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류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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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산파는 일제강점기 때, 만주 장백현과 함경북도 갑산군 등지에서 지하활동을 하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로서, 해방 이후 김일성파와 함께 북한 정치를 주도한 정치세력이다.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김일성과 연계하여 ‘재만한인조국광복회’ 지부를 설립하고, ‘갑산공작위원회’라는 공산주의 단체를 조직했다. 해방 이후부터 김일성파와 함께 북한 정치를 주도했다. 1960년대 말에는 김일성의 후계구도 문제로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갑산파는 정식 명칭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통용되던 명칭이다.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독자성을 유지하고 두 세력을 활용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갑산파 (甲山派)
갑산파는 일제강점기 때, 만주 장백현과 함경북도 갑산군 등지에서 지하활동을 하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로서, 해방 이후 김일성파와 함께 북한 정치를 주도한 정치세력이다. 만주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김일성과 연계하여 ‘재만한인조국광복회’ 지부를 설립하고, ‘갑산공작위원회’라는 공산주의 단체를 조직했다. 해방 이후부터 김일성파와 함께 북한 정치를 주도했다. 1960년대 말에는 김일성의 후계구도 문제로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갑산파는 정식 명칭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통용되던 명칭이다.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독자성을 유지하고 두 세력을 활용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 나갔다.
관문주의는 부당한 조건을 내세워 일정한 조직체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제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나 관점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원리와 관련되는 용어이다. 북한에서는 1951년 당시 당 조직 담당 부위원장이었던 허가이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허가이는 입당 대상자들에게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자의적으로 입당을 제한하였다. 공산독재통치에서 관문주의는 까다로운 입당 조건을 제시하거나, 외국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문을 닫는 형태로 표현된다. 현재 공산 국가들은 자유 진영과의 거래에 있어서 관문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관문주의 (關門主義)
관문주의는 부당한 조건을 내세워 일정한 조직체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제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나 관점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원리와 관련되는 용어이다. 북한에서는 1951년 당시 당 조직 담당 부위원장이었던 허가이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허가이는 입당 대상자들에게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자의적으로 입당을 제한하였다. 공산독재통치에서 관문주의는 까다로운 입당 조건을 제시하거나, 외국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문을 닫는 형태로 표현된다. 현재 공산 국가들은 자유 진영과의 거래에 있어서 관문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시기에 항일 빨치산부대에서 군사기술과 정치이론과 관련되어 진행했다고 하는 학습.
군정학습 (軍政學習)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시기에 항일 빨치산부대에서 군사기술과 정치이론과 관련되어 진행했다고 하는 학습.
1946년 농민 김제원이 수확한 쌀을 국가에 헌납한 것을 계기로 북한 전 지역에서 농민이 벌인 운동이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이 땅을 분여받았다. 이때 김제원은 그 해 수확한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하였다. 수십만의 북한 농민들이 불타는 애국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에 참여하였다. 세수 확대는 물론 새로 출범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추진한 운동이다. 농민들이 바친 애국미는 김일성종합대학과 만경대혁명학원을 건립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인민정권과 노동자·농민의 동맹관계를 더욱 더 굳게 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애국미 헌납운동 (愛國米 獻納運動)
1946년 농민 김제원이 수확한 쌀을 국가에 헌납한 것을 계기로 북한 전 지역에서 농민이 벌인 운동이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이 땅을 분여받았다. 이때 김제원은 그 해 수확한 쌀을 애국미로 국가에 헌납하였다. 수십만의 북한 농민들이 불타는 애국심을 표현하기 위하여 이에 참여하였다. 세수 확대는 물론 새로 출범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기 위해 추진한 운동이다. 농민들이 바친 애국미는 김일성종합대학과 만경대혁명학원을 건립하는 데 이바지하였다. 인민정권과 노동자·농민의 동맹관계를 더욱 더 굳게 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1948년 출범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행정부인 내각 산하에 있는 노동문제를 다루는 부처.
노동성 (勞動省)
1948년 출범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행정부인 내각 산하에 있는 노동문제를 다루는 부처.
북한 농촌에서 사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는 개인 농민경리를 사회주의적 집단경리로 개조하는 사회경제적 변혁.
농업 집단화 (農業 集團化)
북한 농촌에서 사적 소유에 기초하고 있는 개인 농민경리를 사회주의적 집단경리로 개조하는 사회경제적 변혁.
1948년부터 1972년까지 북한의 행정부인 내각 산하 군사분야를 관장하던 부처.
민족보위성 (民族保衛省)
1948년부터 1972년까지 북한의 행정부인 내각 산하 군사분야를 관장하던 부처.
북일수교협상은 북한과 일본 정부 간에 국교 정상화를 위해 열린 일련의 외교협상이다. 1990년 예비회담부터 13차 본회담이 개최되었던 2006년까지 열렸다. 때로는 전진하고 때로는 결렬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협상의 과정에는 일본 정당·의원 외교, 북미관계의 추종(혹은 동조), 남북관계와의 경쟁 등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인 납치 문제로 수교 협상이 난항을 거듭해 북일관계 전반을 극도로 냉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6년을 끝으로 2018년 현재 북일수교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북일수교협상 (北日修交協商)
북일수교협상은 북한과 일본 정부 간에 국교 정상화를 위해 열린 일련의 외교협상이다. 1990년 예비회담부터 13차 본회담이 개최되었던 2006년까지 열렸다. 때로는 전진하고 때로는 결렬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협상의 과정에는 일본 정당·의원 외교, 북미관계의 추종(혹은 동조), 남북관계와의 경쟁 등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인 납치 문제로 수교 협상이 난항을 거듭해 북일관계 전반을 극도로 냉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2006년을 끝으로 2018년 현재 북일수교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해방 직후부터 1949년 6월까지 북한지역을 통치하던 공산주의 정당.
북조선노동당 (北朝鮮勞動黨)
해방 직후부터 1949년 6월까지 북한지역을 통치하던 공산주의 정당.
해방 직후 북한지역의 불교를 공산당이 통치하는 사회의 한 부분으로 순화시키키 위해 조직한 단체.
조선불교도연맹 (朝鮮佛敎徒聯盟)
해방 직후 북한지역의 불교를 공산당이 통치하는 사회의 한 부분으로 순화시키키 위해 조직한 단체.
상품유통 분야에서 근로자들이 자체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합하여 만든 사회적 상업조직체.
북조선소비조합 (北朝鮮消費組合)
상품유통 분야에서 근로자들이 자체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합하여 만든 사회적 상업조직체.
해방 직후 북한지역의 노동조합 전국조직.
북조선직업총동맹 (北朝鮮職業總同盟)
해방 직후 북한지역의 노동조합 전국조직.
소비조합이 농촌의 여유 양곡을 구매하는 사업.
양곡수매사업 (糧穀收買事業)
소비조합이 농촌의 여유 양곡을 구매하는 사업.
연형묵은 북한에서, 노동당 중공업부 부장, 정무원 총리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1931년 출생하여 2005년 사망했다. 1947년부터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재학 중 1950년 6·25전쟁 발발과 함께 입대하여 김일성의 ‘친위중대’에서 근무했다. 1951년 체코 프라하공업대학에서 유학 후, 군수공업을 전담하는 노동당 중공업부에 배치되었다. 1962년~1967년에는 918호공장(고사포공장) 초급당비서로 근무하면서 군수공업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990년 정무원 총리를 맡았다. 군수공업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아 1998년 1월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연형묵 (延亨默)
연형묵은 북한에서, 노동당 중공업부 부장, 정무원 총리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1931년 출생하여 2005년 사망했다. 1947년부터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재학 중 1950년 6·25전쟁 발발과 함께 입대하여 김일성의 ‘친위중대’에서 근무했다. 1951년 체코 프라하공업대학에서 유학 후, 군수공업을 전담하는 노동당 중공업부에 배치되었다. 1962년~1967년에는 918호공장(고사포공장) 초급당비서로 근무하면서 군수공업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1990년 정무원 총리를 맡았다. 군수공업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아 1998년 1월에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북한의 대외정책과 대외관계를 정부 차원에서 다루는 내각 산하 행정 부처.
외무성 (外務省)
북한의 대외정책과 대외관계를 정부 차원에서 다루는 내각 산하 행정 부처.
북한 체제가 ‘주체사상’에 기초 하여 다른 나라의 경험에 의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라는 점을 강조하는 용어.
우리식 사회주의 (우리式 社會主義)
북한 체제가 ‘주체사상’에 기초 하여 다른 나라의 경험에 의거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주의라는 점을 강조하는 용어.
자신의 힘으로 생존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발생하는 도전을 극복하려는 행동 또는 정신.
자력갱생 (自力更生)
자신의 힘으로 생존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능력과 의지로 발생하는 도전을 극복하려는 행동 또는 정신.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인민경제대학 정치경제학부장, 중앙당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사를 통하여 조선의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한 경제학자·교육자.
전석담 (全錫淡)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인민경제대학 정치경제학부장, 중앙당학교 교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사를 통하여 조선의 내재적 발전론을 주장한 경제학자·교육자.
모든 공산당의 최고정책결정기관이자 당중앙위원회 위원들 중 가장 권력서열이 높은 간부들의 집합체.
정치국 (政治局)
모든 공산당의 최고정책결정기관이자 당중앙위원회 위원들 중 가장 권력서열이 높은 간부들의 집합체.
조일평양선언은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와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조인한 선언문이다. 북한과 일본의 두 수뇌는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 사항을 해결하며 결실 있는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가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확인했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반성·사죄를 명기하였으며, 반성·사죄를 받는 주체를 ‘조선 인민’이라고 명기하였다. 이 선언은 일본이 아시아의 긴장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조일평양선언 (朝日平壤宣言)
조일평양선언은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와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조인한 선언문이다. 북한과 일본의 두 수뇌는 과거를 청산하고 현안 사항을 해결하며 결실 있는 정치, 경제, 문화적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큰 기여가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확인했다.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반성·사죄를 명기하였으며, 반성·사죄를 받는 주체를 ‘조선 인민’이라고 명기하였다. 이 선언은 일본이 아시아의 긴장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