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손자 심재복이 편집, 간행하였다. 정규석(鄭珪錫)의 서문이 1953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아, 그해에 간행되었거나 그로부터 몇 년 내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권두에 정규석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저자의 아들 심종섭(沈琮燮)과 손자 심재복의 발문이 있다.
권1·2에 시 82수, 만사(輓詞) 33수, 서(書) 21편, 서(序) 3편, 기(記) 4편, 설(說) 3편, 발(跋) 3편, 잠(箴) 1편, 명(銘) 5편, 찬(贊) 2편, 전(傳) 1편, 유사 3편, 권3·4는 부록으로 원운(原韻) 33수, 만사 122수, 제문(祭文) 4편, 가장· 행장(行狀)·묘지명·묘갈명· 묘표(墓表)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표현력이 풍부하고 관찰력이 예리하다. 「심(心)」·「성(性)」·「정(情)」·「성(誠)」·「경(敬)」 등은 학문의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매화를 치(穉)·노(老)·분(盆)·미개(未開) 등 열 가지로 분류해 각기 다른 특성을 묘사한 「십매(十梅)」와 비를 화(和)·소(疎)·동(凍)·시(時) 등 열 가지의 형태로 분류해 그 특성을 읊은 「십우(十雨)」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자신이 거주하였던 묵곡의 여덟 가지 경관을 읊은 「묵곡팔경(默谷八景)」이 있으며, 주희· 이언적· 이황 등의 시에 차운한 작품도 남겼다.
서(書)는 주로 학문에 대해 논한 것으로 곽종석, 심순택, 심이택, 이도묵, 이절범, 조원순, 권상적, 박상태 등에게 보낸 것이다. 「상묵계이장(上默溪李丈)」·「여이희간(與李羲幹)」 별지 등은 경전과 상례 등에 대해 질의, 응답한 것이다.
「오봉민보안서(鰲峰民堡安序)」는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주민들이 자위대를 조직, 마을을 자체적으로 수호할 것을 결의하고 마을 앞 오봉에 보루를 쌓아 적을 막을 계책을 세운 일의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오사설(吾師說)」에서는 스승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경험에 의해 체득하는 것이 많은데, 그것은 곧 내가 나의 스승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학문의 향한 정성이 바로 스승의 길이라고 하였다.
이밖에 친구간의 지켜야 할 도리와 의리를 설명한 「우설(友說)」,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행동 규범을 정한 「자경잠(自警箴)」, 진주에 사는 이광점(李光漸)의 효행을 기록한 「효자이상사전(孝子李上舍傳)」 등이 있다.
19세기 영남의 재야학자가 맺은 교유의 한 양상을 보여주고, 경상남도 산청 묵곡의 여덟 가지 풍경을 읊은 시 「묵곡팔경(默谷八景)」은 그 소재만으로도 특색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