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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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형조(刑曹)에 소속된 종8품의 율관(律官).
제도/관직
  • 설치 시기1466년(세조 11)
  • 소속형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한희숙 (숙명여대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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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심률은 조선시대에 형조(刑曹)에 소속된 종8품의 율관(律官)이다. 법률 · 소송 등의 심사를 담당하였다. 율학청(律學廳)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이수(履修)한 후 율과(律科)나 율학취재(律學取材)에 응시하여 합격한 이들이다. 인원은 2명 내지 1명을 두었다. 체아직이다.

정의

조선시대, 형조(刑曹)에 소속된 종8품의 율관(律官).

임무와 직능

1466년(세조 12)에 사율원(司律院)을 율학(律學)으로 이름을 고쳐서 형조(刑曹)에 소속시키고 율관을 설치할 때 명률(明律: 종7품) · 검률(檢律: 종9품) 등과 함께 설치되었다. 이때 심률은 종8품직으로, 정원은 2명이었으며, 법률 · 소송 등의 심사를 담당하였다. 형조의 율학청(律學廳)에서 일정 기간 소정의 교육을 이수(履修)한 후 율과(律科)나 율학취재(律學取材)에 응시하여 합격한 자들이다.

경국대전』에도 형조 소속의 종8품 관원으로 2원이 제정되었지만, 1506년(연산군 12)에 1원을 혁파하였다. 그러나 숙종 대 편찬된 『전록통고(典錄通考)』에는 2명으로 늘어났다가 영조 대에 편찬된 『속대전(續大典)』에는 “종8품 심률은 1원 감한다.”라고 하여 정원이 다시 1명으로 줄었다. 정직(正職)이 아닌 체아직(遞兒職)으로, 취재를 통해 1년에 2회, 양도목으로 6월과 12월에 그 성적에 따라 승진 · 출척시키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원전

  • - 『경국대전(經國大典)』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속대편(續大典)』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전록통고(典錄通考)』

  • 논문

  • - 이남희, 「조선전기의 율관: 그 신분적 성격과 위상을 중심으로」(『한국학보』 15, 고려사학회, 2003)

주석

  • 주1

    : 사족(士族) 이상의 신분만 임용하는 문무 관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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