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윤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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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부산성(慶州 富山城)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195-2 일대에 있는 포곡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약 9㎞이고 남은 성벽의 높이는 2m이다. 신라 진평왕 대에 초축되었다는 설과 문무왕 대에 축성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성 내부에서는 경주 남산신성(南山新城)의 서창지와 비슷한 규모의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신라시대에 초축된 경주 부산성은 왕경의 외곽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조선시대까지 경주와 영천, 포항 지역을 관할하는 군창의 역할을 담당한 중요한 관방시설이었다.
경주 부산성 (慶州 富山城)
경주 부산성(慶州 富山城)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195-2 일대에 있는 포곡식 석축 산성으로 둘레는 약 9㎞이고 남은 성벽의 높이는 2m이다. 신라 진평왕 대에 초축되었다는 설과 문무왕 대에 축성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성 내부에서는 경주 남산신성(南山新城)의 서창지와 비슷한 규모의 대형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신라시대에 초축된 경주 부산성은 왕경의 외곽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조선시대까지 경주와 영천, 포항 지역을 관할하는 군창의 역할을 담당한 중요한 관방시설이었다.
경주 월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신라의 왕성이다. 월성은 동서의 길이가 890m, 남북의 길이가 260m인 긴 반달 모양의 테뫼식 토성으로 둘레는 2,340m이다. 월성은 201년(파사 이사금 22)부터 사료에 등장하지만, 발굴 조사를 통하여 교호 성토된 토성은 5세기 초반에 완공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월성은 신라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고려시대 이후에는 재사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월성은 신라의 성장과 번영, 그리고 멸망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경주 월성 (慶州 月城)
경주 월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신라의 왕성이다. 월성은 동서의 길이가 890m, 남북의 길이가 260m인 긴 반달 모양의 테뫼식 토성으로 둘레는 2,340m이다. 월성은 201년(파사 이사금 22)부터 사료에 등장하지만, 발굴 조사를 통하여 교호 성토된 토성은 5세기 초반에 완공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월성은 신라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고려시대 이후에는 재사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월성은 신라의 성장과 번영, 그리고 멸망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경주읍성은 신라 왕경의 북쪽에 해당하는 경주시 동부동과 북부동 일대에 위치하는 둘레 2,412m의 석축 평지성이다. 고려시대에 초축되고 조선시대에 개축되어 사용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 발굴 조사를 통하여 경주읍성의 현황 자료가 확보됨과 동시에 연차적으로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경주읍성은 신라의 왕경에 위치하면서 이후 고려시대의 동경, 조선시대의 경주부의 중심지로 중세 경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주읍성 (慶州邑城)
경주읍성은 신라 왕경의 북쪽에 해당하는 경주시 동부동과 북부동 일대에 위치하는 둘레 2,412m의 석축 평지성이다. 고려시대에 초축되고 조선시대에 개축되어 사용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 발굴 조사를 통하여 경주읍성의 현황 자료가 확보됨과 동시에 연차적으로 복원 사업이 진행 중이다. 경주읍성은 신라의 왕경에 위치하면서 이후 고려시대의 동경, 조선시대의 경주부의 중심지로 중세 경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관문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과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일대에 위치한 장성과 동쪽에 퇴뫼식으로 쌓은 석축 산성인 신대리산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산성 북쪽으로 봉수대까지 확인되는 복합 관방 시설이다. 관문성은 신라 722년(성덕왕 21)에 축조한 모벌군성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장성 구간은 높이 3m의 석축 면석으로 확인되는데, 이보다 앞서 축조된 남산신성이나 명활산성과 축조 방식의 비교 자료가 되어 남북국시대 신라의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관문성 (關門城)
관문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과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일대에 위치한 장성과 동쪽에 퇴뫼식으로 쌓은 석축 산성인 신대리산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산성 북쪽으로 봉수대까지 확인되는 복합 관방 시설이다. 관문성은 신라 722년(성덕왕 21)에 축조한 모벌군성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된다. 장성 구간은 높이 3m의 석축 면석으로 확인되는데, 이보다 앞서 축조된 남산신성이나 명활산성과 축조 방식의 비교 자료가 되어 남북국시대 신라의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계족산성(鷄足山城)은 대전 대덕구 장동 산84번지 일대에 위치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둘레는 1,037m이며 구간별로 협축 또는 편축으로 축조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북벽이 940cm로 가장 높다. 성벽의 축조 방식이나 현문식 문지는 신라의 축성 방식과 상통하지만, 서문지의 백제 기와나 집수지에서 출토된 백제 사비기 토기의 해석에 따라서 백제 초축설과 신라 초축설로 견해가 나누어진다. 대전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 산성은 6~7세기 대에 삼국의 접경인 금강 유역을 두고 벌어진 쟁탈전의 상황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전 계족산성 (大田 鷄足山城)
계족산성(鷄足山城)은 대전 대덕구 장동 산84번지 일대에 위치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둘레는 1,037m이며 구간별로 협축 또는 편축으로 축조되었다. 성벽의 높이는 북벽이 940cm로 가장 높다. 성벽의 축조 방식이나 현문식 문지는 신라의 축성 방식과 상통하지만, 서문지의 백제 기와나 집수지에서 출토된 백제 사비기 토기의 해석에 따라서 백제 초축설과 신라 초축설로 견해가 나누어진다. 대전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이 산성은 6~7세기 대에 삼국의 접경인 금강 유역을 두고 벌어진 쟁탈전의 상황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현산성(馬峴山城)은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102번지에 있는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협축식 성벽의 둘레는 약 300m이다. 성벽은 가공되지 않은 할석으로 조잡하게 만들어 나말선초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피난성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부에서 6세기 중반 경의 신라 토기가 확인되므로 신라의 가야 지역 진출과 관련하여 초축한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마현산성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자료만 정리된 상태이지만, 낙동강 하구의 관방 체계와 관련하여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마현산성 (馬峴山城)
마현산성(馬峴山城)은 경상남도 김해시 생림면 봉림리 산102번지에 있는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협축식 성벽의 둘레는 약 300m이다. 성벽은 가공되지 않은 할석으로 조잡하게 만들어 나말선초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피난성으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내부에서 6세기 중반 경의 신라 토기가 확인되므로 신라의 가야 지역 진출과 관련하여 초축한 흔적이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마현산성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자료만 정리된 상태이지만, 낙동강 하구의 관방 체계와 관련하여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명활산성은 경주시 천군동의 흰등산과 서쪽의 장군봉, 내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의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약 4.7㎞의 대형 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13m로 추정된다. 5세기 이전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석성으로 개축되어 7세기까지 운영되었다. 명활산성은 사료와 금석문을 통하여 풍부한 역사적인 기록을 전하는 산성이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축으로 개축된 산성으로 7세기 후반 이후에 폐성되었다는 점에서 6~7세기의 신라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성이다.
명활산성 (明活山城)
명활산성은 경주시 천군동의 흰등산과 서쪽의 장군봉, 내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의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약 4.7㎞의 대형 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13m로 추정된다. 5세기 이전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석성으로 개축되어 7세기까지 운영되었다. 명활산성은 사료와 금석문을 통하여 풍부한 역사적인 기록을 전하는 산성이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축으로 개축된 산성으로 7세기 후반 이후에 폐성되었다는 점에서 6~7세기의 신라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성이다.
서천 장암진성(舒川 長巖鎭城)은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으로 구릉과 평지를 역사다리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석축식 평산성이다. 남문과 북문이 있으며, 해자도 확인되었다. 조선 전기에 축조되어 조선 후기까지 사용된 이 성은 인근의 서천과 서해안 지역 읍성에 비해 기반의 조성이나 면석의 치석이 간략화된 축성법을 사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서천 장암진성 (舒川 長巖鎭城)
서천 장암진성(舒川 長巖鎭城)은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으로 구릉과 평지를 역사다리 모양으로 감싸고 있는 석축식 평산성이다. 남문과 북문이 있으며, 해자도 확인되었다. 조선 전기에 축조되어 조선 후기까지 사용된 이 성은 인근의 서천과 서해안 지역 읍성에 비해 기반의 조성이나 면석의 치석이 간략화된 축성법을 사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안산읍성 및 관아지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대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과 관아터이다. 안산읍성은 구릉과 평지를 감싸는 평산성인데, 규모는 동쪽 벽이 180.6m, 서쪽 벽이 174.7m, 남쪽 벽이 197.5m, 북쪽 벽이 219.4m로 전체 둘레는 772.2m이다. 지형에 따라 축조한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3∼4m인데, 외면은 석축으로 내면은 토사를 충전한 내탁식이다. 조선 초기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부에서 목빙고가 확인되어 안산 지역의 물류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안산읍성 및 관아지 (安山邑城 및 官衙址)
안산읍성 및 관아지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대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과 관아터이다. 안산읍성은 구릉과 평지를 감싸는 평산성인데, 규모는 동쪽 벽이 180.6m, 서쪽 벽이 174.7m, 남쪽 벽이 197.5m, 북쪽 벽이 219.4m로 전체 둘레는 772.2m이다. 지형에 따라 축조한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3∼4m인데, 외면은 석축으로 내면은 토사를 충전한 내탁식이다. 조선 초기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부에서 목빙고가 확인되어 안산 지역의 물류와 관련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원주 영원산성은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40-2번지 일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1999~2002년에 영원산성의 남벽 410m가 복원되었고, 2013~15년까지 3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된 결과 둘레는 약 2,400m이며, 잔존 상태가 좋은 구간에서는 성벽의 높이는 3m이다. 대몽항쟁기에 입보용 산성으로 축조되었고, 임진왜란에 재활용되어 18세기까지 운용되었다.
원주 영원산성 (原州 鴒原山城)
원주 영원산성은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산40-2번지 일대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1999~2002년에 영원산성의 남벽 410m가 복원되었고, 2013~15년까지 3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된 결과 둘레는 약 2,400m이며, 잔존 상태가 좋은 구간에서는 성벽의 높이는 3m이다. 대몽항쟁기에 입보용 산성으로 축조되었고, 임진왜란에 재활용되어 18세기까지 운용되었다.
충주 견학리 토성은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일대에 위치한 평지 토성이다. 가섭산 자락이 동쪽에서 평지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구릉 말단부에 만들어졌고, 동쪽으로 요도천과 평지가 보인다. 충주 견학리 토성과 관련된 문헌 자료는 확인되지 않지만, 1980년의 지표 조사 과정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두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남북 축으로 약 58m, 동서 축으로 49m의 방형임이 밝혀졌으며, 추정 둘레는 약 214m이다. 성벽은 중심 토루와 내외피 토루가 있는 토성임이 확인되었는데, 9세기를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충주 견학리 토성 (忠州 見鶴里 土城)
충주 견학리 토성은 충청북도 충주시 신니면 일대에 위치한 평지 토성이다. 가섭산 자락이 동쪽에서 평지를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구릉 말단부에 만들어졌고, 동쪽으로 요도천과 평지가 보인다. 충주 견학리 토성과 관련된 문헌 자료는 확인되지 않지만, 1980년의 지표 조사 과정에서 그 존재가 확인되었다. 두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하여 남북 축으로 약 58m, 동서 축으로 49m의 방형임이 밝혀졌으며, 추정 둘레는 약 214m이다. 성벽은 중심 토루와 내외피 토루가 있는 토성임이 확인되었는데, 9세기를 전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