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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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자기금은 중화학공업의 건설을 촉진하고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1974년에 설치한 기금이다. 국민투자채권 발행과 금융기관 예탁금으로 조성되었으며 일반 금리에 비해 낮은 금리로 주로 중화학공업에 융자되어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국민투자기금 (國民投資基金)
국민투자기금은 중화학공업의 건설을 촉진하고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1974년에 설치한 기금이다. 국민투자채권 발행과 금융기관 예탁금으로 조성되었으며 일반 금리에 비해 낮은 금리로 주로 중화학공업에 융자되어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기능공 양성 정책은 공업화 과정에서 늘어나는 기능공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이다. 공업고등학교와 직업훈련소를 통해 기능공을 대량으로 양성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1980년대에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정책은 거의 폐기되었다.
기능공 양성 정책 (技能工 養成 政策)
기능공 양성 정책은 공업화 과정에서 늘어나는 기능공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이다. 공업고등학교와 직업훈련소를 통해 기능공을 대량으로 양성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1980년대에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정책은 거의 폐기되었다.
무역자유화는 국가 간의 자유로운 무역에 대한 통제를 제거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엽에 수출주도적 공업화 전략으로 선회하고 GATT에 가입하면서 무역 제한을 완화하였으며 1980년대 말에는 거의 완전 개방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하였다.
무역자유화 (貿易自由化)
무역자유화는 국가 간의 자유로운 무역에 대한 통제를 제거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이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엽에 수출주도적 공업화 전략으로 선회하고 GATT에 가입하면서 무역 제한을 완화하였으며 1980년대 말에는 거의 완전 개방에 가까운 수준에 도달하였다.
회사채는 회사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고 투자자인 일반 대중에게 판매하는 유가증권이다. 회사채에는 발행자, 만기, 이자율, 이자 지급 방식이 명시되어 있으며, 이자 지급 방식, 이익 참가 형태, 보증 및 담보 유무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부터 전환 사채 형태로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자본 시장 육성법, 특히 채권 시장 육성 방안 이후에 발행이 촉진되었다. 회사채는 주식 시장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기업의 자금 조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회사채 (會社債)
회사채는 회사가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고 투자자인 일반 대중에게 판매하는 유가증권이다. 회사채에는 발행자, 만기, 이자율, 이자 지급 방식이 명시되어 있으며, 이자 지급 방식, 이익 참가 형태, 보증 및 담보 유무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3년부터 전환 사채 형태로 발행되기 시작했으며 자본 시장 육성법, 특히 채권 시장 육성 방안 이후에 발행이 촉진되었다. 회사채는 주식 시장이 활성화되기 전까지 기업의 자금 조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내지 통상은 개항기에 열강과의 조약에 의해 외상들이 내지에 진출하여 현지 상인이나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는 행위이다. 외상의 내지 통상은 조영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전면적으로 허용되었으며, 내지 통상을 주도한 것은 청상이었으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확실해진 러일전쟁 후에는 일상들이었다. 외상의 내지 통상으로 인해 조선 상인들이 점차 위축되었으나 외상들에 의한 상권 재편 및 장악에는 한계가 있었다.
내지 통상 (內地 通商)
내지 통상은 개항기에 열강과의 조약에 의해 외상들이 내지에 진출하여 현지 상인이나 생산자와 직접 거래하는 행위이다. 외상의 내지 통상은 조영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전면적으로 허용되었으며, 내지 통상을 주도한 것은 청상이었으나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가 확실해진 러일전쟁 후에는 일상들이었다. 외상의 내지 통상으로 인해 조선 상인들이 점차 위축되었으나 외상들에 의한 상권 재편 및 장악에는 한계가 있었다.
명례궁은 조선왕조의 중궁전에 속한 내탕으로 궁중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조선왕조 후기에 왕실의 생활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궁방이 설치되었으며 궁방 중에서 1사 4궁이 규모가 크고 비중이 컸다. 명례궁은 그중 하나이며, 1623년경에는 인목 대비(仁穆大妃)의 내탕으로 설치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중궁전에 속하여 궁중의 연회나 다례(茶禮)를 위한 식재료를 조달하였다.
명례궁 (明禮宮)
명례궁은 조선왕조의 중궁전에 속한 내탕으로 궁중의 주방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기관이다. 조선왕조 후기에 왕실의 생활 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궁방이 설치되었으며 궁방 중에서 1사 4궁이 규모가 크고 비중이 컸다. 명례궁은 그중 하나이며, 1623년경에는 인목 대비(仁穆大妃)의 내탕으로 설치되었으나 최종적으로는 중궁전에 속하여 궁중의 연회나 다례(茶禮)를 위한 식재료를 조달하였다.
「조선관세령」은 1912년에 제정된 식민지 조선의 관세에 관한 조선총독부 제령이다. 일본은 한일합병 직후에 조선과 일본의 경제 통합을 위해 일본 관세법을 적용하는 「조선관세령」을 제정하고 열강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10년간 종래의 관세제도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이후 관세 거치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조선관세령」이 폐지되고 일본 관세법이 조선에 시행되었다.
조선관세령 (朝鮮關稅令)
「조선관세령」은 1912년에 제정된 식민지 조선의 관세에 관한 조선총독부 제령이다. 일본은 한일합병 직후에 조선과 일본의 경제 통합을 위해 일본 관세법을 적용하는 「조선관세령」을 제정하고 열강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10년간 종래의 관세제도를 유지하기로 하였다. 이후 관세 거치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조선관세령」이 폐지되고 일본 관세법이 조선에 시행되었다.
해관세칙은 1883년에 새로운 조일통상장정과 함께 체결된 최초의 품목별로 수출입 관세율을 명시한 세칙이다. 조선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조일통상수호조규에서 관세주권을 상실하였으며 이후 일본과 교섭을 통해 1883년에 새로운 조일통상장정과 해관세칙을 체결하였다. 해관세칙에서 품목별 관세율을 명시함으로써 조선은 박탈당한 관세주권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다.
해관세칙 (海關細則)
해관세칙은 1883년에 새로운 조일통상장정과 함께 체결된 최초의 품목별로 수출입 관세율을 명시한 세칙이다. 조선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조일통상수호조규에서 관세주권을 상실하였으며 이후 일본과 교섭을 통해 1883년에 새로운 조일통상장정과 해관세칙을 체결하였다. 해관세칙에서 품목별 관세율을 명시함으로써 조선은 박탈당한 관세주권을 어느 정도 회복하였다.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 1938년부터 식민지시기 말까지 조선총독부에 의해 행해진 강제저축운동.
국민저축조성운동 (國民貯蓄助成運動)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 1938년부터 식민지시기 말까지 조선총독부에 의해 행해진 강제저축운동.
금융제도준비조사위원회가 작성한 금융 제도 개선안을 조사‧심의하는 관민 조직.
금융제도조사회 (金融制度調査會)
금융제도준비조사위원회가 작성한 금융 제도 개선안을 조사‧심의하는 관민 조직.
금융제도조사회가 조사‧심의할 금융제도 개선의 원안을 작성하기 위해 설치된 조직.
금융제도준비조사위원회 (金融制度準備調査委員會)
금융제도조사회가 조사‧심의할 금융제도 개선의 원안을 작성하기 위해 설치된 조직.
무진회사는 근대적 금융기관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도시 노동자 및 영세 상공업자 간의 자금 융통을 담당하였던 서민 금융기관이다. 일본인 간에 자금의 상호 융통을 목적으로 운영되던 무진강(無盡講)에서 유래하였다. 일정한 구좌 수와 급부 금액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괘금(掛金)을 납부하고 1구좌마다 추첨 입찰 또는 기타 유사한 방법에 의해 당첨된 괘금 납부자에게 금전을 급부하는 제도이다. 1915년 무진업법을 제정하고 1922년에 조선무진업령을 공포하여 전국 각지에 설립되었다. 중일전쟁 이후 금융통제를 위하여 전국에 1사만 남기고 통합되었다.
무진회사 (無盡會社)
무진회사는 근대적 금융기관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도시 노동자 및 영세 상공업자 간의 자금 융통을 담당하였던 서민 금융기관이다. 일본인 간에 자금의 상호 융통을 목적으로 운영되던 무진강(無盡講)에서 유래하였다. 일정한 구좌 수와 급부 금액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괘금(掛金)을 납부하고 1구좌마다 추첨 입찰 또는 기타 유사한 방법에 의해 당첨된 괘금 납부자에게 금전을 급부하는 제도이다. 1915년 무진업법을 제정하고 1922년에 조선무진업령을 공포하여 전국 각지에 설립되었다. 중일전쟁 이후 금융통제를 위하여 전국에 1사만 남기고 통합되었다.
미곡을 비롯한 농산물의 대일 수출을 위해, 인천에 거류하는 일본인들이 주한 일본 영사의 인가를 얻어 1896년에 설립한 선물거래소.
인천미두거래소 (仁川米豆去來所)
미곡을 비롯한 농산물의 대일 수출을 위해, 인천에 거류하는 일본인들이 주한 일본 영사의 인가를 얻어 1896년에 설립한 선물거래소.
1903년 8월에 조선인이 수안금광 채굴을 청원하면서 설립한 합자회사.
수안금광합자회사 (遂安金鑛合資會社)
1903년 8월에 조선인이 수안금광 채굴을 청원하면서 설립한 합자회사.
1941년 일본에서 설립된 대장성과 금융기관 사이의 중앙 자문 조직이자 협력 조직이다. 국민경제의 총력 동원을 위해 금융사업 기능을 종합적으로 가장 유효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일정 지역 내에서 금융기관 상호간의 연락‧조정을 도모하는데 필요한 지도‧통제를 하고 또 금융 사업에 관한 국책의 입안 및 수행에 협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주된 기능은 저금의 흡수, 사채 발행, 정부 공채의 소화 등에 관한 정부의 금융 계획 입안과 수행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수익성이 낮고 위험이 큰 중점 산업이 갖고 있는 자금 조성의 어려움에 대응하였다.
전국금융통제회 (全國金融統制會)
1941년 일본에서 설립된 대장성과 금융기관 사이의 중앙 자문 조직이자 협력 조직이다. 국민경제의 총력 동원을 위해 금융사업 기능을 종합적으로 가장 유효하게 발휘할 수 있도록 일정 지역 내에서 금융기관 상호간의 연락‧조정을 도모하는데 필요한 지도‧통제를 하고 또 금융 사업에 관한 국책의 입안 및 수행에 협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주된 기능은 저금의 흡수, 사채 발행, 정부 공채의 소화 등에 관한 정부의 금융 계획 입안과 수행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수익성이 낮고 위험이 큰 중점 산업이 갖고 있는 자금 조성의 어려움에 대응하였다.
조선개광회사는 동양 최대의 금광인 운산금광의 채굴을 목적으로 1896년 8월에 설립된 미국 회사이다. 1882년 조·미 수호조약체결 후 주한미국공사 알렌이 광산개발을 담보로 미국에서 차관을 얻어 재정난을 타개할 것을 고종에게 조언했다. 1895년에 미국인 모스가 운산금광 개발권을 획득하고, 조선개광회사를 설립하였다. 1897년 동양합동광업을 설립한 헌트가 조선개광회사를 인수하여 금광을 본격 개발하다가 채굴 기한인 1939년이 되자 800만 달러에 일본광업(주)에 양도하였다. 조선개광회사가 왕실과 맺은 계약은 열강들에 의한 광산 이권 침탈의 선구가 되었다.
조선개광회사 (朝鮮開鑛會社)
조선개광회사는 동양 최대의 금광인 운산금광의 채굴을 목적으로 1896년 8월에 설립된 미국 회사이다. 1882년 조·미 수호조약체결 후 주한미국공사 알렌이 광산개발을 담보로 미국에서 차관을 얻어 재정난을 타개할 것을 고종에게 조언했다. 1895년에 미국인 모스가 운산금광 개발권을 획득하고, 조선개광회사를 설립하였다. 1897년 동양합동광업을 설립한 헌트가 조선개광회사를 인수하여 금광을 본격 개발하다가 채굴 기한인 1939년이 되자 800만 달러에 일본광업(주)에 양도하였다. 조선개광회사가 왕실과 맺은 계약은 열강들에 의한 광산 이권 침탈의 선구가 되었다.
조선의 중요 광물자원의 개발 촉진과 증산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회사.
조선광업진흥주식회사 (朝鮮鑛業振興株式會社)
조선의 중요 광물자원의 개발 촉진과 증산을 도모할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회사.
금리 인하, 국채 소화, 저축 권장, 시국 관련 융자 확대, 불요불급한 융자 억제 등 전시 금융통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금융기관 조직.
조선금융단 (朝鮮金融團)
금리 인하, 국채 소화, 저축 권장, 시국 관련 융자 확대, 불요불급한 융자 억제 등 전시 금융통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금융기관 조직.
조선총독부의 중요한 시국 대책 사항을 조사‧심의하기 위해 개최된 총독의 자문 회의.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회 (朝鮮總督府 時局對策調査會)
조선총독부의 중요한 시국 대책 사항을 조사‧심의하기 위해 개최된 총독의 자문 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