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오세창"
검색결과 총 30건
「일본의 조선지배정책사 연구」, 「한국노동조합운동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
강동진 (姜東鎭)
「일본의 조선지배정책사 연구」, 「한국노동조합운동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공조참의,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만식 (金晩植)
조선 후기에, 동부승지, 공조참의,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때, 총리군국사무, 영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병국 (金炳國)
개항기 때, 총리군국사무, 영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해방 이후 「국사강좌」, 「한국사입문」, 「세계문화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김성균 (金聲均)
해방 이후 「국사강좌」, 「한국사입문」, 「세계문화사」 등을 저술한 학자. 역사학자.
김정주는 해방 이후 「일본의 한국침략사」, 「구주와 한인」, 「일제통치사료」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33년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1938년에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다. 1945년 재일한인사회의 민족운동에 투신하여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사료연구소를 설립하고 한일고대관계사자료와 일제의 한국침략사사료를 수집하여 한일고대관계사의 개척자가 되었다. 재일한국인의 민족적 단결과 한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한래문화(韓來文化)’란 용어로 정리하는 등 학문적으로 기여하였다.
김정주 (金正柱)
김정주는 해방 이후 「일본의 한국침략사」, 「구주와 한인」, 「일제통치사료」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태어나 1982년에 사망했다. 1933년 진주고보를 졸업하고 1938년에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다. 1945년 재일한인사회의 민족운동에 투신하여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봉환하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사료연구소를 설립하고 한일고대관계사자료와 일제의 한국침략사사료를 수집하여 한일고대관계사의 개척자가 되었다. 재일한국인의 민족적 단결과 한국문화가 일본에 끼친 영향을 ‘한래문화(韓來文化)’란 용어로 정리하는 등 학문적으로 기여하였다.
190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 계몽운동 단체.
대한구락부 (大韓俱樂部)
190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애국 계몽운동 단체.
개항기 좌참찬, 호조판서, 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민영달 (閔泳達)
개항기 좌참찬, 호조판서, 내부대신 등을 역임한 관료.
조선 후기에, 참의내무부사, 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민영주 (閔泳柱)
조선 후기에, 참의내무부사, 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때, 홍문관학사, 표훈원의정관, 중추원의장 등을 역임한 문신.
서정순 (徐正淳)
대한제국기 때, 홍문관학사, 표훈원의정관, 중추원의장 등을 역임한 문신.
일제강점기 육군 참위, 대한통의부 총사령관 등을 역임한 항일운동가. 관료.
신팔균 (申八均)
일제강점기 육군 참위, 대한통의부 총사령관 등을 역임한 항일운동가. 관료.
1910년 11월 안명근(安明根)이 서간도(西間島)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지방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검거된 사건.
안악사건 (安岳事件)
1910년 11월 안명근(安明根)이 서간도(西間島)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지방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검거된 사건.
안중근은 일제강점기 이토저격사건과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879년(고종 16)에 태어나 1910년에 사망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했다가 국내실력양성이 중요하다는 선교사의 충고로 귀국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연해주 의병운동을 일으켰으며 각종 모임을 만들어 애국사상 고취와 군사훈련을 담당했다. 1909년 3월에 동지 12명이 모여 이토와 이완용 제거를 단지의 피로써 맹세하고 9월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 현장에서 체포됐다. 개인이 아닌 대한의용군사령관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라 주장하다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사형당했다.
안중근 (安重根)
안중근은 일제강점기 이토저격사건과 관련된 독립운동가이다. 1879년(고종 16)에 태어나 1910년에 사망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상해로 망명했다가 국내실력양성이 중요하다는 선교사의 충고로 귀국했다. 학교를 설립하고 연해주 의병운동을 일으켰으며 각종 모임을 만들어 애국사상 고취와 군사훈련을 담당했다. 1909년 3월에 동지 12명이 모여 이토와 이완용 제거를 단지의 피로써 맹세하고 9월 하얼빈역에서 이토를 사살, 현장에서 체포됐다. 개인이 아닌 대한의용군사령관의 자격으로 총살한 것이라 주장하다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사형당했다.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야단 (野團)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1898년 12월과 1899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전라남북도 일부 지역에서 봉기한 무장농민조직.
영학당 (英學黨)
1898년 12월과 1899년 5월 두 차례에 걸쳐 전라남북도 일부 지역에서 봉기한 무장농민조직.
대한제국기 『대동공보』의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활동한 항일운동가. 언론인.
유진률 (兪鎭律)
대한제국기 『대동공보』의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활동한 항일운동가. 언론인.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의군부 (義軍府)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의민단 (義民團)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1923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의성단 (義成團)
1923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덕흥교회 장로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이명룡 (李明龍)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덕흥교회 장로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대한광복단 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을 역임한 의병장·독립운동가.
이범윤 (李範允)
일제강점기 때, 권업회 총재, 의군부 총재, 대한광복단 단장, 대한독립군단 총재 등을 역임한 의병장·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