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경이 설치된 6개 관서는 담당한 직무가 각각 달랐다. 그러나 소경이 설치된 각 시에는 상위 관직으로 정3품의 판사(判事) 2명, 종3품의 경(卿) 2명이 있었고, 하위 관직으로는 종5품 승(丞), 종5품 겸승(兼丞), 정6품 박사(博士), 종6품 주부(注簿) · 겸주부(兼注簿), 정7품 협률랑(協律郞), 종7품 직장(直長), 정8품 대축(大祝), 정8품 또는 정9품 녹사(錄事), 9품 영사(令事) 등이 관사의 성격과 규모에 맞게 각각의 관직명과 인원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소경은 장관인 판사와 차관인 경의 지휘를 받으면서 그 관아의 성격에 맞는 실무를 담당하였을 것이다.
소경은 1409년(태종 9)경 관제 개편 때 경은 령(令)으로, 소경은 부령(副令)으로 개칭되면서 소멸하였다. 그 후 부령은 다시 1414년(태종 14)에 관제 경정 때 소윤(少尹)으로 개칭되었으며, 1466년(세조 12)의 신관제에서 첨정(僉正)으로 바뀌었다.
소경은 명나라의 관직명에도 있었다. 조선 초기, 명나라에서 온 사신 중에는 태복시 소경(太僕寺少卿), 홍려시 소경(鴻臚寺少卿), 광록시 소경(光祿寺少卿), 태재부 소경(太宰府少卿), 상보감 소경(尙寶監少卿) 등이 있었다. 한편 한확(韓確)은 그의 누이[여형(女兄)]가 명나라에 뽑혀 들어가서 태종 문황제(太宗文皇帝)의 여비(麗妃)가 되었기 때문에 황제의 명을 받고 명나라에 갔을 때 광록시 소경(光祿寺少卿)을 제수받았다. 명나라의 소경은 정5품직이었으므로 조선에서는 정3품직에 준한 예우를 하였다.
소경은 주로 중국과 고려에서 편제된 관직이다. 조선 초기에 일시적으로 사용되었으나 조선의 고유 관직이 마련되면서 소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