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홍제의 문집이다. 이홍제는 언관으로서 당대의 권세가인 홍봉한을 탄핵하여 흑산도와 해남에 두 차례 유배되었다. 『백봉집』은 이러한 저자의 언관 활동과 유배 생활을 담고 있는 자료로서, 유배지에서 창작된 한시, 일기, 기문 등을 특히 집중적으로 수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정치적 변동과 그로부터 촉발된 문학 작품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문헌 자료이다.
저자 이홍제(李弘濟, 17221784)의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원보(元輔), 호는 백봉(栢峯)이다. 중추부사(中樞府事) 이우정(李宇鼎, 미상)의 아들이다. 1753년(영조 29) 생원시(生員試)에 입격(入格)하고 1754년 문과에 급제했다. 성균관(成均館) 전적(典籍), 예조(禮曹) 정랑(正郎), 흥덕 현감(縣監),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등을 역임했다. 1772년(영조 48)에는 합계(合啓)하여 당파를 짓는 재상을 탄핵했다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1774년에 석방되어 사헌부 장령으로 복직되었으나, 다시 홍봉한(洪鳳漢, 17131778)을 탄핵한 일로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석방되었으나 귀가하여 사망했다.
『백봉집』을 편찬한 이준세(李俊世)는 이홍제의 7세손이다. 이력은 미상이다.
권두에 송의섭(宋毅燮)의 서문이, 권말에 박중로(朴魯重)의 발문(跋文)과 후손 이등로(李登魯), 이종만(李鍾萬), 이근하(李根廈), 이태세(李泰世)의 지(識)가 있다. 이들 서발문에 의하면, 이홍제의 7세손 이준세(李俊世)가 유고를 수습해서 이등로(李登魯)에게 등사(謄寫)시킨 초고를 간행한 것이다. 이근하의 지에 의하면 활자(活字)로 간행할 것을 기획했다고 하는데, 현전하는 판본은 석인본(石印本)이다. 이근하와 이태세의 지가 1942년에 작성되었고, 나머지 서발문이 1941년의 저작이므로 『백봉집』은 1942년에 간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2권 2책의 구성이다. 10행 22자, 상하향흑어미(上下向黑魚尾)의 석인본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원광대학교 중앙도서관, 이홍제 후손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권1에는 부(賦) 2편, 사(辭) 9편, 시 339수가 소장되어 있다. 시는 저자 스스로 「남황고음(南荒苦吟)」의 소서(小序)를 통해 밝힌 것처럼 적중(謫中)에서의 정사(情思)를 꾸민 흔적 없이 자연스럽게 표출시킨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점은 「흑산도부(黑山島賦)」 전 · 후편과 「추회9사(秋懷九辭)」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박노중이 발문에서 “소동파의 철석같은 심장이요, 굴원의 우수에 찬 이소〔坡翁之鐵心石殤, 屈子之憂愁離騷〕”라 지적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도녀근고(島女勤苦)」 · 「우기세(憂饑歲)」 · 「문적환(聞賊患)」 같은 시들은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보국우민(保國憂民)의 충정을 담아내고 있다. 일반적인 문집에 비해, 차운시, 증시(贈詩)와 같이 타인과 교류하면서 지은 작품이 적고, 유배객으로서의 감회와 가족, 친구, 고향 등을 그리워하는(憶) 작품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대체로 저자는 사장(詞章)에 주력하지 않은 까닭으로 공교로운 시작 기법이나 시인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저자가 소년 시절부터 중시해온 것은 권2에 수록된 공령문(功令文)이라고 볼 수 있다.
권2에는 소(疏) 12편, 계(啓) 2편, 서(序) 1편, 기(記) 4편, 논(論) 7편, 의(義) 5편, 설(說) 1편, 제문 4편, 잡저 2편에 이어,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소와 계는 부패한 지방관을 탄핵하거나 예궐(詣闕)의 피혐(避嫌) 제도를 논하는 내용 등, 언관(言官)인 사헌부 장령 등의 직책에서 시사를 논핵한 글들이다. 서(序)는 이자동(李子東)이라는 인물을 전송한 것인데, 내용으로 볼 때 유배지에서 사귄 후배로 추정된다. 기는 선조가 건설한 행정(杏亭) 등 건축물에 대한 기문이다. 논과 의는 그 구성으로 볼 때 과문(科文)으로 추정된다. 여러 주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논설했다. 「사기재산천론(史記在山川論)」에서는 “문장의 재주가 있는 자는 반드시 문장의 기(氣)를 얻어야 하고, 문장의 기를 연마하는 자는 반드시 산천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라고 하여 『사기(史記)』가 이룩한 기괴(奇怪)한 성격을 설명해 놓고 있다. 이 같은 독특한 ‘사기론(史記論)’은 바로 저자의 산문의 특징을 대변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언관(言官)으로서 당시 영조에게 올렸던 수편의 상소(上疏) 문장들이 직절하면서도 매우 정성스럽고, 반복포치하면서도 강직(剛直)한 필치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제문은 기우제문 등이고, 잡저는 2차례의 유배 생활을 기록한 「흑산일기(黑山日記)」와 「해남일기(海南日記)」이다.
이 책은 작자 사후 150여 년이 지난 때에 편집되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저작이 일실된 것으로 보이며, 두 차례에 걸친 유배 기간에 쓰인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여타 문집들과 달리 저자의 교유 관계를 보여 주는 글들이 매우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