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태진"
검색결과 총 172건
조선시대 한양과 개성 등의 시전(市廛) 도중(都中)의 우두머리.
대행수 (大行首)
조선시대 한양과 개성 등의 시전(市廛) 도중(都中)의 우두머리.
조선후기 계축옥사와 관련된 학자. 서얼.
허홍인 (許弘仁)
조선후기 계축옥사와 관련된 학자. 서얼.
조선시대 관서.
형조 (刑曹)
조선시대 관서.
조선시대 호구(戶口)·공부(貢賦)·전량(錢糧)·식화(食貨)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호조 (戶曹)
조선시대 호구(戶口)·공부(貢賦)·전량(錢糧)·식화(食貨)에 관한 일을 관장하던 관서.
조선 후기에, 사복시정, 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였고, 『산림경제』 등을 저술하며 실용후생(實用厚生)의 학풍을 일으켜 실학발전의 선구적 인물로 평가되는 학자.
홍만선 (洪萬選)
조선 후기에, 사복시정, 상주목사 등을 역임하였고, 『산림경제』 등을 저술하며 실용후생(實用厚生)의 학풍을 일으켜 실학발전의 선구적 인물로 평가되는 학자.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홍만용 (洪萬容)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예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선산군수, 분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홍서익 (洪瑞翼)
조선 후기에, 선산군수, 분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도승지,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홍식 (洪湜)
조선 중기에, 도승지,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죽림칠현을 자처하며 세속을 멀리하고 노장의 학문을 토론했던 청담파 중 한 사람으로, 『소총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홍유손 (洪𥙿孫)
조선 전기에, 죽림칠현을 자처하며 세속을 멀리하고 노장의 학문을 토론했던 청담파 중 한 사람으로, 『소총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교리, 원주목사, 창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황경중 (黃敬中)
조선 후기에, 교리, 원주목사, 창원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강원감사, 동부승지,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황근중 (黃謹中)
조선 후기에, 강원감사, 동부승지,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진주부사, 공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황신 (黃愼)
조선 중기에, 진주부사, 공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호조 소속의 한 부서.
회계사 (會計司)
조선시대 호조 소속의 한 부서.
1694년(숙종 20) 기사환국으로 집권한 남인이 물러나고, 소론과 노론이 다시 장악한 정국(政局).
갑술환국 (甲戌換局)
1694년(숙종 20) 기사환국으로 집권한 남인이 물러나고, 소론과 노론이 다시 장악한 정국(政局).
조선후기 노론·소론의 분립에 관련된 50여 명의 서간·상소·차자 등을 수록한 정치서.
갑을록 (甲乙錄)
조선후기 노론·소론의 분립에 관련된 50여 명의 서간·상소·차자 등을 수록한 정치서.
조선후기 강동현감 서만수와 관찰사 이조원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진소 변명의 시말을 적은 실기.
강동전말 (江東顚末)
조선후기 강동현감 서만수와 관찰사 이조원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진소 변명의 시말을 적은 실기.
조선후기 시강원에서 제23대 왕 순조의 경연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강론집.
강연설화 (講筵說話)
조선후기 시강원에서 제23대 왕 순조의 경연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강론집.
조선시대 호조 산하의 한 관서.
경비사 (經費司)
조선시대 호조 산하의 한 관서.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행정기구의 개편을 비롯한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원리를 제시하여 1817년에 저술한 정책서.
경세유표 (經世遺表)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행정기구의 개편을 비롯한 관제·토지제도·부세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원리를 제시하여 1817년에 저술한 정책서.
경신환국은 1680년(숙종 6)에 허적과 관련된 사건으로 남인이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사건이다. 사건의 배경은 숙종이 남인을 견제하려고 했던 데에 있다. 김석주를 이용해 남인을 견제하려던 숙종은 남인 허적이 기름 먹인 천막을 무단으로 사용한 일을 계기로 남인의 군권을 서인에게 주었다. 결정적으로 허적의 서자가 복창군·복선군·복평군과 함께 역모를 도모하였다는 ‘삼복의 변’에 남인이 연루되며 허적, 윤휴 등 남인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되었다. 이 사건 이후 하나의 정치세력이 정국을 주도하는 경향이 생겼다.
경신환국 (庚申換局)
경신환국은 1680년(숙종 6)에 허적과 관련된 사건으로 남인이 서인에 의해 대거 축출된 사건이다. 사건의 배경은 숙종이 남인을 견제하려고 했던 데에 있다. 김석주를 이용해 남인을 견제하려던 숙종은 남인 허적이 기름 먹인 천막을 무단으로 사용한 일을 계기로 남인의 군권을 서인에게 주었다. 결정적으로 허적의 서자가 복창군·복선군·복평군과 함께 역모를 도모하였다는 ‘삼복의 변’에 남인이 연루되며 허적, 윤휴 등 남인들이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되었다. 이 사건 이후 하나의 정치세력이 정국을 주도하는 경향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