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서영일"
검색결과 총 20건
동고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승암산에 있는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된 성곽이다. 평면 형태는 자연지형을 활용·축조하여 부정형을 이룬다. 서쪽·북쪽·남쪽 성벽 모퉁이는 뻗어 나간 능선을 따라 성벽이 돌출되어 있다. 문터는 동문지, 북문지, 서문지 등 3개소가 있다. 다른 산성에 비해 규모가 크며, 건물지의 수가 많고 대형 건물지도 많다.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후백제 견훤이 궁성·방어성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일반적인 산성으로 활용하였다. 동고산성은 시기에 따른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큰 유적이다.
동고산성 (東固山城)
동고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승암산에 있는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된 성곽이다. 평면 형태는 자연지형을 활용·축조하여 부정형을 이룬다. 서쪽·북쪽·남쪽 성벽 모퉁이는 뻗어 나간 능선을 따라 성벽이 돌출되어 있다. 문터는 동문지, 북문지, 서문지 등 3개소가 있다. 다른 산성에 비해 규모가 크며, 건물지의 수가 많고 대형 건물지도 많다. 통일신라 시대에 처음 축조되어 후백제 견훤이 궁성·방어성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일반적인 산성으로 활용하였다. 동고산성은 시기에 따른 변화상을 살필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큰 유적이다.
대모산성은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대모산에 있는 삼국시대 거점 산성의 전형적인 성격을 가진 석축 성곽이다. 총 길이는 718m로, 구릉 정상부에 화강암 석재를 가공하여 품(品)자 형으로 축조되어 있다. 문지 3개소, 건물지 11개소, 수혈유구 및 약 13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문지는 모두 현문식으로 삼국시대의 전형적인 성문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기요람』, 『경기지』 등에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의 성곽 축조 및 활용 문제와 그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대모산성 (大母山城)
대모산성은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대모산에 있는 삼국시대 거점 산성의 전형적인 성격을 가진 석축 성곽이다. 총 길이는 718m로, 구릉 정상부에 화강암 석재를 가공하여 품(品)자 형으로 축조되어 있다. 문지 3개소, 건물지 11개소, 수혈유구 및 약 13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문지는 모두 현문식으로 삼국시대의 전형적인 성문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기요람』, 『경기지』 등에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각 시대의 성곽 축조 및 활용 문제와 그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음성 망이산성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마이산에 있는 남북국시대 내성과 외성의 2중 구조로 축조된 성곽이다. 내성은 망이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테를 두르듯 축조된 토성이다. 외성은 내성을 감싸듯 석축으로 축조되었으며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2개의 능선 및 그 가운데 계곡을 가로막아서 축조된 석성이다. 외성의 총 길이는 2080m로, 삼국의 축조공법을 혼합한 통일신라시대의 축조법이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시대 지리서에 망이산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산성과 달리 봉수대가 같이 존재하여 학술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음성 망이산성 (陰城 望夷山城)
음성 망이산성은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 마이산에 있는 남북국시대 내성과 외성의 2중 구조로 축조된 성곽이다. 내성은 망이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테를 두르듯 축조된 토성이다. 외성은 내성을 감싸듯 석축으로 축조되었으며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2개의 능선 및 그 가운데 계곡을 가로막아서 축조된 석성이다. 외성의 총 길이는 2080m로, 삼국의 축조공법을 혼합한 통일신라시대의 축조법이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조선시대 지리서에 망이산에 봉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산성과 달리 봉수대가 같이 존재하여 학술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백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백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건물터·옛 우물터·토기 조각 등이 출토된 산성터이다. 해발 약 48m의 백산 정상부를 감싸고 축조되어 있다. 외성을 포함하여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하나 성벽의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이곳에서 집결하여 전주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이러한 역사성이 인정되어 1976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98년에는 국가 사적으로 승격되면서 명칭도 ‘부안 백산성’이 되었다. 백산성은 성곽과 관련된 고고학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역사 현장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백산성 (白山城)
백산성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백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건물터·옛 우물터·토기 조각 등이 출토된 산성터이다. 해발 약 48m의 백산 정상부를 감싸고 축조되어 있다. 외성을 포함하여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하나 성벽의 흔적은 뚜렷하지 않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이곳에서 집결하여 전주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이러한 역사성이 인정되어 1976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998년에는 국가 사적으로 승격되면서 명칭도 ‘부안 백산성’이 되었다. 백산성은 성곽과 관련된 고고학적 근거는 부족하지만 역사 현장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있는 조선전기 에 축조된 성곽.
보령 충청수영성 (保寧 忠淸水營城)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있는 조선전기 에 축조된 성곽.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南山)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 성곽. 산성.
서천 남산성 (舒川 南山城)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南山)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 성곽. 산성.
나주 회진성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흙으로 쌓은 토축 성곽으로 구릉에서 평지로 이어지는 평산성이다. 영산강 북안 거마산 정상부에서 남동 방향으로 뻗은 두 개의 능선과 중앙의 계곡부를 가로막아 축조되었다. 여러 차례 발굴조사로 성벽의 축조 방법과 구조 등은 밝혀졌지만 축조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성벽은 다른 성질의 흙을 겹겹이 다져 올리는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잔존 최고 높이 360㎝이며, 전체 너비는 평지부 최대 1,280㎝이다. 고대 토성으로는 규모가 크고, 지방에서 보기 드문 대형 성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나주 회진성 (羅州 會津城)
나주 회진성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에 있는 흙으로 쌓은 토축 성곽으로 구릉에서 평지로 이어지는 평산성이다. 영산강 북안 거마산 정상부에서 남동 방향으로 뻗은 두 개의 능선과 중앙의 계곡부를 가로막아 축조되었다. 여러 차례 발굴조사로 성벽의 축조 방법과 구조 등은 밝혀졌지만 축조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성벽은 다른 성질의 흙을 겹겹이 다져 올리는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잔존 최고 높이 360㎝이며, 전체 너비는 평지부 최대 1,280㎝이다. 고대 토성으로는 규모가 크고, 지방에서 보기 드문 대형 성곽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운주산성은 세종시 운주산에 있는 내성과 외성의 구조로 축조된 대형 성곽이다.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통일신라 시대의 축조물일 가능성이 있다. 둘레가 3,098m에 이르는 대형 산성으로, 내부에 다수의 건물지, 우물터, 절터 등이 있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이미 산성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기우제단이 설치되었다. 출토된 유물, 문헌 기록 등을 종합하면 이 산성은 시대별 특징을 가지고 활용되었다. 운주산성은 한국의 산성 발달사에 있어 학술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운주산성 (雲住山城)
운주산성은 세종시 운주산에 있는 내성과 외성의 구조로 축조된 대형 성곽이다.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통일신라 시대의 축조물일 가능성이 있다. 둘레가 3,098m에 이르는 대형 산성으로, 내부에 다수의 건물지, 우물터, 절터 등이 있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이미 산성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기우제단이 설치되었다. 출토된 유물, 문헌 기록 등을 종합하면 이 산성은 시대별 특징을 가지고 활용되었다. 운주산성은 한국의 산성 발달사에 있어 학술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월평동산성은 대전광역시 서구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이다. 갑천 동안의 구릉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백제의 노사지현이 있었던 곳이다. 산성에서 서쪽으로 유성 일대가, 동쪽으로 대전 시내 일대가 조망된다. 성벽 대부분은 붕괴되었으나 문지와 석축의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문지는 동문터, 서문터, 북문터 3개소가 있다. 성 내부에서 백제토기편이 수습되어 백제가 축조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산성과 월평동유적지에서 고구려 토기도 출토되었다. 이는 5세기 고구려가 월평동산성 일대까지 진출하였던 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월평동산성 (月坪洞山城)
월평동산성은 대전광역시 서구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이다. 갑천 동안의 구릉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백제의 노사지현이 있었던 곳이다. 산성에서 서쪽으로 유성 일대가, 동쪽으로 대전 시내 일대가 조망된다. 성벽 대부분은 붕괴되었으나 문지와 석축의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 있다. 문지는 동문터, 서문터, 북문터 3개소가 있다. 성 내부에서 백제토기편이 수습되어 백제가 축조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산성과 월평동유적지에서 고구려 토기도 출토되었다. 이는 5세기 고구려가 월평동산성 일대까지 진출하였던 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조선시대 전라도 병마절도사의 병영 관련 성곽. 병영성.
강진 전라병영성 (康津 全羅兵營城)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에 있는 조선시대 전라도 병마절도사의 병영 관련 성곽. 병영성.
죽주산성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과정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산성이다. 고려 1236년에 송문주가 몽골군과 15일간 전투를 해서 승리한 곳이다. 이 산성은 한양으로 통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 죽주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 등 3중 성벽 구조이다. 내성은 조선 시대, 중성은 신라 시대, 외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되었다. 전체 둘레는 1688m 정도이다. 죽주산성은 시대별 성벽 축조 방법과 활용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죽주산성 (竹州山城)
죽주산성은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북진 과정에서 축조한 성곽이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과정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산성이다. 고려 1236년에 송문주가 몽골군과 15일간 전투를 해서 승리한 곳이다. 이 산성은 한양으로 통하는 요충지였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 죽주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 등 3중 성벽 구조이다. 내성은 조선 시대, 중성은 신라 시대, 외성은 고려 시대에 축조되었다. 전체 둘레는 1688m 정도이다. 죽주산성은 시대별 성벽 축조 방법과 활용을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육계토성은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축조된 삼국시대 백제의 토성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었는데 내성은 수해로 유실되고 외성도 경지 정리 과정에서 대부분 성벽이 사라졌다. 부속 시설로는 추정 문지 2개소, 고대지 2개소, 추정 수구지 1개소, 외옹성 1개소 등이 있다. 성 내부에서 ‘凸’자형과 ‘呂’자 형태의 백제시대 주거지가 출토되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걸치는 다양한 종류의 백제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로 보아 이 시기에 백제 마을이 이곳에 자리 잡았고 그 외곽으로 방어를 위한 토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육계토성 (六溪土城)
육계토성은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에 축조된 삼국시대 백제의 토성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었는데 내성은 수해로 유실되고 외성도 경지 정리 과정에서 대부분 성벽이 사라졌다. 부속 시설로는 추정 문지 2개소, 고대지 2개소, 추정 수구지 1개소, 외옹성 1개소 등이 있다. 성 내부에서 ‘凸’자형과 ‘呂’자 형태의 백제시대 주거지가 출토되었다. 주거지 내부에서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에 걸치는 다양한 종류의 백제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이로 보아 이 시기에 백제 마을이 이곳에 자리 잡았고 그 외곽으로 방어를 위한 토성이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중성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석축 성곽. 산성.
칠중성 (七重城)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중성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석축 성곽. 산성.
처인성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있는 고려 시대 승려 김윤후와 관련된 성곽이다. 몽골군 침입 당시 처인성은 진위나 화성에서 급히 피난하기 적절한 곳이었다. 1232년에 김윤후도 피난하였다가 이곳에서 백성들과 함께 몽골의 살리타이를 사살하였다. 현재 처인성은 아곡리 마을 입구 해발 약 71m 정도 구릉의 끝부분에 성벽이 남아 있다. 성벽 규모는 둘레 약 350m, 높이 약 5∼6m이다. 처인성은 대체로 고려 시대에 군사적으로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국난극복의 성지로 기록이 남아 있는 성터로 역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처인성 (處仁城)
처인성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있는 고려 시대 승려 김윤후와 관련된 성곽이다. 몽골군 침입 당시 처인성은 진위나 화성에서 급히 피난하기 적절한 곳이었다. 1232년에 김윤후도 피난하였다가 이곳에서 백성들과 함께 몽골의 살리타이를 사살하였다. 현재 처인성은 아곡리 마을 입구 해발 약 71m 정도 구릉의 끝부분에 성벽이 남아 있다. 성벽 규모는 둘레 약 350m, 높이 약 5∼6m이다. 처인성은 대체로 고려 시대에 군사적으로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국난극복의 성지로 기록이 남아 있는 성터로 역사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서울 호암산성은 서울특별시 금천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성곽이다. 관악산 지맥인 일명 호암산 정상에 위치한 산성으로, 안양과 금천 일대의 평야를 관할하며 서쪽의 해안과 북쪽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에 대한 공격과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다. 산성은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했던 삼국의 쟁패 및 당나라를 물리치려던 신라의 군사 활동과 관련된 유적이다. 호암산성은 길쭉한 마름모꼴로, 성벽의 총 연장은 약 1.25㎞이다. 호암산성에서 발견된 중국 화폐인 희령원보는 고려시대 국제무역의 실체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서울 호암산성 (서울 虎巖山城)
서울 호암산성은 서울특별시 금천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성곽이다. 관악산 지맥인 일명 호암산 정상에 위치한 산성으로, 안양과 금천 일대의 평야를 관할하며 서쪽의 해안과 북쪽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에 대한 공격과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다. 산성은 한강유역을 차지하고자 했던 삼국의 쟁패 및 당나라를 물리치려던 신라의 군사 활동과 관련된 유적이다. 호암산성은 길쭉한 마름모꼴로, 성벽의 총 연장은 약 1.25㎞이다. 호암산성에서 발견된 중국 화폐인 희령원보는 고려시대 국제무역의 실체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광주와 전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해남통 (海南通)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광주와 전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김해와 진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동해통 (東海通)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김해와 진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한주 및 삭주 등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북요통 (北傜通)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한주 및 삭주 등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강릉을 거쳐 원산까지 연결되었던 교통로.
북해통 (北海通)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강릉을 거쳐 원산까지 연결되었던 교통로.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당항진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
염지통 (鹽池通)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당항진으로 연결되었던 교통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