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한"
검색결과 총 7,685건
제주특별자치도의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갈 때 노를 저으면서 부르던 어업노동요. 「해녀뱃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갈 때 노를 저으면서 부르던 어업노동요이다. 1971년 민속예술경연대회 출전을 계기로 공연화·제도화되어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과 국가무형유산 제주민요로 전승되고 있다. 테우에서 노를 젓는 노동 과정과 함께 부르며 선창·후창이 겹쳐지는 독특한 가창 구조를 지닌다. 가사는 물질 노동, 생계의 고됨, 삶의 허무 등을 담고, 테왁 등을 타악기로 쓰는 생활악기가 특징이다. 해녀들의 공동체적 정서를 표출하며 자유로운 가창방식이 돋보인다.# 전승 과정 「해녀뱃소리」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부르는 노래이므로 해녀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것으로 짐작되나 정확한...
해녀뱃소리 (海女뱃소리)
제주특별자치도의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갈 때 노를 저으면서 부르던 어업노동요. 「해녀뱃소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해녀들이 물질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갈 때 노를 저으면서 부르던 어업노동요이다. 1971년 민속예술경연대회 출전을 계기로 공연화·제도화되어 제주특별자치도 무형유산과 국가무형유산 제주민요로 전승되고 있다. 테우에서 노를 젓는 노동 과정과 함께 부르며 선창·후창이 겹쳐지는 독특한 가창 구조를 지닌다. 가사는 물질 노동, 생계의 고됨, 삶의 허무 등을 담고, 테왁 등을 타악기로 쓰는 생활악기가 특징이다. 해녀들의 공동체적 정서를 표출하며 자유로운 가창방식이 돋보인다.# 전승 과정 「해녀뱃소리」는 해녀들이 물질을 할 때 부르는 노래이므로 해녀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할 것으로 짐작되나 정확한...
일본 효고현[兵庫縣] 이즈시군[出石郡] 이즈시정[出石町]에 있는 신라의 왕자 관련 사당. 일본 효고현[兵庫縣] 이즈시군[出石郡] 이즈시정[出石町]에 있는 신라의 왕자 관련 사당이다. 신라의 왕자 아메노히보코노미코토[天日槍命]와 그가 가지고 온 여덟 가지 보물을 이즈시노야마에대신[伊豆志八前大神]이라 하여 신으로 모시고 있다. 아메노히보코노미코토가 죽은 뒤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845년에는 종오위하(從五位下)라는 관위를 조정으로부터 받았다. 에도시대에는 그 지역의 통치자였던 센고쿠[仙石] 집안의 귀의를 받아 경제적으로는 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1871년에는 국가가 지정하는 국폐중사(國幣中社)가 되었다.그 구슬을 손에 넣은 한 남자가 아메노히보코노미코토에게 힐책을 당하자 구슬을...
출석신사 (出石神社)
일본 효고현[兵庫縣] 이즈시군[出石郡] 이즈시정[出石町]에 있는 신라의 왕자 관련 사당. 일본 효고현[兵庫縣] 이즈시군[出石郡] 이즈시정[出石町]에 있는 신라의 왕자 관련 사당이다. 신라의 왕자 아메노히보코노미코토[天日槍命]와 그가 가지고 온 여덟 가지 보물을 이즈시노야마에대신[伊豆志八前大神]이라 하여 신으로 모시고 있다. 아메노히보코노미코토가 죽은 뒤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며, 845년에는 종오위하(從五位下)라는 관위를 조정으로부터 받았다. 에도시대에는 그 지역의 통치자였던 센고쿠[仙石] 집안의 귀의를 받아 경제적으로는 안정을 이루었다. 그리고 1871년에는 국가가 지정하는 국폐중사(國幣中社)가 되었다.그 구슬을 손에 넣은 한 남자가 아메노히보코노미코토에게 힐책을 당하자 구슬을...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백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가 발굴된 대규모 제철유적. 충주칠금동야철유적(忠州漆琴洞冶鐵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백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가 발굴된 대규모 제철유적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제련 공정만이 확인되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제련로는 30여 기에 달해 국내 최대 유적이다. 용광로를 만들 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땅을 깊게 파고 바닥과 측면에 목재를 빽빽하게 채운 후 그 위로 노를 조성한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칠금동식 제련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일찍이 충주는 『고려사』에 ‘철산지(鐵産地)’ 중 한 곳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근대 이후...
충주 칠금동 야철유적 (忠州 漆琴洞 冶鐵遺蹟)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백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가 발굴된 대규모 제철유적. 충주칠금동야철유적(忠州漆琴洞冶鐵遺蹟)은 충청북도 충주시에 있는 삼국시대(백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가 발굴된 대규모 제철유적이다.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내는 제련 공정만이 확인되는데, 현재까지 확인된 제련로는 30여 기에 달해 국내 최대 유적이다. 용광로를 만들 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땅을 깊게 파고 바닥과 측면에 목재를 빽빽하게 채운 후 그 위로 노를 조성한 방식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칠금동식 제련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준다.일찍이 충주는 『고려사』에 ‘철산지(鐵産地)’ 중 한 곳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다인철소(多仁鐵所)’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근대 이후...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 제철유적. 충주 완오리 제철 유적은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이다. 우리나라 최대 철산지 중 하나인 충주지역에서 가장 먼저 조사된 제철 유적이다. 해발 100m 미만의 야트막한 야산 남사면 약 200m 범위의 골짜기 전체가 유적지이다. 제철로(製鐵爐) 2기를 비롯해 건물지·석렬 등의 관련 시설이 조사되었으며, 철광석·유출재·철괴·송풍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땅을 파고 할석을 쌓은 다음 안쪽에 진흙을 발라 원형 혹은 모를 죽인 방형의 제철로를 조성하였다. 제철로의 시기적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발굴조사 결과, 제철로 2기와 건물지·석렬 각 1기, 구덩이유구 5기가 조사되었으며, 노 벽체편을 비롯해 철광석...
충주 완오리 제철유적 (忠州 完五里 製鐵遺蹟)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 제철유적. 충주 완오리 제철 유적은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이다. 우리나라 최대 철산지 중 하나인 충주지역에서 가장 먼저 조사된 제철 유적이다. 해발 100m 미만의 야트막한 야산 남사면 약 200m 범위의 골짜기 전체가 유적지이다. 제철로(製鐵爐) 2기를 비롯해 건물지·석렬 등의 관련 시설이 조사되었으며, 철광석·유출재·철괴·송풍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땅을 파고 할석을 쌓은 다음 안쪽에 진흙을 발라 원형 혹은 모를 죽인 방형의 제철로를 조성하였다. 제철로의 시기적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된다.발굴조사 결과, 제철로 2기와 건물지·석렬 각 1기, 구덩이유구 5기가 조사되었으며, 노 벽체편을 비롯해 철광석...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장로교 총회장과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 이자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장로교 총회장과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다. 1882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의 조사(助事)로 기독교에 입문하여 김제 금산교회 장로, 원평교회 목사, 장로교 총회장(3선),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인적사항 1882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출생하였다. 빈농 출신으로 부모를 일찍 여의고 17세에 행상에 나섰다. 1904년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 최의덕)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1908년 김제 금산교회 장로가 되면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 목사 안수를 받고 금산교회와 원평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이후 목사로서 노회장과 총회장 등을...
이자익 (李自益)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장로교 총회장과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 이자익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장로교 총회장과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목사이다. 1882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의 조사(助事)로 기독교에 입문하여 김제 금산교회 장로, 원평교회 목사, 장로교 총회장(3선), 대전신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인적사항 1882년 경상남도 남해에서 출생하였다. 빈농 출신으로 부모를 일찍 여의고 17세에 행상에 나섰다. 1904년 남장로교 선교사 테이트(Lewis B. Tate, 최의덕)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에 입문하였다. 1908년 김제 금산교회 장로가 되면서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15년 목사 안수를 받고 금산교회와 원평교회에서 사역하였다. 이후 목사로서 노회장과 총회장 등을...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 제철유적. 합천 야로리 제철유적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이다. ‘야로’라는 지명은 ‘쇠를 다루다’는 뜻의 ‘야(冶)’와 ‘가마’를 의미하는 ‘노(爐)’가 합친 것이다. 유적지는 미숭산 남서쪽 지봉인 관모봉(410.8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사면 및 ‘등골’이라는 골짜기에 위치한다. 조사 결과 제철로 4기와 방화장 1기, 노 벽체편·철괴·철재·자기편 등이 발견되었다. 야로광산 일대에는 대가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제출유적이 분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사철을 제련했던 몇 안 되는 유적이다.노 벽체편 · 철괴 · 철재 ·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철재 · 철괴 등을 금속분석한 결과 사철...
합천 야로리 제철유적 (陜川 冶爐里 製鐵遺蹟)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 제철유적. 합천 야로리 제철유적은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에 있는 조선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이다. ‘야로’라는 지명은 ‘쇠를 다루다’는 뜻의 ‘야(冶)’와 ‘가마’를 의미하는 ‘노(爐)’가 합친 것이다. 유적지는 미숭산 남서쪽 지봉인 관모봉(410.8m)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사면 및 ‘등골’이라는 골짜기에 위치한다. 조사 결과 제철로 4기와 방화장 1기, 노 벽체편·철괴·철재·자기편 등이 발견되었다. 야로광산 일대에는 대가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제출유적이 분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 사철을 제련했던 몇 안 되는 유적이다.노 벽체편 · 철괴 · 철재 · 자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철재 · 철괴 등을 금속분석한 결과 사철...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씨세대록(李氏世代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쌍천기봉」의 후편이며, 다시 「이씨후대 인봉쌍계록」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 중 중간 작품이다. 주인공 이현 집안의 가문 내의 여러 갈등과 해결을 그리면서 동시에 국가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이씨 가문의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돌아와서 다시 노 소저를 부인으로 맞이하니, 노씨는 자기보다 아름다운 양 부인을 모해한다. 이 승상의 둘째 아들 세문은 유장의 딸과, 셋째 아들 기문은 교상위의 딸과 혼인한다. 연왕 이몽창의 셋째 아들 성문은 태수 여현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여 태수가 도둑을 만나 딸을 잃고 다른 문중에 구혼하려고 한다. 흥문의 첫째 부인 양 부인을 모해하려던 둘째 부인 노 부인이 음모를...
이씨세대록 (李氏世代錄)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씨세대록(李氏世代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쌍천기봉」의 후편이며, 다시 「이씨후대 인봉쌍계록」으로 이어지는 연작 소설 중 중간 작품이다. 주인공 이현 집안의 가문 내의 여러 갈등과 해결을 그리면서 동시에 국가의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이씨 가문의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돌아와서 다시 노 소저를 부인으로 맞이하니, 노씨는 자기보다 아름다운 양 부인을 모해한다. 이 승상의 둘째 아들 세문은 유장의 딸과, 셋째 아들 기문은 교상위의 딸과 혼인한다. 연왕 이몽창의 셋째 아들 성문은 태수 여현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여 태수가 도둑을 만나 딸을 잃고 다른 문중에 구혼하려고 한다. 흥문의 첫째 부인 양 부인을 모해하려던 둘째 부인 노 부인이 음모를...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운선전(李雲仙傳)」은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일찍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이운선이 재상가의 딸 김옥향의 도움으로 일찍 죽을 운명을 극복하고, 자기 대신 죽은 백 공자의 원혼에게서 액을 막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또 이운선이 김옥향과 혼인하여 그녀의 지시를 받아 과거에 급제한 뒤, 형주 지역에서 원통하게 자결한 노씨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계림부 금릉 땅에 사는 이 상서의 아들 운선은 한 노승의 점복(占卜)으로 일찍 죽을 운명을 타고났음을 알게 된다. 운선은 액을 면하기 위해 노복 개똥과 함께 10년 동안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었다. 어느 날 운선은 과거를 보기 위해 황성으로 올라와 한 노고(老姑)의 집에 머물게 되고, 노고의 권유로 맹...
이운선전 (李雲仙傳)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운선전(李雲仙傳)」은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일찍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이운선이 재상가의 딸 김옥향의 도움으로 일찍 죽을 운명을 극복하고, 자기 대신 죽은 백 공자의 원혼에게서 액을 막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또 이운선이 김옥향과 혼인하여 그녀의 지시를 받아 과거에 급제한 뒤, 형주 지역에서 원통하게 자결한 노씨의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가 추가되어 있다.계림부 금릉 땅에 사는 이 상서의 아들 운선은 한 노승의 점복(占卜)으로 일찍 죽을 운명을 타고났음을 알게 된다. 운선은 액을 면하기 위해 노복 개똥과 함께 10년 동안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었다. 어느 날 운선은 과거를 보기 위해 황성으로 올라와 한 노고(老姑)의 집에 머물게 되고, 노고의 권유로 맹...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철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 제철유적. 진천 석장리 유적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철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이다. 해발 70∼75m 정도의 구릉 사면에 7개소의 철 생산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된 최초의 고대 철 생산 유적으로, 지상식 대형 상형로(箱形爐), 반지하식 원형로 등 다양한 형태의 고대 제철로 26기가 확인되었다. 철의 제련과 정련, 단야(鍛冶) 등 일련의 철생산 공정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서 고대 제철의 입지 선정과 철 생산 체계 및 조업 형태 등에 대한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초기 백제의 생산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특히,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백산맥권에 밀집 분포되어 있다. 이 유적은 철의 제련(製鍊)...
진천 석장리 유적 (鎭川 石帳里 遺蹟)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철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 제철유적. 진천 석장리 유적은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철 생산 관련 유물산포지이다. 해발 70∼75m 정도의 구릉 사면에 7개소의 철 생산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된 최초의 고대 철 생산 유적으로, 지상식 대형 상형로(箱形爐), 반지하식 원형로 등 다양한 형태의 고대 제철로 26기가 확인되었다. 철의 제련과 정련, 단야(鍛冶) 등 일련의 철생산 공정이 한 장소에서 이루어져서 고대 제철의 입지 선정과 철 생산 체계 및 조업 형태 등에 대한 연구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초기 백제의 생산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특히, 충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백산맥권에 밀집 분포되어 있다. 이 유적은 철의 제련(製鍊)...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유적. 제철유적. 야철지는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유적이다. 제철유적이라고도 부른다. 작업 공정에 따라 제철로, 제련로 또는 정련로, 단야로와 대장간 등으로 구분된다. 초기 야철지는 해안가나 경주를 비롯한 도성 주변에 위치하였으나 점차 철광산을 중심으로 생산유적이 옮겨졌다. 철소가 설치된 충주 등 여러 지역에서 철광석보다는 사철을 많이 이용하여 철을 생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철을 공납물로 진상하게 되면서 철을 생산하는 철장을 설치하였다. 철기 생산 기술과 철기문화의 변화상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제철로, 제련로 또는 정련로, 단야로와 대장간, 그리고 작업장과 부속 시설물로서 풀무, 노 보호시설, 원료 야적장 등을 모두 포함한다. 과거 철생산...
야철지 (冶鐵址)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유적. 제철유적. 야철지는 철 생산과 관련된 작업장이 있던 유적이다. 제철유적이라고도 부른다. 작업 공정에 따라 제철로, 제련로 또는 정련로, 단야로와 대장간 등으로 구분된다. 초기 야철지는 해안가나 경주를 비롯한 도성 주변에 위치하였으나 점차 철광산을 중심으로 생산유적이 옮겨졌다. 철소가 설치된 충주 등 여러 지역에서 철광석보다는 사철을 많이 이용하여 철을 생산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각 지방에서 철을 공납물로 진상하게 되면서 철을 생산하는 철장을 설치하였다. 철기 생산 기술과 철기문화의 변화상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제철로, 제련로 또는 정련로, 단야로와 대장간, 그리고 작업장과 부속 시설물로서 풀무, 노 보호시설, 원료 야적장 등을 모두 포함한다. 과거 철생산...
금속기 주조 시 철, 청동 등의 원자재를 녹여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가마. 무질부리가마. 용해로는 금속기 주조 시 철, 청동 등의 원자재를 녹여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가마이다. 무질부리가마라고도 부른다. 고체 상태의 금속을 고온으로 녹일 때 사용하는 통 모양의 가마이다. 녹는 온도가 낮은 비철금속은 도가니를 사용하는데, 녹는 온도가 높은 철은 숯 등을 함께 넣고 고온에서 직접 녹이는 노를 사용한다. 용해로는 철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노를 의미한다. 점토에 볏짚 등의 초본류를 섞어 쌓아 올려 원통형 혹은 원추형으로 만든다. 용해로를 이용한 철기 주조 기술은 서기전 2~1세기경 한반도로 전파되어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다가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다.말기에는 한 번의 용해조업으로 50개의 가마솥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현대의...
용해로 (鎔解爐)
금속기 주조 시 철, 청동 등의 원자재를 녹여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가마. 무질부리가마. 용해로는 금속기 주조 시 철, 청동 등의 원자재를 녹여서 액체 상태로 만드는 가마이다. 무질부리가마라고도 부른다. 고체 상태의 금속을 고온으로 녹일 때 사용하는 통 모양의 가마이다. 녹는 온도가 낮은 비철금속은 도가니를 사용하는데, 녹는 온도가 높은 철은 숯 등을 함께 넣고 고온에서 직접 녹이는 노를 사용한다. 용해로는 철기를 제작할 때 사용하는 노를 의미한다. 점토에 볏짚 등의 초본류를 섞어 쌓아 올려 원통형 혹은 원추형으로 만든다. 용해로를 이용한 철기 주조 기술은 서기전 2~1세기경 한반도로 전파되어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다가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다.말기에는 한 번의 용해조업으로 50개의 가마솥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현대의...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의 철과 노, 가마가 확인된 제철유적. 화성기안동유적(華城旗安洞遺蹟)은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의 철과 노, 가마가 확인된 제철유적이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이 조사한 이 유적에서는 철을 생산하는 공정에 사용된 송풍관이 출토되었는데, 낙랑 제도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량의 낙랑계 토기가 수습되어 낙랑 이주민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목탄요도 확인되어 철(철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의 수급 관계를 알 수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는 송풍관의 제작 방법이 이전 발굴 유적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장인 집단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단야 공정 이외의 노[^1]는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이 주로 낙랑계 토기가...
화성 기안동 유적 (華城 旗安洞 遺蹟)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의 철과 노, 가마가 확인된 제철유적. 화성기안동유적(華城旗安洞遺蹟)은 철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의 철과 노, 가마가 확인된 제철유적이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이 조사한 이 유적에서는 철을 생산하는 공정에 사용된 송풍관이 출토되었는데, 낙랑 제도술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다량의 낙랑계 토기가 수습되어 낙랑 이주민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목탄요도 확인되어 철(철기) 생산에 필요한 연료의 수급 관계를 알 수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의 발굴 조사에서는 송풍관의 제작 방법이 이전 발굴 유적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장인 집단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단야 공정 이외의 노[^1]는 확인되지 않았다. 출토 유물이 주로 낙랑계 토기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있는 삼국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 제철유적. 양산 물금 유적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있는 삼국시대 제철 유적이다. 우리나라 최대 제철 유적의 하나로 제철조업과 관련된 45기 이상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제련 공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선광, 배소, 패각의 저장·소성 등과 관련된 유구가 확인되었다. 패각 저장 및 소성유구에서는 제첩·개조개·굴 등의 패각이 다량 검출되었다. 이밖에 다양한 크기의 철광석과 노 바깥으로 흘러 쌓인 제련재인 유출재가 출토되었다. 신라의 중요한 산업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유적으로 고대의 제철기술 및 신라의 산업과 대외관계 등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또한 유적에서는 철광석 · 송풍관 · 노 벽체편 · 철괴 · 유출재 등 다수의...
양산 물금 유적 (梁山 勿禁 遺蹟)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있는 삼국시대 제철 관련 유물산포지. 제철유적. 양산 물금 유적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있는 삼국시대 제철 유적이다. 우리나라 최대 제철 유적의 하나로 제철조업과 관련된 45기 이상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로 제련 공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선광, 배소, 패각의 저장·소성 등과 관련된 유구가 확인되었다. 패각 저장 및 소성유구에서는 제첩·개조개·굴 등의 패각이 다량 검출되었다. 이밖에 다양한 크기의 철광석과 노 바깥으로 흘러 쌓인 제련재인 유출재가 출토되었다. 신라의 중요한 산업기지 역할을 담당했던 유적으로 고대의 제철기술 및 신라의 산업과 대외관계 등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또한 유적에서는 철광석 · 송풍관 · 노 벽체편 · 철괴 · 유출재 등 다수의...
제주도의 어업노동요. 따라서 오늘날까지 이 민요는 구좌, 성산 등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 동쪽지역에서 잘 전수되고 있다. 1998년 현재 해녀노래는 보유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기예능보유자가 없다. 해녀노래는 정확히 말하면 해녀 노젓는 소리를 일컫는다. 과거에 해녀들은 일반적으로 테우(제주도 특유의 뗏목)를 타고 노를 저어서 물질(해녀들이 실제로 바다에 뛰어들어 소라 · 전복 등을 캐는 작업)할 장소로 간 다음,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고 나서는 다시 테우에 올라 노를 저으면서 돌아왔다. 바로 이처럼 바다로 나가거나 들어 오면서 노를 저을 때 부르는 민요가 해녀노래, 곧 해녀 노젓는 소리이다. 두 사람이 노를 잡고 저어 나가면서 선소리와 그 모방창을 해 나가면, 테우에 동승한 다른 해녀들은 태왁(물질작업을 할 때...
해녀노래 (海女노래)
제주도의 어업노동요. 따라서 오늘날까지 이 민요는 구좌, 성산 등을 중심으로 한 제주도 동쪽지역에서 잘 전수되고 있다. 1998년 현재 해녀노래는 보유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기예능보유자가 없다. 해녀노래는 정확히 말하면 해녀 노젓는 소리를 일컫는다. 과거에 해녀들은 일반적으로 테우(제주도 특유의 뗏목)를 타고 노를 저어서 물질(해녀들이 실제로 바다에 뛰어들어 소라 · 전복 등을 캐는 작업)할 장소로 간 다음,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하고 나서는 다시 테우에 올라 노를 저으면서 돌아왔다. 바로 이처럼 바다로 나가거나 들어 오면서 노를 저을 때 부르는 민요가 해녀노래, 곧 해녀 노젓는 소리이다. 두 사람이 노를 잡고 저어 나가면서 선소리와 그 모방창을 해 나가면, 테우에 동승한 다른 해녀들은 태왁(물질작업을 할 때...
안동부 부북면(府北面) 주촌(周村)에서 1528년(중종 23)에 작성된 1장의 호적. 안동부 부북면(府北面) 주촌(周村)에서 1528년(중종 23)에 작성된 1장의 호적이다. 진성이씨(眞城李氏) 이훈(李壎)의 후손이 대대로 보관해왔는데, 관문서를 그것도 책자에서 낱장 한 장만을 소장하게 된 연유는 알 수 없다. 이훈의 호를 포함하여 모두 6호가 등재되어 있다. 오가 작통제(五家作統制)가 호적에 반영되기 시작하는 1675년(숙종 1) 이전의 호적이어서 17세기 초중반과 같이 크게 ‘호(戶)’라고만 써서 호를 구분했다. 당시의 신분 분류나 호적 양식과 관련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편찬/발간 경위 진성이씨 이훈의 후손이 대대로 보관해왔는데, 관문서를 그것도 책자에서 낱장 한 장만을 소장하게 된 연유는 알 수 없다. # 서지적 사항 가로 66㎝, 세로 81㎝의...
주촌호적 (周村戶籍)
안동부 부북면(府北面) 주촌(周村)에서 1528년(중종 23)에 작성된 1장의 호적. 안동부 부북면(府北面) 주촌(周村)에서 1528년(중종 23)에 작성된 1장의 호적이다. 진성이씨(眞城李氏) 이훈(李壎)의 후손이 대대로 보관해왔는데, 관문서를 그것도 책자에서 낱장 한 장만을 소장하게 된 연유는 알 수 없다. 이훈의 호를 포함하여 모두 6호가 등재되어 있다. 오가 작통제(五家作統制)가 호적에 반영되기 시작하는 1675년(숙종 1) 이전의 호적이어서 17세기 초중반과 같이 크게 ‘호(戶)’라고만 써서 호를 구분했다. 당시의 신분 분류나 호적 양식과 관련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편찬/발간 경위 진성이씨 이훈의 후손이 대대로 보관해왔는데, 관문서를 그것도 책자에서 낱장 한 장만을 소장하게 된 연유는 알 수 없다. # 서지적 사항 가로 66㎝, 세로 81㎝의...
삼국시대에 사용된 원거리 발사무기. 포노에 대해서는 포(砲)와 노(弩)로 구분해서 보는 견해, 여러 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다발식 활로 보는 견해, 중국의 상노(床弩)와 같은 대형 수성용 노라는 견해 등이 나와 있다. 성 위에 설치한 것으로 보아 수성용 대형 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신득이 만들어 바친 점에서 신라의 대형 노 제작기술이 이미 상당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후 신라는 나당전쟁을 전후하여 1,000보까지 발사할 수 있는 천보노(千步弩)를 제작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신라는 노를 주력무기로 특화시켜 변경을 방어하게 하고, 국왕이 참관하는 열병식에 참가시키기도 하였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라의 노 운용과 그 의미」(이재옥, 『역사교육논집』 48, 2012) - 「6~7세기 고구려의 쇠뇌...
포노 (砲弩)
삼국시대에 사용된 원거리 발사무기. 포노에 대해서는 포(砲)와 노(弩)로 구분해서 보는 견해, 여러 개의 화살을 쏠 수 있는 다발식 활로 보는 견해, 중국의 상노(床弩)와 같은 대형 수성용 노라는 견해 등이 나와 있다. 성 위에 설치한 것으로 보아 수성용 대형 노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신득이 만들어 바친 점에서 신라의 대형 노 제작기술이 이미 상당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후 신라는 나당전쟁을 전후하여 1,000보까지 발사할 수 있는 천보노(千步弩)를 제작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신라는 노를 주력무기로 특화시켜 변경을 방어하게 하고, 국왕이 참관하는 열병식에 참가시키기도 하였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라의 노 운용과 그 의미」(이재옥, 『역사교육논집』 48, 2012) - 「6~7세기 고구려의 쇠뇌...
둑중개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임원십육지』에는 ‘노’를 ‘거억졍’이라고 적고, “노(盧)는 흑(黑)인데 물고기의 빛깔이 검어서 노(盧)자를 따라 노(鱸)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 “그 맛이 아주 좋으며, 하늘이 마련해 준 횟감”이라고 하였다. 꺽정이를 노 또는 노어라고 하는 것은 중국식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언각비』에서 농어를 ‘노어’라고 한 것과 같이 농어를 노어라 하였으므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토산조에 보이는 노어는 농어이고 꺽정이가 아니다. -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 『물명고(物名考)』 - 『아언각비(雅言覺非)』 - 『경남(慶南)의 자연(自然)』 -담수어편(淡水魚篇)-(최기철, 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3) - 『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정문기, 일지사, 1977)
꺽정이
둑중개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임원십육지』에는 ‘노’를 ‘거억졍’이라고 적고, “노(盧)는 흑(黑)인데 물고기의 빛깔이 검어서 노(盧)자를 따라 노(鱸)라고 한다.”고 하였다. 또 “그 맛이 아주 좋으며, 하늘이 마련해 준 횟감”이라고 하였다. 꺽정이를 노 또는 노어라고 하는 것은 중국식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아언각비』에서 농어를 ‘노어’라고 한 것과 같이 농어를 노어라 하였으므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토산조에 보이는 노어는 농어이고 꺽정이가 아니다. -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 『물명고(物名考)』 - 『아언각비(雅言覺非)』 - 『경남(慶南)의 자연(自然)』 -담수어편(淡水魚篇)-(최기철, 경상남도교육위원회, 1983) - 『한국어도보(韓國魚圖譜)』(정문기, 일지사, 1977)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제5왕비. # 생애 및 활동사항 성은 노씨(盧氏). 출신지나 아버지의 성명 등은 기록이 인멸되어 알 수가 없다. 처음에 정종이 연창궁주의 용모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몰래 궁중에 불러들였는데 드디어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정종이 죽고 아우인 문종(文宗)이 즉위한 뒤 전왕(前王)의 유언에 따라 궁(宮)을 내리자, 문하성(門下省)과 어사대(御史臺)가 “노씨는 예절을 갖추어 맞아들이지 않았으며, 선왕의 잘못된 명령은 복종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논박하였으나, 문종은 이들의 간언(諫言)을 물리쳤다. 연창궁(延昌宮)을 노씨에게 주었기 때문에 연창궁주(延昌宮主)로 불렸다. 자녀는 없었다. - 『고려사(高麗史)』
연창궁주 (延昌宮主)
고려전기 제3대 정종의 제5왕비. # 생애 및 활동사항 성은 노씨(盧氏). 출신지나 아버지의 성명 등은 기록이 인멸되어 알 수가 없다. 처음에 정종이 연창궁주의 용모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몰래 궁중에 불러들였는데 드디어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정종이 죽고 아우인 문종(文宗)이 즉위한 뒤 전왕(前王)의 유언에 따라 궁(宮)을 내리자, 문하성(門下省)과 어사대(御史臺)가 “노씨는 예절을 갖추어 맞아들이지 않았으며, 선왕의 잘못된 명령은 복종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논박하였으나, 문종은 이들의 간언(諫言)을 물리쳤다. 연창궁(延昌宮)을 노씨에게 주었기 때문에 연창궁주(延昌宮主)로 불렸다. 자녀는 없었다. - 『고려사(高麗史)』
삼국시대 신라의 나마로서 포(砲)와 노(弩) 등의 무기를 제작한 관리. # 내용 관등은 나마(奈麻)였다. 무기제조의 기술이 뛰어나 포(砲)와 노(弩)를 만들어 558년(진흥왕 19) 2월에 국왕에게 바쳤다. 신라는 이 위력 있는 병기를 성 위에 장치하였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득 (身得)
삼국시대 신라의 나마로서 포(砲)와 노(弩) 등의 무기를 제작한 관리. # 내용 관등은 나마(奈麻)였다. 무기제조의 기술이 뛰어나 포(砲)와 노(弩)를 만들어 558년(진흥왕 19) 2월에 국왕에게 바쳤다. 신라는 이 위력 있는 병기를 성 위에 장치하였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인천 근해에서 불리는 여인들의 갯가노래와 남정네의 서해안 뱃노래. 자배기에 물을 담고 바가지를 엎어 띄운 후, 한 손엔 나무젓가락을, 다른 한 손엔 똬리를 들고 바가지를 6박 장단으로 계속 쳐 나간다. 군음의 받음구는 “응-으응-왜 생겼나”이다. 메김구는 “웬수로다 웬수로다 알락조개가 웬수로다.” 등 여자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들로 되어 있다. 닻감는 소리는 바람의 방향에 맞추어 닻을 감아 올릴 때 하는 소리이며, 노젓는 소리는 발동기 대신에 노를 저어서 항해를 하던 시절에 노젓는 사람들이 일제히 힘을 모으기 위해 부르던 소리이다. 바디소리는 고기를 퍼담는 도구인 바디(그물 주머니가 달렸음)로 그물 속에 잡힌 고기들을 배 안으로 퍼담으면서 부르던 소리이다. 태질소리라고도 한다. 소흑산도의 술배소리...
인천근해의 뱃노래·갯가노래 (仁川近海의 뱃노래·갯가노래)
인천 근해에서 불리는 여인들의 갯가노래와 남정네의 서해안 뱃노래. 자배기에 물을 담고 바가지를 엎어 띄운 후, 한 손엔 나무젓가락을, 다른 한 손엔 똬리를 들고 바가지를 6박 장단으로 계속 쳐 나간다. 군음의 받음구는 “응-으응-왜 생겼나”이다. 메김구는 “웬수로다 웬수로다 알락조개가 웬수로다.” 등 여자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들로 되어 있다. 닻감는 소리는 바람의 방향에 맞추어 닻을 감아 올릴 때 하는 소리이며, 노젓는 소리는 발동기 대신에 노를 저어서 항해를 하던 시절에 노젓는 사람들이 일제히 힘을 모으기 위해 부르던 소리이다. 바디소리는 고기를 퍼담는 도구인 바디(그물 주머니가 달렸음)로 그물 속에 잡힌 고기들을 배 안으로 퍼담으면서 부르던 소리이다. 태질소리라고도 한다. 소흑산도의 술배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