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지은"
검색결과 총 10건
강규환은 조선 후기 경종~영종대 활동한 노론-호론계 출신의 학자이자 영남안무사 종사관, 장릉참봉 등을 지낸 문신이다. 스승 한원진을 통해 송시열, 권상하, 한원진으로 이어지는 노론-호론계의 학문을 체득하였고, 보수적 경세론의 입장에서 소극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강규환 (姜奎煥)
강규환은 조선 후기 경종~영종대 활동한 노론-호론계 출신의 학자이자 영남안무사 종사관, 장릉참봉 등을 지낸 문신이다. 스승 한원진을 통해 송시열, 권상하, 한원진으로 이어지는 노론-호론계의 학문을 체득하였고, 보수적 경세론의 입장에서 소극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강운은 조선 후기 영남 남인 출신의 학자이자 영조~정조 때 전적, 지평,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성균관에 있을 때 정조가 그의 학문적 깊이에 감명하여, 그 이름을 어병(御屛)에 써 놓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1811년 고산서원의 강회(講會) 참석을 계기로 영남학파의 일원으로 학문 활동을 시작하였고, 1832년(순조 32)에는 서실(書室)을 짓고 종오헌이라 이름하여 후학을 위한 강학과 저술 공간을 마련하였다.
강운 (姜橒)
강운은 조선 후기 영남 남인 출신의 학자이자 영조~정조 때 전적, 지평,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성균관에 있을 때 정조가 그의 학문적 깊이에 감명하여, 그 이름을 어병(御屛)에 써 놓았다는 일화가 전한다. 1811년 고산서원의 강회(講會) 참석을 계기로 영남학파의 일원으로 학문 활동을 시작하였고, 1832년(순조 32)에는 서실(書室)을 짓고 종오헌이라 이름하여 후학을 위한 강학과 저술 공간을 마련하였다.
고정봉은 조선 후기 고경명의 후손으로 정조~순조 때 지평, 부수찬,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98년(정조 22) 호남 유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공령과(功令科)에서 장원을 차지하였고, 다음 해 정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조는 그가 고경명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특별히 우대해 주었다. 1815년 고정봉은 정조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의미를 담아 공령과의 시행 과정과 감회 등을 기록한 「등과시말기」를 남겼다.
고정봉 (高廷鳳)
고정봉은 조선 후기 고경명의 후손으로 정조~순조 때 지평, 부수찬, 홍문관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98년(정조 22) 호남 유생을 대상으로 시행한 공령과(功令科)에서 장원을 차지하였고, 다음 해 정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정조는 그가 고경명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특별히 우대해 주었다. 1815년 고정봉은 정조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으려는 의미를 담아 공령과의 시행 과정과 감회 등을 기록한 「등과시말기」를 남겼다.
김도수는 조선 후기 예빈시주부, 경양찰방 등을 역임한 서얼 문사이다.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의 서손(庶孫)으로 20대 초반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거쳐 경양찰방(景陽察訪)·지례현감(知禮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어릴 적부터 시문에 재능을 보여 노론 명문가의 문사 및 중인과 서얼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김도수 (金道洙)
김도수는 조선 후기 예빈시주부, 경양찰방 등을 역임한 서얼 문사이다.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의 서손(庶孫)으로 20대 초반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를 거쳐 경양찰방(景陽察訪)·지례현감(知禮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어릴 적부터 시문에 재능을 보여 노론 명문가의 문사 및 중인과 서얼 문사들과 교유하였다.
김장순은 조선 후기, 선종한과 함께 『감저신보』를 저술한 농학자이다. 김장순은 구황작물로서 고구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전국적 보급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뜻을 함께하는 보성 출신 선종한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1813년(순조 13) 선종한과 함께 고구마 재배서인 『감저신보』를 편찬하였다.
김장순 (金長淳)
김장순은 조선 후기, 선종한과 함께 『감저신보』를 저술한 농학자이다. 김장순은 구황작물로서 고구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전국적 보급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뜻을 함께하는 보성 출신 선종한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1813년(순조 13) 선종한과 함께 고구마 재배서인 『감저신보』를 편찬하였다.
남명학은 조선 후기 참봉, 감찰, 평택현감, 공조좌랑 등을 역임한 함경도 출신의 문신이다. 한몽린의 문인으로 1759년(영조 35년) 29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1768년(영조 44년) 집경당에서 열린 경연에 참석하여 왕의 특은으로 현릉참봉에 임명되면서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스승과 함께 함경도의 유학을 진작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명학 (南溟學)
남명학은 조선 후기 참봉, 감찰, 평택현감, 공조좌랑 등을 역임한 함경도 출신의 문신이다. 한몽린의 문인으로 1759년(영조 35년) 29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입격하였고, 1768년(영조 44년) 집경당에서 열린 경연에 참석하여 왕의 특은으로 현릉참봉에 임명되면서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스승과 함께 함경도의 유학을 진작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목만중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18세기 남인 문단을 대표하는 문장가이다. 1759년(영조 35) 문과 급제하여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채제공, 정범조 등과 함께 18세기 남인 문단을 대표하는 문장가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남인 벽파에 속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인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남인 시파를 탄압하는 데 일조하였다.
목만중 (睦萬中)
목만중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18세기 남인 문단을 대표하는 문장가이다. 1759년(영조 35) 문과 급제하여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채제공, 정범조 등과 함께 18세기 남인 문단을 대표하는 문장가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적으로 남인 벽파에 속하였으며,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인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남인 시파를 탄압하는 데 일조하였다.
박도상은 조선 후기 의금부도사, 예조좌랑, 연천현감, 영양현감,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70년(영조 46년) 영조가 주관한 구일제(九日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였고, 다음해 식년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7년(정조 21) 장령에 제수되었을 때 영양현감 시절 경험하였던 영남의 폐단을 10개의 조목으로 정리하여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영조와 정조가 문신을 대상으로 시행한 제술(製述)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였다.
박도상 (朴道翔)
박도상은 조선 후기 의금부도사, 예조좌랑, 연천현감, 영양현감,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70년(영조 46년) 영조가 주관한 구일제(九日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였고, 다음해 식년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7년(정조 21) 장령에 제수되었을 때 영양현감 시절 경험하였던 영남의 폐단을 10개의 조목으로 정리하여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영조와 정조가 문신을 대상으로 시행한 제술(製述)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였다.
우정규는 조선 후기 전적, 예조좌랑, 광양현감, 우통례 등을 역임하고, 『경제야언』을 저술한 문신이다. 1766년(영조 42) 정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고, 가주서(假注書)에 제수되면서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1787년 우통례에 재직 시 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 개선안을 40여 조항으로 정리하여 『경제야언』이란 책으로 엮어 상소와 함께 왕에게 올렸다. 이에 정조는 지적한 문제들을 검토하였고, 그 방안을 폐단 시정에 채용하였다.
우정규 (禹禎圭)
우정규는 조선 후기 전적, 예조좌랑, 광양현감, 우통례 등을 역임하고, 『경제야언』을 저술한 문신이다. 1766년(영조 42) 정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고, 가주서(假注書)에 제수되면서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1787년 우통례에 재직 시 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 개선안을 40여 조항으로 정리하여 『경제야언』이란 책으로 엮어 상소와 함께 왕에게 올렸다. 이에 정조는 지적한 문제들을 검토하였고, 그 방안을 폐단 시정에 채용하였다.
이인수는 조선 후기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이순신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언상(李彦祥)이며 아버지는 금위대장·총융사 등을 지낸 이한응이다. 1777년(정조 1) 백령첨사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강계부사·회령부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812년 훈련대장에 제수되었으나 노병으로 체직을 허락받았고, 이듬해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이인수 (李仁秀)
이인수는 조선 후기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 무신으로, 이순신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언상(李彦祥)이며 아버지는 금위대장·총융사 등을 지낸 이한응이다. 1777년(정조 1) 백령첨사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강계부사·회령부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1812년 훈련대장에 제수되었으나 노병으로 체직을 허락받았고, 이듬해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