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송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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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국가 과학기술의 혁신 등을 위하여 설치된 대통령 직속 기구이다. 1989년 6월에 처음 설치되었고, 1991년 3월에 상설 기구로 거듭났으며, 2004년 3월에 대통령이 의장을 맡게 되었다. 2008년 9월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로 개칭되었다가 2013년 3월에 다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되었다. 2018년 4월에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통합하여 그 기능이 한층 강화되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회의체에는 자문회의, 심의회의, 전원회의가 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國家科學技術諮問會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국가 과학기술의 혁신 등을 위하여 설치된 대통령 직속 기구이다. 1989년 6월에 처음 설치되었고, 1991년 3월에 상설 기구로 거듭났으며, 2004년 3월에 대통령이 의장을 맡게 되었다. 2008년 9월에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로 개칭되었다가 2013년 3월에 다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되었다. 2018년 4월에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통합하여 그 기능이 한층 강화되었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의장과 부의장을 포함한 30명 이내의 위원으로 구성되며, 회의체에는 자문회의, 심의회의, 전원회의가 있다.
포항철강산업단지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일대에 있는 산업단지이다. 세계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와의 접근성을 겨냥하여 철강과 관련된 업종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포항철강산업단지는 1단지, 2단지, 3단지, 4단지와 청림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1970~1972년, 1978~1992년, 1990~1994년, 2003~2006년, 1974~1977년에 조성되었다. 총면적은 13.183㎢이고, 2024년 4월 기준으로 359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포항철강산업단지 (浦項鐵鋼産業團地)
포항철강산업단지는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일대에 있는 산업단지이다. 세계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와의 접근성을 겨냥하여 철강과 관련된 업종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포항철강산업단지는 1단지, 2단지, 3단지, 4단지와 청림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1970~1972년, 1978~1992년, 1990~1994년, 2003~2006년, 1974~1977년에 조성되었다. 총면적은 13.183㎢이고, 2024년 4월 기준으로 359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다.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1966년 7월에 수립되어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진행된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지칭한다. 이 계획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기술 수요를 밑받침하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 자체의 발전을 조장하기 위하여 수립되었다.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의 주요 내용은 인력 개발, 연구 개발, 기술 협력, 기반 구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 (科學技術振興 五個年 計劃)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은 1966년 7월에 수립되어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진행된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을 지칭한다. 이 계획은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기술 수요를 밑받침하는 것은 물론 과학기술 자체의 발전을 조장하기 위하여 수립되었다. 과학기술진흥 5개년 계획의 주요 내용은 인력 개발, 연구 개발, 기술 협력, 기반 구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형성기, 1980~1996년의 확대기, 1997년 이후의 전환기를 통해 진화해 왔다. 형성기에는 과학기술 활동에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초점이 주어졌던 반면, 확대기의 과학기술정책은 연구 개발 활동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전환기에는 과학기술정책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과학기술정책 (科學技術政策)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다. 한국의 과학기술정책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형성기, 1980~1996년의 확대기, 1997년 이후의 전환기를 통해 진화해 왔다. 형성기에는 과학기술 활동에 필요한 기반을 조성하는 데 초점이 주어졌던 반면, 확대기의 과학기술정책은 연구 개발 활동을 본격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전환기에는 과학기술정책의 전환을 모색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과학기술연감은 1964년 이래 과학기술 주무 부처가 매년 발간하는 과학기술의 정책과 현황에 관한 연속 간행물이다. 1962년에 『과학기술백서』가 편찬되었으며 1964년부터는 『과학기술연감』이 매년 발간되는 체제가 구축되었다. 『과학기술연감』에는 해당 연도에 추진된 과학기술정책의 내역과 연구 개발 활동의 현황에 관한 정보가 집대성되어 있다.
과학기술연감 (科學技術年鑑)
과학기술연감은 1964년 이래 과학기술 주무 부처가 매년 발간하는 과학기술의 정책과 현황에 관한 연속 간행물이다. 1962년에 『과학기술백서』가 편찬되었으며 1964년부터는 『과학기술연감』이 매년 발간되는 체제가 구축되었다. 『과학기술연감』에는 해당 연도에 추진된 과학기술정책의 내역과 연구 개발 활동의 현황에 관한 정보가 집대성되어 있다.
「기술개발촉진법」은 1972년 민간 부문의 기술 개발 촉진을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기술 개발 준비금을 적립한 자와 기술 개발을 수행하는 수입 업자에 대한 자금 지원과 조세 감면을 골자로 삼고 있었다. 1977년에는 국산 신기술 제품의 제조자 보호와 산업기술연구조합의 설립에 관한 사항이 추가되었고, 1981년에는 특정 연구개발사업의 추진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었다.
기술개발촉진법 (技術開發促進法)
「기술개발촉진법」은 1972년 민간 부문의 기술 개발 촉진을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기술 개발 준비금을 적립한 자와 기술 개발을 수행하는 수입 업자에 대한 자금 지원과 조세 감면을 골자로 삼고 있었다. 1977년에는 국산 신기술 제품의 제조자 보호와 산업기술연구조합의 설립에 관한 사항이 추가되었고, 1981년에는 특정 연구개발사업의 추진에 관한 조항이 신설되었다.
성낙정은 한국 전력 산업의 기초를 닦은 제1세대 엔지니어이자 경영인이다. 그는 220볼트로 승압하는 사업을 직접 지휘하면서 전력 계통의 안전 장치로 중성점 직접 접지 방식을 채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전력공사 초대 사장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11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1983년 금탑 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성낙정 (成樂正)
성낙정은 한국 전력 산업의 기초를 닦은 제1세대 엔지니어이자 경영인이다. 그는 220볼트로 승압하는 사업을 직접 지휘하면서 전력 계통의 안전 장치로 중성점 직접 접지 방식을 채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전력공사 초대 사장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의 11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1983년 금탑 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컬러텔레비전 방영은 1980년에 불황 타개를 위해 컬러텔레비전의 방송을 전격적으로 허가한 조치이다. 한국의 전자 산업은 1970년대에 급속히 성장하다가 1980년에 13.1%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1980년 11월 10일에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12월 1일을 기해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다고 결정했다. 컬러텔레비전의 방영으로 한국 전자 산업은 다시 도약할 수 있었고, 우리 사회에서는 ‘컬러화’의 선풍이 불기 시작했다.
컬러텔레비전 방영 (color television 放映)
컬러텔레비전 방영은 1980년에 불황 타개를 위해 컬러텔레비전의 방송을 전격적으로 허가한 조치이다. 한국의 전자 산업은 1970년대에 급속히 성장하다가 1980년에 13.1%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1980년 11월 10일에 개최된 국무회의에서 12월 1일을 기해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다고 결정했다. 컬러텔레비전의 방영으로 한국 전자 산업은 다시 도약할 수 있었고, 우리 사회에서는 ‘컬러화’의 선풍이 불기 시작했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1958년부터 1969년까지 수립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여러 계획을 지칭한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문서상의 계획 단계, 일회성 계약의 단계, 협상을 통해 계약을 발전시킨 단계, 실제 사업으로 현실화된 단계를 밟아왔다. 결국 한국은 1969년에 신사업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한 후 일본의 협력을 도출하여 103만 톤 규모의 포항 제철소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종합제철사업계획 (綜合製鐵事業計劃)
종합제철사업계획은 1958년부터 1969년까지 수립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여러 계획을 지칭한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문서상의 계획 단계, 일회성 계약의 단계, 협상을 통해 계약을 발전시킨 단계, 실제 사업으로 현실화된 단계를 밟아왔다. 결국 한국은 1969년에 신사업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한 후 일본의 협력을 도출하여 103만 톤 규모의 포항 제철소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포항제철소는 1970~1983년에 경상북도 포항에 건설된 한국 최초의 일관 제철소이다. 포항제철소는 1기, 2기, 3기, 4기, 4기 2차 사업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91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을 매개로 포항제철은 세계 11위의 철강 업체로 부상했으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중화학공업화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포항제철소 (浦項製鐵所)
포항제철소는 1970~1983년에 경상북도 포항에 건설된 한국 최초의 일관 제철소이다. 포항제철소는 1기, 2기, 3기, 4기, 4기 2차 사업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91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을 매개로 포항제철은 세계 11위의 철강 업체로 부상했으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중화학공업화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광양제철소는 1985~1992년에 전라남도 광양시에 건설된 일관 제철소이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모색된 제2 종합 제철 사업은 사업 주체를 포항제철, 입지를 광양으로 삼았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4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1,14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이 마무리된 1992년에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철강 업체로 떠올랐다.
광양제철소 (光陽製鐵所)
광양제철소는 1985~1992년에 전라남도 광양시에 건설된 일관 제철소이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모색된 제2 종합 제철 사업은 사업 주체를 포항제철, 입지를 광양으로 삼았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4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1,14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이 마무리된 1992년에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철강 업체로 떠올랐다.
조선공업진흥법은 1967년에 조선 공업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조선 사업의 범위, 조선 공업 진흥 기본 계획의 수립, 조선 사업자에 대한 지원과 감독 등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1980년의 개정에서는 조선 사업의 범위가 조정되는 가운데 조선 공업의 합리화에 관한 항목을 추가했다.
조선공업진흥법 (造船工業振興法)
조선공업진흥법은 1967년에 조선 공업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조선 사업의 범위, 조선 공업 진흥 기본 계획의 수립, 조선 사업자에 대한 지원과 감독 등에 관한 내용을 담았다. 1980년의 개정에서는 조선 사업의 범위가 조정되는 가운데 조선 공업의 합리화에 관한 항목을 추가했다.
울산조선소는 1972~1974년에 현대건설이 울산에 건설한 조선소이다. 현대는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병행하는 가운데 2년 3개월 만에 70만 톤급의 울산조선소를 준공했다. 이후에도 울산조선소는 계속 확장되었으며, 독(dock)의 수는 1974년 2개에서 1979년 7개로 늘어났다.
울산조선소 (蔚山造船所)
울산조선소는 1972~1974년에 현대건설이 울산에 건설한 조선소이다. 현대는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병행하는 가운데 2년 3개월 만에 70만 톤급의 울산조선소를 준공했다. 이후에도 울산조선소는 계속 확장되었으며, 독(dock)의 수는 1974년 2개에서 1979년 7개로 늘어났다.
LNG선은 한국에서 건조된 액화천연가스 수송용 선박이다. LNG선에는 모스형과 멤브레인형이 있는데, 한국의 조선 업체들은 일본이 주도하던 모스형 대신에 멤브레인형을 상업화하는 데 도전했다. 2000년대에는 멤브레인형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고 한국은 LNG선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LNG선 (LNG船)
LNG선은 한국에서 건조된 액화천연가스 수송용 선박이다. LNG선에는 모스형과 멤브레인형이 있는데, 한국의 조선 업체들은 일본이 주도하던 모스형 대신에 멤브레인형을 상업화하는 데 도전했다. 2000년대에는 멤브레인형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를 잡았고 한국은 LNG선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했다.
김재관은 철강, 자동차 등 우리나라 중공업의 발전 방안을 제시한 과학자이자 기술 관료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실장, 초대 중공업 차관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대 소장 등을 역임했다. 김재관은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의 모태가 된 신사업 계획의 작성을 주도했고, 고유 모델 자동차의 추진과 국가 표준 제도의 법제화에 크게 기여했다.
김재관 (金在官)
김재관은 철강, 자동차 등 우리나라 중공업의 발전 방안을 제시한 과학자이자 기술 관료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실장, 초대 중공업 차관보,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초대 소장 등을 역임했다. 김재관은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의 모태가 된 신사업 계획의 작성을 주도했고, 고유 모델 자동차의 추진과 국가 표준 제도의 법제화에 크게 기여했다.
대한중공업은 1948~1962년에 한국의 철강 산업을 주도한 공기업이다. 대한중공업은 1956년에 제강 공장을, 1959~1960년에 분괴 공장과 압연 공장을 준공했으며, 196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강괴의 98.2%와 압연 제품의 46.9%를 생산했다. 대한중공업은 한국 정부가 종합제철사업을 추진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으며, 이후에 인천중공업과 인천제철을 거쳐 오늘날 현대제철로 이어지고 있다.
대한중공업 (大韓重工業)
대한중공업은 1948~1962년에 한국의 철강 산업을 주도한 공기업이다. 대한중공업은 1956년에 제강 공장을, 1959~1960년에 분괴 공장과 압연 공장을 준공했으며, 1960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강괴의 98.2%와 압연 제품의 46.9%를 생산했다. 대한중공업은 한국 정부가 종합제철사업을 추진하는 매개체로 활용되었으며, 이후에 인천중공업과 인천제철을 거쳐 오늘날 현대제철로 이어지고 있다.
철강공업육성법은 1970년에 철강 공업의 합리적 육성을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특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철강 시설에 정부가 재정적 지원, 공공요금 할인, 육성 자금 조성 등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철강공업육성법은 정부가 포항 제철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이를 감독하겠다는 의지에서 제정되었다.
철강공업육성법 (鐵鋼工業育成法)
철강공업육성법은 1970년에 철강 공업의 합리적 육성을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특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철강 시설에 정부가 재정적 지원, 공공요금 할인, 육성 자금 조성 등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철강공업육성법은 정부가 포항 제철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이를 감독하겠다는 의지에서 제정되었다.
동명목재는 1950~1970년대 한국의 합판 산업을 주도한 기업이다. 6·25 전쟁을 계기로 성장세에 진입한 동명목재는 1961년에 미국에 합판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동명목재는 1960년대에 합판의 대량 생산 체제를 처음으로 구축했으며, 1970년대에는 한국 합판 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했다.
동명목재 (東明木材)
동명목재는 1950~1970년대 한국의 합판 산업을 주도한 기업이다. 6·25 전쟁을 계기로 성장세에 진입한 동명목재는 1961년에 미국에 합판을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동명목재는 1960년대에 합판의 대량 생산 체제를 처음으로 구축했으며, 1970년대에는 한국 합판 생산량의 20% 이상을 차지했다.
나로호는 2013년에 발사에 성공한 한국 최초의 우주 발사체다. 나로호 개발사업은 100킬로그램급 인공위성을 고도 300킬로미터 이상의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나로호는 1단 액체 엔진과 2단 고체 킥 모터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단은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 개발, 2단은 한국의 자체 개발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로호 발사는 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로호 (羅老號)
나로호는 2013년에 발사에 성공한 한국 최초의 우주 발사체다. 나로호 개발사업은 100킬로그램급 인공위성을 고도 300킬로미터 이상의 지구 저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나로호는 1단 액체 엔진과 2단 고체 킥 모터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단은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 개발, 2단은 한국의 자체 개발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로호 발사는 세 번의 시도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테크노파크는 1997년부터 전국적으로 조성된 지역 기술혁신의 거점 기관이다. 테크노파크는 1997년에 6개 지역을 시작으로 점점 확대되어 2005년에는 17개, 2019년에는 19개 지역에 조성되었다. 테크노파크의 기능은 연구 개발, 교육 훈련, 정보 유통, 창업 보육, 시설 활용, 시험 생산 등에서 출발한 후 지역 발전 전략 수립 지원, 혁신 주체 사이의 협력 체계 구축 등이 추가되었다.
테크노파크 (Techno park)
테크노파크는 1997년부터 전국적으로 조성된 지역 기술혁신의 거점 기관이다. 테크노파크는 1997년에 6개 지역을 시작으로 점점 확대되어 2005년에는 17개, 2019년에는 19개 지역에 조성되었다. 테크노파크의 기능은 연구 개발, 교육 훈련, 정보 유통, 창업 보육, 시설 활용, 시험 생산 등에서 출발한 후 지역 발전 전략 수립 지원, 혁신 주체 사이의 협력 체계 구축 등이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