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조완묵"
검색결과 총 10건
목재를 깎아 손으로 잡기 편하게 만든 목봉을 가지고 하는 경기.
곤봉 (棍棒)
목재를 깎아 손으로 잡기 편하게 만든 목봉을 가지고 하는 경기.
단련한 맨손과 주먹을 써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신체운동.
권법 (拳法)
단련한 맨손과 주먹을 써서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신체운동.
무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기를 다루는 재주이다. 고대부터 활을 쏘고 말을 달리고 무술을 하는 무사를 양성하였다. 이는 기사도·무인도 등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이후 칼을 쓰고 창을 사용하는 무예가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훈련원 등에서 무예를 훈련시키고 무관 선발 시험도 치렀다. 임진왜란 이후에야 장창, 곤봉 등 6가지 무기를 쓰는 기술을 알게 되었다. 1790년(정조 14)에는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이십사반무예를 정비하였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신식 총포의 위력에 눌려 무예의 기능은 상실하였다.
무예 (武藝)
무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기를 다루는 재주이다. 고대부터 활을 쏘고 말을 달리고 무술을 하는 무사를 양성하였다. 이는 기사도·무인도 등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이후 칼을 쓰고 창을 사용하는 무예가 본격적으로 행해졌다. 훈련원 등에서 무예를 훈련시키고 무관 선발 시험도 치렀다. 임진왜란 이후에야 장창, 곤봉 등 6가지 무기를 쓰는 기술을 알게 되었다. 1790년(정조 14)에는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이십사반무예를 정비하였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 신식 총포의 위력에 눌려 무예의 기능은 상실하였다.
둥글게 만든 나무공을 공중에 여러개 던졌다가 받으며 원을 그리며 도는 공놀이.
농주 (弄珠)
둥글게 만든 나무공을 공중에 여러개 던졌다가 받으며 원을 그리며 도는 공놀이.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마상무예.
기사 (騎射)
말을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마상무예.
보격구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면서 공을 쳐 승부를 내는 경기이다. 숟가락 모양의 막대기를 들고 보행하면서 공을 쳐서 정해진 구멍에 들어가면 점수를 얻는 놀이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타구 또는 봉희라고 기록되었으며 후세에는 장치기 혹은 얼레공이라고 불렀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 행했는데 세종이 종친들과 궁궐 안뜰에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서민들의 놀이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1931년 ≪조선일보≫ 등에 ‘얼레공 대회 개최’라는 기사로 보아 이 놀이가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근래 얼레공치기 민속경기는 보격구를 재현한 것이다.
보격구 (步擊毬)
보격구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면서 공을 쳐 승부를 내는 경기이다. 숟가락 모양의 막대기를 들고 보행하면서 공을 쳐서 정해진 구멍에 들어가면 점수를 얻는 놀이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타구 또는 봉희라고 기록되었으며 후세에는 장치기 혹은 얼레공이라고 불렀다.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즐겨 행했는데 세종이 종친들과 궁궐 안뜰에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서민들의 놀이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1931년 ≪조선일보≫ 등에 ‘얼레공 대회 개최’라는 기사로 보아 이 놀이가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근래 얼레공치기 민속경기는 보격구를 재현한 것이다.
조선시대 계급이 다른 3인이 한편이 되어 상대편과 겨루던 활쏘기 경기.
삼동편사 (三同便射)
조선시대 계급이 다른 3인이 한편이 되어 상대편과 겨루던 활쏘기 경기.
본국검은 신라 시대 화랑도들을 중심으로 무술 연마를 위해 사용한 우리 고유의 검술이다.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검’이라고도 한다. 신라 소년 황창이 칼춤을 추며 백제 왕을 죽이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본국검은 허리에 차는 칼인 요도로 하는 검술이다. 예로부터 검법은 시선을 쓰는 안법을 우선 배운다. 다음으로 칼로 치는 격법, 칼로 베는 세법, 칼로 찌르는 자법을 익힌다. 이러한 방어법들이 본국검 동작 32세에 들어 있다. 본국검은 조선 중기 이후 과거 시험 과목으로 시행되어 전투에 실용되는 검술로 실시되었다.
본국검 (本國劍)
본국검은 신라 시대 화랑도들을 중심으로 무술 연마를 위해 사용한 우리 고유의 검술이다. 『무예도보통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검’이라고도 한다. 신라 소년 황창이 칼춤을 추며 백제 왕을 죽이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본국검은 허리에 차는 칼인 요도로 하는 검술이다. 예로부터 검법은 시선을 쓰는 안법을 우선 배운다. 다음으로 칼로 치는 격법, 칼로 베는 세법, 칼로 찌르는 자법을 익힌다. 이러한 방어법들이 본국검 동작 32세에 들어 있다. 본국검은 조선 중기 이후 과거 시험 과목으로 시행되어 전투에 실용되는 검술로 실시되었다.
고려후기에서 조선중기까지 무인이 활쏘기를 익히기 위한 무예로서 행하였던 경기.
사구 (射毬)
고려후기에서 조선중기까지 무인이 활쏘기를 익히기 위한 무예로서 행하였던 경기.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이중화가 우리나라의 활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기록하여 1929년에 간행한 지침서. 궁술지침서.
조선의 궁술 (朝鮮의 弓術)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이중화가 우리나라의 활에 관한 전반적인 사항을 기록하여 1929년에 간행한 지침서. 궁술지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