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상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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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칠석놀이는 음력 7월 7일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에서 풍장패를 앞세워 길놀이·합궁놀이·황새샘치기·칠성굿놀이·견우직녀 상봉놀이·장치기놀이로 이어지는 민속놀이이다. 백제의 연인인 윗마을 부용과 아랫마을 사득의 비극적인 연애에 기원을 둔 촌락신화에서 유래하였다. 두 마을은 매년 칠석마다 부용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리고 샘고사를 지낸다. 이때 풍장을 동원하여 길놀이, 기세배, 샘풀이, 샘치기노래, 고사가 결합된 형식으로 전승되었다. 순차적인 놀이가 관행화된 성장의례의 생산성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다. 1992년 대전광역시 중구 민속놀이로 선정되었다.
부사 칠석놀이 (芙沙 七夕놀이)
부사칠석놀이는 음력 7월 7일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에서 풍장패를 앞세워 길놀이·합궁놀이·황새샘치기·칠성굿놀이·견우직녀 상봉놀이·장치기놀이로 이어지는 민속놀이이다. 백제의 연인인 윗마을 부용과 아랫마을 사득의 비극적인 연애에 기원을 둔 촌락신화에서 유래하였다. 두 마을은 매년 칠석마다 부용을 위로하는 제사를 올리고 샘고사를 지낸다. 이때 풍장을 동원하여 길놀이, 기세배, 샘풀이, 샘치기노래, 고사가 결합된 형식으로 전승되었다. 순차적인 놀이가 관행화된 성장의례의 생산성을 기원하는 세시풍속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의가 있다. 1992년 대전광역시 중구 민속놀이로 선정되었다.
아우내문화원 주관으로 음력 5월 5일 천안시 아우내장터에서 단오절을 기념하여 개최하는 문화축제이다. ‘병천 단오절 민속놀이 경연대회’ 혹은 ‘아우내 단오절 민속축제’라고도 부른다. 1974년 천안시동남구문화원에서 천안시청과 전국 문화원 연합회의 후원을 받아 아우내 장터에서 제1회 ‘단오절 그네대회’를 갖게 된 것이 효시이다. 1984년 제4회부터 행사 명칭을 ‘단오절 민속놀이 경연대회’로 바꾸고, 1990년 제9회 대회부터는 매년 행사를 개최하였다. 지역문화의 창달과 계승·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아우내 단오절 민속축제 (아우내 端午節 民俗祝祭)
아우내문화원 주관으로 음력 5월 5일 천안시 아우내장터에서 단오절을 기념하여 개최하는 문화축제이다. ‘병천 단오절 민속놀이 경연대회’ 혹은 ‘아우내 단오절 민속축제’라고도 부른다. 1974년 천안시동남구문화원에서 천안시청과 전국 문화원 연합회의 후원을 받아 아우내 장터에서 제1회 ‘단오절 그네대회’를 갖게 된 것이 효시이다. 1984년 제4회부터 행사 명칭을 ‘단오절 민속놀이 경연대회’로 바꾸고, 1990년 제9회 대회부터는 매년 행사를 개최하였다. 지역문화의 창달과 계승·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매헌문화제는 월진회와 덕산지역번영회 주최로 충청남도 예산에서 윤봉길 의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개최하는 문화축제이다. 1974년에 시작되어 매년 4월 27~29일에 충의사 본전에서 제례를 거행한다. 제례 후에는 보부상놀이 시연, 매헌문학의 밤, 매헌농민상 시상이 이루어지며 전통문화 공연 및 민속놀이 등이 펼쳐진다. 월진회는 윤봉길의사가 만든 모임으로 우진회로 바꾸어 부르던 것을 1946년 다시 월진회로 개칭하였다. 월진회를 주축으로 예산군의 여러 민간단체들이 문화제를 이끌고 있다. 주변에 다른 관광지들이 있어 관광수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매헌문화제 (梅軒文化祭)
매헌문화제는 월진회와 덕산지역번영회 주최로 충청남도 예산에서 윤봉길 의사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개최하는 문화축제이다. 1974년에 시작되어 매년 4월 27~29일에 충의사 본전에서 제례를 거행한다. 제례 후에는 보부상놀이 시연, 매헌문학의 밤, 매헌농민상 시상이 이루어지며 전통문화 공연 및 민속놀이 등이 펼쳐진다. 월진회는 윤봉길의사가 만든 모임으로 우진회로 바꾸어 부르던 것을 1946년 다시 월진회로 개칭하였다. 월진회를 주축으로 예산군의 여러 민간단체들이 문화제를 이끌고 있다. 주변에 다른 관광지들이 있어 관광수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음력 10월 전골냄비에 소고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를 담고 육수를 부어 끓인 음식을 둘러앉아 먹던 세시풍속. 난란회.
난로회 (煖爐會)
음력 10월 전골냄비에 소고기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를 담고 육수를 부어 끓인 음식을 둘러앉아 먹던 세시풍속. 난란회.
개사초는 산소 손질의 일종으로 무덤이 헐었거나 떼가 부족할 때 다시 입히는 세시풍속이다. 사초(莎草) 또는 떼입히기라고도 한다. 성묘 풍습은 신라 때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 한다. 기록에는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하는데, 조선시대에 보편화되었고 개사초 의례도 보인다. 한식이나 청명은 식물이 잘 자라는 시기인데다 탈이 없는 날 또는 손 없는 날이라고 여겨 개사초를 한다. 전국적인 풍속이지만 지역에 따라 시기나 형식, 제사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일가친지가 화목을 다지며 조상을 추모하고 부모에 대한 효의 정신을 기리는 전통의식을 계승한다.
개사초 (改莎草)
개사초는 산소 손질의 일종으로 무덤이 헐었거나 떼가 부족할 때 다시 입히는 세시풍속이다. 사초(莎草) 또는 떼입히기라고도 한다. 성묘 풍습은 신라 때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 한다. 기록에는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하는데, 조선시대에 보편화되었고 개사초 의례도 보인다. 한식이나 청명은 식물이 잘 자라는 시기인데다 탈이 없는 날 또는 손 없는 날이라고 여겨 개사초를 한다. 전국적인 풍속이지만 지역에 따라 시기나 형식, 제사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일가친지가 화목을 다지며 조상을 추모하고 부모에 대한 효의 정신을 기리는 전통의식을 계승한다.
해신신앙 해변이나 도서의 어촌에서 어업종사자들이 수호신에게 바치는 제의와 민간 신앙이다. 해신신앙은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및 도서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어민들은 삶과 직결된 해일과 풍랑을 피하기 위해 바다의 신을 숭배하고 제의를 올리는 해신제를 지냈다. 제의는 개인적, 공동체적 또는 국가적인 행사로 실행되었다. 해신제의 역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세시기』의 기록으로 보아 최소한 500년 이상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2009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되었다.
해신신앙 (海神信仰)
해신신앙 해변이나 도서의 어촌에서 어업종사자들이 수호신에게 바치는 제의와 민간 신앙이다. 해신신앙은 동해안, 서해안, 남해안 및 도서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어민들은 삶과 직결된 해일과 풍랑을 피하기 위해 바다의 신을 숭배하고 제의를 올리는 해신제를 지냈다. 제의는 개인적, 공동체적 또는 국가적인 행사로 실행되었다. 해신제의 역사는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세시기』의 기록으로 보아 최소한 500년 이상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2009년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점복신앙은 주술의 힘을 빌려서 인간의 지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추리·판단하는 민간신앙이다. 점복은 상고시대 양, 소, 돼지 등 동물의 점치는 뼈가 발견된 것에서 기원한다. 고대 봉건국가에서는 통치자의 국정 운영에, 민간에서는 길흉, 풍작 등에 관해 점쳤다.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점복을 담당한 점복자를 관직에 두고 국가의 제반사를 점치게 하였다. 현대의 점복은 주로 무속인들에 의해서 주도된다. 개인과 가족의 부귀영화, 무병장수 등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점을 친다. 실증과학의 진보나 종교사상의 발전이 눈부신 오늘날에도 민간의 풍속 가운데 잔존하고 있다.
점복신앙 (占卜信仰)
점복신앙은 주술의 힘을 빌려서 인간의 지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추리·판단하는 민간신앙이다. 점복은 상고시대 양, 소, 돼지 등 동물의 점치는 뼈가 발견된 것에서 기원한다. 고대 봉건국가에서는 통치자의 국정 운영에, 민간에서는 길흉, 풍작 등에 관해 점쳤다.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점복을 담당한 점복자를 관직에 두고 국가의 제반사를 점치게 하였다. 현대의 점복은 주로 무속인들에 의해서 주도된다. 개인과 가족의 부귀영화, 무병장수 등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점을 친다. 실증과학의 진보나 종교사상의 발전이 눈부신 오늘날에도 민간의 풍속 가운데 잔존하고 있다.
풍등놀이는 동짓날 저녁에 경상남도에서 이웃 서당의 학동들과 등불을 가지고 싸움하던 소년놀이이다. 풍등은 등싸움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출발의 신호로 띄우는 대형 풍선을 말한다. 본격적인 등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우선 등제를 치른다. 이후 풍등을 띄워 공중의 체재시간과 놀이로써 우위를 판가름한다. 풍등의 재료는 한지·대·철사·솜 등이다. 서당이 없어진 지금 등싸움 놀이는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통영에서 매년 개최되는 한산대첩제에서 풍등놀이를 재현한다. 여기에서의 놀이 내용은 과거와 다르지만 풍등의 규모나 모양은 옛것을 본떴다.
풍등놀이 (風燈놀이)
풍등놀이는 동짓날 저녁에 경상남도에서 이웃 서당의 학동들과 등불을 가지고 싸움하던 소년놀이이다. 풍등은 등싸움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출발의 신호로 띄우는 대형 풍선을 말한다. 본격적인 등싸움이 시작되기 직전 우선 등제를 치른다. 이후 풍등을 띄워 공중의 체재시간과 놀이로써 우위를 판가름한다. 풍등의 재료는 한지·대·철사·솜 등이다. 서당이 없어진 지금 등싸움 놀이는 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 통영에서 매년 개최되는 한산대첩제에서 풍등놀이를 재현한다. 여기에서의 놀이 내용은 과거와 다르지만 풍등의 규모나 모양은 옛것을 본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