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완범"
검색결과 총 34건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공덕귀 (孔德貴)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대표, 방림방적체불임금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권대형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책임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일본에서 신흥과학연구회, 일월회 등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다가 1927년 제3차 조선공산당의 일본 지부였던 일본부에 입당하였다. 1928년 귀국해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전개했다. 먼저 조선공산당재건설공맹을 조직했다가 해산하고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를 조직했다. 이때 서인식 등과 함께 출판 업무를 담당해 『코뮤니스트』·『봉화』 등을 발행했다. 경남적색농민조합동부위원회, 전남노동협의회를 배후에서 지도했다.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권대형 (權大衡)
권대형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공산당재건설동맹 중앙집행위원,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책임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 운동가이다. 일본에서 신흥과학연구회, 일월회 등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다가 1927년 제3차 조선공산당의 일본 지부였던 일본부에 입당하였다. 1928년 귀국해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전개했다. 먼저 조선공산당재건설공맹을 조직했다가 해산하고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를 조직했다. 이때 서인식 등과 함께 출판 업무를 담당해 『코뮤니스트』·『봉화』 등을 발행했다. 경남적색농민조합동부위원회, 전남노동협의회를 배후에서 지도했다.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일제강점기 원산노동청년회 집행위원,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노동운동가.
박태선 (朴泰善)
일제강점기 원산노동청년회 집행위원,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노동운동가.
안두희는 해방 이후 현역 육군 소위로 김구를 암살한 군인이다. 1917년 평북 용천 출생으로 해방 후 월남해 서북청년회에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에 입교했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의 저택인 경교장에서 4발의 총탄으로 김구를 살해하였다.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5년으로 감형되었다가 6·25전쟁 당시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는 시민 박기서에게 1996년 10월 피살되었다. 김구 암살의 일차적 배후는 군부였고, 이승만은 직접 개입의 증거는 없으나 사건의 뒤처리에는 개입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안두희 (安斗熙)
안두희는 해방 이후 현역 육군 소위로 김구를 암살한 군인이다. 1917년 평북 용천 출생으로 해방 후 월남해 서북청년회에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에 입교했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의 저택인 경교장에서 4발의 총탄으로 김구를 살해하였다.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5년으로 감형되었다가 6·25전쟁 당시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김구 선생을 존경한다는 시민 박기서에게 1996년 10월 피살되었다. 김구 암살의 일차적 배후는 군부였고, 이승만은 직접 개입의 증거는 없으나 사건의 뒤처리에는 개입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제8·9·10대 국회의원, 공화당 사무차장, 중앙청소년대책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신광순 (申光淳)
제8·9·10대 국회의원, 공화당 사무차장, 중앙청소년대책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신기하는 해방 이후 12·13·14·15대 국회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법조인이다. 1941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민주화 관계 인사 600여 명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광주 동구 지역구 의원으로 12·13·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5년 5월 개원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폭로하였으며, 1995년 12월 ‘5·18특별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되는 데 기여하였다.
신기하 (辛基夏)
신기하는 해방 이후 12·13·14·15대 국회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법조인이다. 1941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민주화 관계 인사 600여 명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광주 동구 지역구 의원으로 12·13·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5년 5월 개원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폭로하였으며, 1995년 12월 ‘5·18특별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되는 데 기여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밤 7시 40분 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金載圭)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살해한 사건.
10·26사태 (十二六事態)
1979년 10월 26일 밤 7시 40분 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金載圭)가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살해한 사건.
해방 이후 교통부장관, 국회의원, 신민당 당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정헌주 (鄭憲株)
해방 이후 교통부장관, 국회의원, 신민당 당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6·29민주화선언은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시국 수습을 위한 특별선언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도덕성·정통성 결여를 지적하는 직선제 개헌요구와,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나온 선언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대규모의 가두집회로 대항했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터지면서 경찰력이 마비되고 군대 투입설까지 나도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이에 노태우는 8개항의 민주화조치를 발표하였고, 이로써 신군부의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전기가 마련되었다.
6·29민주화선언 (六二九民主化宣言)
6·29민주화선언은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이 당시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시국 수습을 위한 특별선언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도덕성·정통성 결여를 지적하는 직선제 개헌요구와, 전두환의 4·13 호헌조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나온 선언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대규모의 가두집회로 대항했고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터지면서 경찰력이 마비되고 군대 투입설까지 나도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이에 노태우는 8개항의 민주화조치를 발표하였고, 이로써 신군부의 군사독재를 청산하는 전기가 마련되었다.
동아일보 기자, 신민당 선전부장, 신민당 정무위원 등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
이상돈 (李相敦)
동아일보 기자, 신민당 선전부장, 신민당 정무위원 등을 역임한 언론인·정치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및 그 동맹국들 사이에 전개된 제한적인 대결상태. 콜드워·Cold War.
냉전체제 (冷戰體制)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및 그 동맹국들 사이에 전개된 제한적인 대결상태. 콜드워·Cold War.
해방 이후 체신부장관, 신민당 지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조한백 (趙漢栢)
해방 이후 체신부장관, 신민당 지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모스크바삼상회의는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이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를 포함한 7개 분야의 의제를 다룬 회의이다. 한국 문제는 그 중의 한 의제였다. 채택된 의정서에는 한국에 미군사령부와 소련군사령부의 대표로 구성되는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민족 독립달성을 위해 신탁통치할 수 있는 방책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탁통치의 의미를 미·소가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 수립을 위한 수단으로 접근함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Moscow 三相會議)
모스크바삼상회의는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이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를 포함한 7개 분야의 의제를 다룬 회의이다. 한국 문제는 그 중의 한 의제였다. 채택된 의정서에는 한국에 미군사령부와 소련군사령부의 대표로 구성되는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민족 독립달성을 위해 신탁통치할 수 있는 방책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탁통치의 의미를 미·소가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 수립을 위한 수단으로 접근함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세기와 더불어 (世紀와 더불어)
『세기와 더불어』는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의 회고적 자료를 모아 엮은 전집이다. 1992년 4월에 첫 권이 나온 후 1995년 6권이 간행되었다. 1996년부터 1998년 7월까지 『세기와 더불어: 계승본』 7·8권이 나왔다. 김일성이 출생한 때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항일운동과 빨치산 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보천보 전투 전까지(1권~5권)의 기록은 김일성의 회고라고 볼 수 있으나, 6권은 그의 유고, 담화를 중심으로 학자들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자신이 책을 펴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홍영기는 육군본부 병무차감,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8년에 출생하여 1999년에 사망했다.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출신으로 1943년 일본 도호쿠대학교 법문학부를 졸업 후 1948년 육군 법무관(중위)으로 임관하였다. 재야 법조인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1960년 전북 순창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1965년(6대), 1971년(8대), 1988년(13대), 1992년(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4년 제14대 국회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홍영기 (洪英基)
홍영기는 육군본부 병무차감,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8년에 출생하여 1999년에 사망했다.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출신으로 1943년 일본 도호쿠대학교 법문학부를 졸업 후 1948년 육군 법무관(중위)으로 임관하였다. 재야 법조인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1960년 전북 순창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1965년(6대), 1971년(8대), 1988년(13대), 1992년(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4년 제14대 국회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제16대 국회가 2000년 6월 23일「인사청문회법」(법률 6271호)을 제정함으로써 도입된 인사에 관한 청문회.
인사청문회 (人事聽聞會)
대한민국 제16대 국회가 2000년 6월 23일「인사청문회법」(법률 6271호)을 제정함으로써 도입된 인사에 관한 청문회.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에 체결한 동맹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양국 국회의 비준을 거쳐 1954년에 발효됨으로써 한미동맹의 법적·국제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승만은 애초 미군 자동개입까지 요구했으나 그 조항은 빠지고 대신 휴전선에 미군사단 2개를 배치하는 조치가 마련되었다. 이후 정부·군사당국 간 각종 안보·군사 관련 후속협정 체결로 한미동맹의 제도적 틀이 완성되었다. 현재는 안보동맹을 넘어서 미래·첨단 과학기술 분야까지 포함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미동맹 (韓美同盟)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하여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에 체결한 동맹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양국 국회의 비준을 거쳐 1954년에 발효됨으로써 한미동맹의 법적·국제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승만은 애초 미군 자동개입까지 요구했으나 그 조항은 빠지고 대신 휴전선에 미군사단 2개를 배치하는 조치가 마련되었다. 이후 정부·군사당국 간 각종 안보·군사 관련 후속협정 체결로 한미동맹의 제도적 틀이 완성되었다. 현재는 안보동맹을 넘어서 미래·첨단 과학기술 분야까지 포함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해방 이후 국회외무위원장,민의원 부의장, 전라남도 지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법조인, 학자. 목사.
황성수 (黃聖秀)
해방 이후 국회외무위원장,민의원 부의장, 전라남도 지사 등을 역임한 정치인. 법조인, 학자. 목사.
해방 이후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관료.
김태호 (金泰鎬)
해방 이후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관료.
공화당 중앙사무국 부녀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정자 (朴貞子)
공화당 중앙사무국 부녀부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