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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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만취당은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조선 전기 김사원이 건립한 누정이다. 김사원이 1582년부터 3년 동안 지어 자신의 호를 따서 만취당이라고 불렀다. 그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 이후 만취당은 안동김씨 종가의 대청 겸 문중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만취당은 기와를 올린 토석 담장으로 건물의 평면은 ‘T’자형의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1727년에 증축할 때 동쪽 1칸, 서쪽 2칸을 덧달았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건축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누정 건물로 꼽힌다.
의성 만취당 (義城 晩翠堂)
의성 만취당은 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조선 전기 김사원이 건립한 누정이다. 김사원이 1582년부터 3년 동안 지어 자신의 호를 따서 만취당이라고 불렀다. 그는 퇴계 이황의 제자로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 이후 만취당은 안동김씨 종가의 대청 겸 문중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만취당은 기와를 올린 토석 담장으로 건물의 평면은 ‘T’자형의 앞면 3칸, 옆면 2칸이다. 1727년에 증축할 때 동쪽 1칸, 서쪽 2칸을 덧달았다.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건축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누정 건물로 꼽힌다.
이음맞춤은 두 부재의 끝을 길게 잇거나 직교 또는 경사각으로 접합하는 건축기법이다. 전통목조건축물은 단일 부재로 짜인 것이 아니라 여러 부재가 맞춤·이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맞춤은 서로 직교하거나 경사지게 연결하는 것이다. 통맞춤, 반턱맞춤, 장부맞춤, 주먹장맞춤, 연귀맞춤, 사개맞춤 등이 있다. 이음은 같은 길이 방향으로 연결하므로 목부재의 나이테가 보이는 마구리가 서로 면한다. 맞댄이음, 반턱이음, 장부이음, 주먹장이음, 나비장이음 등이 있다. 맞춤과 이음에는 조영 원리·하중 흐름·응력에 대한 장인의 해석이 숨어 있다.
이음맞춤
이음맞춤은 두 부재의 끝을 길게 잇거나 직교 또는 경사각으로 접합하는 건축기법이다. 전통목조건축물은 단일 부재로 짜인 것이 아니라 여러 부재가 맞춤·이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맞춤은 서로 직교하거나 경사지게 연결하는 것이다. 통맞춤, 반턱맞춤, 장부맞춤, 주먹장맞춤, 연귀맞춤, 사개맞춤 등이 있다. 이음은 같은 길이 방향으로 연결하므로 목부재의 나이테가 보이는 마구리가 서로 면한다. 맞댄이음, 반턱이음, 장부이음, 주먹장이음, 나비장이음 등이 있다. 맞춤과 이음에는 조영 원리·하중 흐름·응력에 대한 장인의 해석이 숨어 있다.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전승자로 지정된 기능보유자. 대목장.
배희한 (裵喜漢)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대목장」 전승자로 지정된 기능보유자. 대목장.
광산김씨 긍구당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조선시대 광산김씨 담안공파 관련 주택이다. 광산김씨 담안공파 김언기(1520~1588)가 말년에 이곳에서 제자를 길렀다. 집의 이름은 김언기의 4세손 김세환의 호인 긍구당(肯構堂)에서 따왔다. ‘긍구’는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소홀히 하지 말고 길이 이어받으라’는 뜻이다. 원래 이 집은 김언기의 둘째 부인 처가였는데 김언기가 물려받았다. 처음에는 99칸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지금은 축소된 상태이다. 이 고택은 비교적 옛 양식이 잘 남아 있어 전통가옥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광산김씨 긍구당고택 (光山金氏 肯構堂古宅)
광산김씨 긍구당고택은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조선시대 광산김씨 담안공파 관련 주택이다. 광산김씨 담안공파 김언기(1520~1588)가 말년에 이곳에서 제자를 길렀다. 집의 이름은 김언기의 4세손 김세환의 호인 긍구당(肯構堂)에서 따왔다. ‘긍구’는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소홀히 하지 말고 길이 이어받으라’는 뜻이다. 원래 이 집은 김언기의 둘째 부인 처가였는데 김언기가 물려받았다. 처음에는 99칸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지금은 축소된 상태이다. 이 고택은 비교적 옛 양식이 잘 남아 있어 전통가옥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조선후기 처사 오연(吳演, 1598∼1669)이 건립이 건립한 누정이다. 누각 형식의 정자로, 1637년~1642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799년에 묘당(廟堂)과 함께 수리되었고다. 기와를 올린 토석(土石) 담장이 감싸고 있다. 평면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동쪽 1칸은 온돌방이고, 서쪽 2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처마 끝부분의 수키와는 와구토(瓦口土)로 정리하였고, 합각 부분은 2줄의 기와 조각 위에 수키와로 2개의 원을 만든 뒤 회바름으로 마감하였다. 편액과 여러 개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영양 취수당 (英陽 醉睡堂)
조선후기 처사 오연(吳演, 1598∼1669)이 건립이 건립한 누정이다. 누각 형식의 정자로, 1637년~1642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799년에 묘당(廟堂)과 함께 수리되었고다. 기와를 올린 토석(土石) 담장이 감싸고 있다. 평면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동쪽 1칸은 온돌방이고, 서쪽 2칸은 마루로 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처마 끝부분의 수키와는 와구토(瓦口土)로 정리하였고, 합각 부분은 2줄의 기와 조각 위에 수키와로 2개의 원을 만든 뒤 회바름으로 마감하였다. 편액과 여러 개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조선전기에 건립된 반충 관련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예천 덕계리 관물당 (醴泉 德溪里 觀物堂)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조선전기에 건립된 반충 관련 누정. 누각·조경건축물.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에 있는 조선후기 성균관 진사 출신인 석문 정영방 관련 주택.
예천 석문종택 (醴泉 石門宗宅)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에 있는 조선후기 성균관 진사 출신인 석문 정영방 관련 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