며, 1954년 12월 12일 공보부로부터 계속발행불능처분을 받았으나 소송으로 승소하였다. 그러나 오래 계속되지 못하고 1957년 4월 15일 지령 제2131호로 『한국경제신문(韓國經濟新聞)』으로 개제, 발간하였다.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 『한국신문사』(최준, 일조각, 1965)
납이나 구리 등의 금속으로 만든 활자. # 내용 주자(鑄字)라고도 한다. 금속활자는 재료에 따라 동활자(銅活字) · 철활자(鐵活字) · 연활자(鉛活字) 등으로 나뉜다. 그 중 동활자는 놋쇠활자를 말하며, 가장 많이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그 합금의 성분은 구리 · 아연 · 주석 · 납 · 철 등으로 되어 있는데, 활자마다 구성비율이 일정하지 않다. 철활자는 무쇠활자라고도 하며 관서와 민간에서 만든 것이 몇 종 있다. 연활자는 주석활자라고도 일컬으며, 옛 활자로는 1종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금속활자의 발명과 사용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원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간 주장한 설로는 ‘11세기 기원설’, ‘1102년 기원설’, ‘12세기 중엽 기원설’...
금속활자 (金屬活字)
납이나 구리 등의 금속으로 만든 활자. # 내용 주자(鑄字)라고도 한다. 금속활자는 재료에 따라 동활자(銅活字) · 철활자(鐵活字) · 연활자(鉛活字) 등으로 나뉜다. 그 중 동활자는 놋쇠활자를 말하며, 가장 많이 만들어져 사용되었다. 그 합금의 성분은 구리 · 아연 · 주석 · 납 · 철 등으로 되어 있는데, 활자마다 구성비율이 일정하지 않다. 철활자는 무쇠활자라고도 하며 관서와 민간에서 만든 것이 몇 종 있다. 연활자는 주석활자라고도 일컬으며, 옛 활자로는 1종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금속활자의 발명과 사용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원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간 주장한 설로는 ‘11세기 기원설’, ‘1102년 기원설’, ‘12세기 중엽 기원설’...
활판으로 서적을 인쇄하기 위하여 금속을 녹여 주형에 부어서 각종 크기의 활자를 만드는 제작기능 보유자. # 내용 옛부터 서적의 복본(複本)을 만드는 데에는 필사하는 방법과 인쇄하는 방법이 사용되어 왔다. 우리 나라의 경우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주로 필사의 방법이 사용되어 왔다. 인쇄의 방법으로 복본을 만드는 데에는 목판인쇄와 활자인쇄의 방법이 있다. 목판인쇄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이르러 비로소 시용(始用)되었던 듯하다. 활자인쇄 방법으로는 목활자인쇄와 금속활자인쇄의 방법이 있다. 고려시대 말기에 이르러 목활자인쇄와 금속활자인쇄가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의 금속활자의 발명은 세계 초유(初有)의 창안이며, 금속활자는 인쇄문화의 백미(白眉)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로 간행된 서적으로는...
금속활자장 (金屬活字匠)
활판으로 서적을 인쇄하기 위하여 금속을 녹여 주형에 부어서 각종 크기의 활자를 만드는 제작기능 보유자. # 내용 옛부터 서적의 복본(複本)을 만드는 데에는 필사하는 방법과 인쇄하는 방법이 사용되어 왔다. 우리 나라의 경우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주로 필사의 방법이 사용되어 왔다. 인쇄의 방법으로 복본을 만드는 데에는 목판인쇄와 활자인쇄의 방법이 있다. 목판인쇄는 통일신라시대 말기에 이르러 비로소 시용(始用)되었던 듯하다. 활자인쇄 방법으로는 목활자인쇄와 금속활자인쇄의 방법이 있다. 고려시대 말기에 이르러 목활자인쇄와 금속활자인쇄가 시작되었다. 우리 나라의 금속활자의 발명은 세계 초유(初有)의 창안이며, 금속활자는 인쇄문화의 백미(白眉)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에 금속활자로 간행된 서적으로는...
1589년(선조 22) 권문해(權文海)가 편찬한 『대동운부군옥』의 책판과 고본. #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667판, 고본 3종 27책. 이 중 책판은 초판본의 판목이 남아 있는 것이며, 고본은 체재와 형식 등이 다소 다른 미완질의 것이다. 18책본·1책본·8책본 등 3종이 있다. 18책본은 제11·18책이 결본으로 대체로 양호한 편이며, 두주(頭註)에 누락된 부문의 기사를 보기(補記)한 곳이 상당수 있다. 1책본은 1·2권이며, 8책본은 2·7·12·13·14·16·17·20권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20책 후미 여백에 1655년(효종 3)에 쓴 김응조(金應祖)의 발문이 있는데 본문과 글씨체가 다르다. 이 3종의 고본은 모두 권수서명이 ‘신편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으로 되어 있으며, 인용서목과 체재 등이 간본 『대동운부군옥』과 다소 차이가...
대동운부군옥 목판 및 고본 (大東韻府群玉 木板 및 稿本)
1589년(선조 22) 권문해(權文海)가 편찬한 『대동운부군옥』의 책판과 고본. # 내용 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667판, 고본 3종 27책. 이 중 책판은 초판본의 판목이 남아 있는 것이며, 고본은 체재와 형식 등이 다소 다른 미완질의 것이다. 18책본·1책본·8책본 등 3종이 있다. 18책본은 제11·18책이 결본으로 대체로 양호한 편이며, 두주(頭註)에 누락된 부문의 기사를 보기(補記)한 곳이 상당수 있다. 1책본은 1·2권이며, 8책본은 2·7·12·13·14·16·17·20권 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20책 후미 여백에 1655년(효종 3)에 쓴 김응조(金應祖)의 발문이 있는데 본문과 글씨체가 다르다. 이 3종의 고본은 모두 권수서명이 ‘신편대동운옥(新編大東韻玉)’으로 되어 있으며, 인용서목과 체재 등이 간본 『대동운부군옥』과 다소 차이가...
1907년에, 김광제가 국민의 지식 증진을 위하여 창간한 월간 잡지. 고함, ④ 교육 : 권면호서교육(勸勉湖西敎育), ⑤ 실업 : 농정쇄신(農政刷新)의 급무, ⑥ 위생 : 위생의 필요는 종두에 있음, ⑦ 기서(寄書) : 보통방약지남서(普通方藥指南序) 등, ⑧ 문원(文苑) : 보관(報館)의 유익 등, ⑨ 사조(詞藻) : 곡민충정(哭閔忠正) 등, 해동이적(海東異蹟)·언단(言壇)·술몽쇄언(述夢瑣言), ⑩ 휘보 : 관보·외보·시사기문·지방정보, ⑪ 부록 : 국채보상의연금 집송(集送) 인원급 실수(實數), 국내 우체요람 등인데,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개화사상을 고취한 민족주체적 성격의 잡지임을 알 수 있다. 1908년 1월 25일 통권 6호로서 종간되었다. - 『한국잡지사』(김근수, 청록출판사, 1980) - 『한국언론연표』(계훈모,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1979)
대동월보 (大同月報)
1907년에, 김광제가 국민의 지식 증진을 위하여 창간한 월간 잡지. 고함, ④ 교육 : 권면호서교육(勸勉湖西敎育), ⑤ 실업 : 농정쇄신(農政刷新)의 급무, ⑥ 위생 : 위생의 필요는 종두에 있음, ⑦ 기서(寄書) : 보통방약지남서(普通方藥指南序) 등, ⑧ 문원(文苑) : 보관(報館)의 유익 등, ⑨ 사조(詞藻) : 곡민충정(哭閔忠正) 등, 해동이적(海東異蹟)·언단(言壇)·술몽쇄언(述夢瑣言), ⑩ 휘보 : 관보·외보·시사기문·지방정보, ⑪ 부록 : 국채보상의연금 집송(集送) 인원급 실수(實數), 국내 우체요람 등인데,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개화사상을 고취한 민족주체적 성격의 잡지임을 알 수 있다. 1908년 1월 25일 통권 6호로서 종간되었다. - 『한국잡지사』(김근수, 청록출판사, 1980) - 『한국언론연표』(계훈모,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 1979)
1948년에,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서 창간한 일간 신문. 발행인에 박명래(朴明來), 주간 박상진(朴相鎭), 편집인은 이자태(李子兌)였다. 체재는 타블로이드판 2면제로 1면 정치면에는 서울의 『합동통신』 기사가 대부분이고, 논평과 주의주장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특별한 사건이 없는 날에는 사설란도 없었다. 2면은 사회면으로 구성하여 지방중심 기사로 메웠다. 또한, 1·2면에 광고란을 2단씩 두고 경상남도 내의 관청광고도 게재하였다. 기사는 내외신을 실었으나 내신과 외신의 구별편집이 아니고 혼합체재로 꾸몄으며, 1면 톱은 주로 정국의 사건들이고, 독일문제라든지 말레이시아문제들도 실렸다. 종간일자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대동일보 (大同日報)
1948년에,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서 창간한 일간 신문. 발행인에 박명래(朴明來), 주간 박상진(朴相鎭), 편집인은 이자태(李子兌)였다. 체재는 타블로이드판 2면제로 1면 정치면에는 서울의 『합동통신』 기사가 대부분이고, 논평과 주의주장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특별한 사건이 없는 날에는 사설란도 없었다. 2면은 사회면으로 구성하여 지방중심 기사로 메웠다. 또한, 1·2면에 광고란을 2단씩 두고 경상남도 내의 관청광고도 게재하였다. 기사는 내외신을 실었으나 내신과 외신의 구별편집이 아니고 혼합체재로 꾸몄으며, 1면 톱은 주로 정국의 사건들이고, 독일문제라든지 말레이시아문제들도 실렸다. 종간일자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조선후기 규장각에서 중국문헌을 사부로 분류하고 간략한 서평을 덧붙인 목록집. # 서지적 사항 2권 1책. 필사본. # 내용 내각은 규장각의 별칭이며 이 목록은 규장각에서 편찬한 것으로서, 편찬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조 때 엮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명으로 보아 규장각에서 중국문헌을 수집한다든지 또는 관리·이용할 때 기본적인 참고자료로 삼기 위하여 편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목록의 내용은 중국문헌을 우선 경사류와 자집류로 구분하여 서명과 권수를 나열하고, 다음에 각각 편저자의 조대(朝代) 및 이름, 책의 요점 및 간략한 서평을 기술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크게 경사류와 자집류로 나누었으나 본문 중에 ‘이상경류(以上經類)’·‘이상사류(以上史類)’·‘이상자류(以上子類)’·‘이상집류(以上集類)’라는...
내각방서록 (內閣訪書錄)
조선후기 규장각에서 중국문헌을 사부로 분류하고 간략한 서평을 덧붙인 목록집. # 서지적 사항 2권 1책. 필사본. # 내용 내각은 규장각의 별칭이며 이 목록은 규장각에서 편찬한 것으로서, 편찬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정조 때 엮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명으로 보아 규장각에서 중국문헌을 수집한다든지 또는 관리·이용할 때 기본적인 참고자료로 삼기 위하여 편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목록의 내용은 중국문헌을 우선 경사류와 자집류로 구분하여 서명과 권수를 나열하고, 다음에 각각 편저자의 조대(朝代) 및 이름, 책의 요점 및 간략한 서평을 기술하고 있다. 표면상으로는 크게 경사류와 자집류로 나누었으나 본문 중에 ‘이상경류(以上經類)’·‘이상사류(以上史類)’·‘이상자류(以上子類)’·‘이상집류(以上集類)’라는...
조선 중기의 학자 송몽인(宋夢寅, 1586~1612)의 시집을 판각한 책판으로 그가 죽은 후 부인 민씨가 유고를 모아 제작한 것. # 개설 1992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책판은 원래 43매였으나 지금 33매가 남아 있다. # 내용 이 책판은 송몽인이 31세로 세상을 떠나자 부인 민씨가 유고(遺稿)를 거두어 1615년(광해군 7) 외숙부 이수광(李睟光)에게 부탁하여 편교(編校)하고, 다음해 우인(友人) 죽창(竹窓)이시직(李時稷, 1572~1637)이 글씨를 쓴 뒤 비래암(飛來庵)의 승려 지숭(智嵩)이 새긴 것이다. 이때 찍은 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송몽인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문병(文炳), 호는 금암(琴巖)이다. 어려서부터 시에 탁월한 자질을...
금암집 판목 (琴巖集 版木)
조선 중기의 학자 송몽인(宋夢寅, 1586~1612)의 시집을 판각한 책판으로 그가 죽은 후 부인 민씨가 유고를 모아 제작한 것. # 개설 1992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책판은 원래 43매였으나 지금 33매가 남아 있다. # 내용 이 책판은 송몽인이 31세로 세상을 떠나자 부인 민씨가 유고(遺稿)를 거두어 1615년(광해군 7) 외숙부 이수광(李睟光)에게 부탁하여 편교(編校)하고, 다음해 우인(友人) 죽창(竹窓)이시직(李時稷, 1572~1637)이 글씨를 쓴 뒤 비래암(飛來庵)의 승려 지숭(智嵩)이 새긴 것이다. 이때 찍은 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송몽인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문병(文炳), 호는 금암(琴巖)이다. 어려서부터 시에 탁월한 자질을...
조선후기 무신 이운룡이 수군통제사로서의 업무 등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 내용 199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80년에 지정된 142-1호는 『거영일기』 1책과 『계본등록』 2책이다. 『거영일기』는 이운룡 장군이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1605년(선조 38) 7월 30일부터 1606년 9월 1일까지 15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이다. 그는 1605년 7월 30일 도목정(都目政)에서 행경상우도 수군절도사 겸 경상전라충청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되어, 사은숙배(謝恩肅拜)와 역사(歷辭)를 마치고 8월 29일에 도임하였다. 좌수사(左水使)와 동래부사(東萊府使)로부터 받은 왜(倭)와 관련된 정황, 만호(萬戶)나 대장(代將) 등 소속 군사에 대한 처벌의 경우, 풍수를 살피지 않고...
거영일기 및 계본등록 (居營日記 및 啓本謄錄)
조선후기 무신 이운룡이 수군통제사로서의 업무 등을 기록한 일지. 공무일기. # 내용 199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980년에 지정된 142-1호는 『거영일기』 1책과 『계본등록』 2책이다. 『거영일기』는 이운룡 장군이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한 1605년(선조 38) 7월 30일부터 1606년 9월 1일까지 15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한 일기이다. 그는 1605년 7월 30일 도목정(都目政)에서 행경상우도 수군절도사 겸 경상전라충청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되어, 사은숙배(謝恩肅拜)와 역사(歷辭)를 마치고 8월 29일에 도임하였다. 좌수사(左水使)와 동래부사(東萊府使)로부터 받은 왜(倭)와 관련된 정황, 만호(萬戶)나 대장(代將) 등 소속 군사에 대한 처벌의 경우, 풍수를 살피지 않고...
조선 중기의 학자 안신(安迅, 1569∼1648)이 『주자가례』를 근거로 하여 우리 풍속에 맞도록 만든 실용 예서인 『가례부췌』의 책판. # 개설 199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가례부췌』가 완성된 것은 1628년(인조 6)이었으며, 1758년(영조 34)에 이를 간행하고자 안정복(安鼎福)의 발문(跋文)을 얻었으나 끝내 간행하지 못하고, 1899년 저자의 10대손 안상진(安商鎭)이 간행하였다. 이 책판은 그때 간행을 위하여 판각한 것으로 131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금포리 안재우가 소장하고 있다. # 내용 안신의 자는 대지(待之), 호는 오휴자(五休子), 본관은 광주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향(同鄕)의 김시민(金時敏)이 병마절도사로서 울산에 주둔하자 그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난후(亂後)...
가례부췌 책판 (家禮附贅 冊板)
조선 중기의 학자 안신(安迅, 1569∼1648)이 『주자가례』를 근거로 하여 우리 풍속에 맞도록 만든 실용 예서인 『가례부췌』의 책판. # 개설 1990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가례부췌』가 완성된 것은 1628년(인조 6)이었으며, 1758년(영조 34)에 이를 간행하고자 안정복(安鼎福)의 발문(跋文)을 얻었으나 끝내 간행하지 못하고, 1899년 저자의 10대손 안상진(安商鎭)이 간행하였다. 이 책판은 그때 간행을 위하여 판각한 것으로 131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금포리 안재우가 소장하고 있다. # 내용 안신의 자는 대지(待之), 호는 오휴자(五休子), 본관은 광주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동향(同鄕)의 김시민(金時敏)이 병마절도사로서 울산에 주둔하자 그 휘하에서 종군하였으며, 난후(亂後)...
조선전기 제4대 세종 때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인 『동국정운』 인출에 사용한 목활자. # 내용 1447년(세종 29)에 편찬을 완성하고 1448년 인행(印行), 반포한 ≪동국정운≫의 본문 중 한문 대자(大字)의 인출에 사용한 목활자를 말한다. 이 책의 본문 중 한글 대자 활자는 동활자이고, 서(序) 및 세주(細註)의 인출에 사용한 활자는 갑인자(甲寅字)이다. 한문 대자의 자본(字本)은 진양대군(晉陽大君 : 뒤의 세조)의 필적인 듯한데, 이는 ≪법천보장 法泉寶藏≫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묵개자(墨蓋子)의 음문(陰文)만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자체와 비슷하다. 그리고 1455년(단종 3)에 인출한 ≪홍무정운역훈 洪武正韻譯訓≫과 대비하여볼 때 한문 대자의 목활자는 자체에 있어서는 비슷하나 활자가 다르며, 이...
동국정운자 (東國正韻字)
조선전기 제4대 세종 때 우리나라 최초의 운서인 『동국정운』 인출에 사용한 목활자. # 내용 1447년(세종 29)에 편찬을 완성하고 1448년 인행(印行), 반포한 ≪동국정운≫의 본문 중 한문 대자(大字)의 인출에 사용한 목활자를 말한다. 이 책의 본문 중 한글 대자 활자는 동활자이고, 서(序) 및 세주(細註)의 인출에 사용한 활자는 갑인자(甲寅字)이다. 한문 대자의 자본(字本)은 진양대군(晉陽大君 : 뒤의 세조)의 필적인 듯한데, 이는 ≪법천보장 法泉寶藏≫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묵개자(墨蓋子)의 음문(陰文)만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글자체와 비슷하다. 그리고 1455년(단종 3)에 인출한 ≪홍무정운역훈 洪武正韻譯訓≫과 대비하여볼 때 한문 대자의 목활자는 자체에 있어서는 비슷하나 활자가 다르며, 이...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를 간행하기 위하여 1792년(정조 16)에 새기기 시작하여 1794년에 완성한 목판의 판목. # 내용 475판.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가례증해』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우리 나라 제가설(諸家說)을 열거하여 증해하고 자가설(自家說)을 첨가하여 엮은 것이다. 판목의 각자(刻字) 부분의 규격은 가로 37.5㎝, 세로 23.5㎝, 두께 1.7㎝이며, 손잡이를 포함한 규격은 가로 57㎝, 세로 37㎝이다. 이 판목은 판각기술이 우수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서지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경상북도 김천시 이현택(李鉉澤)이 소장하고 있다.
가례증해 판목 (家禮增解 板木)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를 간행하기 위하여 1792년(정조 16)에 새기기 시작하여 1794년에 완성한 목판의 판목. # 내용 475판.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가례증해』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우리 나라 제가설(諸家說)을 열거하여 증해하고 자가설(自家說)을 첨가하여 엮은 것이다. 판목의 각자(刻字) 부분의 규격은 가로 37.5㎝, 세로 23.5㎝, 두께 1.7㎝이며, 손잡이를 포함한 규격은 가로 57㎝, 세로 37㎝이다. 이 판목은 판각기술이 우수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서지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경상북도 김천시 이현택(李鉉澤)이 소장하고 있다.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시문집인 『무릉잡고』와 그의 아들 주박(周博, 1524~?)의 문집인 『구봉집』, 손자 주맹헌(周孟獻)의 시문집인 『수구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 # 내용 『무릉잡고』와 『수구집』 · 『구봉집』의 책판은 모두 352판으로,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 무산사(武山祠) 내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다.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주세붕의 시문집 『무릉잡고』는 그의 아들 주박((周博)에 의해 1564년에 원집(原集)이 간행되고, 1581년에 별집(別集)이 간행되었으나, 그 목판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270여 년 후 1851년(철종 2)에 그의 후손이 소수서원과 도산서원에 보존되어 있던 인본(印本)과 문중에서 전래되어 오던 초고를 대조하여...
무릉잡고 책판 및 수구집·구봉집 책판 (武陵雜稿 冊板 및 守口集·龜峰集 冊板)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시문집인 『무릉잡고』와 그의 아들 주박(周博, 1524~?)의 문집인 『구봉집』, 손자 주맹헌(周孟獻)의 시문집인 『수구집』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 # 내용 『무릉잡고』와 『수구집』 · 『구봉집』의 책판은 모두 352판으로,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 무산사(武山祠) 내 장판각에 소장되어 있다. 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주세붕의 시문집 『무릉잡고』는 그의 아들 주박((周博)에 의해 1564년에 원집(原集)이 간행되고, 1581년에 별집(別集)이 간행되었으나, 그 목판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 270여 년 후 1851년(철종 2)에 그의 후손이 소수서원과 도산서원에 보존되어 있던 인본(印本)과 문중에서 전래되어 오던 초고를 대조하여...
조선후기 동래부 동하면(현 해운대구 일원)의 지방자치행정과 관련된 문서. 관문서. # 서지적 사항 30책. 1993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 내용 이는 대체로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동래부 동하면의 총체적 자치행정규범으로서의 <동중절목 洞中節目> · <완의절목 完議節目> 등의 문서와, 토지 · 조세 및 재정 문제와 관련된 둔답금기(屯畓衿記) · 양안(量案) · 구폐전(救弊錢) · 식리절목(殖利節目) 등의 문서, 그리고 동하면 소재 신당(神堂)과 관련된 운영경비 문제를 다룬 문서 등이다. 이 문서들은 동래부의 사회적 · 문화적 배경을 소상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조선 후기 지방행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994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청에서 역주하여...
동래부 동하면 고문서 (東萊府 東下面 古文書)
조선후기 동래부 동하면(현 해운대구 일원)의 지방자치행정과 관련된 문서. 관문서. # 서지적 사항 30책. 1993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 내용 이는 대체로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동래부 동하면의 총체적 자치행정규범으로서의 <동중절목 洞中節目> · <완의절목 完議節目> 등의 문서와, 토지 · 조세 및 재정 문제와 관련된 둔답금기(屯畓衿記) · 양안(量案) · 구폐전(救弊錢) · 식리절목(殖利節目) 등의 문서, 그리고 동하면 소재 신당(神堂)과 관련된 운영경비 문제를 다룬 문서 등이다. 이 문서들은 동래부의 사회적 · 문화적 배경을 소상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조선 후기 지방행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1994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청에서 역주하여...
1921년에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언론단체. 1924년 8월 국경지역인 평안북도 위원(渭原)에서 일본경찰의 만행으로 주민 28명이 학살당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무명회는 각 신문의 공동취재 대표로 『조선일보』의 이석(李奭)을 현지에 파견하여 상세한 진상을 조사하게 하는 등 그 취재활동이 활발하였다. 이 밖에도 민족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여러 차례의 결의문을 발표하고, 취재기자가 구속당할 때는 경찰 또는 총독부 당국에 직접 항의하는 등의 활동과 함께, 일제의 언론정책에 관련되는 문제로서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출판법」 개정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 『언론단체의 역할과 성장』-한국현대언론사론-(정진석, 전예원, 1984) - 『일제하한국언론투쟁사』(정진석, 정음사, 1975)
무명회 (無名會)
1921년에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언론단체. 1924년 8월 국경지역인 평안북도 위원(渭原)에서 일본경찰의 만행으로 주민 28명이 학살당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무명회는 각 신문의 공동취재 대표로 『조선일보』의 이석(李奭)을 현지에 파견하여 상세한 진상을 조사하게 하는 등 그 취재활동이 활발하였다. 이 밖에도 민족지의 입장을 대변하는 여러 차례의 결의문을 발표하고, 취재기자가 구속당할 때는 경찰 또는 총독부 당국에 직접 항의하는 등의 활동과 함께, 일제의 언론정책에 관련되는 문제로서 「광무신문지법(光武新聞紙法)」·「출판법」 개정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 『언론단체의 역할과 성장』-한국현대언론사론-(정진석, 전예원, 1984) - 『일제하한국언론투쟁사』(정진석, 정음사,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