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신지혜"
검색결과 총 20건
강릉(康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쌍릉이다. 강릉의 서쪽에는 문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태릉이 자리 잡고 있어 두 능역을 합하여 태강릉(泰康陵)이라 부르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66년에 강릉과 태릉 사이에 태릉선수촌이 들어서면서 산릉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였으나,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 선수촌을 이전하고 능역을 되살리고 있다.
강릉 (康陵)
강릉(康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쌍릉이다. 강릉의 서쪽에는 문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태릉이 자리 잡고 있어 두 능역을 합하여 태강릉(泰康陵)이라 부르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66년에 강릉과 태릉 사이에 태릉선수촌이 들어서면서 산릉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였으나,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 선수촌을 이전하고 능역을 되살리고 있다.
건원릉(健元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있는 조선 제1대 태조의 능이다. 1408년에 양주 검암촌에 건립하였으며, 이후로 현릉 · 목릉 · 휘릉 · 숭릉 · 혜릉 · 원릉 · 경릉 · 수릉 등 8기의 능이 더 조성되면서 동구릉(東九陵)이라고 부른다. 석실을 갖추고, 병풍석을 둘렀으며, 사초를 함흥의 갈대를 심은 특색이 있다. 병풍석의 조각과 정중석의 설치, 신도비를 세운 것 등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정자각과 신도비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건원릉 (健元陵)
건원릉(健元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있는 조선 제1대 태조의 능이다. 1408년에 양주 검암촌에 건립하였으며, 이후로 현릉 · 목릉 · 휘릉 · 숭릉 · 혜릉 · 원릉 · 경릉 · 수릉 등 8기의 능이 더 조성되면서 동구릉(東九陵)이라고 부른다. 석실을 갖추고, 병풍석을 둘렀으며, 사초를 함흥의 갈대를 심은 특색이 있다. 병풍석의 조각과 정중석의 설치, 신도비를 세운 것 등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정자각과 신도비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릉(景陵)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이다. 1843년에 목릉의 옛터에 효현왕후의 능침이 자리 잡고 1849년에 헌종이 서쪽에 쌍릉으로 능침을 조성하였다가, 1904년에 효정왕후의 능침이 건립되면서 총 3기의 봉릉이 하나의 언덕에 나란히 배치된 이례적인 사례가 되었다.
경릉 (景陵)
경릉(景陵)은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이다. 1843년에 목릉의 옛터에 효현왕후의 능침이 자리 잡고 1849년에 헌종이 서쪽에 쌍릉으로 능침을 조성하였다가, 1904년에 효정왕후의 능침이 건립되면서 총 3기의 봉릉이 하나의 언덕에 나란히 배치된 이례적인 사례가 되었다.
남양주광릉(南楊州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폐지하고,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 회격을 만들고 난간석만으로 치장한 첫 사례이다. 또 왕과 왕후의 능이 같은 능역에 각각의 언덕으로 형성된 동원이강릉으로, 삼년상 동안에만 가정자각을 세워 각각 제례를 지내지만, 기간을 마치면 정자각을 두 능의 중심에 옮겨 짓고 합하여 제향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남양주 광릉 (南楊州 光陵)
남양주광릉(南楊州光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7대 왕 세조와 정희왕후의 동원이강릉이다. 세조의 유언대로 석실과 병풍석을 폐지하고,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 회격을 만들고 난간석만으로 치장한 첫 사례이다. 또 왕과 왕후의 능이 같은 능역에 각각의 언덕으로 형성된 동원이강릉으로, 삼년상 동안에만 가정자각을 세워 각각 제례를 지내지만, 기간을 마치면 정자각을 두 능의 중심에 옮겨 짓고 합하여 제향하도록 규례를 정하였다.
목릉(穆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조선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및 인목왕후 김씨의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이다. 1600년에 건원릉의 동쪽에 인목왕후의 유릉이 건립되고, 1608년에 선조가 승하하자 건원릉 서쪽에 산릉을 조성하였으나, 병풍석이 무너지는 문제가 생기자 1630년에 유릉의 서남쪽으로 천릉하였다. 이로써 선조와 의인왕후의 능역을 합하여 목릉이라 불렀으며, 1632년에 인목왕후가 선조의 능침 동남쪽에 안장되어 동원삼강릉이 되었다.
목릉 (穆陵)
목릉(穆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조선 제14대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및 인목왕후 김씨의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이다. 1600년에 건원릉의 동쪽에 인목왕후의 유릉이 건립되고, 1608년에 선조가 승하하자 건원릉 서쪽에 산릉을 조성하였으나, 병풍석이 무너지는 문제가 생기자 1630년에 유릉의 서남쪽으로 천릉하였다. 이로써 선조와 의인왕후의 능역을 합하여 목릉이라 불렀으며, 1632년에 인목왕후가 선조의 능침 동남쪽에 안장되어 동원삼강릉이 되었다.
여주영릉(驪州英陵)은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조선 제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1446년 헌릉의 서쪽에 돌방과 병풍석을 갖추어 건립되었으며, 『국조오례의』 「흉례」의 치장조에 따라 조선 석실 제도의 모범이 되었으나, 1469에 여주로 천릉하면서 광릉의 제도에 따라 삼물회(황토, 고운모래, 석회)로 회격현궁을 만들고 난간석만을 둘렀다. 왕이 살아 있을때, 왕후의 국장을 위하여 산릉을 조성하면서 추후에 안치될 왕의 수실을 미리 만들었던 유일한 사례이다.
여주 영릉 (驪州 英陵)
여주영릉(驪州英陵)은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조선 제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1446년 헌릉의 서쪽에 돌방과 병풍석을 갖추어 건립되었으며, 『국조오례의』 「흉례」의 치장조에 따라 조선 석실 제도의 모범이 되었으나, 1469에 여주로 천릉하면서 광릉의 제도에 따라 삼물회(황토, 고운모래, 석회)로 회격현궁을 만들고 난간석만을 둘렀다. 왕이 살아 있을때, 왕후의 국장을 위하여 산릉을 조성하면서 추후에 안치될 왕의 수실을 미리 만들었던 유일한 사례이다.
영릉(永陵)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조선 제21대 영조의 맏아들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쌍릉이다. 1729년에 효장세자의 묘소로 건립되고, 1752년에 현빈이 안장되어 쌍분을 이루었다. 정조가 즉위하여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존하고 영릉으로 격상되었으나, 돌거리를 추가로 조성하지 않아 여전히 세자묘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장순왕후의 공릉과 공혜왕후의 순릉과 같은 능역을 형성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파주 삼릉’이라 불린다.
영릉 (永陵)
영릉(永陵)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조선 제21대 영조의 맏아들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쌍릉이다. 1729년에 효장세자의 묘소로 건립되고, 1752년에 현빈이 안장되어 쌍분을 이루었다. 정조가 즉위하여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존하고 영릉으로 격상되었으나, 돌거리를 추가로 조성하지 않아 여전히 세자묘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장순왕후의 공릉과 공혜왕후의 순릉과 같은 능역을 형성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파주 삼릉’이라 불린다.
예릉(睿陵)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쌍릉이다. 중종의 정릉이 천릉한 옛터에 건립하면서 옛 정릉의 돌거리를 재사용하였다. 동쪽에는 장경왕후의 희릉이 있고, 서쪽에 인종의 효릉이 있어 서삼릉이라 부른다. 사적 정식 명칭은 ‘고양 서삼릉’이다.
예릉 (睿陵)
예릉(睿陵)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25대 철종과 철인왕후 김씨의 쌍릉이다. 중종의 정릉이 천릉한 옛터에 건립하면서 옛 정릉의 돌거리를 재사용하였다. 동쪽에는 장경왕후의 희릉이 있고, 서쪽에 인종의 효릉이 있어 서삼릉이라 부른다. 사적 정식 명칭은 ‘고양 서삼릉’이다.
유릉(裕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이다. 오른쪽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어 합하여 홍유릉이라 부르고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홍릉과 유릉은 황제릉으로 건립하였다.
유릉 (裕陵)
유릉(裕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이다. 오른쪽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홍릉이 있어 합하여 홍유릉이라 부르고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홍릉과 유릉은 황제릉으로 건립하였다.
의릉(懿陵)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제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동원상하릉이다. 1724년에 경종의 능침을 조성하고, 1730년에 경종과 같은 언덕에 약 80자 정도 아래에 선의왕후의 능침을 마련하여 상하로 배치된 두 개의 봉분이 완성되었다. 1962년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가 의릉 경내에 자리 잡으면서 의릉의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정원으로 활용하였으나, 1995년 중앙정보부가 이전하고 능역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의릉 (懿陵)
의릉(懿陵)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제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동원상하릉이다. 1724년에 경종의 능침을 조성하고, 1730년에 경종과 같은 언덕에 약 80자 정도 아래에 선의왕후의 능침을 마련하여 상하로 배치된 두 개의 봉분이 완성되었다. 1962년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가 의릉 경내에 자리 잡으면서 의릉의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정원으로 활용하였으나, 1995년 중앙정보부가 이전하고 능역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익릉(翼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 서오릉에 있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단릉이다. 숭릉의 전례를 따라, 8칸 정자각과 재실의 공간 구성이 이루어져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의 특징을 갖는다. 창릉 · 경릉 · 명릉 · 홍릉과 함께 하나의 능역을 이루어 고양 서오릉으로 불리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익릉 (翼陵)
익릉(翼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 서오릉에 있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단릉이다. 숭릉의 전례를 따라, 8칸 정자각과 재실의 공간 구성이 이루어져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의 특징을 갖는다. 창릉 · 경릉 · 명릉 · 홍릉과 함께 하나의 능역을 이루어 고양 서오릉으로 불리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김포 장릉(金浦 章陵)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쌍릉이다. 1619년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사망하자 양주에 안장되었다. 1623년에 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를 정원대원군, 어머니를 연주부부인으로 봉하였으며, 1626년에 연주부부인의 장례를 치른후 정원대원군의 묘를 이장하여 쌍분으로 만들어 흥경원이 되었다. 1632년에 정원대원군을 원종이라 추존하고 흥경원을 장릉(章陵)이라 능호를 올리고 능제로 돌거리를 갖추었다.
김포 장릉 (金浦 章陵)
김포 장릉(金浦 章陵)은 경기도 김포시에 있는 추존왕 원종과 인헌왕후의 쌍릉이다. 1619년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사망하자 양주에 안장되었다. 1623년에 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아버지를 정원대원군, 어머니를 연주부부인으로 봉하였으며, 1626년에 연주부부인의 장례를 치른후 정원대원군의 묘를 이장하여 쌍분으로 만들어 흥경원이 되었다. 1632년에 정원대원군을 원종이라 추존하고 흥경원을 장릉(章陵)이라 능호를 올리고 능제로 돌거리를 갖추었다.
정릉(靖陵)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단릉이다. 1544년에 장경왕후의 희릉 곁에 건립되었으나, 1559년에 문정왕후가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천릉하여 선릉 곁으로 옮겨 조성하였다. 지하 구조는 석회와 모래 · 황토를 혼합하여 회격으로 만들고, 봉릉에는 병풍석을 갖추었다.
정릉 (靖陵)
정릉(靖陵)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단릉이다. 1544년에 장경왕후의 희릉 곁에 건립되었으나, 1559년에 문정왕후가 풍수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천릉하여 선릉 곁으로 옮겨 조성하였다. 지하 구조는 석회와 모래 · 황토를 혼합하여 회격으로 만들고, 봉릉에는 병풍석을 갖추었다.
태릉(泰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단릉이다. 태릉은 왕후의 단릉이지만, 능역이 넓고 석상의 규모도 매우 크며 병풍석을 갖추었다. 중종의 곁에 묻히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도성의 동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동쪽에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강릉이 뒤이어 자리 잡았다. 이를 합하여 태강릉이라 부르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태릉 (泰陵)
태릉(泰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의 단릉이다. 태릉은 왕후의 단릉이지만, 능역이 넓고 석상의 규모도 매우 크며 병풍석을 갖추었다. 중종의 곁에 묻히고 싶었던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홀로 도성의 동쪽에 자리를 잡았으나, 동쪽에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강릉이 뒤이어 자리 잡았다. 이를 합하여 태강릉이라 부르며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헌릉(獻陵)은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있는 조선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 민씨의 쌍릉이다. 건립 당시부터 오른편을 비워 두어 쌍릉으로 계획되었으며, 난간석으로 두 능을 하나로 연결하였다. 조선 건국 이래 첫 번째 쌍릉으로 능상 위에 배치되는 문 · 무석인의 수가 다른 능보다 두 배 더 배치되었다. 1856년에 순조의 인릉이 건립되면서 헌인릉으로 불렸다. 사적 정식 명칭은 ‘서울 헌릉과 인릉’이다.
헌릉 (獻陵)
헌릉(獻陵)은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있는 조선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 민씨의 쌍릉이다. 건립 당시부터 오른편을 비워 두어 쌍릉으로 계획되었으며, 난간석으로 두 능을 하나로 연결하였다. 조선 건국 이래 첫 번째 쌍릉으로 능상 위에 배치되는 문 · 무석인의 수가 다른 능보다 두 배 더 배치되었다. 1856년에 순조의 인릉이 건립되면서 헌인릉으로 불렸다. 사적 정식 명칭은 ‘서울 헌릉과 인릉’이다.
현릉(顯陵)은 경기도 구리시에 동구릉 내에 자리하는 조선시대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동원이강릉이다. 문종의 능은 『국조오례의』의 규정에 따라 석실을 갖추고 병풍석을 둘렀다. 1513년에 천릉된 현덕왕후의 능은 회격릉으로 난간석만 둘렀다. 현덕왕후의 능호는 소릉(昭陵)이었으나 문종의 현릉 곁으로 옮기면서 현릉의 능호로 불리게 되었다.
현릉 (顯陵)
현릉(顯陵)은 경기도 구리시에 동구릉 내에 자리하는 조선시대 제5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동원이강릉이다. 문종의 능은 『국조오례의』의 규정에 따라 석실을 갖추고 병풍석을 둘렀다. 1513년에 천릉된 현덕왕후의 능은 회격릉으로 난간석만 둘렀다. 현덕왕후의 능호는 소릉(昭陵)이었으나 문종의 현릉 곁으로 옮기면서 현릉의 능호로 불리게 되었다.
홍릉(洪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왼쪽에 순종의 유릉이 조성되어 홍유릉이라고도 불리며,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성황후의 첫 능역은 동구릉 안으로 정하고 숙릉이라 하였으나, 1897년에 청량리에 재조성하고 능호를 홍릉이라 변경하였다. 1919년에 금곡에 고종을 국장하면서 명성황후를 다시 옮겨와 합장릉으로 조성하고 홍릉이라 하였다. 대한제국기에 황제릉의 격식을 갖추었다.
홍릉 (洪陵)
홍릉(洪陵)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이다. 왼쪽에 순종의 유릉이 조성되어 홍유릉이라고도 불리며,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명성황후의 첫 능역은 동구릉 안으로 정하고 숙릉이라 하였으나, 1897년에 청량리에 재조성하고 능호를 홍릉이라 변경하였다. 1919년에 금곡에 고종을 국장하면서 명성황후를 다시 옮겨와 합장릉으로 조성하고 홍릉이라 하였다. 대한제국기에 황제릉의 격식을 갖추었다.
효릉(孝陵)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12대 인종과 정비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이다. 부왕 곁에 묻히고 싶은 인종의 뜻에 따라 중종과 장경왕후의 동원이강릉이었던 정릉 곁에 자리 잡았으나, 중종의 능침이 천릉하여 어머니 장경왕후의 희릉만 남아 하나의 영역을 이루었다.
효릉 (孝陵)
효릉(孝陵)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12대 인종과 정비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이다. 부왕 곁에 묻히고 싶은 인종의 뜻에 따라 중종과 장경왕후의 동원이강릉이었던 정릉 곁에 자리 잡았으나, 중종의 능침이 천릉하여 어머니 장경왕후의 희릉만 남아 하나의 영역을 이루었다.
휘릉(徽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조선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1688년에 건원릉의 서남쪽에 유좌묘향으로 자리 잡았다. 정자각의 정전 좌우에 익각을 갖추어 5칸이며, 배위청이 3칸으로 8칸 정자각에 맞배지붕으로 남아 있다. 건원릉, 현릉, 목릉, 숭릉, 원릉, 경릉, 수릉, 혜릉 등과 함께 동구릉이라 불리며,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휘릉 (徽陵)
휘릉(徽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조선 제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1688년에 건원릉의 서남쪽에 유좌묘향으로 자리 잡았다. 정자각의 정전 좌우에 익각을 갖추어 5칸이며, 배위청이 3칸으로 8칸 정자각에 맞배지붕으로 남아 있다. 건원릉, 현릉, 목릉, 숭릉, 원릉, 경릉, 수릉, 혜릉 등과 함께 동구릉이라 불리며, 1970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희릉(禧陵)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무덤이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안에 자리하며 효릉과 예릉을 통합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암반에 능침을 조성하였다는 이유로 1537년에 헌릉의 서쪽 언덕에서 천릉하여 고양시에 자리 잡았다. 1973년에 초장지가 발굴되어 16세기 초 회격릉의 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다.
희릉 (禧陵)
희릉(禧陵)은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무덤이다.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 안에 자리하며 효릉과 예릉을 통합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암반에 능침을 조성하였다는 이유로 1537년에 헌릉의 서쪽 언덕에서 천릉하여 고양시에 자리 잡았다. 1973년에 초장지가 발굴되어 16세기 초 회격릉의 구조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