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한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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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진창은 조선시대에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공세곶창(貢稅串倉), 공세창(貢稅倉), 아산창(牙山倉)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전국 9개 조창 중 한 곳이다. 아산(牙山) · 목천(木川) · 연기(燕岐) · 천안(天安) · 온양(溫陽) · 전의(全義) · 서원(西原)의 전세(田稅)를 실어 부근의 변장(邊將)이 영납하였다.
공진창 (貢津倉)
공진창은 조선시대에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설치되었던 조창(漕倉)이다. 공세곶창(貢稅串倉), 공세창(貢稅倉), 아산창(牙山倉)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전국 9개 조창 중 한 곳이다. 아산(牙山) · 목천(木川) · 연기(燕岐) · 천안(天安) · 온양(溫陽) · 전의(全義) · 서원(西原)의 전세(田稅)를 실어 부근의 변장(邊將)이 영납하였다.
난장은 조선시대에 도적 또는 취조 대상자를 형틀에 묶어 놓고 발끝을 마구 때리던 형벌이다. 두 엄지발가락을 묶은 다음 나무를 두 정강이 사이에 세워 발을 위로 매달아 놓고 발끝을 때렸으며, 발가락이 다 떨어져 나가기도 한 혹독한 형벌이다. 도적뿐만 아니라 정치범을 심문할 때도 사용되었다.
난장 (亂杖)
난장은 조선시대에 도적 또는 취조 대상자를 형틀에 묶어 놓고 발끝을 마구 때리던 형벌이다. 두 엄지발가락을 묶은 다음 나무를 두 정강이 사이에 세워 발을 위로 매달아 놓고 발끝을 때렸으며, 발가락이 다 떨어져 나가기도 한 혹독한 형벌이다. 도적뿐만 아니라 정치범을 심문할 때도 사용되었다.
내의(內醫)는 조선시대, 내의원에 소속된 당하관(堂下官) 의원이다.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병을 치료하는 일을 맡았으며, 왕이 총애하는 대신이나 존경하는 학자가 병에 걸렸을 때 왕명을 받고 가서 질병을 돌보기도 하였다. 이들 가운데 공이 있는 자들은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는 일이 많았으며, 중인이었으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매우 높았다.
내의 (內醫)
내의(內醫)는 조선시대, 내의원에 소속된 당하관(堂下官) 의원이다. 임금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병을 치료하는 일을 맡았으며, 왕이 총애하는 대신이나 존경하는 학자가 병에 걸렸을 때 왕명을 받고 가서 질병을 돌보기도 하였다. 이들 가운데 공이 있는 자들은 지방 수령으로 부임하는 일이 많았으며, 중인이었으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매우 높았다.
대동계는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이 만든 무술 연마 조직이다. 고향으로 낙향한 정여립은 김제 · 진안의 별장을 왕래하며 강학(講學)을 가탁(假託)하여 이웃 고을의 여러 무사, 공천 · 사천의 장용(壯勇)한 사람 등과 대동계를 만들어 매월 15일에 한곳에 모여 활쏘기를 겨루고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즐겼다. 그러나 정여립이 모반 혐의를 받고 추격을 당하던 중 자살하여 그 실체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대동계 (大同契)
대동계는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이 만든 무술 연마 조직이다. 고향으로 낙향한 정여립은 김제 · 진안의 별장을 왕래하며 강학(講學)을 가탁(假託)하여 이웃 고을의 여러 무사, 공천 · 사천의 장용(壯勇)한 사람 등과 대동계를 만들어 매월 15일에 한곳에 모여 활쏘기를 겨루고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즐겼다. 그러나 정여립이 모반 혐의를 받고 추격을 당하던 중 자살하여 그 실체에 대해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동빙고는 조선시대에 종묘 · 사직 이하 국가의 제향(祭享)에 쓸 얼음을 채취 · 보존 ·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예조의 종5품 속아문으로, 봉상시(奉常寺)에서 주관하였다. 두모포에 있는 것이 동빙고이며, 한강에 있는 것이 서빙고이다.
동빙고 (東氷庫)
동빙고는 조선시대에 종묘 · 사직 이하 국가의 제향(祭享)에 쓸 얼음을 채취 · 보존 ·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이다. 예조의 종5품 속아문으로, 봉상시(奉常寺)에서 주관하였다. 두모포에 있는 것이 동빙고이며, 한강에 있는 것이 서빙고이다.
무수리는 고려와 조선시대, 궁중에서 청소나 세숫물 등 심부름을 하던 여자 종이다. ‘수사(水賜)’ 또는 ‘수사이(水賜伊)’라 한다. 무수리가 거주하는 곳을 수사간(水賜間), 즉 세수간이라 하였다. 몽골어로 ‘소녀(少女)’라는 뜻이다.
무수리
무수리는 고려와 조선시대, 궁중에서 청소나 세숫물 등 심부름을 하던 여자 종이다. ‘수사(水賜)’ 또는 ‘수사이(水賜伊)’라 한다. 무수리가 거주하는 곳을 수사간(水賜間), 즉 세수간이라 하였다. 몽골어로 ‘소녀(少女)’라는 뜻이다.
방자는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잔일을 하는 궁녀의 하녀이다. 비자(婢子) · 각심이 · 방아이 등의 별칭이 있으며, 궁녀의 하녀로 각사의 여종 출신들이다. 나인과 차이가 있었다. 또 ‘궁녀가 사사로이 역속(役屬)을 갖는 것을 방자’라 하였고, ‘방자나인은 곧 나인의 종’이라고 하였다. 방자의 급료는 국가에서 주었다.
방자 (房子)
방자는 조선시대에 궁중에서 잔일을 하는 궁녀의 하녀이다. 비자(婢子) · 각심이 · 방아이 등의 별칭이 있으며, 궁녀의 하녀로 각사의 여종 출신들이다. 나인과 차이가 있었다. 또 ‘궁녀가 사사로이 역속(役屬)을 갖는 것을 방자’라 하였고, ‘방자나인은 곧 나인의 종’이라고 하였다. 방자의 급료는 국가에서 주었다.
소혜왕후는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장남인 덕종의 부인이자 제9대 왕 성종의 생모이다.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수양대군의 맏아들 도원군과 혼인하였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수빈(粹嬪)이 되었다. 여성 교훈서인 『내훈』을 저술하였으며,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소혜왕후 (昭惠王后)
소혜왕후는 조선 전기 제7대 왕 세조의 장남인 덕종의 부인이자 제9대 왕 성종의 생모이다. 서원부원군 한확의 딸이다. 1450년(문종 즉위년)에 수양대군의 맏아들 도원군과 혼인하였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수빈(粹嬪)이 되었다. 여성 교훈서인 『내훈』을 저술하였으며,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수의는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 소속의 당상(堂上) 의관인 어의(御醫) 가운데 가장 중요한 최고 책임 의원이다. 신분은 중인이었지만 매우 높은 처우를 받았다. 수의는 중요한 의원 가문이 역임하였고, 지방 수령으로 파견되는 비중도 높았다.
수의 (首醫)
수의는 조선시대 내의원(內醫院) 소속의 당상(堂上) 의관인 어의(御醫) 가운데 가장 중요한 최고 책임 의원이다. 신분은 중인이었지만 매우 높은 처우를 받았다. 수의는 중요한 의원 가문이 역임하였고, 지방 수령으로 파견되는 비중도 높았다.
승전색(承傳色)은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최측근에서 말을 전하는 내시부(內侍府)의 정 · 종4품 관직이다. 왕명 출납은 ‘승정원 – 승전색 – 왕’으로 이어지는 출납 관계에서 왕과 왕비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이들을 ‘승전환관’ 또는 ‘승전내시’라고 불렀다. 내시부의 핵심 요직이자 상위의 직임이었다.
승전색 (承傳色)
승전색(承傳色)은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최측근에서 말을 전하는 내시부(內侍府)의 정 · 종4품 관직이다. 왕명 출납은 ‘승정원 – 승전색 – 왕’으로 이어지는 출납 관계에서 왕과 왕비의 명령을 전달하는 일을 담당하였고, 이들을 ‘승전환관’ 또는 ‘승전내시’라고 불렀다. 내시부의 핵심 요직이자 상위의 직임이었다.
심률은 조선시대에 형조(刑曹)에 소속된 종8품의 율관(律官)이다. 법률 · 소송 등의 심사를 담당하였다. 율학청(律學廳)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이수(履修)한 후 율과(律科)나 율학취재(律學取材)에 응시하여 합격한 이들이다. 인원은 2명 내지 1명을 두었다. 체아직이다.
심률 (審律)
심률은 조선시대에 형조(刑曹)에 소속된 종8품의 율관(律官)이다. 법률 · 소송 등의 심사를 담당하였다. 율학청(律學廳)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이수(履修)한 후 율과(律科)나 율학취재(律學取材)에 응시하여 합격한 이들이다. 인원은 2명 내지 1명을 두었다. 체아직이다.
양원은 조선시대에 세자궁(世子宮)의 종3품 내관(內官)으로 세자의 후실 중 하나이다. 특별히 임무와 직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임무는 후손을 많이 낳는 것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간택하여 들였으며, 그 수는 일정하지 않았다.
양원 (良媛)
양원은 조선시대에 세자궁(世子宮)의 종3품 내관(內官)으로 세자의 후실 중 하나이다. 특별히 임무와 직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임무는 후손을 많이 낳는 것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간택하여 들였으며, 그 수는 일정하지 않았다.
양제는 조선시대에 세자궁(世子宮)의 종2품 내관(內官)으로 위상이 제일 높은 세자의 후실이다. 세자에게도 첩을 두어 내덕(內德)을 돕고 후사(後嗣)를 많이 보려고 하였다. 인원은 세종 대에 2명으로 정하기도 하였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양제 (良悌)
양제는 조선시대에 세자궁(世子宮)의 종2품 내관(內官)으로 위상이 제일 높은 세자의 후실이다. 세자에게도 첩을 두어 내덕(內德)을 돕고 후사(後嗣)를 많이 보려고 하였다. 인원은 세종 대에 2명으로 정하기도 하였지만 일정하지 않았다.
진휼청은 조선시대에 곡물가를 조절하고 재난을 당한 기민(飢民)이나 재민(災民)을 구제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조선 초기에 재해 발생 시 임시로 설치되었으나 1525년(중종 20)에 광흥창 · 풍저창의 곡물과 여타 관고(官庫)의 잉여 곡물을 모아 진휼청을 설치한 뒤 상평청과 합쳐 흉년에는 진대(賑貸)와 기민구제를 담당하고, 평상시에는 물가 조절 업무를 맡게 하였다. 선혜청(宣惠廳)이 설치되면서 선혜청의 관리 아래 두었다. 17세기 후반에 상설 기구로 자리 잡게 되었으나, 1894년(고종 31)에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
진휼청 (賑恤廳)
진휼청은 조선시대에 곡물가를 조절하고 재난을 당한 기민(飢民)이나 재민(災民)을 구제하기 위하여 설치한 관청이다. 조선 초기에 재해 발생 시 임시로 설치되었으나 1525년(중종 20)에 광흥창 · 풍저창의 곡물과 여타 관고(官庫)의 잉여 곡물을 모아 진휼청을 설치한 뒤 상평청과 합쳐 흉년에는 진대(賑貸)와 기민구제를 담당하고, 평상시에는 물가 조절 업무를 맡게 하였다. 선혜청(宣惠廳)이 설치되면서 선혜청의 관리 아래 두었다. 17세기 후반에 상설 기구로 자리 잡게 되었으나, 1894년(고종 31)에 갑오개혁으로 폐지되었다.
현방은 조선시대 성균관에 소속되어 소의 도살과 쇠고기의 독점 판매를 담당하던 시전의 하나이다. 고기를 걸어 놓고 파는 까닭에 현방이라 불렀다. 성균관 전복(典僕)인 반인(泮人)들이 운영하였으며, 삼사(三司)에 속전(贖錢)을 납부하였다. 성균관의 부족한 물력을 보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현방의 수는 적게는 10개소에서 많으면 20여 개소로 설치되었다.
현방 (懸房)
현방은 조선시대 성균관에 소속되어 소의 도살과 쇠고기의 독점 판매를 담당하던 시전의 하나이다. 고기를 걸어 놓고 파는 까닭에 현방이라 불렀다. 성균관 전복(典僕)인 반인(泮人)들이 운영하였으며, 삼사(三司)에 속전(贖錢)을 납부하였다. 성균관의 부족한 물력을 보충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현방의 수는 적게는 10개소에서 많으면 20여 개소로 설치되었다.
봉보부인은 조선시대에 왕의 유모에게 내린 외명부 종1품의 작호(爵號)이다. 왕자나 왕녀에게 젖을 먹이는 유모 가운데, 왕자가 왕이 되면 책봉되었다. 내외법 등으로 양반가에서 유모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 천민 출신이었다. 왕자가 3살이 될 즈음까지 궁중에서 생활하였다. 왕과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게 되어 물질적 혜택뿐 아니라 신분까지도 높여주었다. 남편과 자식, 친인척까지 면천해 주고 남편과 자식에게 높은 관직을 주기도 하였다. 남편의 지위와 관련 없이 오직 자기 자신의 역할에 의해 봉작을 받는 여성으로 궁녀나 의녀보다 지위가 높았다.
봉보부인 (奉保夫人)
봉보부인은 조선시대에 왕의 유모에게 내린 외명부 종1품의 작호(爵號)이다. 왕자나 왕녀에게 젖을 먹이는 유모 가운데, 왕자가 왕이 되면 책봉되었다. 내외법 등으로 양반가에서 유모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대부분 천민 출신이었다. 왕자가 3살이 될 즈음까지 궁중에서 생활하였다. 왕과 특별한 유대 관계를 맺게 되어 물질적 혜택뿐 아니라 신분까지도 높여주었다. 남편과 자식, 친인척까지 면천해 주고 남편과 자식에게 높은 관직을 주기도 하였다. 남편의 지위와 관련 없이 오직 자기 자신의 역할에 의해 봉작을 받는 여성으로 궁녀나 의녀보다 지위가 높았다.
순헌황귀비는 조선 제26대 국왕 고종의 후궁이다. 엄귀비, 엄황귀비, 엄비, 엄상궁, 엄귀인, 엄순빈, 엄순비, 경선궁마마, 엄선영(嚴善英) 등 여러 별칭이 있다. 1854년(철종 5)에 태어나 1911년에 사망했다. 궁녀로 입궁하여 명성황후를 모시다가 고종의 승은을 입었다. 1895년 명성왕후가 시해된 이후 고종을 보필하였다. 특히 고종과 세자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897년 영친왕 이은을 낳아 귀인에 책봉되었다가 황귀비에 책봉되었다.
순헌황귀비 (純獻皇貴妃)
순헌황귀비는 조선 제26대 국왕 고종의 후궁이다. 엄귀비, 엄황귀비, 엄비, 엄상궁, 엄귀인, 엄순빈, 엄순비, 경선궁마마, 엄선영(嚴善英) 등 여러 별칭이 있다. 1854년(철종 5)에 태어나 1911년에 사망했다. 궁녀로 입궁하여 명성황후를 모시다가 고종의 승은을 입었다. 1895년 명성왕후가 시해된 이후 고종을 보필하였다. 특히 고종과 세자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피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897년 영친왕 이은을 낳아 귀인에 책봉되었다가 황귀비에 책봉되었다.
수표는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세종 때 제작한 측량기구이다. 중국에서는 물가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척도를 새겨 수위의 변화를 측정하고 기록하였다. 1441년(세종 23)에 제작된 수표도 이러한 방식이다. 세종 때 제작한 수표는 목재로 제작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나무로 만든 수표는 물에서 썩기 때문에 점차 석재로 만들게 되었다. 현재 수표의 역사적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서울 청계천 수표와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이다.
수표 (水標)
수표는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세종 때 제작한 측량기구이다. 중국에서는 물가에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척도를 새겨 수위의 변화를 측정하고 기록하였다. 1441년(세종 23)에 제작된 수표도 이러한 방식이다. 세종 때 제작한 수표는 목재로 제작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나무로 만든 수표는 물에서 썩기 때문에 점차 석재로 만들게 되었다. 현재 수표의 역사적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은 서울 청계천 수표와 장충단 공원에 있는 수표교이다.
조선 전기에, 승지, 전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고경허 (高景虛)
조선 전기에, 승지, 전주부윤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한성부좌윤, 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고태필 (高台弼)
조선 전기에, 한성부좌윤, 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