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청산성 ( )

목차
관련 정보
부여 청산성 전경
부여 청산성 전경
건축
유적
문화재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테뫼식으로 축조된 토축 성곽. 산성. 사적.
이칭
이칭
청산성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번지
목차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테뫼식으로 축조된 토축 성곽. 산성. 사적.
내용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99,600㎡, 둘레 약 500m.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형의 산성이며 삼중(三重)의 토성으로 되어 있다. 청산성의 북쪽 성벽은 나성(羅城)과 연결되어 있어서 나성과 동일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부여 고적조에 “석축주 1,800척 고5척 내유삼천유군창 청산성재현동일리석축(石築周一千八百尺高五尺 內有三泉有軍倉 靑山城在縣東一里石築)”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6년조에 “춘2월축각산성(春二月築角山城)”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기록에는 석축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토루(土壘)만 남아 있고 샘과 군창은 없다. 이 성을 주민들은 지금도 ‘풀뫼’·‘뿔뫼’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것을 한자로는 각산성(角山城)·청산성(靑山城)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청산성은 605년(무왕 6)에 백제의 수도 사비를 수호하기 위하여, 즉 수도 사비에서 웅진(熊津)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나성과 함께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 부근에서는 호안석(護岸石)이 발견되고 있으며, 청산성 앞에는 월함지(月含池)가 있다. 이 물은 동쪽에 있어 청마산성(靑馬山城)과 사비 도성내에서 흐르는 물들이 흘러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이 물은 다시 청산성을 돌아서 북쪽 백마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어, 성 밖으로 둘러싸고 있는 해자(垓字) 구실을 하게 되어 있다.

참고문헌

「백제성지연구」(홍사준, 『백제연구』 2,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71)
「백제사비도성연구」(성주탁, 『백제연구』 13,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82)
「백제테뫼식산성의 형식분류」(공석구, 『백제문화』 24, 1994.2.)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성주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