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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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는 전통 음악에 기초한 신국악 분야를 개척한 작곡가이자 교육자이다. 1936년에 이왕직아악부 아악수, 1953년에 국립국악원 장악과장, 1955년에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 교무주임 겸 악과교재 편찬담당, 1962년에 국립국악원 악사장 겸 국악사양성소 부소장, 1972년에 국립국악원장, 1977년에 국립국악고등학교장, 1984년에 국립국악원 연주단 사범을 역임하였다. 1939년 이왕직의 신곡 공모에 당선된 이후 1986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신국악을 작곡하였다.
김기수 (金琪洙)
김기수는 전통 음악에 기초한 신국악 분야를 개척한 작곡가이자 교육자이다. 1936년에 이왕직아악부 아악수, 1953년에 국립국악원 장악과장, 1955년에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 교무주임 겸 악과교재 편찬담당, 1962년에 국립국악원 악사장 겸 국악사양성소 부소장, 1972년에 국립국악원장, 1977년에 국립국악고등학교장, 1984년에 국립국악원 연주단 사범을 역임하였다. 1939년 이왕직의 신곡 공모에 당선된 이후 1986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신국악을 작곡하였다.
세악은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 뒤쪽에서 연주하였다. 세악수는 풍류방 등에서 별도의 음악 활동을 하였고, 근대에 세악수가 장악원에 소속되고, 풍류방 음악이 정악으로 불리면서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세악이 실내악 규모의 악기 편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세피리를 사용하고 대금은 주로 저취와 평취 위주로 연주하며, 장구는 채로 변죽을 울리는 주법을 사용한다. 1980년대까지는 연주할 때 속옷으로 바지저고리를 입고 겉옷으로 두루마기를 입었다.
세악 (細樂)
세악은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 뒤쪽에서 연주하였다. 세악수는 풍류방 등에서 별도의 음악 활동을 하였고, 근대에 세악수가 장악원에 소속되고, 풍류방 음악이 정악으로 불리면서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세악이 실내악 규모의 악기 편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세피리를 사용하고 대금은 주로 저취와 평취 위주로 연주하며, 장구는 채로 변죽을 울리는 주법을 사용한다. 1980년대까지는 연주할 때 속옷으로 바지저고리를 입고 겉옷으로 두루마기를 입었다.
악보는 음악의 곡조를 일정한 기호·부호·용어를 사용하여 기록한 문서이다. 무형의 음악 정보를 시각화한 악보는 음높이와 음길이부터 음의 강약, 연주법, 빠르기 등으로 점차 확장되어 왔다. 한국에서는 15세기 이후 정간보를 중심으로 기보 체계가 발전했으며, 20세기에는 정간보 정비와 오선악보 채보가 병행되었다. 고악보는 편찬 시기와 기보 방식의 차이를 기준으로 정의되어 왔고, 해독 과정에서는 음고와 시가 해석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악보 (樂譜)
악보는 음악의 곡조를 일정한 기호·부호·용어를 사용하여 기록한 문서이다. 무형의 음악 정보를 시각화한 악보는 음높이와 음길이부터 음의 강약, 연주법, 빠르기 등으로 점차 확장되어 왔다. 한국에서는 15세기 이후 정간보를 중심으로 기보 체계가 발전했으며, 20세기에는 정간보 정비와 오선악보 채보가 병행되었다. 고악보는 편찬 시기와 기보 방식의 차이를 기준으로 정의되어 왔고, 해독 과정에서는 음고와 시가 해석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중영산은 영산회상 계통 악곡의 두 번째 곡으로 5장으로 구성되었다. 원곡인 상영산을 4도 높게 변주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현악영산회상과 평조회상은 악보에 기록된 한장단 20박으로 연주하며, 관악영산회상은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준박과 원박으로 구분하여 연주한다.
중영산 (中靈山)
중영산은 영산회상 계통 악곡의 두 번째 곡으로 5장으로 구성되었다. 원곡인 상영산을 4도 높게 변주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현악영산회상과 평조회상은 악보에 기록된 한장단 20박으로 연주하며, 관악영산회상은 악보를 그대로 연주하지 않고, 준박과 원박으로 구분하여 연주한다.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유래된 가로로 눕힌 채 연주하는 현악기로 고정된 괘를 갖고 있다. 고구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거문고의 '거문(玄)'은 고구려를 뜻하며, '고(琴)'는 현악기의 고어이다. 거문고는 고구려의 현악기로 해석되며, 삼국사기의 현학래무(玄鶴來舞)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거문고의 한쪽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반대쪽은 바닥에 놓고 연주하는 자세의 특징은 온돌 문화가 발달한 고구려의 생활 방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거문고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유래된 가로로 눕힌 채 연주하는 현악기로 고정된 괘를 갖고 있다. 고구려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궁중과 민간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거문고의 '거문(玄)'은 고구려를 뜻하며, '고(琴)'는 현악기의 고어이다. 거문고는 고구려의 현악기로 해석되며, 삼국사기의 현학래무(玄鶴來舞)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거문고의 한쪽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반대쪽은 바닥에 놓고 연주하는 자세의 특징은 온돌 문화가 발달한 고구려의 생활 방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경문은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이다. 그는 백두산정계비 설립, 국경 분쟁 사건, 무기 수입 등 조선과 청(淸) 사이의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이러한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하였다.
김경문 (金慶門)
김경문은 조선 후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사안을 담당한 역관이다. 그는 백두산정계비 설립, 국경 분쟁 사건, 무기 수입 등 조선과 청(淸) 사이의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는 데 많은 활약을 하였으며, 이러한 외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통문관지(通門館志)』를 편찬하였다.
강재항은 조선 후기, 선공감역, 한성주부, 회인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소론의 학통과 인맥을 이었으나 동시에 남인과도 교류하며 학문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취하였다. 관직에 나가서는 국가의 모순된 제도를 지적하고 민생을 돌보았으며, 물러나서는 후진 양성에 힘썼다. 여러 저술 가운데, 『동사평증(東史評證)』은 단군에서 고려시대까지 전 역사를 성리학적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사론서(史論書)로 평가받고 있다..
강재항 (姜再恒)
강재항은 조선 후기, 선공감역, 한성주부, 회인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소론의 학통과 인맥을 이었으나 동시에 남인과도 교류하며 학문적으로 개방된 입장을 취하였다. 관직에 나가서는 국가의 모순된 제도를 지적하고 민생을 돌보았으며, 물러나서는 후진 양성에 힘썼다. 여러 저술 가운데, 『동사평증(東史評證)』은 단군에서 고려시대까지 전 역사를 성리학적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 사론서(史論書)로 평가받고 있다..
안용복은 조선 후기 어부이다. 두 차례 일본으로 가서 호키주 태수와 에도 막부를 상대로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의 불법 고기잡이에 항의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조정으로부터 외교적 분쟁을 일으켰다는 범죄자로 비난을 받았으나, 18세기 이후 재조명되어 근대에는 애국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강호 수역의 상징적인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안용복 (安龍福)
안용복은 조선 후기 어부이다. 두 차례 일본으로 가서 호키주 태수와 에도 막부를 상대로 울릉도와 독도에서 일본의 불법 고기잡이에 항의하여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조정으로부터 외교적 분쟁을 일으켰다는 범죄자로 비난을 받았으나, 18세기 이후 재조명되어 근대에는 애국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강호 수역의 상징적인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안중관은 조선 후기 세자익위사, 공조좌랑, 홍천과 제천의 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김창흡에게 수학하며 성리학을 비롯해, 문학·경세학 등에도 조예가 깊어 당대 대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고, 노론계 문인이나 여항 시인, 이름난 화가들과도 교유하였다.
안중관 (安重觀)
안중관은 조선 후기 세자익위사, 공조좌랑, 홍천과 제천의 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김창흡에게 수학하며 성리학을 비롯해, 문학·경세학 등에도 조예가 깊어 당대 대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고, 노론계 문인이나 여항 시인, 이름난 화가들과도 교유하였다.
이민적은 조선 후기 암행어사, 관찰사, 한성부우윤,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간원(諫院)으로서 정치‧경제‧군사 등 국가의 모순된 제도를 지적하였고, 암행어사나 관찰사로 파견되어 지방관들의 폐해와 지방 운영의 폐단을 보고하는 등 국정 전반에 관한 다양한 소차(疏箚)를 남겼다.
이민적 (李敏迪)
이민적은 조선 후기 암행어사, 관찰사, 한성부우윤,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그는 간원(諫院)으로서 정치‧경제‧군사 등 국가의 모순된 제도를 지적하였고, 암행어사나 관찰사로 파견되어 지방관들의 폐해와 지방 운영의 폐단을 보고하는 등 국정 전반에 관한 다양한 소차(疏箚)를 남겼다.
이병성은 조선 후기 공조정랑, 진산군수, 종부시 주부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창협의 문인으로, 형인 이병연과 함께 시문‧글씨에 능하여 김창흡에게 문학적 소양을 칭찬받았으며, 겸재 정선 등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다양한 시문을 남겼다.
이병성 (李秉成)
이병성은 조선 후기 공조정랑, 진산군수, 종부시 주부 등을 지낸 문신이다. 김창협의 문인으로, 형인 이병연과 함께 시문‧글씨에 능하여 김창흡에게 문학적 소양을 칭찬받았으며, 겸재 정선 등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고 다양한 시문을 남겼다.
이식은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주로 숙종 대에 남인 계열 대간으로서 남인을 옹호하고 송시열 등 서인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활약하였다. 형벌의 남용, 군정의 문란함, 탐관오리들의 활동 등을 경계하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갑술환국 이후 소론 중심의 정국에서도 계속 기용되었다.
이식 (李湜)
이식은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주로 숙종 대에 남인 계열 대간으로서 남인을 옹호하고 송시열 등 서인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활약하였다. 형벌의 남용, 군정의 문란함, 탐관오리들의 활동 등을 경계하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갑술환국 이후 소론 중심의 정국에서도 계속 기용되었다.
신헌주는 조선 후기에 훈련원첨정, 첨지중추부사, 함종부사를 역임한 무신이다. 무과(武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비변사낭청(備邊司郞廳) ‧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등을 역임하였고, 외방에 제수되어 국방을 강화하고 공무를 공정히 처리하여 조정에서 인정을 받았다.
신헌주 (申憲周)
신헌주는 조선 후기에 훈련원첨정, 첨지중추부사, 함종부사를 역임한 무신이다. 무과(武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비변사낭청(備邊司郞廳) ‧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 ·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 등을 역임하였고, 외방에 제수되어 국방을 강화하고 공무를 공정히 처리하여 조정에서 인정을 받았다.
정면(鄭勔)은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 서천군수 ‧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현종 대에는 국정과 외교에서 절차와 원칙을 강조하였으며, 숙종 대에는 주로 남인에 대한 서인의 언론을 담당하였고, 문묘 배향 인물의 재정비와 계성묘(啟聖廟)의 건립 등을 주장하였다.
정면 (鄭勔)
정면(鄭勔)은 조선 후기에 예조좌랑 ‧ 서천군수 ‧ 정언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현종 대에는 국정과 외교에서 절차와 원칙을 강조하였으며, 숙종 대에는 주로 남인에 대한 서인의 언론을 담당하였고, 문묘 배향 인물의 재정비와 계성묘(啟聖廟)의 건립 등을 주장하였다.
조원기는 조선 후기에 정언, 부사직, 황해도관찰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현종 대 공의(公義) · 사의(私義) 논쟁에서 서필원(徐必遠)을 옹호하였으며, 동지사 서장관(書狀官)으로 파견되어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 안정에 힘썼다. 이후 응지소(應旨疏)를 통해 국왕에게 간언하였으며, 경신 대기근 속에서 백성을 구휼하고 사치를 금지하도록 요청하는 등 언관으로서 활동하였다.
조원기 (趙遠期)
조원기는 조선 후기에 정언, 부사직, 황해도관찰사, 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현종 대 공의(公義) · 사의(私義) 논쟁에서 서필원(徐必遠)을 옹호하였으며, 동지사 서장관(書狀官)으로 파견되어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 안정에 힘썼다. 이후 응지소(應旨疏)를 통해 국왕에게 간언하였으며, 경신 대기근 속에서 백성을 구휼하고 사치를 금지하도록 요청하는 등 언관으로서 활동하였다.
국가기관에서 편찬한 음악관련 서적.
관찬악서 (官撰樂書)
국가기관에서 편찬한 음악관련 서적.
국립국악원에서 전통음악의 악보에 대하여 정간보로 발간한 악보를 지칭하는 용어.
국악전집 (國樂全集)
국립국악원에서 전통음악의 악보에 대하여 정간보로 발간한 악보를 지칭하는 용어.
조선시대 궁중에서 경축하기 위하여 궁중에서 경축하기 위하여 열리는 여러 종류의 잔치.
궁중연향 (宮中宴享)
조선시대 궁중에서 경축하기 위하여 궁중에서 경축하기 위하여 열리는 여러 종류의 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