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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현(管絃) 반주에 단형시를 좌창(坐唱:앉은 소리)하는 전통 성악곡. # 내용 가곡 남창(男唱)의 보유자인 전주의 한양수(韓良洙)는 석암 정경태(鄭坰兌) 문하인 송창섭(宋昌燮)과 고민순(高敏順) 및 정경태에게 가곡 수업을 했다. 현행 가곡은 하규일(河圭一)의 유음인 바, 1926년 이래 악보로 만들어져 오늘에 이른다. 박효관(朴孝寬), 최수보(崔壽甫) 문하인 하규일의 아악부(국립국악원 전신) 촉탁 시절(1926년 이후) 가곡 남창의 제자로는 아악부 1기생(박노아), 2기생(이병성), 3기생(이주환, 이석재, 박창진), 4기생(김기수, 김종희, 장사훈)이 있는 바, 정경태는 주로 이병성에게 가곡을 배웠다. 1969년 국가의 중요 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의 보유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이주환이며 이주환 문하의 전효준과 홍원기가 1975년도에...
가곡 (歌曲)
관현(管絃) 반주에 단형시를 좌창(坐唱:앉은 소리)하는 전통 성악곡. # 내용 가곡 남창(男唱)의 보유자인 전주의 한양수(韓良洙)는 석암 정경태(鄭坰兌) 문하인 송창섭(宋昌燮)과 고민순(高敏順) 및 정경태에게 가곡 수업을 했다. 현행 가곡은 하규일(河圭一)의 유음인 바, 1926년 이래 악보로 만들어져 오늘에 이른다. 박효관(朴孝寬), 최수보(崔壽甫) 문하인 하규일의 아악부(국립국악원 전신) 촉탁 시절(1926년 이후) 가곡 남창의 제자로는 아악부 1기생(박노아), 2기생(이병성), 3기생(이주환, 이석재, 박창진), 4기생(김기수, 김종희, 장사훈)이 있는 바, 정경태는 주로 이병성에게 가곡을 배웠다. 1969년 국가의 중요 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의 보유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이주환이며 이주환 문하의 전효준과 홍원기가 1975년도에...
대구광역시에서 지정, 보호하고 있는 여창가곡과 남창가곡. # 내용 1989년 6월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엔 ‘여창가곡’의 명칭으로 권측이(權側伊)를 그 예능 보유자로 인정하였으나 그 뒤 남창가곡의 고석태(남, 86세)를 새로 인정하고 명칭을 ‘가곡’으로 개칭하였다. 권측이는 정경태(鄭坰兌)와 그의 제자 유종구로부터 가곡을 학습했다. 고석태는 1950년대 말 당시 서울의 한국정악원에서 가곡에 입문하였고 1960년대 중간부터는 유종구와 정현두에게 가곡을 익혔다. 이들이 전승하고 있는 가곡은 여창 15곡과 남창 26곡이다. 정경태는 하규일(河圭一)과 이병성(李炳星)에게 가곡을 배웠다. - 『대구 문화재사랑』(대구광역시, 1997)
가곡 (歌曲)
대구광역시에서 지정, 보호하고 있는 여창가곡과 남창가곡. # 내용 1989년 6월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지정 당시엔 ‘여창가곡’의 명칭으로 권측이(權側伊)를 그 예능 보유자로 인정하였으나 그 뒤 남창가곡의 고석태(남, 86세)를 새로 인정하고 명칭을 ‘가곡’으로 개칭하였다. 권측이는 정경태(鄭坰兌)와 그의 제자 유종구로부터 가곡을 학습했다. 고석태는 1950년대 말 당시 서울의 한국정악원에서 가곡에 입문하였고 1960년대 중간부터는 유종구와 정현두에게 가곡을 익혔다. 이들이 전승하고 있는 가곡은 여창 15곡과 남창 26곡이다. 정경태는 하규일(河圭一)과 이병성(李炳星)에게 가곡을 배웠다. - 『대구 문화재사랑』(대구광역시, 1997)
고려시대에 전한 송나라의 사악(詞樂). # 내용 당악(唐樂)의 산사(散詞)에 속하는 곡의 하나로, 구조는 쌍조(雙調) 52자로 되어 있다. 이 곡의 악보는 현재 전하지 않고 오직 가사만이 『고려사』악지에 전하는데, 내용은 작가 유영(柳永)이 기녀(妓女)들에게 둘러싸여 향락하는 장면을 읊은 것이다. - 『고려사(高麗史)』 - 『당악연구』(차주환, 범학도서, 1976)
낭도사령 (浪淘沙令)
고려시대에 전한 송나라의 사악(詞樂). # 내용 당악(唐樂)의 산사(散詞)에 속하는 곡의 하나로, 구조는 쌍조(雙調) 52자로 되어 있다. 이 곡의 악보는 현재 전하지 않고 오직 가사만이 『고려사』악지에 전하는데, 내용은 작가 유영(柳永)이 기녀(妓女)들에게 둘러싸여 향락하는 장면을 읊은 것이다. - 『고려사(高麗史)』 - 『당악연구』(차주환, 범학도서, 1976)
조선 후기에 김시화(金時和)가 지은 기행문. # 내용 조선 후기에 김시화(金時和)가 지은 기행문. 이 기행문은 1853년(철종 4) 손한영(孫漢永)이 시문 4권과 함께 간행한 ≪죽하집 竹下集≫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묘향산은 해동(海東)의 명산으로 태백산이라고도 한다. 단군이 이 산의 단목(檀木) 아래 내려와서 동국(東國)의 초매(草昧)한 생민(生民)의 주인이 되었고, 휴정(休靜)이 산 속에서 수도하다가 임진란을 당하여 수제자 송운(松雲 : 惟政)·뇌묵(雷默)으로 하여금 국가를 지키게 한 인걸지(人傑地)로서 더욱 빛이 난 산으로 유명하다. 그 경치가 금강산보다 뛰어나고 그 영특하고 기이한 자취가 보통이 아니어서 예로부터 선산(仙山)이라고 일컬어진다. 김시화가 변방을 다스리던 중 중추 16일 향산사(香山寺)를 순찰하러 가는 기회에...
묘향산기 (妙香山記)
조선 후기에 김시화(金時和)가 지은 기행문. # 내용 조선 후기에 김시화(金時和)가 지은 기행문. 이 기행문은 1853년(철종 4) 손한영(孫漢永)이 시문 4권과 함께 간행한 ≪죽하집 竹下集≫에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묘향산은 해동(海東)의 명산으로 태백산이라고도 한다. 단군이 이 산의 단목(檀木) 아래 내려와서 동국(東國)의 초매(草昧)한 생민(生民)의 주인이 되었고, 휴정(休靜)이 산 속에서 수도하다가 임진란을 당하여 수제자 송운(松雲 : 惟政)·뇌묵(雷默)으로 하여금 국가를 지키게 한 인걸지(人傑地)로서 더욱 빛이 난 산으로 유명하다. 그 경치가 금강산보다 뛰어나고 그 영특하고 기이한 자취가 보통이 아니어서 예로부터 선산(仙山)이라고 일컬어진다. 김시화가 변방을 다스리던 중 중추 16일 향산사(香山寺)를 순찰하러 가는 기회에...
시조(詩調)를 관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한 성악곡. # 내용 1969년 11월 중요 무형 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1969년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소남(韶南) 이주환(李珠煥)이, 1973년에는 월하(月荷) 김덕순(金德順)이, 그리고 1975년에는 청운(淸韻) 홍원기(洪元基)와 설곡(雪谷) 전효준(田孝準)이 인정되었으나 모두 작고하였다. 1998년에 김경배(金景培)가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가곡 (歌曲)
시조(詩調)를 관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한 성악곡. # 내용 1969년 11월 중요 무형 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1969년 중요 무형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에는 소남(韶南) 이주환(李珠煥)이, 1973년에는 월하(月荷) 김덕순(金德順)이, 그리고 1975년에는 청운(淸韻) 홍원기(洪元基)와 설곡(雪谷) 전효준(田孝準)이 인정되었으나 모두 작고하였다. 1998년에 김경배(金景培)가 보유자 인정을 받았다.
인천광역시에서 지정, 보호한 단형시를 관현 반주에 맞춰 좌창하는 전통 성악곡. # 내용 1995년 11월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좌창(앉아서 노래함)하는 전통 성악곡에는 가곡 이외에도 시조, 가사, 서도 좌창 등이 있지만, 가곡은 거문고, 가야금, 해금, 세피리, 대금, 단소, 장구의 각각 단잽이들로 구성된 갖춘 반주를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우선 구별된다. 단형시(單形詩) 중에서도 시조시(時調詩)가 기본이나, 봉황대상[羽編], 십재를(十載:言弄), 석인이(昔人:編樂) 등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가곡의 기본틀은 초장, 2장, 3장, 중여음, 4장, 5장, 대여음이다. 중여음과 대여음은 노래 없이 기악만 연주한다. 평시조의 초장 전반부는 가곡의 초장에서, 초장 후반부는 가곡의 2장, 중장은 가곡의...
가곡 (歌曲)
인천광역시에서 지정, 보호한 단형시를 관현 반주에 맞춰 좌창하는 전통 성악곡. # 내용 1995년 11월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좌창(앉아서 노래함)하는 전통 성악곡에는 가곡 이외에도 시조, 가사, 서도 좌창 등이 있지만, 가곡은 거문고, 가야금, 해금, 세피리, 대금, 단소, 장구의 각각 단잽이들로 구성된 갖춘 반주를 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우선 구별된다. 단형시(單形詩) 중에서도 시조시(時調詩)가 기본이나, 봉황대상[羽編], 십재를(十載:言弄), 석인이(昔人:編樂) 등은 칠언율시(七言律詩)이다. 가곡의 기본틀은 초장, 2장, 3장, 중여음, 4장, 5장, 대여음이다. 중여음과 대여음은 노래 없이 기악만 연주한다. 평시조의 초장 전반부는 가곡의 초장에서, 초장 후반부는 가곡의 2장, 중장은 가곡의...
범패(梵唄)의 짓소리 곡목. # 내용 영산재(靈山齋)에 쓰인다. 처음 시련(侍輦) 터에서 부처를 모신 가마(輦)를 도량(道場)으로 운반해 들여오는 시련절차가 있고, 다음에 이 재를 올리게 된 연유를 알리는 재대령(齋對靈)과, 유혼(幽魂)을 씻겨주고 옷을 입혀주는 관욕(灌浴)절차가 따른다. 다음에 부처를 그린 큰 괘불(掛佛)을 여러 사람이 법당에서 메고 나와 도량을 도는 괘불이운(掛佛移運) 절차가 있는데, 이 때 「거령산」을 짓소리로 부른다. 합창으로 처음 「산화락(散花落)」을 세번 빠르게 부른 뒤, ‘나무영산회상일체제불제대보살마하살(南無靈山會上一切諸佛諸大菩薩摩訶薩)’의 사설을 짓소리 「인성(引聲)」과 같은 선율로 부른다. 그러나『석문의범(釋門儀範)』에는 ‘산화락 (세번)나무영산회상불보살(散花落 (三說)...
거령산 (擧靈山)
범패(梵唄)의 짓소리 곡목. # 내용 영산재(靈山齋)에 쓰인다. 처음 시련(侍輦) 터에서 부처를 모신 가마(輦)를 도량(道場)으로 운반해 들여오는 시련절차가 있고, 다음에 이 재를 올리게 된 연유를 알리는 재대령(齋對靈)과, 유혼(幽魂)을 씻겨주고 옷을 입혀주는 관욕(灌浴)절차가 따른다. 다음에 부처를 그린 큰 괘불(掛佛)을 여러 사람이 법당에서 메고 나와 도량을 도는 괘불이운(掛佛移運) 절차가 있는데, 이 때 「거령산」을 짓소리로 부른다. 합창으로 처음 「산화락(散花落)」을 세번 빠르게 부른 뒤, ‘나무영산회상일체제불제대보살마하살(南無靈山會上一切諸佛諸大菩薩摩訶薩)’의 사설을 짓소리 「인성(引聲)」과 같은 선율로 부른다. 그러나『석문의범(釋門儀範)』에는 ‘산화락 (세번)나무영산회상불보살(散花落 (三說)...
승려 설암(雪嵒)이 지은 연대 미상의 기행문. # 개설 1권. 한문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 글은 설암이 묘향산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를 샅샅이 누비면서 자세히 쓴 글이다. # 내용 묘향산은 장백산(長白山)의 지맥으로 압록강 남쪽 언덕과 평양부(平壤府)의 북쪽에 있어서 요동(遼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이 높고 큰 것이 비길 데가 없다. 땅에는 향나무가 많아서 겨울에도 푸르러 신선과 불도(佛徒)의 옛 자취가 많기 때문에, 묘향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고 설암은 적고 있다. 묘향산에는 동방에서 제일 크다는 안심사(安心寺)가 있다. 고려 때에 황주(黃州)고을 사람인 승려 탐밀(探密)이 지조가 몹시 곧고 운치가 높아서 세속을 저버리고 도승들의 참된 발자취를 탐구하였다. 그러다가 묘향산에 와서 암자를 지었다. 이것이...
묘향산지 (妙香山誌)
승려 설암(雪嵒)이 지은 연대 미상의 기행문. # 개설 1권. 한문필사본. 규장각 도서에 있다. 이 글은 설암이 묘향산 봉우리마다 골짜기마다를 샅샅이 누비면서 자세히 쓴 글이다. # 내용 묘향산은 장백산(長白山)의 지맥으로 압록강 남쪽 언덕과 평양부(平壤府)의 북쪽에 있어서 요동(遼東)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이 높고 큰 것이 비길 데가 없다. 땅에는 향나무가 많아서 겨울에도 푸르러 신선과 불도(佛徒)의 옛 자취가 많기 때문에, 묘향산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라고 설암은 적고 있다. 묘향산에는 동방에서 제일 크다는 안심사(安心寺)가 있다. 고려 때에 황주(黃州)고을 사람인 승려 탐밀(探密)이 지조가 몹시 곧고 운치가 높아서 세속을 저버리고 도승들의 참된 발자취를 탐구하였다. 그러다가 묘향산에 와서 암자를 지었다. 이것이...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 내용 높이 2.53m.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팔각의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좌상으로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잃었으며 전체적으로 표면의 마모가 심한 편이다. 머리에는 높은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표현되었다. 얼굴은 계란형의 갸름한 윤곽이며, 이목구비의 세부는 살펴보기 어렵다. 넓게 벌어진 어깨에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치고 있다. 그리고 법의 깃이 넓게 트인 가슴에는 의복이 표현되었다.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대동사지 석조 여래 좌상 (大同寺址 石造 如來 坐像)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 내용 높이 2.53m.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팔각의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좌상으로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잃었으며 전체적으로 표면의 마모가 심한 편이다. 머리에는 높은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표현되었다. 얼굴은 계란형의 갸름한 윤곽이며, 이목구비의 세부는 살펴보기 어렵다. 넓게 벌어진 어깨에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치고 있다. 그리고 법의 깃이 넓게 트인 가슴에는 의복이 표현되었다.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김동인(金東仁)이 지은 단편소설. 이 작품은 당시 신여성 문학인이었던 김명순(金明淳)을 모델로 하였다고 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 여인의 성장과정을 통해 개화의 물결과 자유연애의 이름 아래, 도덕적으로 타락해가는 사회와 가정과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김연실은 평양감영 이속이었던 김여찰의 소실 출생으로, 적모(嫡母)의 천덕꾸러기로 성장한다. 이러한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명소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운다. 학교가 문을 닫자 일본어를 배워 동경유학길에 오르고자 한다. 이때 일본어 개인교사에게 처음으로 정조를 빼앗기지만, 남녀관계나 연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그 뒤 동경에 가서 예술과 문학에 눈을 뜨고 문학과 연애를 불가결한 관계로 파악한다. 그녀는 자의적으로 유학생들과...
김연실전 (金姸實傳)
김동인(金東仁)이 지은 단편소설. 이 작품은 당시 신여성 문학인이었던 김명순(金明淳)을 모델로 하였다고 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한 여인의 성장과정을 통해 개화의 물결과 자유연애의 이름 아래, 도덕적으로 타락해가는 사회와 가정과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김연실은 평양감영 이속이었던 김여찰의 소실 출생으로, 적모(嫡母)의 천덕꾸러기로 성장한다. 이러한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명소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배운다. 학교가 문을 닫자 일본어를 배워 동경유학길에 오르고자 한다. 이때 일본어 개인교사에게 처음으로 정조를 빼앗기지만, 남녀관계나 연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그 뒤 동경에 가서 예술과 문학에 눈을 뜨고 문학과 연애를 불가결한 관계로 파악한다. 그녀는 자의적으로 유학생들과...
경상북도 경주시 낭산(狼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마애불. 불상군. # 내용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88㎝. 중앙의 본존불은 경주 남산의 불곡(佛谷) 불상처럼 얕은 감실(龕室) 속에 부조된 좌상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는 거의 표현되지 않았으며, 둥글고 비만한 얼굴은 광대뼈가 나오고 살짝 미소를 띤 매우 독특한 모습이다. 넓은 어깨에 목은 거의 표현되지 않은 움츠린 자세이다. 옷은 통견(通肩)인데, 왼쪽 어깨 위에서 한 번 뒤집혀 있고, 드러난 가슴에 두 줄의 옷주름선이 비스듬히 표현되었다. 또한 군의(裙衣)를 묶은 띠매듭이 보이며, 군의가 두 무릎을 덮어 발이 드러나지 않는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원형으로 음각(陰刻)되었다. 좌우의 협시상들은 한 발은 안쪽으로 접고 다른 발은 약간 편 자세...
경주 낭산 마애보살삼존 좌상 (慶州 狼山 磨崖菩薩三尊 坐像)
경상북도 경주시 낭산(狼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마애불. 불상군. # 내용 198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88㎝. 중앙의 본존불은 경주 남산의 불곡(佛谷) 불상처럼 얕은 감실(龕室) 속에 부조된 좌상이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는 거의 표현되지 않았으며, 둥글고 비만한 얼굴은 광대뼈가 나오고 살짝 미소를 띤 매우 독특한 모습이다. 넓은 어깨에 목은 거의 표현되지 않은 움츠린 자세이다. 옷은 통견(通肩)인데, 왼쪽 어깨 위에서 한 번 뒤집혀 있고, 드러난 가슴에 두 줄의 옷주름선이 비스듬히 표현되었다. 또한 군의(裙衣)를 묶은 띠매듭이 보이며, 군의가 두 무릎을 덮어 발이 드러나지 않는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원형으로 음각(陰刻)되었다. 좌우의 협시상들은 한 발은 안쪽으로 접고 다른 발은 약간 편 자세...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괘불도. 법주사 괘불탱은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괘불도이다.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로 13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면에 보살 형태의 본존을 단독으로 그린 독존도 형식의 괘불도이다. 1766년에 두훈을 비롯한 13명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화면에 가득 찬 본존불은 둥근 얼굴에 화려한 장식의 보관을 쓰고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배경으로 서 있다. 몸에는 꽃무늬가 시문된 흰색의 군의를 입고 두 손으로 꽃가지를 받들고 있다. 이 작품은 17, 18세기에 유행하던 보관형 석가모니괘불도로서 조선 후기 괘불도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조선후기의 괘불도 가운데 법주사 괘불도처럼 보관을 쓰고 꽃을 든 존상을 표현한 작품은 부여 무량사 괘불도(1627년)를 시작으로 장곡사 괘불도...
법주사 괘불탱 (法住寺 掛佛幀▽)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괘불도. 법주사 괘불탱은 충청북도 보은군 법주사에 소장된 조선 후기의 괘불도이다. 199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로 13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면에 보살 형태의 본존을 단독으로 그린 독존도 형식의 괘불도이다. 1766년에 두훈을 비롯한 13명의 화승이 제작하였다. 화면에 가득 찬 본존불은 둥근 얼굴에 화려한 장식의 보관을 쓰고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배경으로 서 있다. 몸에는 꽃무늬가 시문된 흰색의 군의를 입고 두 손으로 꽃가지를 받들고 있다. 이 작품은 17, 18세기에 유행하던 보관형 석가모니괘불도로서 조선 후기 괘불도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조선후기의 괘불도 가운데 법주사 괘불도처럼 보관을 쓰고 꽃을 든 존상을 표현한 작품은 부여 무량사 괘불도(1627년)를 시작으로 장곡사 괘불도...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높이 5m의 마애불. 신라시대의 삼화령석조미륵불의상(三花嶺石造彌勒佛倚像)과 함께 매우 희귀한 의상(倚像)에 속하는 작품이다. 연꽃의 대좌 위에 두 다리를 걸친 자세이다. 두 다리를 한껏 벌리고 앉아 있어서 두 다리가 각진 것처럼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직각에 가까운 형태는 어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무릎에서 팔로 이어지는 선을 연장하면 직삼각형이 만들어진다. 즉, 기하학적인 구도로 되어 있다. 낮은 육계(肉髻)와 규칙적이면서도 특이한 나발(螺髮)·계주(髻珠) 등도 기하학적이다. 얼굴은 갸름하면서도 원만하다. 하지만 치켜 올라간 눈초리, 길면서 빈약한 코, 작은 입, 정면을 향하고 있는 도식적인 귀, 군살이 진 턱 등에는...
보은 법주사 마애여래 의좌상 (報恩 法住寺 磨崖如來 倚坐像)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높이 5m의 마애불. 신라시대의 삼화령석조미륵불의상(三花嶺石造彌勒佛倚像)과 함께 매우 희귀한 의상(倚像)에 속하는 작품이다. 연꽃의 대좌 위에 두 다리를 걸친 자세이다. 두 다리를 한껏 벌리고 앉아 있어서 두 다리가 각진 것처럼 보이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직각에 가까운 형태는 어깨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무릎에서 팔로 이어지는 선을 연장하면 직삼각형이 만들어진다. 즉, 기하학적인 구도로 되어 있다. 낮은 육계(肉髻)와 규칙적이면서도 특이한 나발(螺髮)·계주(髻珠) 등도 기하학적이다. 얼굴은 갸름하면서도 원만하다. 하지만 치켜 올라간 눈초리, 길면서 빈약한 코, 작은 입, 정면을 향하고 있는 도식적인 귀, 군살이 진 턱 등에는...
전래의 거문고 독주곡 형식. # 내용 전래의 거문고 독주곡 형식. 1984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 강동일(姜東日)은 19세에 방금선(方錦善)의 형부인 유성옥(柳成玉)에게 1개월간 거문고 풍류를 배우고, 20세 때 방금선을 찾아가 1개월간 거문고산조 신쾌동(申快童)류와 한갑득(韓甲得)류를 학습했다. 32세 때 성금연(成錦鳶)에게 가야금산조를 익혔고, 그 뒤 조금앵 국악원에서 3년간, 임춘앵 국극단에서 10년간, 김진진(金眞眞) 일행과 3년, 박미숙 단체에서 1년 등 창극 반주를 했다. 1960년엔 김윤덕(金允德)에게 가야금을 사사했고 1963년엔 아쟁을 독학으로 연마하기도 했다. 1980년에 전주대사습놀이에 출전하여 기악부 장원을 차지했으며, 1984년에 제20회...
거문고산조 (거문고散調)
전래의 거문고 독주곡 형식. # 내용 전래의 거문고 독주곡 형식. 1984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거문고산조 예능보유자 강동일(姜東日)은 19세에 방금선(方錦善)의 형부인 유성옥(柳成玉)에게 1개월간 거문고 풍류를 배우고, 20세 때 방금선을 찾아가 1개월간 거문고산조 신쾌동(申快童)류와 한갑득(韓甲得)류를 학습했다. 32세 때 성금연(成錦鳶)에게 가야금산조를 익혔고, 그 뒤 조금앵 국악원에서 3년간, 임춘앵 국극단에서 10년간, 김진진(金眞眞) 일행과 3년, 박미숙 단체에서 1년 등 창극 반주를 했다. 1960년엔 김윤덕(金允德)에게 가야금을 사사했고 1963년엔 아쟁을 독학으로 연마하기도 했다. 1980년에 전주대사습놀이에 출전하여 기악부 장원을 차지했으며, 1984년에 제20회...
조선 후기에 이기경(李基慶)이 지은 가사. 이 작품은 작자가 서학(西學), 곧 천주교를 금지하는 일에 앞장서다가 1791년(정조 15)함경도 경원(慶源)에 유배되어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그 무렵에 지었다고 한다. 작자는 이 작품의 제작동기를, 백성과 선비들이 그 마음과 학문을 사사로이 하여 사설(邪說)이 점차 성해가고 있으므로, 그러한 좋지 못한 풍습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 내용 내용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단은 서사(緖詞)로서 인생의 고달픔을 말하고 분발하여 구도(求道)의 길을 떠날 것을 노래하였다. 제2단은 도교의 허망함과 불교의 허무함 및 천주교의 배덕(背德)이 괴이한 것임을 노래하였다. 제3단은 해동군자국인 우리 나라를 예찬하면서 이웃과 친척이 화목함이 곧 신선계이며, 현세에서의...
낭유사 (浪遊詞)
조선 후기에 이기경(李基慶)이 지은 가사. 이 작품은 작자가 서학(西學), 곧 천주교를 금지하는 일에 앞장서다가 1791년(정조 15)함경도 경원(慶源)에 유배되어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였는데, 그 무렵에 지었다고 한다. 작자는 이 작품의 제작동기를, 백성과 선비들이 그 마음과 학문을 사사로이 하여 사설(邪說)이 점차 성해가고 있으므로, 그러한 좋지 못한 풍습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 내용 내용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단은 서사(緖詞)로서 인생의 고달픔을 말하고 분발하여 구도(求道)의 길을 떠날 것을 노래하였다. 제2단은 도교의 허망함과 불교의 허무함 및 천주교의 배덕(背德)이 괴이한 것임을 노래하였다. 제3단은 해동군자국인 우리 나라를 예찬하면서 이웃과 친척이 화목함이 곧 신선계이며, 현세에서의...
조선 후기에 박치복(朴致馥)이 지은 악부시. 해동악부(海東樂府) 계열의 작품으로 일명 ‘만성악부(晩醒樂府)’라고도 한다. 1896년 목활자본으로 간행된 『만성집(晩醒集)』 13권 6책 중 제3권 1쪽에서 45쪽에 걸쳐 실려 있으며, 작자 자신이 쓴 대동속악부병서(大東續樂府幷序)가 첫머리에 첨부되어 있다. 병서의 기록에 의하면 이 작품은 그전부터 있어온 「동악부」[^1]라는 작품을 계승하여 『대동악부』에서 다루지 않은 조선시대의 사실을 계속해서 작품화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규장각 도서 · 장서각 도서에 있고 국회도서관 · 국립중앙도서관과 부산대학교 · 서울대학교 · 연세대학교 도서관 및 미국 하버드대학 연경학사(燕京學社) 등에 폭넓게 유포 ·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에는...
대동속악부 (大東續樂府)
조선 후기에 박치복(朴致馥)이 지은 악부시. 해동악부(海東樂府) 계열의 작품으로 일명 ‘만성악부(晩醒樂府)’라고도 한다. 1896년 목활자본으로 간행된 『만성집(晩醒集)』 13권 6책 중 제3권 1쪽에서 45쪽에 걸쳐 실려 있으며, 작자 자신이 쓴 대동속악부병서(大東續樂府幷序)가 첫머리에 첨부되어 있다. 병서의 기록에 의하면 이 작품은 그전부터 있어온 「동악부」[^1]라는 작품을 계승하여 『대동악부』에서 다루지 않은 조선시대의 사실을 계속해서 작품화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규장각 도서 · 장서각 도서에 있고 국회도서관 · 국립중앙도서관과 부산대학교 · 서울대학교 · 연세대학교 도서관 및 미국 하버드대학 연경학사(燕京學社) 등에 폭넓게 유포 ·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연세대학교 도서관에는...
전라남도. 거문도의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노동요의 하나. # 내용 전라남도 거문도의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노동요의 하나. <고사소리> · <술비소리> · <놋소리> · <월래소리> · <가래소리> · <썰소리>가 있다. <고사소리>는 고기잡이 배가 떠나기 전에 풍어(豊漁)를 비는 의식요인데, 자진모리장단으로 길게 엮어 부른다. <술비소리>는 배의 밧줄을 꼬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이 소리를 <술비소리>라고 함은 ‘에이야라 술비야’ 하고 받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소리는 3분박(三分拍)의 보통 빠른 3박자로 세마치장단에 맞는다. 선소리꾼이 두 장단을 메기면 어부들이 ‘에이야라 술비야’ 하고 받는다. 선율의 구성음을 편의상 서양음악의 계이름으로 표시한다면 ‘솔 · 라 · 도 · 레 · 미’로...
거문도뱃노래 (巨文島뱃노래)
전라남도. 거문도의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노동요의 하나. # 내용 전라남도 거문도의 어민들이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노동요의 하나. <고사소리> · <술비소리> · <놋소리> · <월래소리> · <가래소리> · <썰소리>가 있다. <고사소리>는 고기잡이 배가 떠나기 전에 풍어(豊漁)를 비는 의식요인데, 자진모리장단으로 길게 엮어 부른다. <술비소리>는 배의 밧줄을 꼬면서 부르는 소리이다. 이 소리를 <술비소리>라고 함은 ‘에이야라 술비야’ 하고 받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소리는 3분박(三分拍)의 보통 빠른 3박자로 세마치장단에 맞는다. 선소리꾼이 두 장단을 메기면 어부들이 ‘에이야라 술비야’ 하고 받는다. 선율의 구성음을 편의상 서양음악의 계이름으로 표시한다면 ‘솔 · 라 · 도 · 레 · 미’로...
1881년(고종 18)에, 편찬된 작자 미상의 야사류 고전소설. 「동국사기」는 1881년(고종 18)에 편찬된 작자 미상의 야사류 고전소설이다. 조선 제1대 왕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건국 설화부터 제21대 왕 영조(英祖)까지의 역대 왕과 장수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년체(紀年體)로 엮은 역사소설이다.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은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의 진행 과정을 순차적으로 전개하면서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명장인 이순신에 대한 기술이 소략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전란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수군 대장이 되어 바다로 침입한 왜적들을 무찌르는데, 왜적의 주검이 바다에 가득하였다고만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순신은 왜적의 총에 맞아 죽는다. 반면 명에...
동국사기 (東國史記)
1881년(고종 18)에, 편찬된 작자 미상의 야사류 고전소설. 「동국사기」는 1881년(고종 18)에 편찬된 작자 미상의 야사류 고전소설이다. 조선 제1대 왕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건국 설화부터 제21대 왕 영조(英祖)까지의 역대 왕과 장수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년체(紀年體)로 엮은 역사소설이다.작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은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의 진행 과정을 순차적으로 전개하면서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명장인 이순신에 대한 기술이 소략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전란이 시작되자 이순신은 수군 대장이 되어 바다로 침입한 왜적들을 무찌르는데, 왜적의 주검이 바다에 가득하였다고만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이순신은 왜적의 총에 맞아 죽는다. 반면 명에...
1906년에 지은 작자 미상의 신소설. #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올바른 정부조직이란 ‘나라의 근본을 굳게 하고 도탄에 든 백성을 무휼’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일본의 통감정치에 의한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등 계몽적인 설득과 우국지정이 충만한 작품으로서, 국권상실 직전까지도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던 『대한매일신보』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물론, 단편적인 시국 이야기의 나열에 그쳐 소설적인 짜임새는 약하지만, 언어착각에 의한 전개방법으로 우매한 계층에 대한 계몽성을 고취하였다. 「시사문답」 · 「소경과 앉은뱅이 문답」과 더불어 투철한 민족의식적 주제 및 풍자토론 · 시사문답이라는 서술양식의 시도를 보인 점 등, 개화기 문학의 한 유형을 형성하는 작품으로서 의의를...
거부오해 (車夫誤解)
1906년에 지은 작자 미상의 신소설. #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올바른 정부조직이란 ‘나라의 근본을 굳게 하고 도탄에 든 백성을 무휼’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일본의 통감정치에 의한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등 계몽적인 설득과 우국지정이 충만한 작품으로서, 국권상실 직전까지도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였던 『대한매일신보』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물론, 단편적인 시국 이야기의 나열에 그쳐 소설적인 짜임새는 약하지만, 언어착각에 의한 전개방법으로 우매한 계층에 대한 계몽성을 고취하였다. 「시사문답」 · 「소경과 앉은뱅이 문답」과 더불어 투철한 민족의식적 주제 및 풍자토론 · 시사문답이라는 서술양식의 시도를 보인 점 등, 개화기 문학의 한 유형을 형성하는 작품으로서 의의를...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법주사 팔상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의 사리장엄구. # 내용 1605년(선조 38) 작. 대리석 합 높이 6.1㎝, 지름 10.6㎝이며, 은합 높이 3.3㎝.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1968년 9월 팔상전을 해체, 수리하던 중 심초석(心礎石)에 마련된 네모꼴의 2단사리공(상단 : 29.7×29.7×6.5㎝, 하단 : 17.8×17.2×22.7㎝) 안에서 원형 그대로 발견되었다. 사리공은 한 변의 길이가 23.3㎝, 두께가 4.6㎝인 벽돌로 덮여 있었으며 뚜껑의 중앙에는 지름 6.0㎝의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아마도 이 구멍을 통하여 고리가 닫혀 있었던 듯하다. 사리공 안에서는 네 벽과 위를 덮었던 동판(銅版 : 21.2×15㎝)이 5매 발견되었는데,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팔상전의 건립 경위를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사리공 바닥에는 비단보자기로...
법주사 팔상전 사리장엄구 (法住寺 捌相殿 舍利莊嚴具)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법주사 팔상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의 사리장엄구. # 내용 1605년(선조 38) 작. 대리석 합 높이 6.1㎝, 지름 10.6㎝이며, 은합 높이 3.3㎝.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1968년 9월 팔상전을 해체, 수리하던 중 심초석(心礎石)에 마련된 네모꼴의 2단사리공(상단 : 29.7×29.7×6.5㎝, 하단 : 17.8×17.2×22.7㎝) 안에서 원형 그대로 발견되었다. 사리공은 한 변의 길이가 23.3㎝, 두께가 4.6㎝인 벽돌로 덮여 있었으며 뚜껑의 중앙에는 지름 6.0㎝의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아마도 이 구멍을 통하여 고리가 닫혀 있었던 듯하다. 사리공 안에서는 네 벽과 위를 덮었던 동판(銅版 : 21.2×15㎝)이 5매 발견되었는데,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팔상전의 건립 경위를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사리공 바닥에는 비단보자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