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조선시대의 읍성과 관아터. 경기도 시도 기념물.
위치
발굴 경위 및 결과
성벽 하단부의 폭은 7~10m이며, 상단부 폭은 2~3.5m이고 높이는 대체로 3~4m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각 구간별로 성벽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외벽은 석축으로 쌓고 내부는 토사를 다져 쌓은 내탁식 구조임이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조는 풍화 암반을 정지한 뒤 내외벽 기단석을 놓고, 점토 다짐으로 정지한 뒤에 외벽을 축조하면서 뒤채움 돌을 부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외벽 축조 후에 내벽에 경사지게 점토 다짐을 하여 내탁식의 성벽을 완성하였다. 성벽 조사 과정에서 유물이 확인되지 않아서 정확한 축성 시기는 확인하기 어렵다.
안산읍성의 축성과 관련된 내용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안산군 조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1438년(세종 20)에 반포된 ‘축성신도(築城新圖)’에 따라 축조된 하동 읍성, 언양 읍성 등과 유사하다. 한편 동쪽 벽 일부 구간에는 외벽과 내벽을 흙으로 다져서 토성처럼 보이는 부분이 확인되는데, 이는 후대의 개축 흔적으로 볼 수도 있다. 현재 문지는 북문지 1개소만 확인되지만, 읍성의 주 출입구는 지형으로 보아 남쪽 방향이라는 점에서 남문지가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민가가 형성되면서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북문지는 별도의 시설 없이 성벽이 단절되어 개방된 상태였는데 발굴 조사 결과 관련 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와 등의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루가 없는 개거식 또는 암거식 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읍성 북문지 서쪽 북벽과 서쪽 벽의 회절부에는 장대지로 추정되는 3∼4단의 석축부가 확인된다.
읍성 내부에는 정문인 평근루(平近樓), 객사와 동헌, 옥사와 창고가 위치하였는데 모두 철거되었다. 그렇지만 발굴 조사를 통하여 성 내부 남동쪽 지역에는 다수의 건물지들이 조사되었다. 안산읍성 내부에서 확인된 시설 중에서 목빙고의 존재도 주목된다. 안산읍성의 목빙고는 장축이 1.5m, 단축이 6m의 세장방형으로 빙고 내부의 벽체는 할석으로 조성하였고 한 차례 북동벽 안쪽으로 좁혀서 개축된 흔적도 확인되었다. 경주, 안동, 창녕, 청도, 현풍, 영산에 석빙고와 함께 홍성 오관리와 부여 구교리에서 조선시대 목빙고가 확인된 바 있다. 안산읍성의 목빙고와 관련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해안에 인접하여 어패류 자원이 풍부한 지리적인 입지를 감안한다면, 안산 어소에서 어물을 한양에 진상하기 위한 얼음 보관 시설로 유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산 관아는 처음에 목내동 일대에 세워졌는데, 1441년에 현재 위치에 옮겨졌다. 그러나 유성룡의 『서애집』 등을 통하여 임진왜란 당시에 안산 관아는 소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송시열의 『송자대전』 「안산현관사중건기」 등에 의하면 기존 관아가 퇴락하자 안산 현감인 이제두가 선혜청 당상 김좌명의 도움을 받아 1669년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1669년에 안산 관아와 읍성이 중건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안산 관아는 이후 수안 면사무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조사된 석재가 전시 중이다.
2010년에는 안산 객사가 복원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신증동국여지승람』
- 『서애집』
단행본
- 『안산읍성』(한양대학교박물관, 1990)
- 『안산읍성 및 관아지 발굴조사보고서』(수원대학교박물관, 2000)
- 『안산읍성』(한양대학교박물관, 2010)
- 『안산읍성 및 관아지Ⅱ』(한양대학교박물관, 2014)
- 『안산읍성 및 관아지Ⅲ』(한양대학교박물관, 2015)
- 『안산읍성 및 관아지Ⅳ』(한양대학교박물관, 2015)
- 『안산읍성 및 관아지V』(한양대학교박물관, 2017)
- 『안산읍성 및 관아지VI』 (한양대학교박물관, 2019)
주석
-
주1
: 돌 쌓기 구조물의 뒷면을 채우는 돌. 자갈ㆍ잡석ㆍ깬돌 따위를 말하는데, 주로 메쌓기 공법에서 많이 이용된다. 우리말샘
-
주2
: 구조물의 기초에 쓰이는 깬돌. 1개의 중량이 10~100kg로 여러 종류가 있다. 우리말샘
-
주3
: 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 고구려의 평양성, 백제의 사비성이 이에 속한다. 우리말샘
-
주4
: 땅을 반반하고 고르게 만들다. 우리말샘
-
주5
: 건축물이나 비석 따위의 기초로 쌓는 돌. 우리말샘
-
주6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산간 일대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 조선 태종 17년(1417)에 세워진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연해 읍성이다. 산상(山上)에 축조된 포곡식의 돌로 쌓은 성으로, 그 구조나 축조 방법이 조선 초기 연해 읍성과 관방성의 축조 방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우리나라 사적이다. 우리말샘
-
주7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동부리와 서부리에 걸쳐 있는 조선 시대의 읍성. 평지에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평지성으로, 처음에는 흙으로 쌓았던 것을 연산군 6년(1500)에 돌로 다시 쌓았다.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사적 정식 명칭은 ‘울주 언양 읍성’이다. 우리말샘
-
주8
: 죄인을 가두어 두는 건물. 우리말샘
-
주9
: 가늘고 긴 직사각형 모양. 우리말샘
-
주10
: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유성룡의 시문집. <징비록>이 들어 있어 귀중한 자료이다. 인조 11년(1633)에 유진(柳袗)이 펴냈다. 24권 13책의 인본(印本).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