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최성환"
검색결과 총 22건
대경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경호동에 있는 섬이다. 여수항의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섬으로 오복마을, 내동마을, 외동마을 세 곳이 형성되어 있고, 거주 인구는 2023년 9월 기준 544명이다. 해양관광단지로 지정되어 현재 ‘여수경도해양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특산물로는 갯장어가 유명하다.
대경도 (大鏡島)
대경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경호동에 있는 섬이다. 여수항의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는 섬으로 오복마을, 내동마을, 외동마을 세 곳이 형성되어 있고, 거주 인구는 2023년 9월 기준 544명이다. 해양관광단지로 지정되어 현재 ‘여수경도해양관광단지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특산물로는 갯장어가 유명하다.
대두라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두라리에 있는 섬이다. 돌산도와 금오도 사이에 위치하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구역에 속한다. 주위에 있는 소두라도·나발도·화태도·월호도 등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이루고 있다. 60명의 주민들이 농업과 어업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두라도 (大斗羅島)
대두라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두라리에 있는 섬이다. 돌산도와 금오도 사이에 위치하며,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구역에 속한다. 주위에 있는 소두라도·나발도·화태도·월호도 등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이루고 있다. 60명의 주민들이 농업과 어업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다.
대횡간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횡간리에 속하는 섬이다. 섬의 지형이 비스듬한 형태여서 ‘횡간’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말을 사육하던 목장지였으며, 관련 당제와 관왕묘제가 행해졌다. 현재 99명의 주민들이 농업과 어업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대표 특산물은 멸치이다.
대횡간도 (大橫干島)
대횡간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횡간리에 속하는 섬이다. 섬의 지형이 비스듬한 형태여서 ‘횡간’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조선시대에는 말을 사육하던 목장지였으며, 관련 당제와 관왕묘제가 행해졌다. 현재 99명의 주민들이 농업과 어업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대표 특산물은 멸치이다.
독거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리에 있는 섬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지역이며, 인근 서쪽 해상에 슬도와 관매도·하조도, 남쪽 바로 아래에 탄항도가 있다. 2021년 기준 9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자연산 미역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독거도 (獨巨島)
독거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리에 있는 섬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지역이며, 인근 서쪽 해상에 슬도와 관매도·하조도, 남쪽 바로 아래에 탄항도가 있다. 2021년 기준 92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자연산 미역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둔병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조발리에 있는 섬이다. 2023년 9월 기준으로 3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국도 77호선을 통해 여수시 화양면과 고흥군 영남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라남도에서 명명한 ‘백리섬섬길’에 해당한다. 둔병도와 조발도를 연결하는 둔병대교, 둔병도와 낭도와 연결하는 낭도대교가 설치되어 있다.
둔병도 (屯兵島)
둔병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조발리에 있는 섬이다. 2023년 9월 기준으로 3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국도 77호선을 통해 여수시 화양면과 고흥군 영남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라남도에서 명명한 ‘백리섬섬길’에 해당한다. 둔병도와 조발도를 연결하는 둔병대교, 둔병도와 낭도와 연결하는 낭도대교가 설치되어 있다.
마산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매화리에 있는 섬이다. 2021년 기준 6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지명은 섬의 형태가 말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 원래 노대도·장마도·마산도 3개의 섬었는데, 간척으로 이어져 하나의 섬이 되었다. 섬 전체가 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 주민이 농업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제방을 통해 인근 황마도와 연결되어 있다.
마산도 (馬山島)
마산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 매화리에 있는 섬이다. 2021년 기준 6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지명은 섬의 형태가 말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 원래 노대도·장마도·마산도 3개의 섬었는데, 간척으로 이어져 하나의 섬이 되었다. 섬 전체가 논과 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부분 주민이 농업을 통해 살아가고 있다. 제방을 통해 인근 황마도와 연결되어 있다.
모도(茅島)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모도리에 있는 섬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8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마주하고 있는 회동마을과의 사이에 열리는 바닷길을 활용하여 매년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 바닷길의 유래와 관련하여 뽕할머니 전설이 전해온다. 전국 최대 규모의 양식장으로도 유명하다.
모도 (茅島)
모도(茅島)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모도리에 있는 섬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82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마주하고 있는 회동마을과의 사이에 열리는 바닷길을 활용하여 매년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 바닷길의 유래와 관련하여 뽕할머니 전설이 전해온다. 전국 최대 규모의 양식장으로도 유명하다.
병풍도(屛風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 있는 섬이다. 섬 북단에 있는 병풍 모양의 바위가 유명하고, 지명도 이 바위에서 유래하였다. 섬 주민들과 신안군 행정이 힘을 합쳐 섬 전역에 맨드라미 꽃을 심어 정원과 산책길을 조성하여, ‘맨드라미의 섬’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병풍도 남쪽과 ‘12사도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는 대기점도가 연결되어 있다.
병풍도 (屛風島)
병풍도(屛風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에 있는 섬이다. 섬 북단에 있는 병풍 모양의 바위가 유명하고, 지명도 이 바위에서 유래하였다. 섬 주민들과 신안군 행정이 힘을 합쳐 섬 전역에 맨드라미 꽃을 심어 정원과 산책길을 조성하여, ‘맨드라미의 섬’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병풍도 남쪽과 ‘12사도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는 대기점도가 연결되어 있다.
비견도(飛見島)는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 차우리에 있는 섬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4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섬의 형태가 “고래를 닮았다.”라고 하여 비경도라고 부르다가 현재의 지명인 비견도로 변화하였다. 주민들의 주소득원은 ‘멸치잡이’이고, 선착장 주변에서 새우 양식도 이루어지고 있다. 고흥군 거금도와 인접하여 실질적인 생활권은 고흥군 녹동항 일대와 연결되고 있다.
비견도 (飛見島)
비견도(飛見島)는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 차우리에 있는 섬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48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섬의 형태가 “고래를 닮았다.”라고 하여 비경도라고 부르다가 현재의 지명인 비견도로 변화하였다. 주민들의 주소득원은 ‘멸치잡이’이고, 선착장 주변에서 새우 양식도 이루어지고 있다. 고흥군 거금도와 인접하여 실질적인 생활권은 고흥군 녹동항 일대와 연결되고 있다.
사치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한운리에 있는 섬이다. 상사치도와 하사치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을은 하사치도에만 형성되어 있다. 사치분교 아이들이 1973년 전국소년체전 준우승을 이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섬개구리 만세>의 실제 무대가 되는 곳이다.
사치도 (沙雉島)
사치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한운리에 있는 섬이다. 상사치도와 하사치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을은 하사치도에만 형성되어 있다. 사치분교 아이들이 1973년 전국소년체전 준우승을 이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섬개구리 만세>의 실제 무대가 되는 곳이다.
사후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군외면 영풍리에 있는 섬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75명이 거주하고 있다. 김 양식이 성행하던 시절에 완도를 대표하는 김 양식지였으며, 198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큰 마을을 이루기도 했다. 현재는 농업와 어업이 주민들의 주소득원이 되고 있다.
사후도 (伺候島)
사후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군외면 영풍리에 있는 섬이다. 2021년 말 기준으로 75명이 거주하고 있다. 김 양식이 성행하던 시절에 완도를 대표하는 김 양식지였으며, 198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큰 마을을 이루기도 했다. 현재는 농업와 어업이 주민들의 주소득원이 되고 있다.
산달도는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법동리에 있는 섬이다. 산전·산후·실리 등 3개 마을이 있고,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이나 양식과 관련된 일을 한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46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2018년에 거제면 소랑리에서 산달도로 연결되는 ‘산달연륙교’가 완공되어 차량 왕래가 가능해졌다. 현재 폐교된 산달분교를 활용하여 산달도어촌체험휴양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 특산물은 굴·가리비·유자이다.
산달도 (山達島)
산달도는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법동리에 있는 섬이다. 산전·산후·실리 등 3개 마을이 있고, 주민들은 대부분 어업이나 양식과 관련된 일을 한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465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2018년에 거제면 소랑리에서 산달도로 연결되는 ‘산달연륙교’가 완공되어 차량 왕래가 가능해졌다. 현재 폐교된 산달분교를 활용하여 산달도어촌체험휴양마을이 운영되고 있다. 대표 특산물은 굴·가리비·유자이다.
상조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섬이다. 하조도와 인접해 있으며, 나배도(羅拜島)·옥도(玉島)·대마도(大馬島) 등과 함께 조도군도(鳥島群島)를 형성하고 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지역으로 2021년 말 기준으로 34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1997년 하조도와 상조도를 연결하는 조도대교가 개통되었다. 현재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으며, 주변 바다를 활용한 톳·김·미역 양식이 활발하다.
상조도 (上鳥島)
상조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섬이다. 하조도와 인접해 있으며, 나배도(羅拜島)·옥도(玉島)·대마도(大馬島) 등과 함께 조도군도(鳥島群島)를 형성하고 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지역으로 2021년 말 기준으로 34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1997년 하조도와 상조도를 연결하는 조도대교가 개통되었다. 현재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으며, 주변 바다를 활용한 톳·김·미역 양식이 활발하다.
상하태도(上下台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면의 본섬이다. 원래 상태도와 하태도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지속적인 간척으로 현재는 하나로 연결되었다. 1983년 하의면에서 분리하여 신의면이 된 이후에는 행정명에 따라 ‘신의도’라 불리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부터 해방 이후까지 300년 동안 전개된 ‘하의삼도토지탈환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대표 특산품은 소금이며, 국내 최대 규모의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하다.
상하태도 (上下台島)
상하태도(上下台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신의면의 본섬이다. 원래 상태도와 하태도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지속적인 간척으로 현재는 하나로 연결되었다. 1983년 하의면에서 분리하여 신의면이 된 이후에는 행정명에 따라 ‘신의도’라 불리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조선시대부터 해방 이후까지 300년 동안 전개된 ‘하의삼도토지탈환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대표 특산품은 소금이며, 국내 최대 규모의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하다.
소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이다. 숙종대 경신환국 이후 서인의 소장파가 훈척의 정치 개입을 옹호하는 노장파를 배척하며 청론(淸論)을 주장하는 가운데 성립되었다. 그러나 소론은 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였기에 노론과 대립하면서도 국왕과 남인 견제를 위해 협력하였다. 후대로 갈수록 소론은 반(反) 노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숙종~영조대에 일시적으로 정국을 주도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비판 세력으로 존속하였다.
소론 (少論)
소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이다. 숙종대 경신환국 이후 서인의 소장파가 훈척의 정치 개입을 옹호하는 노장파를 배척하며 청론(淸論)을 주장하는 가운데 성립되었다. 그러나 소론은 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였기에 노론과 대립하면서도 국왕과 남인 견제를 위해 협력하였다. 후대로 갈수록 소론은 반(反) 노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숙종~영조대에 일시적으로 정국을 주도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비판 세력으로 존속하였다.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시파 (時派)
시파(時派)는 조선 후기 정조의 탕평책에 의한 한 정파이다. 영조대 중 · 후반에 성립한 노론 북당(北黨)과 동당(東黨) 계열 인사들이 정조의 의리탕평에 호응하여 소론과 협력하며 정국을 주도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에는 군주가 설정한 시의(時議)에 순응하며 의리탕평에 호응한 노론 주류 세력이 되었으며, 순조 대 이후 시파의 영수인 안동 김씨 외척은 노 · 소론 경화 벌열가를 이끌며 세도정치를 주도하였다.
벽파는 조선 후기, 영조대 노론 남당(南黨)의 계승자로서, 군주와 그 뜻에 순응하는 시파에 맞서 궁벽한 처지에서도 노론 의리를 고수한다고 자처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 후반에는 정조의 의리 변통 시도에 호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대 초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배경으로 과도하게 토역론(討逆論)을 관철시키다가 왕실과 노론 시파는 물론 소론 신료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급속히 세력을 잃었다.
벽파 (僻派)
벽파는 조선 후기, 영조대 노론 남당(南黨)의 계승자로서, 군주와 그 뜻에 순응하는 시파에 맞서 궁벽한 처지에서도 노론 의리를 고수한다고 자처하던 세력이다. 이들은 정조 대 후반에는 정조의 의리 변통 시도에 호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조 대 초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배경으로 과도하게 토역론(討逆論)을 관철시키다가 왕실과 노론 시파는 물론 소론 신료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급속히 세력을 잃었다.
노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로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정탐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노장파 인사들이 소장파 관료들의 배척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노론은 격화되는 당쟁의 와중에 숙종~경종 대에 수차례 화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훈척가의 영향력과 송시열·송준길 등에서 연원한 문인 집단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회복, 확장하여 조선 말까지 조정의 주도 세력 지위를 유지하였다.
노론 (老論)
노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로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정탐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노장파 인사들이 소장파 관료들의 배척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노론은 격화되는 당쟁의 와중에 숙종~경종 대에 수차례 화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훈척가의 영향력과 송시열·송준길 등에서 연원한 문인 집단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회복, 확장하여 조선 말까지 조정의 주도 세력 지위를 유지하였다.
번화한 한양과 그 인근에 거주하는 사족.
경화사족 (京華士族)
번화한 한양과 그 인근에 거주하는 사족.
오회연교는 1800년(정조 24) 5월 그믐날에 정조가 경연 석상에서 내린 명령이다. 정조는 군주에게 맞서는 일부 신료들을 향하여 경고하며 군주가 천명하는 정당한 의리에 적극 호응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명령을 내리게 된 계기는 이만수의 형인 이시수가 당시 우의정으로 재직 중인 상황에서 이만수를 이조판서에 임명한 것을 김이재가 비판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정조는 이 사안을 정당한 군신의리 확립의 정치적 계기로 활용하고자 했다. 정조의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정조 사후 오회연교는 시파와 벽파에 의해 정쟁에 이용되었다.
오회연교 (五晦筵敎)
오회연교는 1800년(정조 24) 5월 그믐날에 정조가 경연 석상에서 내린 명령이다. 정조는 군주에게 맞서는 일부 신료들을 향하여 경고하며 군주가 천명하는 정당한 의리에 적극 호응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 명령을 내리게 된 계기는 이만수의 형인 이시수가 당시 우의정으로 재직 중인 상황에서 이만수를 이조판서에 임명한 것을 김이재가 비판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정조는 이 사안을 정당한 군신의리 확립의 정치적 계기로 활용하고자 했다. 정조의 건강이 악화되어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정조 사후 오회연교는 시파와 벽파에 의해 정쟁에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