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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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지대는 조선 후기 영조· 정조 연간 장령·교리·승지·김천찰방·강릉현감·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세종 때의 명신 맹사성의 후손이다. 1752년(영조 28)에 송시열과 송준길을 문묘에 종향하자는 상서문을 올렸다.
맹지대 (孟至大)
맹지대는 조선 후기 영조· 정조 연간 장령·교리·승지·김천찰방·강릉현감·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세종 때의 명신 맹사성의 후손이다. 1752년(영조 28)에 송시열과 송준길을 문묘에 종향하자는 상서문을 올렸다.
박문수는 조선 후기 호조판서, 병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일찍이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이 된 인연으로 영조의 지우(知遇)를 입어 탕평 정권에 참여하여 직간(直諫)하는 신하로 이름을 얻었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다. 소론의 당론을 견지하며 이광좌를 사표(師表)로 삼아 지론이 시종 일관 변하지 않았다. 노론을 견제하다가 곤경에 처하였으며, 결국 을해옥사 때 역모자가 진술한 초사(招辭)에 이름이 나와 문초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정계를 은퇴한 후 사망하였다.
박문수 (朴文秀)
박문수는 조선 후기 호조판서, 병조판서, 경상도관찰사,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일찍이 동궁(東宮)의 요속(僚屬)이 된 인연으로 영조의 지우(知遇)를 입어 탕평 정권에 참여하여 직간(直諫)하는 신하로 이름을 얻었다.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다. 소론의 당론을 견지하며 이광좌를 사표(師表)로 삼아 지론이 시종 일관 변하지 않았다. 노론을 견제하다가 곤경에 처하였으며, 결국 을해옥사 때 역모자가 진술한 초사(招辭)에 이름이 나와 문초를 당하는 수모를 겪고 정계를 은퇴한 후 사망하였다.
정미통공은 1787년(정조 11)에 세력가들과 시전 상인에 의한 도고(都庫) 각리(榷利)를 불허하고 통공화매(通共和賣)하도록 판결한 통공 정책이다. ‘정미판하(丁未判下)’ · ‘정미판결(丁未判決)’로도 불렀다. 통공화매의 확대는 1791년(정조 15)에 육의전 외 일반 시전의 금난전권을 혁파하는 신해통공(辛亥通共)으로 이어진다. 이는 영조 후반부터 정부와 관리들의 꾸준한 통공시행 결의를 보여준 점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미통공 (丁未通共)
정미통공은 1787년(정조 11)에 세력가들과 시전 상인에 의한 도고(都庫) 각리(榷利)를 불허하고 통공화매(通共和賣)하도록 판결한 통공 정책이다. ‘정미판하(丁未判下)’ · ‘정미판결(丁未判決)’로도 불렀다. 통공화매의 확대는 1791년(정조 15)에 육의전 외 일반 시전의 금난전권을 혁파하는 신해통공(辛亥通共)으로 이어진다. 이는 영조 후반부터 정부와 관리들의 꾸준한 통공시행 결의를 보여준 점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순검은 조선 후기, 영조 ‧ 정조 연간 소론계 인물로, 설서, 승지, 지평, 정언, 장령, 대사간 등을 지낸 문신이다. 첫 번째 부인이 반남 박씨 박태보(朴泰輔)의 손녀딸이자 박필모(朴弼謨)의 딸이다. 이종성, 윤광소 등과 정치적 활동을 함께 하였다. 1762년(영조 38) ‘임오화변(壬午禍變)’ 때 승지를 역임하였는데, 영조가 크게 노하여 세자에게 죽음을 명하자, 영조의 명을 받들 수 없다고 한 일이 있었다. 분의를 다하였던 공으로 1789년(정조 13)에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정순검 (鄭純儉)
정순검은 조선 후기, 영조 ‧ 정조 연간 소론계 인물로, 설서, 승지, 지평, 정언, 장령, 대사간 등을 지낸 문신이다. 첫 번째 부인이 반남 박씨 박태보(朴泰輔)의 손녀딸이자 박필모(朴弼謨)의 딸이다. 이종성, 윤광소 등과 정치적 활동을 함께 하였다. 1762년(영조 38) ‘임오화변(壬午禍變)’ 때 승지를 역임하였는데, 영조가 크게 노하여 세자에게 죽음을 명하자, 영조의 명을 받들 수 없다고 한 일이 있었다. 분의를 다하였던 공으로 1789년(정조 13)에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조상진은 조선 후기에 도승지, 광주부유수, 판돈녕부사, 판의금부사, 형조 · 병조판서, 대사간, 대사성 등을 역임한 소론계 문신이다. 1786년(정조 10)에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죽음과 관련된 '병오년의 상변(喪變)'에 연루되었던 조시위(趙時偉)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논척당하였다. 1796년(정조 20)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뒤 한성부판윤 · 공조판서 · 형조판서 · 예조판서 ·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1820년(순조 20)에 지중추부사로 사망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익정(翼貞)으로 시호를 받았다.
조상진 (趙尙鎭)
조상진은 조선 후기에 도승지, 광주부유수, 판돈녕부사, 판의금부사, 형조 · 병조판서, 대사간, 대사성 등을 역임한 소론계 문신이다. 1786년(정조 10)에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죽음과 관련된 '병오년의 상변(喪變)'에 연루되었던 조시위(趙時偉)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논척당하였다. 1796년(정조 20)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뒤 한성부판윤 · 공조판서 · 형조판서 · 예조판서 ·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1820년(순조 20)에 지중추부사로 사망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익정(翼貞)으로 시호를 받았다.
갑인통공은 1794년(정조 18), ‘신해통공’ 시행에 대해 이정(釐正)하고 보완한 후속 정책이다. 육의전에 포함되었던 물종(物種)에 대한 이정 정책이었으며, 일반 시전 상인들의 요구인 원전삭세를 감세해 주고 원전수세 조치로 이어졌다. 즉 어물전에서 육의전을 빼내어 통공화매(通共和賣)하는 사안이었다. 갑인통공의 결과, 육의전은 입전(立廛)·면포전(綿布廛)·면주전(綿紬廛)·지전(紙廛)·저전(紵廛)·포전(布廛)으로 정해졌다.
갑인통공 (甲寅通共)
갑인통공은 1794년(정조 18), ‘신해통공’ 시행에 대해 이정(釐正)하고 보완한 후속 정책이다. 육의전에 포함되었던 물종(物種)에 대한 이정 정책이었으며, 일반 시전 상인들의 요구인 원전삭세를 감세해 주고 원전수세 조치로 이어졌다. 즉 어물전에서 육의전을 빼내어 통공화매(通共和賣)하는 사안이었다. 갑인통공의 결과, 육의전은 입전(立廛)·면포전(綿布廛)·면주전(綿紬廛)·지전(紙廛)·저전(紵廛)·포전(布廛)으로 정해졌다.
김석일은 조선 후기 지평, 정언, 동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소론계 인물이었다. 정시 문과에서 탕평(蕩平)을 공격하는 말을 써서 영조가 급제 명단에서 제외하는 발거(拔去)하기를 명했다가 중지한 일이 있었다.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어 탐오한 관리와 무신 수령 등의 불법을 논계하였다. 정언에 임명되어서도 영조의 잘못된 처분을 상소하였고, 말이 매우 절실하고 정직하였다. 동래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허주와유고(虛舟窩遺稿)』가 있다.
김석일 (金錫一)
김석일은 조선 후기 지평, 정언, 동래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소론계 인물이었다. 정시 문과에서 탕평(蕩平)을 공격하는 말을 써서 영조가 급제 명단에서 제외하는 발거(拔去)하기를 명했다가 중지한 일이 있었다. 사헌부 지평에 임명되어 탐오한 관리와 무신 수령 등의 불법을 논계하였다. 정언에 임명되어서도 영조의 잘못된 처분을 상소하였고, 말이 매우 절실하고 정직하였다. 동래부사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허주와유고(虛舟窩遺稿)』가 있다.
머리를 땋아 내려 댕기를 드린 머리모양.
땋은머리
머리를 땋아 내려 댕기를 드린 머리모양.
백관이 관복(官服)에 두르던 띠.
각대 (角帶)
백관이 관복(官服)에 두르던 띠.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예식 때 하던 머리모양.
큰머리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예식 때 하던 머리모양.
머리카락을 모두 올려 빗어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맨 머리모양.
상투
머리카락을 모두 올려 빗어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맨 머리모양.
조선시대 상류층 부인들이 예장용으로 크게 땋아 올린 머리모양.
어여머리 (於由味)
조선시대 상류층 부인들이 예장용으로 크게 땋아 올린 머리모양.
두발을 땋아 앞 정수리에 둥글게 고정시키는 머리모양.
얹은머리
두발을 땋아 앞 정수리에 둥글게 고정시키는 머리모양.
왕·왕세자 등이 착용한 옥으로 장식하여 만든 띠.
옥대 (玉帶)
왕·왕세자 등이 착용한 옥으로 장식하여 만든 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