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문신, 이홍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2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이홍제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2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42년 이홍제의 7세손 이준세(李俊世)가 유고를 수습해 송의섭(宋毅燮)의 교정, 이등로(李登魯)의 등사(謄寫)를 거쳐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의섭의 서문과 권말에 박노중(朴魯重)·이등로 등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2책. 석인본. 이홍제의 후손 집안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권1에 부(賦) 2편, 사(辭) 9편, 시 339수, 권2에 소(疏) 12편, 계(啓) 2편, 서(序) 1편, 기(記) 4편, 논(論) 7편, 의(義) 5편, 설(說) 1편, 제문 4편, 잡저 2편, 부록으로 행장, 묘갈명, 묘지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작자 사후 150여년이 지난 때에 편집되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저작이 일실된 것으로 보이며, 두 차례에 걸친 유배 기간에 쓰여진 것이 대부분이다.

시는 저자 스스로 「남황고음(南荒苦吟)」의 소서(小序)를 통해 밝힌 것처럼 적중(謫中: 유배중)에서의 정사(情思)를 꾸민 흔적 없이 자연스럽게 표출시킨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점은 「흑산도부(黑山島賦)」 전·후편과 「추회9사(秋懷九辭)」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박노중이 발문에서 “소동파의 철석같은 심장이요, 굴원의 우수에 찬 이소(坡翁之鐵心石殤, 屈子之憂愁離騷)”라 지적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도녀근고(島女勤苦)」·「우기세(憂饑歲)」·「문적환(聞賊患)」 같은 시들은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보국우민(保國憂民)의 충정을 담아내고 있다.

대체로 저자는 사장(詞章)에 주력하지 않은 까닭으로 공교로운 시작 기법이나 시인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저자가 소년시절부터 치중해온 것은 공령문(功令文)이었다.

저자는 「사기재산천론(史記在山川論)」에서 “문장의 재주가 있는 자는 반드시 문장의 기(氣)를 얻어야 하고, 문장의 기를 연마하는 자는 반드시 산천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고 하여 『사기(史記)』가 이룩한 기괴(奇怪)한 성격을 설명해놓고 있다.

이 같은 독특한 ‘사기론(史記論)’은 바로 저자의 산문의 특징을 대변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언관(言官)으로서 당시 영조에게 올렸던 수편의 상소(上疏) 문장들이 직절하면서도 곡진하고, 반복포치하면서도 강직(剛直)한 필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비교적 수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영조연간의 언로현실(言路現實)과 정치사적으로 시파(時派)·벽파(僻派)의 대결 양상을 조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

집필자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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