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호 가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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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오지호가 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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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서양화의 대가인 오지호 관련 주택.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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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서양화의 대가인 오지호 관련 주택. 시도기념물.
내용

1986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가옥은 지산동의 옛 딸기밭 아래에 있는 초가집으로 서양화의 대가 오지호(吳之湖)가 조선대학교 교수로 근무중이던 1954년 이후 1982년 타계하던 때까지 살던 집이다. 원래는 100여년 전의 건물이었으나 퇴락(頹落)하자 1986년에 전면적인 보수작업을 하였다. 이 가옥은 오지호가 태어난 집이 아니기 때문에 오지호 생가라기 보다는 오지호 가옥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화실로 사용되는 문간채가 있고, 안채는 초가집인데 정면 4칸, 측면 1칸의 전후퇴이며 초가 우진각지붕집이다. 평면은 1칸반의 부엌과 1칸씩의 방3개로 되어 있고, 배면에는 툇마루와 골방이 있다. 부엌에는 살창과 찬장을 복원하였으며 판장으로 된 문은 옛날 것을 그대로 달았다. 부연은 대나무로 엮었고 서까래는 가늘고 끝을 훑었다.

기단은 막돌 허튼층쌓기의 외벌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전면과 측면에는 네모기둥, 뒷면에는 원형기둥을 세웠다. 현재 기둥은 모서리기둥만을 남기고 그 크기로 복원되어 있으며 문은 외짝의 띠살문이며 앞마루도 우물 마루를 살리려고 부분적으로 보수하였다. 네모기둥 위에는 우미량과 납도리를 결구(結構)하였고 문부(門部)는 고주(高柱) 위에 대량을 걸친 뒤 동자주를 놓았고 종도리를 올려 놓은 일반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

화실은 6평 남짓한 크기이며 북향에 채광창이 있고, 장마루와 맞배지붕을 한 유럽 스타일의 정통 화실이다.

오지호(1905∼1982)는 인상주의의 회화 양식을 받아들여 토착화시킨 화가이다. 전라남도 화순 동복 출신이며 휘문고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유학 유화가(油畵家)인 고희동(高義東)에게서 미술을 배운 뒤 동경 미술학교에 유학하였다. 1948년 광주에 내려와 정착하였고 광주미술연구회를 조직하는 한편 조선대학교 미술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또 전남도전을 창립, 지방 미술의 발전을 주도하면서 구상회화 우위의 이념과 이론으로 광주권 화단의 유화 화풍을 고착시켰다. 또한 그는 만년에 교과서에서 한자를 병용하여 과학적 두뇌를 개발할 것을 강조하는 한자 교육 부활 운동에 앞장섰다. 국전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을 역임하였고, 예술원회원으로 있었다. 1977년 대한민국예술원상을 수상하였고, 1973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문화재도록』(광주광역시, 1997)
『광주(光州)의 문화유적』(광주직할시, 1990)
『전남의 전통건축』(천득염, 전남대학교박물관·전라남도,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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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천득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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